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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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아이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상할 정도로 아이는 여자에게(남자에게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자신보다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되죠. 그걸 저 역시 경험하고 있는터라 쌍둥이별이라는 책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읽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아이라는 존재는 어느 별에서 왔길래 내 삶의 많은 걸 바꿔놓았을까요? 아이가 아픈 것보다 내 마음이 더 아파서 대신 아픈 게 낫게다는 마음이 드는 것. 그런 마음이 부모가 되면 저절로 생기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제 13살인 아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나는 누구일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 만약 케이트 언니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나는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언니의 치료를 목적으로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난 아이입니다. 나는 언니에게 내 몸의 많은 것을 줍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언니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언니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아이입니다. 이제  엄나는 사그러져가는 언니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신장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안나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안나의 선택은 지금까지 함께한 가족이라는 성을 무너뜨리는 것일수도, 언니인 케이트의 생명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결정입니다. 안나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비난받아 마땅한 일 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아이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와 같은 유전자의 형제자매가 있으면 아이가 살 수 있답니다. 엄마는 그 아이, 케이트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동종기여자인 동생이 있다면 케이트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전자 조작을 한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동생인 안나는 케이트에게 제대혈, 골수, 혈액...등등 무수한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수술을 합니다. 그 어린 아이가 언니를 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5살 밖에 살 수 없다던 케이트는 이제 16살이 되었습니다. 케이트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엄마인 사라는 늘 케이트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나가 꼭 가고 싶어하던 캠프에 가는 것도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안나가 없는 동안 케이트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케이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들인 제시가 엇나가고 있지만 그 손을 잡아줄 여력이 없습니다. 케이트에게 신장을 기증해 줄 것을 요구한 사라의 말을 안나가 거절합니다. 그리고 딸에게 고소를 당합니다.

 

과연 사라의 이 같은 행동이 잘못된 것일까요?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유전자 조작이란 방법으로 아이를 낳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이해보다 비난이 앞선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부모가 된 적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약 사라의 입장이었다면, 아이를 살릴 방법이 그 방법 밖에 없다면, 꺼져가는 아이를 그냥 보낼 수 없기에 사라처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어떤 부모가 아이가 죽어가는데, 방법이 있다는데...

자식을 살릴수만 있다면 대신 날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는게 부모이니까요. 아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그러겠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는 그런 마음이라는 걸 알기에 사라와 브라이언의 선택을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윤리? 도덕?을 헤아리기엔 너무 다급하고, 세상의 모든 부모는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를 포기할 수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사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안나가 감당하기엔 벅찬 수술을 끝도 없이 강요해서 미안하고, 당신에겐 아들인 나도 있다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비행을 일삼는 가엾은 제시에게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지만 죽어가는 아이가 우선일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책을 읽는 내내 울었습니다.  안나의 입장에선 억울하죠. 억울할거예요. 케이트를 위해서 존재하는 아이. 아픈 언니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안나가 가여웠습니다. 아픈 동생때문에 늘 외로웠던 제시. 자신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제시가 가여웠습니다. 그리고, 케이트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안나가 가엾지만, 그렇다고 케이트를 포기할 수 없어 고민하는 사라와 브라이언도 가여웠습니다.

 

안나의 그 결정이 비록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라도 그를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나의 주장이 관철되어서 신장을 기증하지 않아 언니 케이트의 생명이 끊어지게 된다면 안나가 그걸 어떻게 극복할지 참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마 작가도 그걸 염려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그래서, 안나가 가여워서, 사라가 가여워서, 브라이언이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엔 참 궁금했습니다. 생명을 골라서 낳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과연 부모가 자식에게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자식이 그걸 거부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케이트만 잃는 것이 아니라 안나까지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작가는 어떻게 풀어냈을까를 고민하다보면, 작가의 결말이 충격이지만 작가가 꺼내놓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책에서>

 

"...알렉산더 씨, 이 심리가 시작될 때 당신은 우리 중 누구도 불 속에 뛰어들어 불타고 있는 건물에서 누군가를 구해낼 의무가 없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부모이고 그 불타는 건물 속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아이라면, 모든 게 달라져요. 그런 경우라면 당신이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 뛰어든다 해도 모두가 이해할 것이고, 실제로는 당연히 그러리라 기대할 거예요."

