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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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그림 속엔 생각보다 많은 주제가 숨어 있었다.

의도하고 그렸든, 그렇지 않았든 우리는 그 속에서 17세기의 네덜란드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역사와 기후, 그리고, 동인도제도를 따라 떠나는 아시아까지 닿지 않는 게 없다.

저자가 제목으로 내세운 베르메르의 모자를 보자. 이 그림 안에는 당시의 연애사와 세계정황, 그리고 전쟁 등이 내포되어 있다. 화가들은 이제 은밀한 정사에서 결혼이라는 주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적어도 네덜란드에선 결혼은 돈보다 로맨스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으며, 실내에서도 모자를 착용하는 것은 그 당시의 문화가 숨어있다. 그들은 왕의 앞이 아니면 실내에서도 모자를 벗는 법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수줍은 듯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뒤에 보이는 세계지도 또한 허투루 볼게 아니었다. 작가가 이 모든 것을 유념하며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한 장의 사진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인 상황부터 정세까지 다 내포되어 있었다.

 

베르메르가 평생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델프트를 그린 델프트의 풍경. 17세기의 유럽은 극심한 추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델프트의 항에 정박해 있는 청어잡이 어선은 원래는 네덜란드에선 흔하지 않는 풍경이다. 북유럽에서나 잡힐 청어가 극심한 추위로 인해 북유럽의 항구가 얼어서 네덜란드에서 청어를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네덜란드가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다. 네덜란드하면 으례 떠오르게 되는 동인도회사. 그 동인도 회사의 창고를 그림 '델프트의 풍경'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정말 그림 하나가 과거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동서양의 교류는 시작되고, 유럽은 알게 모르게 중국의 영향을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자석 나침반이 그랬고, 화약과 종이가 그랬다. 그리고, 중국의 도자기를 닮은 도자기도 만들기 시작했다. 베르메르가 그린 또하나의 그림 '저울을 든 여인'이 측정하는 것은 바로 '은'이다. 그림에서 은화 혹은 금화를 저울질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세속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딘지 엄숙해 보이고, 비약하자면 성스러워 보이까지 한다. 이것은 당시의 네덜란드는 자본주의 경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고 정당한 경제활동은 미덕으로 여겼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은'의 유통경로를 따라가다보면 유럽을 만나고, 중국을 만나고 일본의 그 당시를 만나게 된다. 은을 사고 팔아서 생긴 이익으로 다른 것을 사서 되파는 먼거리 무역이 활발했고, 은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역경제와 세계 경제를 만나게 된다.

 

17세기 세계 교역로의 중심에 서있었던 네덜란드. 그리고 그 시대, 그 곳에서 그림을 그렸던 베르메르라는 화가를 통해, 그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네덜란드를 만났다. 또, 당시의 촘촘하게 엮여 있는 세계사를 만나게 된다. 아프리카 흑인 소년이 네덜란드의 가정에서 주인을 위해 와인을 따르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들이 벌써 아프리카의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화가의 그림은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오늘 지금 우리집 거실을 만약 화가가 그린다면 5세기 후쯤의 역사학자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어디에나 흔하게 있는 가전제품과 소파에서, 거실에 나와 있는 책꽂이의 수많은 책들 속에서 혹은 집안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작은 화분과 화병의 꽃들을 보면서, 지금의 기후를  분석하고 수많은 교역루트를 짜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작은 것 하나에도  수많은 세계인과 수많은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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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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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가 언제였던가? '혼자'라면 저자가 소개한 그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결혼 전엔 여자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지금은 그전보단 욤감해졌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혼자라면, 그런 외진 곳에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은 저자의 여행기에 살짝 동승해 보는 것으로 만족해본다.

 

박상우라는 사람은 참 자유로운 사람이다. 생각이 동하면 바로 떠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시간을 갖추었으니 부러운 일이다.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작은 일탈조차 꿈꾸기 힘든 사람들에겐 부럽기 그지 없다. 자 떠나자라고 마음 먹고 시간나는 주말에 떠나기엔 꽉 막힌 도로와 어딜가든 인산인해이어서 집을 나서자마저 후회하기 일쑤이다. 평일엔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그가 부러울 따름이다.

