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눈물 땅의 희망 - 물과 바람과 길을 찾아서
최창조 글, 홍성담 그림 / 궁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지은이를 알게 된 것은 조금 오래 되었다. 그는 서울대라는 부와 명예를 버리고, 풍수에 미쳤다는 것을 어깨 너머로 들었다. 그가 말하는 풍수는 '기복(기복)'과는 다르고 "치유의 지리학(18쪽)"이라는 자생풍수라 했다. 즉 절터는 가장 아름다운 장송에 터를 잡고 '세상 사람들아 나 보러 온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을 때 약한 부분을 치유하여 제 자리를 찾게 한다는 논리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그의 눈높이였다.

여행을 하면, 비움에 대한 집착을 가지면서 또다른 한편 욕심이 생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혹은 거대 도시의 아파트가 아닌 우리나라의 땅을 보고 싶다는.  이는 기복 신앙이 아닌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함이며, 전체를 토막내어 부분으로 보는게 아니라 전체를 보려는 총체적 실험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부분이 많이 서툴다.

나는 그의 책을 통해 총체적 눈높이를 가지려고 하는데... 딱딱하지 않은 글은 너무 쉽게 씌인 느낌이다.

"생명력의 원천인 땅의 영기를 무시하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파괴하는 오늘의 상황은 원칙적으로 인간성을 황폐화시키는 시대에 해당한다."(35쪽)

이런 논의는 충분히 받아들이지만 청와대의 자리(68쪽)를 놓고 대통령의 자리에 대한 글쓰기는 결과론적으로 다가온다. 대통령으로 행한 정책을 시시비비 가리지 않고, 그의 치세에 가장 안좋은 것을드러내 '내 말이 옳다'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ㅎ다. 그의 말이 옳다면, 청와대를 걷친 모든 이들, 그리고 거칠 이들은 힘겨움의 연속이 된다. 풍수가 갖는 실체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 사이에 대한 논의도 빠져있어 아쉽기만 하다.

그는 무분별하게 키재리를 하는 시멘트 벽이 바람을 막고, 공기를 막아 세운다고 했다. 즉 이렇게 쉬운 혹은 일상과 가까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계속 읽어가면서 부딪히는 부분이, '잡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생각은 가다듬지 않았고 글은 다독거림이 없으니,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걷는 기분이다. 아울러 그림 또한 부담스럽다. 어떠한 예술적 가치나 심미적 위안, 상징성을 띄고 있다하러다도, 나는 지은이가 설명하는 동네에 대한 알림표시로써-사진 혹은 지도-의 그림이 더 와 닿겠다. 지은이는 손바닥 보듯이 땅을 ?어가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나에게 모두 낯설다. 그리고 그림도 낯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