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論
키리도시 리사쿠 지음, 남도현 옮김, 송락현 감수 / 열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70년 산(産)이라면, 그의 이름을 몰라도 그의 작품을 보며 자랐을 것이다. 평일 저녁이면 한 자리를 차지하는 미야자기표 만화. 이 만화는 무국적인 냄새와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그려내어 우리의 눈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차츰 미야자키라는 이름도 물밑에서 나왔다. 아직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기 앞서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그의 작품은 건너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도움받기 놀이를 훔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웃의 토토로, 붉은 돼지, 원령공주, 마녀 배달부 키키....

너무나 익숙한 이름. 나는 왜 미야자키표 끌리는 것일까? 그의 작품에는 뭔가 특별함이 숨어 있는 것일까? 내가 그의 작품에 대한 동경이 이는 만큼, 궁금증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곤 한다. 나는 아직도 그의 작품이 보고 싶으며, 그의 그림체가 좋다.

이웃의 토토로에서 보여지는 한 없는 순수함과 시골의 포근함, 붉은 돼지에서 보여지는 이데아적인 공간과 싸움마저 놀이로 만들어 버리는 맘마유토단들의 유치발랄함, 원령공주에서 나타난 숲의 신비함과 멧돼지신의 분노, 마녀 배달부의 귀염움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하나씩 그의 작품에 중독이 되어갔고, 이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체 그의 실체를 다가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책-『미야자키 하야오론』은 지름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지은이는 수 없이-오타쿠- 애니메이션을 보고, 눈앞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나는 그러하지 못하다. 미야자기표를 좋아하지만 그의 전작품을 보지 못했으며, 설령 한 작품을 예닐곱 아니, 쌔네번을 넘게 보지 못하였다. 더구나 옛날에 본 것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특히 "미래소년 코난"의 경우는 내 유년 시절의  친구인데, 지은이는 1화에서 끝화까지 하나하나 줄거리를 써 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즉 여느 작품론에서 비춰지는 지은이의 글쓰기는 8할의 줄거리와 2할의 작품론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렇다 보니 가로에서 세로로, 수많은 엇갈림으로 미야자기표의 작품을재구성하지 못하고, 커다란 흐름이나 사상적 밑천을 꿰뚫는 혜안(慧眼)을 볼 수가 없다.

나는 잊혀진 만화 줄거리를 떠올리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그냥 글자만 보고 있다. 차라리 애니메이션 사진이라도 담아 놓았다면 좀 더 눈을 오래도록 두었을텐데... 못내 그렇지 못한게 아쉽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순수, 모험, 소년, 소녀(공주), 자연이라는 코드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해맑은 동심이 살아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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