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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 - 정끝별 여행 산문집
정끝별 지음 / 화니북스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거두절미하고,
글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유에 의한 창작이지만, 발품을 팔지 않고 가벼운 머리로 쓰면 진실되지 못하다. 머리로 쓰는 언어는 사념이며, 거짓이 농후하다. 하지만 몸으로, 발로 꾹 꾹 눌러쓴 언어는 실천이며 선(禪)이 된다.
지은이의 글은 사념에 의한 긴 여운을 안겨준다. 그는 감수성 여린 사춘기 소녀처럼 글을 써 내려가지만, 삶에 대한 통찰은 머리에서 나온 거짓에 불과하다.
시를 잉태한 그곳에 찾아가, 과연 무엇이 이토록 언어를 다듬는가 눈여겨 보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없이 가볍다. 꾹 꾹 눌러 쓴 글이 아닌 사념과 사념을 넘드는 글은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돈다.
긴글은 생략한다. 다만 아래에 너무나 아쉬운 글을 그의 입을 빌려서 붙여둔다.
"백담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매표소에서 부터 백담사 한 마당까지 오르는 길은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교교하기만 했습니다. 뒤늦은 공양인지라 보살님의 퉁박을 반찬 삼아 먹은 시래깃국은 한없이 맑고 구수했습니다."(172쪽)
"등명과 남쪽으로 이웃해 있는,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동진 역에 먼저 들렀습니다. 역 앞 진입로는 포장마차와 선물가게와,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모래시계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던가요. 인간의 손이 타면 이렇게 쉽게 망가지나 싶습니다."(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