"그러나 내 삶에서는, 불타는 건물 속에 내 아이들 중 한 명이 갇혀 있었어요. 그 아이를 구해내는 방법은 다른 아이를 들여보내는 것 뿐이었어요. 그 아이만이 길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는 걸 몰랐을까요? 물론 알았어요. 그것이 두 아이 모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지 못했을까요? 아니에요. 그 아이에게 그런 일을 부탁하는 게 공평하지 않다는 걸 이해 못했을까요? 천만에요. 그러나 나는 그것만이 두 아이 모두를 지키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도 알았어요. 그게 합법적이었을까요? 도덕적이었을까요? 미쳤거나 어리석었거나 잔인했을까요? 나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것이 옳았다는 건 알아요."  <p.526>

 

슬픔에도 유통 기한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울다 깨어나도 괜찮지만 한 달을 넘기면 안 된다고 정해 놓은 법령 같은 게 말이다. 42일이 지나면 그 애가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려 심장을 두근거리며 뒤돌아보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거라고. 그 애의 책상을 치울 필요성을 느껴도 벌금이 부과되지 않을 거라고. 냉장고에서 그 애가 만든 공예품을 떼버려도. 자꾸 보게 되어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지나가도 졸업 사진을 돌려놓더라도. 그 애의 생일을 손꼽아 센 것처럼 그 애가 가고 없는 시간을 세어도 괜찮다고 말이다. < 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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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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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할머니의 정원 사진만으로도 위로를 받습니다. 직접 눈으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할머니가 없는 그 곳은 이제 어찌 되는 것인지 염려가 앞서요.

 

저도 화초를 가꿉니다. 화분에 나무하나 하나 키우다 보니 꽤 많아졌습니다. 사실 며칠만 돌보지 않아도 요녀석들 어찌 아는지 금세 표가 나요. 건조한 실내공기 탓인지 얼마전까진 괜찮던 다육 하나가 시들어버렸습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라 잘자라주면 기특하고 사랑스럽지만, 한순간 돌보지 않았다고 금세 가버리는 녀석들때문에 속상해질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넓은 곳을 어찌 그리도 아름답게 가꾸었는지 놀랍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고, 튼실하지 않은게 없어요. 아흔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고, 부지런한 모습에서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할머니의 소박하고 부지런한 삶, 그 삶이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됩니다. 할머니처럼 살지 못하기에 더욱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황무지 같았던 그 곳을 정성으로 부지런함으로 지상의 낙원을 이룬 그 모습. 이렇게 바쁘고 빠르게 진행되는 세상에서, 무엇때문이지도 모른채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느릿느릿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할머니가 떠나고 난 자리는 너무나 커요. 느리게 살아가는 것, 작은 것을 귀히 여기는 것,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 등등 할머니의 삶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개발이란 명목하에 우리는 자연을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파괴하죠. 또 나와 다른 종교나 생각을 가졌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혹은 세상에 대한 증오심으로 너무나 쉽게 인명을 살상합니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극악함을 이젠 뉴스에서 보게 됩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합니다. 

 

들쥐들을 위해서 더 많은 구근을 심고, 새들을 위해서도 나무 열매를 남겨두는 그런 마음. 생명을 귀히 여기는 그 마음, 마음이 아픈 사람을 측은히 여기는 그 마음을 우리는 어디에 버렸을까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할머니의 그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면서 우리의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고 싶어지네요. 할머니의 삶이 아무나 이루기 힘든 특별한 것이 아닌 어디에서고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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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 통찰 편, 시장의 거짓을 이기는 통찰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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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는 단지 도박심리가 좌우하고 있는 곳에서 얼마나 이성적일 수 있는가?"라는 명제가 핵심입니다. - 에필로그중에서-

 

주식시장을 단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시종일관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고 있다. 총성없는 시장에서 피흘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요즘이다. 사실, 나는 주식시장에 참여하지 않은지가 꽤 오래되었다. 발은 담근 것도 근 1년정도. 운좋게도 적은 이득은 보았지만, 알면 알수록 투자를 하면 할수록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리고, 몇 년째- 벌써 6년이 넘었다- 책만 읽고 있다. 마구 올라갈 때도 편승하지 못했고, 떨어질 땐 공포감에 뛰어들지 못했다. 다만 위로라면 적어도 손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하기 어려운 것을 많은 사람들은 어쩜 그리 쉽게 과감하게 뛰어드는지 때론 그 무모함과 과단성이 부럽기도 했었다.

