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숲,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순우 글 그림 / 도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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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 생명의 신비로운 기운이 아름다운 자연의 숨결이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곱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숲 전체를 뒤덮는다."  (43쪽)

자연을 사랑한다면서 봄에는 꽃구경, 여름에는 해수욕장에서 비키니, 가을에는 단풍놀이, 겨울에는 곤돌라를 타고 정산에서 설산구경을 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사랑하기 보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떠남에 불과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곁에 두고 오래봄을 의미한다. 분명! 그렇기 사랑하면 보이고 지금 보이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점에서 지은의의 눈은 사랑으로 충만하다.

우리나라 좋은 데를 계절따라 찾거나 떠나는 발걸음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는 뒷동산에 눈을 돌린다. 그곳에는 아름다움이 피어나고 지고 한다. 수많은 생물들이 저 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그저 꽃에 불과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의 몸을 껴앉아 줄 때 비로소 내게 꽃이 되는 것이다. 나는 길위에서 수 많은 꽃을 보는게 아니라 하나의 몸짓을 스쳐 지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책을 들고서,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깊은 포옹을 할까보다.

집으로 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서 노트와 볼펜을 하나 준비를 해야겠다. 그리고 마당으로 달려나가 오래도록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내 마음이 오래도록 머무는 자리에는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것을 지은이의 글을 통해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의 글 아름답다는 생각에 빠졌다가 헤어나오는 것은... 그의 글이 조금 넘쳐난다는 것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내가 아름답다고 드러냄이 아닌데, 지은이는 감정의 과잉에 휩쌓여있다. 모두 좋다좋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화려하게 꾸미는데, 넘쳐나는 사랑에 약간의 거부감도 든다.

예찬만 넘쳐나다보니, 삶과 연계된 점이 조금 엉성하다는 생각이 겹쳐진다. 내 책상위에는 최용건씨의 책이 놓여있다. 읽어도 읽어도 머리가 맴돌기에, 나는 잠시 외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지은이는 '방동약수, 젖가리골, 꽁밭골짝'으로 산책가다 개망초를 보게 된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읊는다.

"젊은날 개수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낱알처럼 꺼저분한 모습 때문에 나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개망초가 문득 내 곁으로 다가와 나직하지만 사랑스런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만 같다.
'화가 아저씨, 이제 저의 모습이 아름다우세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시련의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삶의 소중한 정화이다.
화력 33년, 내 이 나이에 개망초를 사랑함은 천명이다."(80쪽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 중에서)

풍경을 봄에 너무 빠져들면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풍경은 내 경험과 삶속에 투영될 때 진실로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런 점에서 내 눈에 비친 지은이는 일상은 배놓은체 풍경만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꽃(-보다는 꽃에 치중)에 대한 예찬이 나를 낯설게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때문이다.

모든 생명을 인간에 빗대는 것과 감정의 과잉,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예찬을 벗어나 하늘을 가르는 바람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 글은 좀 더 영걸게 될 것이다. 숲속에서 매미의 울음소리에 대한 사색은 자아의 내면적 성찰에 대한 깊이를 가늠하게 충분한 글귀가 됨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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