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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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이야기가 들어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하나는 티벳이라는 잃어버린 나라. 이미 지은이가 밝히고 있듯이 『모독』이라는 기행서를 재발행하여 맞추었기 때문일까? 부족한 분량을 채우는 방법이 우리나라에 대한 기행문을 끼워넣는 방식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기행에 대해서 말하면, 그때그때 느낀 감정에 대한 회후. 너무 성의 없는 개인적 추억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끌려가서 오는 생태적 한계일까. 지은이의 글은 두 가지의 느낌에 집착해 있다. 하나는 먹고 잠자는 행위. 즉 어떤 낯선 풍경에 대한 자아와 풍경의 교감 대신에 먹고 자는 일차적인 한계에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도시사람들이 누구나 갖고 있는 듯한 원죄의식이다. 이는 도시라는 시멘트의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곳은 그들이 바라는 자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 하루하루 벌어지는 곳인데, 그들은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으로 있어주길 바란다. 즉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에 잠시 아파하다, 벗어난다.


[ 생각하면 그리운 땅]이 차지하는 글은 부족함이 물 흐르듯이 흐른다. '만추 오대산 기행'은 알갱이는 없고 쭉정이만 남아 있는 씁쓸함이 맴돈다.


두 번째 [모독]에 해당하는 티벳기행이다. 첫 느낌은 '시장을 둘러봤다'는 것이다. 시장에는 볼거리, 먹거리가 많다. 하지만 그 채소와 옷가지들이 어디에서 나오며, 그들의 삶에 얼마만큼의 빈궁함을 면해줄지 모른다. 또한 그네들의 삶은 나와 동떨어진, 오직 발걸음은 새로움을 찾기 위한 요기에 불과하다. 간간히 도시에서 찾지 못한 시골의 전경이 내 어린시절과 겹쳐져 그리움으로 파묻히기도 한다.


아, 그리움의 날들이여, 하지만 나는 안다. 비행기 타고 내 집으로 오면 이게 내 일상이라는 것을!!


도를 깨달은 듯, 삶에 대해 무념무상의 자세로 버티려고 하는데, 너무나 가진 게 많다. 그는 '비움'을 연습하지 않았다. 티벳인에게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닌 연민이나 값싼 동정에 불과하다. 그 동정에 거머리처럼 모여들자,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애써 태연하려고 의식적으로 강요한다. 이는 글쓰기에서 동정과 해탈 사이에서 그네를 타게 된다.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하고 고민이 베이지 못해, 입에 넣고도 삼키지 못하고 내뱉는다.


한마디 더 하자면, 제목하나는 끝내주게 잘 지었다는 점. 내용과는 큰 딴판, 일단 접근성 높은 것으로!! 드디어 노작가의 작품이 상업성의 배에 올라타 긴 항해를 하나 보다. 슬프다. 노작가의 연륜이 아닌, 제목의 이미지에 기대야 하다니. 하지만 연륜조차 숨어버린 기행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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