 

언제가 다른 리뷰에서 쓴 적이 있지만, 신혼시절 강원도에 놀러갔다가 정선카지노에 가본 적이 있다. 장마철에 휴가를 잡은 터라 꽃구경 대신  가본 그곳은 정말이지 나에겐 충격이었다. 숫자가 가득써 있는 동그란 회전판에 돌을 던져서 그 숫자를 알아맞추는 게임을 해본적이 있다. 그 숫자가 짝수나 홀수인 경우에는 1/2의  금액이, 그 숫자가  1~10, 11~20...  구간에 들면 1/3, 1/4..의 금액을 지급하는구조였다. 물론 맞추기 어려울수록 확률은 희박해지고 딸 수 있는 금액은 높아진다. 따지고 보면 홀수와 짝수를 맞추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 절반은 따고 절반은 잃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십분의 일의 확률에 많은 돈을 건다. 지극히 소심한 우리 부부는 밥값과 차비정도를 벌고 일찌감치 그 자리를 떴다. 게임에 참여한 자가 돈을 딸 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혹시나 한방을 믿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혼 전, 명절때가 되면 가끔 친척들과 돈내기화투를 쳤다. 오랜시간 게임에 참여해도 돈버는 사람은 어깨뻐근하게 열심히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라, 게임을 포기하면서 광를 팔면서 개평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시골의사의 말처럼, 시장에 참여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결국 매매를 중개해주는 댓가로 수수료를 챙기는 금융기관뿐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식이 오르거나 내리는 확률은 50%이다. 이론적으로는 주식은 오르거나 내리니 50%확률이지만, 매매가 잦을 수록 수수료가 늘어나니 결국은 50%확률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수수료만큼을 제한 것만큼 발생확률이 되니, 내가 확보한 확률은 50%미만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게임에 참여하는 빈도와 시기가 길수록 질 확률은 더 높아지는 것이다.

 

시골의사가 쓴 이 책은 이전의 것보다 훨씬 거칠고 공격적이다. 시장에 참여하는 자는 절대로 이길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짐싸서 떠나는게 가장 현명하다고 말한다. 그의 거친 글이 불편했지만, 시장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시장에 참여한 다수의 투자자중에서 개인이 이길 기회는 아마도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만큼 시장은 무시무시한 곳이다.

 

시골의사는 그러면서 성장주에서 가치주에서 어떤 것에서도 우리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있다. 일례로, 작년 많은 사람들은 중국에 투자해서 열매를 맛보았다. 하지만, 그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수많은 사람들과, 그 열매를 따기도 전에 불어닥친 엄청난 하락은 어~하고 있는 순간, 발뺄 틈도 주지않고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열광할 때, 그것을 털고 나오기란 정말이지 너무나 어려운 결단이고 용기이다. 그 축제의 열기에서 소외된다는 것도, 다른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다는 측면에서도 쉽게 내릴 수 없는 결단이다.  시장밖에서는 이성적일 수 있는 판단도, 내가 시장참여자가 되는 순간 - 나에게 유리한 것만 가려들으려 하기 때문에 - 이성은 마비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한 방을 믿지 않기에 로또에도 관심이 없다. 홀짝게임에서 홀짝을 맞추는 것도 확률적으로 이기기 어려운판에..... 그래서, 주식에 투자하면 성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소심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엔 내 심장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이다. 이익이 나면, 아니야 더 오를거야 라는 생각보다는 내일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노심초사에 적은 이익에 만족하며 팔고 나오고, 주가가 예상과 달리 떨어지면 손절매를 해버리기에, 원금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으로 떨어지는 주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적은 이익때문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걸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주식시장에 촉수는 드리우지만 결정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매수한 주식이 하락할 때는 절대적인 기준치를 적용해서 과감하게 손절매를 해야하고, 상승할 때는 추가상승의 여지를 두고 그때그때 상대적으로 대응해야 시장에서 성공한다고 말하지만, 역시나 나에겐 시장을 더 두렵게 만드는 비법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의 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간접투자의 대표격인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이든, 연기금이든, 외국인이든 그들은 모두 프라이스 세터(price setter)가 된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사실이다. 주식을 끊임없이 사들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들이 보유한 주식을 일시에 매도하면....아마 그때는 ....상상하기도 싫다. 그들도 우리처럼 내가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리는 구조에서 우리보다 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주가가 곤두박질 칠때마다 연기금이 주식을 사서 주가를 방어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주식시장이 나락으로 빠질때마다 연기금이 그것을 받쳐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미래의 국민자산을 - 그것도 늙고 병들었을 때 받을 마지막 보루같은 귀한 돈으로 - 외국인들은 팔지 못해 안달인 것을 받아내고 있어서이다. 지금은 장차 닥칠 미래의 위험보다는 당장의 불을 끄는게 시급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다.

