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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 1
차이위치우 / 들녘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체성.
내가 살아가는 것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며, 이 선택은 나, 우리, 친구, 가족, 이웃, 나라 등을 상대적 혹은 절대적 우위에서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목표라 하곤 한다. 단재의 '我와 非我의 투쟁'이라는 역사인식도, 근본적으로는 '선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을 뿌리에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까지.
나는 의식 속에서든 무의식속에서든 수많은 선택을 한다. 여기에서 무의식의 선택은 조심스럽게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한 번의 선택으로 '우위'에 놓인 결과를 인식하여 선입관으로 자리 잡아, 새로운 가치관이나 전략(선택) 등을 쉬이 수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무의식적 선택은 이미 검증된선택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결과물에 집착하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가 없으며 수 없이 발생되는 변수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러한 선택 시 참고 사항이 될 전략(모략)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전쟁이 많아서인지 『모략』의 알찬 구슬은, 끔찍한 이야기 위주이지만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지은이는 수백 년, 지 천년 동안 쌓인 수많은 모략-전략의 변수를 하나씩 들려준다.
무엇보다 나는,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나'라는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여름 매물도 바다에서 벌벌 떨었던 기억을 떨쳐내고 평상심을 얻어야 할 것이다. 즉 정체성을 확립하고 평상심을 찾은 다음, 전략 전술에 따른 변수를 익히기로 했다.
우선 '내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른 동반자격 가치관, 나는 내 가치관을 『모략』의 앞장에 마주친 '위이덕본(爲以德本)'을 삼는다. 혹자는 '제로섬 게임'이 존재하는 현실 앞에 도덕책으로 먹고 살 수 있는가라고 물을지 모르지만, 나는 사람이 버려도 버려도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것이 '희망'이라고 믿는다.
'이덕위본'의 기치 아래, 여러 참모격을 불러 모은다.
'동감동고(同甘同苦)'
'근열원래(悅遠近來)'
'치명이신(治兵以信)'
이는 내 허약함을 사람의 숲을 만들려는 교토삼굴의 전략임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밑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믿음(信賴)'이다.
평상심.
정체성의 틀을 세웠으니,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平常心)을 갖추어야겠다. 지은이는 「동주열국지」의 책을 빌려 '격장지술(激將之術)', 「손자병법」[군정편]을 들어 '장군가탈심(將軍可奪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269쪽) 아무리 판단력은 뛰어난 전략가라도 평상심을 잃어버리면 이성보다 감성의 우위에 서게 되며, 이로써 칼 보다 냉철한 무디어지게 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평상심은 한결 같아야 하며, 아침저녁으로 기분을 달리하면 안된다. 이렇게 되면 큰 뜻을 세울 수가 없으며 아랫사람들의 믿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문치무공(文治武功)'
'대지약무(大智若愚)'
'안불망위(安不忘危)'
'관맹상제(寬猛相濟)'
평상심은 가치관의 틀을 세우게 하며, 전략의 구심적 지위에 이르게 한다. 평상심이 흔들리게 되면, 우선 전략이 흩트려지고, 전략이 흩뜨려지게 되면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지고 결국에는 무너지게 된다. 정체성이 쓰러지면 큰 뜻 또한 자연히 소멸되고 말 것이다. 조선 후기 화가 칠칠이(崔北)의 비바람 치는 바다에서의 호통은 기인으로서 볼 것이 아니라 귀인(貴人)으로 보아야 함이 옳을 것이다.
전략은 일을 구체화시키는 추진력이 된다. 아무리 가치관이 옳고, 평상심을 가지고 있다한들 전략이 부재하면, 노 없는 배와 같다. 바람과 별을 잃고 낯선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게 괸다. 아무리 좋은 가치관과 평상심을 얻었다한들 전략이 없으면 이 또한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전략.
전략은 실전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늘어나는 것이지만, 몸으로 부딪혀 익힘과 동시에 선지식을 간접경험을 통해 얻지 못한다면 발전함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모든 전략을 익힘이 중요하며, 자기만의 전략을 터득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전략이라 함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한 가지 전략이 만병통치약이 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임기응변식으로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이러하지 못할 경우에는 400여 년 전의 비극이 부활될 수가 있다.
신립은 조선시대 누구나 알아주는 명장이였다. 명장 아래 약졸 없다했던가. 그렇다면 신립의군은 보통 군이 아니었을 터인데, 그는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의 전략으로 배수진을 쳤지만 그와 병사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이는 '지기(知己)'에 젖고. '지리'에 지고, '용맹'으로만 이기려했기 때문이다.
모든 전략은 '지피지기'에서 세워야 한다. 이를 어기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진배없다. '지피지기' 없는 전략은 가벼운 비바람에도 무너질 뿐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되내이면서, 오늘의 우리나라를 본다.
군주라 하는 대통령은 위엄이 없고,
신하라 하는 국회는 믿음이 없고,
백성이라 하는 시민은 의지가 없다.
위엄이 없는 상황에서 그의 존재는 허수아비이며, 신뢰가 없는 국회는 사리사욕에 눈멀어서 나라가 지향할 바를 제시하지 못하고, 시민은 먹고 살기에만 바쁘다. 어느 것 하나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생각은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내 나중 지닌 것이, '희망'이기에 차마 주저앉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아는 것은 모르는 것 보다 낳고, 움직이는 것은 아는 것 보다 낳다. 하지만 알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 보다 더 한 바보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