 

시원한 사진과 함께 작가와 떠난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선 맨발로 땅의 온 정기를 느끼고 싶다. 맨발로 숲길을 걷다니 상상만으로도 빳빳하게 굳어있는 내 온 몸이 느슨하게 풀리는 듯 하다. 그 곳을 오롯이 걷는다면 나 또한 수평적 자아의 확장과 수직적 자아의 수축을 절감하지 않을까? 세속적인 자아가 쑥쑥 자랄 때마다, 그래서 나를 잃어갈 때마다 '나를 되찾기' 위해 찾아 떠나는 그 곳, 월정사 전나무 숲길로 떠나고 싶어진다.

 

세상을 살다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지금 나는 어디에 서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때 그는 '대관령'으로 가보라 한다. 언제든 그런 때가 오면 가보리라. 가서 강릉가는 옛길과 양떼목장을 구경하며 시계제로인 그 상황에서 어떻게 헤어나와야 할지 가늠해보리라.

 

말무리 반도와 자유로를 따라가다 보면 막히는 곳, 자유롭게 달리고자 하는 자유가 꺽인 도로, 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봐야 하는 말무리 반도를 바라보는 그 느낌. 도라산역의 자유다리에서 끊겨버린 다리 위에서 느꼈던 그 당혹감. 가로막혀 있는 그 철조망만 걷어내면 갈 수 있는 것을 저지당한 그 막막함. 이게 분단이구나를 느꼈던 그 안타까움.

 

반세기, 남북의 군대가 밤낮으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을 날짐승들은 높은 곳에서 지켜보았을 것이다. 끝도 없이 철책을 치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초소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밤을 지새우며 두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노려보는 모양새가 새들에게는 얼마나 우습고 기이하게 보이겠는가.<p.261>

 

여기쯤 읽고 있었을 때 어이없는 비보를 접했다. 금강산 관광을 떠난 아주머니가 북한군의 총격에 유명을 달리했다. 숙소에서의 몇걸음 이탈이 죽음으로 끝날 수도 있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실감나지 않기도 하지만, 이런 사실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 우리라는 범주에 기꺼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던 남과 북은 생각보다 멀리 있다는 거리감을 인식하게 된다. 북녘 땅에서 감회가 새로웠을, 상념에 젖어 바닷가를 거닐고 싶었을 그 단순한 이유가 죽음으로 끝나버린 비극을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게 지금 2008년 한국에서의  남과 북이다. 우리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저자는 세상사는 것이 힘들 때, 극에 치달을만큼 힘들 때는 단종을 만나러 영월 청령포로 향한다. 배를 타고 가야할 만큼 세상과 단절된 '육지고도'의 그곳에 가면 인생이 힘들다는 생각도 죽고 싶다는 생각도 너무 가증스럽게 여겨진다.<p.138>고 했으니 단종이 느꼈을 그 두려움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혼자 길을 떠나는 이유는 망상자아를 버리기 위해서이다. 달리 말하면 근원자아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자아를 만나고 싶고, 진정한 자아로 살고 싶다는 갈망이 길을 떠나가 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로 온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은 욕심이 아니다. 그 완전한 충만, 완전한 하나, 완전한 혼자의 상태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은 과일의 씨앗처럼 잘 여문 고독에 익숙해지고 고독과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고독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끝없이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세상를 살아가는 일은 나를 흐려지게 만드는 일이다. 내가 지워져 보이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길을 떠나 나를 만날 수 있는 장소로 간다.

며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한다.

 

자, 이제 저자와 함께 '나'를 만나러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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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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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인간혹은 동물의 거친 숨소리를 나타내는 단어.
만화책 '피안도'에서 자주 등장한다. 난처한 상황, 혹은 불리한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다.또는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가능하다.
보통 그다지 무의미하게 말하게 되나,게임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흐름이 전개될 때 사용된다.
혹은, 종종 반어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흐름이 전개될 때 상대방의 "하악하악"에 대꾸적으로 대답할 수도 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상대한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된다.

네이버 오픈 사전에서 가져왔습니다. 책 제목이 생소했습니다. 아,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이더군요. 아니면, 야동을 볼 때. 