 

저자의 글에서처럼 직접투자이든 간접투자이든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을 틀리다. 지금처럼 힘든시기를 이겨낼 만큼 여유로운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홀드할 수 있는 여력이 전혀없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남아야 장기도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시장은 혹독하다. 우리가 시장에서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겠지만 엄연히 사실이다. 교만에 빠지는 순간 투자자는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 누구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 투자자는 시장에 맞서려 하지 말고, 늘 시장 앞에 겸손해야 한다. ...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장으 흐름에 조용히 몸을 맡겨라. 그것만이 개인투자자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p.38> 

 

동일 자금의 거래 회전으로 인해 주가가 상승하거나 특정 종목만 오르는 경우에는 보유한 주식을 일단 매도하고 다시 수급이 일치하는 시점까지 관망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준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상승종목보다 하락 종목이 늘어나거나 시장의 자금 회전과 거래 회전율이 높아진다면 일단 시장에는 노란불이 켜진 것이다. 만약 이 지점에서 전체 거래량의 증가까지 나타난다면 그것은 일단 정지신호가 켜진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p.383>

 

투자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핵심사항 중 하나는 신흥시장에 투자할 포인트는 고도성장 후 침체에 빠졌다가 다시 기지개를 켤 때이지, 고도성장의 초기 단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p.430>

 

아마 2008년의 경우 부동산시장은 솔직히 네덜란드 튤립의 거품과 필적할 만한데 사람들은 이에 둔감합니다. 부동산의 가치를 자꾸 옆동네, 옆집과 비교하거든요. 그나마 주식은 자본이익률을 따지지 않습니까. 또 다른 비극의 단초 중 하나입니다.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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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 한국경제 대전망
심영철.선대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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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시절이 하수상하다. 작년 이 맘때쯤 은행에서 상담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거치식, 적립식 펀드에 가입해야 한다고, 인사이트펀드에 가입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더 오를거라고 했지만, 나는 수긍할 수 없었서 가입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올 초에 은행에서 다시 가입을 권유했을 때도, 주가가 1500이 되기 전엔 투자하지 않을 거라고 했더니 상담원은 터무니없는 추측이라고 했다. 그런데, 견고해보이던 1500은 너무 쉽게, 너무 빨리 깨졌고, 오늘은 1100마저 무너졌다. 1500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게  무서워서 주식투자를 보류했다. 얼마 전엔, 상호저축은행에 넣었던 정기예금도 중도해지해서 은행으로 갈아탔다. 내가 지나친 것인지는 모르지만 상호저축은행도 불안해보인다.

각종 신문기사는 펀드런을 우려하지만, 난 뱅크런을 걱정한다.

 

그래도 이 책의 제목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부동산은 무엇인가? 마지막 보루와 같은 것이다. 잘 사는 동네에 산다는 것, 좋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 넓은 평수에 산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겐 돈 그 이상의 그 무엇이다. 생활기반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만큼 산다는 것을 표시하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텨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은 펀드도 아니고, 예금도 아니다. 바로 집이다. 그런데, 그 집이 이상하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제목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으면서 수긍되는 부분이 많았기에 착잡하다.

 

아파트의 평당 매매가가 3천만원이 넘는 게 수두룩하다.  

우리 아파트는 층간소음이 심해서 잠자리에 누우면 윗집이 지금 어떤 장르의 영화를 보고 있는지 알아맞출 수 있다. 꼭 새벽에 영화를 보는 통에 새벽에만 활동하는 올빼미족이라 늘 괴롭지만, 그 정도의 생활소음을 어쩌라고? 날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을... 하지만 이렇게 후진 집들 중에 백만불이 후딱 넘는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정말 백만불짜리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걸까?

우리나라 집 값은 이렇게 터무니가 없다. 환율 1000원일때 기준으로 백만불인 아파트. 미국이었다면 이 정도 가격이면 얼마나 멋진 집을 살 수 있는데...싱가폴에서라면 아파트 안에 수영장과 온갖 편의시설이 갖춰진 것도 이보다는 싸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는 백만장자를 너무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 백만장자는 정말 어마어마한 부자여서 '백만불의 사나이'라는 외화시리즈도 있었는데... 시대가 변하긴 했지만 자산에 대한 거품이 심하긴 심하다.

