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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 교양한국문화사 1
황수영 / 열화당 / 1989년 3월
평점 :
[ 천여 년을 건너와, 나에게 말을 걸다. ]
경주.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고, 천년의 중심지라는 곳이지만 내 발길은 학생 때 수학여행을 다녀 온 뒤로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구석구석 문화유적이 많다하여, 경주라는 마을 전체가 문화마을이라 불릴 정도이기에, 나는 어쩌면 이 위엄에 눌렸는지도 모른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아야할지 몰라서……. 막연하게 불국사, 석굴암 등을 어깨너머로 듣는다. 불국사에 가서 그 곳에 깃든 의미를 읽을 수가 있을까라는 기우는, 공부를 하지 않게 하는 동시에 발걸음조차 때지 않게 한다. 막연한 동경은 안고 있으면서 나는 아는 것이 없다면서 집에만 있다. 석굴암에 대한 내 지식도, 불국사랑 닮았다. 단순히 김대성이라는 이가 지었다는 것과 해돋이가 일품이라는 것 밖에는 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이 없다. 일본이이 해체를 하여 이끼가 낀다는 이야기는 학생 때 졸면서 듣은 듯도 하다.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을 구하려다, 『석굴암』에 손이 갔다. 지난 봄에 보길도의 부용림을 보고 와서 느낀 낯선 거리감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봄에 만난 부용림은 한창 현대 기계로 공사 중이였고, 아무리 복원을 한다 하여도 정성을 복원할 수 있기에는 요원해 보였다. 절에서 중창을 한다면 포클레인으로 나무를 빼어내고, 레미콘으로 시멘트를 기둥을 채우는 듯 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석굴암에도 보수가 있었다지만 내 눈은 보지 못하였기에……. 이렇게 보길도에서 경주로 돌아와, 오늘에는 본존불아미타여래좌상을 만난다.
사진으로 보는 석굴암, 나는 멈춰 섰다.
석굴암은, 석굴암을 말한다. 석굴암의 창건신화에서 풀어내어 팔부신장, 금강역사, 사천왕상, 천부상 등을 지나 십일면관세음보살상을 돌아 본존 아미타여래좌상을 들려준다. 지은이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을 해 나간다. 더욱이 빛나는 건 사진의 아름다움이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지만 나는 석굴암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여행을 하며, 손으로 사천왕이나 보살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44쪽 ~49쪽 사진]
지어팔부신장의 눈은 무엇을 응시하면서, 진한 시선을 보낸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자세에서는 근엄함과 법적하지 못할 기품이 흐르면서도, 아이가 다각 옷자락이라도 만질라면 귀엽게 받아줄 인상이다. 이에 반해 금강역사는 우락부락하여 힘만 자랑하는 듯하다. 두 눈은 호리호리하며 다가가서 말이라도 붙일라면 상당한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지 않을가. 칼자루라도 주면 춤을 추며 잡귀를 몰아낼 듯하다.
본존불의 상호 [85쪽 사진]
몸이 움찔한다. 그러면서 내 눈은 그와 입맞춤하기 위해 다가간다. 이는 움찔하면서 한 발짝 떨어지고,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가고, 다시 놀라서 한 발 물러서고……. 떨어졌다 다가갔다는 수 없이 반복하고 있다.
제자상이 본존불을 에워싸고 있는 주실 안의 광경 [89쪽 사진]
본존불아미타여래좌상은 큰 육질의 몸매에 아기자기한 찌찌를 가슴에 품고 있다. 그의 얼굴은 위엄에 가득 차있고. 팔은 근육으로 뭉쳐져 있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인상이 아니다. 위엄스럽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들어와 본존불을 보게 된다면, 아마 '엄마 저 찌찌봐'라고 하지 않을까? 위엄에 서러 있던 석굴안은 순간 정막이 깨어지고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근엄함을 보이는 듯 하면서 향마촉지인으로 자비로움을 품은 본존불. 나는 근엄과 자비를 동시에 느낀다.
이렇게 보여지는 사진 속에 나는 석굴암에 대한 강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사진이라 함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려 마음을 이끄는 사진이 아닐는지…….
빛이 너무 밝아서, 어둠이 없다.
"팔각기둥을 지나 굴 안으로 들어서면 둘레의 벽과 본존불이 앉은 원형대좌와의 사이에는 거의 같은 간격의 통로가 돌려 있다. 그 때문에 예불하는 사람들은 이 통로를 돌면서 차례로 다른 불상과 상대하게 된다. 그리하여 장소를 바꿈에 따라 여러 석상을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상면하게 되어, 이를 위한 설계자들의 깊은 용의가 있었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낮과 밤에 따라 석굴 안의 광도(光度)는 미묘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같은 굴 안에서도 장소와 시간에 따라 석상에서 각기 다른 인상과 아름다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너무나 밝은 전등으로 조명되고 있어 옛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섭섭함이 있다. 석굴조성 당시 설계자가 의도했던 밝음과 그에 따르던 예불의 여건과 분위기는 오늘에 이르러 아주 달라지고 있다.(51쪽)"
우리는 시간과 자연(自然)을 잃어버리고, 수양(修養)을 잃어버리고, 도(道)를 잃어버리고, 나(自我)를 잃어버렸다. 이는 문명에 의한 전기의 혜택과 편리함으로 이어지는 조급함 등에 의한 복합적인 문제일 것이다.
우리의 문화란 한 발 짝 떨어짐과 한 발 들어섬으로 표현되어진다고 생각된다. 정자 등을 자연을 볼 때에는 한 발 짝 떨어져서 보면, 그곳에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인다. 정자는 강가에 자리를 틀고서 세월을 흘려보낸다. 이러한 운치는 끝내 나를 불러들여 바람을 맞게 하곤 하는 것이다. 정자에 앉아 물그림자를 보고, 들판을 보고, 구름을 보고, 자연을 보고 있으면 내가 자연인지 자연이 나인지 그 경계가 흐물흐물해진다. 멀리서 오는 이가 정자 속의 나를 보게 된다면 물아일체(物我一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풍경 속의 나'가 되고 싶어 몸이 건질건질 할 것이다. 아마 이러한 문화적 밑거름 속에 석굴암의 예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석굴암은 너무 유명해졌고, 그에 깃든 정성은 불빛 속에 숨었다. 석굴암 속에 깃든 정성보다 보여지는 불상과 맹목적인 기복(祈福信仰)만이 존재한다. 자연에서 내가 걸어 나왔을 때 부터,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욕심이며 편리함이다. 욕심과 편리함은 자연을 물질적 도구나 편리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였으며, 감상을 통한 자아를 찾는 나를 땅에 묻어 버렸다. 어쩌면 나는 책을 덮고서, 시간이 흘러 석굴암에 섰을 때 복(福)을 구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하지만 이러한 지은이의 석굴암에 대한 예찬과 꼼꼼한 시선은 건조체에 머물러 있다. 즉 그가 보는 눈은 정말로 따스하지만 표현은 건조하게 흘러, 조금 아쉬움이 남긴다. 할머니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이어지는 말이 아니라, 교수가 앞에 서서 학문적인 성과를 발표하듯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즉 짧은 책이지만 석굴암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사진은 석굴 안으로 불러들이는 듯하다. 하지만 지은의 글쓰기에 대한 건조체는 조금 무미건조하여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