이외수님의 책을 참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읽고 이제 처음이니 벌써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하더군요. 그 입심 - 아니 필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 은 여전했습니다.

꽃들의 제안 : 꽃병을 없애주세요.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가 예쁘다고 머리를 절단해서 실내를 장식하지는 않잖아요. p. 19 

이외수님! 이 표현은 참 많이 거슬립니다. 저는 꽃과 나무를 좋아해서 저희집 베란다엔 화초가 지천입니다. 그리고, 꽃병에 꽃을 꽂아둡니다. 꽃꽂이도 하구요. 이 표현을 꽃 좋아하는 제 친구들에게 말하면 뭐라고 할지...
'꽃과 강아지의 비교는 적절치 않습니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도는 알겠지만 표현이 좀 셉니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읽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p.122 

와우~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하악하악에서 가장 감동한 글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부패되는 인간이 아닌 발효되는 인간이 되도록 오늘도 신중하겠습니다. 

여자는 결혼을 하고 타인의 이목에 신경을 쓰지 않는 습관이 생기면서 순식간에 아줌마로 전락해 버린다. 아줌마는 매사에 용감한 행동을 일삼기는 하지만 목적이 어떠하든 거룩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줌마가 되지 않으려면 이기적인 행동이 여자의 아름다움을 가장 빨리 훼손시킨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p192

저는 서른이 훌쩍 넘어서 마흔을 바라보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줌!마!입니다.
뜨끔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외수님이 지적하신 아줌마가 되지 않도록 충고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지만요, 살아보니 여자가 아줌마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팍팍한 살림에 나보다는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지하철에서 자리에 용감하신 대개의 어머니들은 다리와 허리가 부실하더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변하기를 소망하지 말고 그대 자신이 변하기를 소망하라. 세상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불만과 실패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찾아와서 포기를 종용하고,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성공과 희망이라는 이름의 초청객이 찾아와서 도전을 장려한다. 그대 인생의 주인은 세상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다. p. 244 

그러게요.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성공과 희망이라는 초청객이 찾아온다는 것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그럼요, 제 인생의 주인은 저 자신인걸요. 그걸 때때로 잊었습니다. 그걸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하악하악은  때로는 익살스럽고, 때로는 과격했고, 때로는 금과옥조처럼 귀한 글도 있었습니다. 

그 작은 체구가 늘 아슬해보입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참,  책 속의 그림들. 참 좋았습니다. 그 물고기들 덕분에 아이들과 한 번 더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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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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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문학계의 큰 산이신  박경리 선생이 영면하셨습니다.  그 분의 마지막이 담긴 유고시집.
말년의 선생의 삶과 사유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지만, 시인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김약국의 딸들'밖에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토지'는 너무 방대해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를 읽으면서 선생의 노년이 어떠했는지 만나보게 됩니다. 80평생이 담긴 시는 시이면서 선생의 독백같습니다.
시들은 왠지 쓸쓸한 느낌이 납니다. 

선생님의 삶은 많이 외로우셨나요? 글 속에 갇혀 사셨나요? 자연과 벗하시던 선생님의 사진을 책에서 봅니다. 여고시절의 앳된 사진과 직접 그리셨다는 순정만화풍의 그림과 저보다 젊으셨던 사진도 봅니다.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산다는 것은>과 <사람의 됨됨이>는 저에게 당부하는  글같습니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산다는 것- 중에서

 
저 역시도 - 선생이 보시기엔 새파랗겠지만 - 한 번 가면 오지 않을 그 찬란한 청춘을 그냥 보내 버렸습니다. 언제나 그 시절은 너무나 짧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 후회하게 됩니다. 그게 산다는 것이겠지요.


선생이 우리에게 이러이러하게 살게나 권면하는 시를 읽으면서 숙연해집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보아오신 모습이 담겨있어서, 또 인색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한글자 한글자 곱씹으며 읽게 됩니다.