 

책은 왜 집 값에 거품이 심한지 보여준다. 대출을 안고 집을 사는 사람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  우리나라는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도 앞으로의 집값이 추세하락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한은에서 아무리 이율을 내려도- 잘은 모르지만 - 대세적으로는 이율이 오르지 않을까? 그러니, 부동산가격은 더 떨어질 기미이고 대출이자는 오르니, 느는 것은 걱정이요 한숨이다.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책에서의 설명은 대체로 수긍이 가니 걱정이다.

책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대처해야할 해법이다. 금융상품에 대한 해법은 다소 부실했다. 하긴 백약이 무효한 시대이다. 정부가 내놓은 처방은 전혀 듣지를 않는다. 부동산 공급이 많아서 미분양이 심각한데, 매수는 없고 매도만 쌓여가는데 부동산 공급으로 위기를 타개하다는 것이 과연 옳을까? 속담 중에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것이 있다. 지금의 단기처방이 장기에 더 큰 위험을 가져다 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일개 가정주부인 아줌마의 시각으로도 이건 좀 아니다 싶다. 하지만, 대책이 무효한 현 시점에서 오죽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

 

작년에 우리부부는 주가 1500 이면 주식투자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겠다. 이 아노미를 일단 피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농담으로 우리나라 집 값은 너무 비싸서 혹시라도 아파트값이 반 값이 되면 살 용의가 있다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제 그게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수가 불행해진다는 것은 우리 이웃과 우리의 가족도 불행해진다는 의미이므로 걱정이다.

 

 

좋은 ELS가 나왔다고 거래하는 증권사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만약의 경우 때문에, 지금보다 주가가 올라가긴 어려울 거 같다는 우려때문에, 수익률에 비해 제약도 많고 신경이 쓰인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을 했었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요즘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주식은, 환율은 경제를 파악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실물경제로 옮아가는 게 당연한 이치이기에 우리집 아저씨도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서있다. 언제 서슬퍼런 칼날에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시국이다.

 

쓰다보니 혼자 격분했다.

 

덧1)

거품 붕괴의 규모는 거품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p124> 

: 책 중에서 가장 무서우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다. 무서운 것이 다가오고 있다. - 내가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덧2)

남편과 인사이트펀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에셋이 망할까?" "글쎄, 아닐껄. 왜냐하면, 인사이트펀드의 수탁액이 4조면, 수수료를 2%만 잡아도 800억 이거든. 어렵긴 하겠지만 망하진 않을꺼야. 투자자는 손해를 봐도 수수료는 내야 하니까. 그러니, 장기투자가 대안이라고 광고들을 해대지.."

 

최근에 모신문의 재테크 상담코너에서 지금 이 시국에도 적립식펀드 금액을 늘리라는 전문가의 상담사례를 보고 신문을 집어던졌다...XXX하면서 말이다.  장기까지 끌고 가기엔 너무나 벅찬 이 시국 - 아니 장기적으로 이익이 나면 뭐하나 지금 죽게 생겼는데- 에 이게 말이 되나? 존 케인즈의 명언 '장기적으로는 다 죽는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다 죽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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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백양나무의 곁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미나무에 붙어있으면서 어미로부터 물과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아왔습니다.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평화롭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미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아직 기차의 기적소리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한적한 시골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던 암소가 기차의 기적소리에 놀라 날뛰면서 '백양나무의 곁가지'인 나는 어미의 곁을 떠나 놀라 날뛰는 암소를 부리기 위한 나무막대기가 됩니다.

어미나무의 곁을 떠나보니 언제 말라죽을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고, 물과 양분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암소를 부리는 막대기가 되었다가 농부의 어린 딸, 재희를 단속하는 회초리가 되었다가, 뒷간의 똥을 휘젓는 똥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나'는 이제야 거친 비바람에도, 눈보라에도 묵묵히 지탱해준 어미 백양나무의 고마움을 깨닫습니다.

"어미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한평생을 상처를 입으면 입는 대로, 가뭄이 들면 또 그대로 볼멘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살아갈 것입니다. 홍수가 지면 또한 그대로 눈보라와 폭풍도 의연하게 견대 낼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제자리에 솟아 있을 뿐 어떤 질곡과 수모와 고통에도 울지 않을 것입니다. 그 서러움을  대신하여 울어 주는 것은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이겠지요. 나 또한 어미나무처럼 하늘 끝자락까지 자라나서 의연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p.128~129"

 

이젠 하찮은, 아니 너무나 더러워서 똥친막대기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남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재희는 똥친막대기로 자신을 괴롭혀 온 동네아이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지요. 그래서 똥친막대기는 다시 한 번 꿈을 꿉니다. 생명에 대한 꿈 말입니다. 어두운 뒷간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까요. 

