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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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화가의 그림 속엔 생각보다 많은 주제가 숨어 있었다.

의도하고 그렸든, 그렇지 않았든 우리는 그 속에서 17세기의 네덜란드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역사와 기후, 그리고, 동인도제도를 따라 떠나는 아시아까지 닿지 않는 게 없다.

저자가 제목으로 내세운 베르메르의 모자를 보자. 이 그림 안에는 당시의 연애사와 세계정황, 그리고 전쟁 등이 내포되어 있다. 화가들은 이제 은밀한 정사에서 결혼이라는 주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적어도 네덜란드에선 결혼은 돈보다 로맨스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으며, 실내에서도 모자를 착용하는 것은 그 당시의 문화가 숨어있다. 그들은 왕의 앞이 아니면 실내에서도 모자를 벗는 법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수줍은 듯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뒤에 보이는 세계지도 또한 허투루 볼게 아니었다. 작가가 이 모든 것을 유념하며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한 장의 사진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인 상황부터 정세까지 다 내포되어 있었다.

 

베르메르가 평생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델프트를 그린 델프트의 풍경. 17세기의 유럽은 극심한 추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델프트의 항에 정박해 있는 청어잡이 어선은 원래는 네덜란드에선 흔하지 않는 풍경이다. 북유럽에서나 잡힐 청어가 극심한 추위로 인해 북유럽의 항구가 얼어서 네덜란드에서 청어를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네덜란드가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다. 네덜란드하면 으례 떠오르게 되는 동인도회사. 그 동인도 회사의 창고를 그림 '델프트의 풍경'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정말 그림 하나가 과거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동서양의 교류는 시작되고, 유럽은 알게 모르게 중국의 영향을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자석 나침반이 그랬고, 화약과 종이가 그랬다. 그리고, 중국의 도자기를 닮은 도자기도 만들기 시작했다. 베르메르가 그린 또하나의 그림 '저울을 든 여인'이 측정하는 것은 바로 '은'이다. 그림에서 은화 혹은 금화를 저울질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세속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딘지 엄숙해 보이고, 비약하자면 성스러워 보이까지 한다. 이것은 당시의 네덜란드는 자본주의 경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고 정당한 경제활동은 미덕으로 여겼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은'의 유통경로를 따라가다보면 유럽을 만나고, 중국을 만나고 일본의 그 당시를 만나게 된다. 은을 사고 팔아서 생긴 이익으로 다른 것을 사서 되파는 먼거리 무역이 활발했고, 은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역경제와 세계 경제를 만나게 된다.

 

17세기 세계 교역로의 중심에 서있었던 네덜란드. 그리고 그 시대, 그 곳에서 그림을 그렸던 베르메르라는 화가를 통해, 그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네덜란드를 만났다. 또, 당시의 촘촘하게 엮여 있는 세계사를 만나게 된다. 아프리카 흑인 소년이 네덜란드의 가정에서 주인을 위해 와인을 따르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들이 벌써 아프리카의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화가의 그림은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오늘 지금 우리집 거실을 만약 화가가 그린다면 5세기 후쯤의 역사학자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어디에나 흔하게 있는 가전제품과 소파에서, 거실에 나와 있는 책꽂이의 수많은 책들 속에서 혹은 집안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작은 화분과 화병의 꽃들을 보면서, 지금의 기후를  분석하고 수많은 교역루트를 짜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작은 것 하나에도  수많은 세계인과 수많은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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