<사람의 됨됨이>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선생님, <일 잘하는 사내>를 읽고 있자니 슬그머니 저도 마음 한구석 아립니다. 그리고 저희 엄마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세대가 대체로 그러하듯 부부간의 알콩달콩한 사랑을 모르셨을테니까요.  그저 밥먹고 살아가는 것조차 버거웠던 시대였으니까요. 선생님이, 저희 엄마가 부모님께 하셨던 것을 자식들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잖아요. 저 역시도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불효자식이구요. 그게, 알면서도 참 어려워요. 부모님께 잘 해야지 하면서도 늘 다짐뿐이고, 그때뿐입니다. 그래서, 외로우셨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왠지 바깥분과 일찍 사별을 하셨거나, 아님 남남이 되셨을것 같아요. 외람된 추측인가요? 선생님의 시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음 한 켠 아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일 잘하는 사내>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거야

 
저에게 가장 아프게 다가왔던 시를 적어볼게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바람>이라는 시를 읽고 있자니 괜히 슬퍼져요. 책을 덮고 나서도 이 시가 한동안 저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선생의 시를 조금은 숙연하게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는 것이 가신 분에 대한 예의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가신 그 곳에서 편하시기를.... 

<바람> 

흐르다 멈춘 뭉게구름
올려다보는 어느 강가의 갈대밭
작은 배 한 척 매어 있고 명상하는 백로
그림같이 오로지 고요하다


어디서일까 그것은 어디서일까
홀연히 불어오는 바람
낱낱이 몸짓하기 시작한다
차디찬 바람 보이지 않는 바람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뚫고 지나가는 찬바람은
존재함을 일깨워 주고
존재의 고적함을 통고한다
 

아아
어느 始原에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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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
나카가와 유스케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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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뒷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감독은 배우들은 어떻게 영화에 임했을까 궁금하게 되고, 소설 또한 서문을 읽으면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다. 작가의 사생활을 알면, 그의 글들이 왜 그런 색채를 띄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때, '상식으로 알아야 클래식50'은 클래식을 조금은 더 가깝게 만들어 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아, 그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하고 들으니 이전보다 한 걸음쯤 가까워진 듯 하다.

 

우리 집엔 텔레비젼이 없어서, 라디오나 cd의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아이들을 씻기고, 책을 읽을 때면 늘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비교적 배경음악으로 듣기에 좋은 곡들위주로 듣는다. 지금까지는 모짜르트 cd모음 10장, 클래식 모음 cd 10장 등을 사서 들었다. 클래식의 곡들은 대체로 제목들이 외우기 쉽지 않아서, 듣고 있는 곡이 누구의 작품인지도 제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책을 통해서, 너무나 유명하지만, 가깝지도 않은 그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1000여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다던 바흐.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 특히나 말러의 사생활은 -그에게는 유감이지만- 흥미진진하다. 말러와 19살 연하의 아내와 아내의 애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요즘의 연애기사로도 손색이 없다. 클림트의 애인이었다던 말러의 아내. 클림트는 상류계의 부인들과는 정신적인 사랑을, 창녀들과는 난삽한 애정행각을 했다니, 그의 그림들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에뛰드나, 발라드는 쇼팽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정보도 입수하게 된다. 비발드의 사계가 유명해 진 것도 비교적 최근이라는 사실은 의외이다. 악마로 불렸다는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이야기는 천재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연주하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훌륭해서  듣는 이를 소름끼치기 해 악마로 오해받았다는, 그래서, 죽은 후에 묻힐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는 사실은 -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여준다.

 

책에서 저자가 추천한 50곡은  대체로 한 번쯤은 들었던 것들이다. 또한 교과서의 음악시간에 접했던 것들이다. 내가 클래식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음악을 알기도  전에, 작곡가의 이름과 외우기도 힘든 제목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시험을 위해 외우는 곡이 과연 재미가 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은 돈 주고 사서 기꺼이 듣는 자유의지. 그때문에 그 곡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그렇지만, 클래식은 출발선이 달랐다. 들어보지 못한 곡들을, 이름도 익숙치 않은 그네들의 이름부터 외웠으니 클래식은 내게 강요와 지겨움의 이미지였다. 지금은 다행히 가끔씩 클래식 음반을 사기도 하고, 이전처럼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니 이제부터는 저자의 책을 지침 삼아서 천천히 제대로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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