"꿈을 꾸고 있으면 언제가는 그 꿈이 현실로 연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 것을 믿습니다. p.139"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범람하는 홍수에도 용케 살아남아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땅에 누워만 있던 내가 땅에 꼿꼿이 설 수 있게 되었지요. 땅 속 깊숙이 박힌 내 몸이 근질거립니다. 뿌리가 나려나 봅니다. 막대기인 내가 홍수에 떠내려올 때에도 살아야 겠다는 꿈을 접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말라 죽어질 내 운명에 곁들여진 행운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노라고 어린 백양나무가지는 말합니다. 어미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그늘 드리우는 아름드리 백양나무가 되겠다 다짐합니다. 

 

삶이 이전 어느 때보다 팍팍하고 힘겹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럴 때, 우리 문학의 큰 나무같은 김주영작가는 슬그머니 백양나무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힘들다는 걸 모르고 살아오던 여린 가지가 어미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그 막대기가 다시 뿌리를 내리게 되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어쩐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어린나무처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래도 백양나무 가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접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인 나보다도 더 의연하게 어려운 삶을 헤쳐나가는 모습, 희망을 잃지 않는 여린 나뭇가지의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사진은 http://blog.naver.com/jinheri/30026880525

그대의 창을 지나는 여우비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백양나무의 곁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미나무에 붙어있으면서 어미로부터 물과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아왔습니다.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평화롭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미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아직 기차의 기적소리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한적한 시골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던 암소가 기차의 기적소리에 놀라 날뛰면서 '백양나무의 곁가지'인 나는 어미의 곁을 떠나 놀라 날뛰는 암소를 부리기 위한 나무막대기가 됩니다.

어미나무의 곁을 떠나보니 언제 말라죽을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고, 물과 양분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암소를 부리는 막대기가 되었다가 농부의 어린 딸, 재희를 단속하는 회초리가 되었다가, 뒷간의 똥을 휘젓는 똥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나'는 이제야 거친 비바람에도, 눈보라에도 묵묵히 지탱해준 어미 백양나무의 고마움을 깨닫습니다.

"어미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한평생을 상처를 입으면 입는 대로, 가뭄이 들면 또 그대로 볼멘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살아갈 것입니다. 홍수가 지면 또한 그대로 눈보라와 폭풍도 의연하게 견대 낼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제자리에 솟아 있을 뿐 어떤 질곡과 수모와 고통에도 울지 않을 것입니다. 그 서러움을  대신하여 울어 주는 것은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이겠지요. 나 또한 어미나무처럼 하늘 끝자락까지 자라나서 의연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p.128~129"

 

이젠 하찮은, 아니 너무나 더러워서 똥친막대기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남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재희는 똥친막대기로 자신을 괴롭혀 온 동네아이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지요. 그래서 똥친막대기는 다시 한 번 꿈을 꿉니다. 생명에 대한 꿈 말입니다. 어두운 뒷간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까요. 

"꿈을 꾸고 있으면 언제가는 그 꿈이 현실로 연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 것을 믿습니다. p.139"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범람하는 홍수에도 용케 살아남아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땅에 누워만 있던 내가 땅에 꼿꼿이 설 수 있게 되었지요. 땅 속 깊숙이 박힌 내 몸이 근질거립니다. 뿌리가 나려나 봅니다. 막대기인 내가 홍수에 떠내려올 때에도 살아야 겠다는 꿈을 접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말라 죽어질 내 운명에 곁들여진 행운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노라고 어린 백양나무가지는 말합니다. 어미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그늘 드리우는 아름드리 백양나무가 되겠다 다짐합니다. 

 

삶이 이전 어느 때보다 팍팍하고 힘겹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럴 때, 우리 문학의 큰 나무같은 김주영작가는 슬그머니 백양나무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힘들다는 걸 모르고 살아오던 여린 가지가 어미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그 막대기가 다시 뿌리를 내리게 되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어쩐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어린나무처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래도 백양나무 가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접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인 나보다도 더 의연하게 어려운 삶을 헤쳐나가는 모습, 희망을 잃지 않는 여린 나뭇가지의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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