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고독에 갇힌 인간의 외침!!"]
지난 10년 동안 한 개체가 어떻게 성장한 것인가에 대한 지루한 관찰이였다면 81.6.22~82.5.117 까지의 편지는 서준식의 가치관을 더욱 굳건히 하며, 결혼을 통해 현실과 꿈의 갈림길에 선 선아와 순자. 대학생이 되어 사회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는 순자의 동생 순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편지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서준식을 훔쳐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체 1년이 되지 안는 기간 동안에 수 없이 쓰여진 편지는 갓 싹을 튀운 새싹을 보는 듯하며, 분명 무슨 꽃을 피울 것인가에 대한 윤곽은 스스히 드러나는데 얼마나 크게, 얼마나 깊이 향기를 날릴 것인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다음의 서평은 『옥중 서간집1』 [부제: 모래 바람 맞은 영혼] 에서 81년 이후로 보낸 편지에 대한 간략한 서평입니다. 서준식은 앞서 10년 동안 즉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까지 이렇다 할 만한 사고를 형성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아니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안부 등이 오고 가며, 간혹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동생들(선아, 순자, 동생 등)에게 무슨 책을 읽어라는 등의 간헐적인 충고를 할 뿐입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일 년 동안 많은 편지들이 오고갑니다.(앞부분은 개인적으로 읽은 지가 조금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본격적인 부분은 이와 같이 하였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불쌍하다 불쌍하다는 생각에 골똘하다 보니, 문득 내가 혼자서 열을 올리고 있음을 깨닫곤 하는 것이다. 이런 때의 심정이란 <고독> 바로 그것이다...... 10년 전 나는 미결수로서 서울구치소에서 절도범들과 혼거했었다. 형이 확정되어 기결수가 된 절도범들은 자꾸 기결감방으로 넘어가고 그대신 신참자들이 자꾸만 새로 들어와 나의 감방에서 잠깐동안 맴돌다가 쉴 새 없이 나의 곁을 흘러 어디론가 사라져 가곤 했던 죄수들을 나는 수십 명이나 상대해 본 것이다. 그때 나는 그들이 거기서부터 완벽하게 소외되고 있는 문화의 알맹이, 고상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대하는 참된 즐거움, 훈훈한 인간다운 삶의 기쁨 같은 것(그들의 성장과정은 이런 것들과는 철저히 무관하고, 그들은 한겨같이 찌꺼기 속에서 찌꺼기를 먹고 찌꺼기처럼 살아간다)을 찾고 맛보게 해주고 싶어 무던히도 애를 태웠었다. 그러나 그런 정성이 받아야 하는 <대가>란 때로는 몹시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나는 "도둑놈들은 어쩔 수 없어! 그놈들은 종자가 따로 있는 거야!" 따위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이 말은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자처하는 어느 목사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것은 저 미결동의 10왓트짜리 전등 밑에서 나란히 누워 매일 저녁마다 들은 저 <어쩔 수 없이 비뚤어진 인간성을 가진 악당놈들>의 신세타령들이, 모두가 작은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저마다의 슬픔의 역사들이 그 당시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지를 내가 지금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슬픔의 역사는 지금도 나의 가슴 속에서 파상(波狀)을 이루면서 남아 있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얼마나 <헌신>했다고 그 <대가>를 요구하고 큰 소리를 칠 수가 있겠는가.....(218쪽) 81.8.31 동생 영실에게 씀
서준식의 편지를 읽어가다 보면, 치킬박사와 하이드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절대 고독에 의한 몸부림을 숨기기 위해 동생들에게 삶에 대한 당부로 위장합니다. 동생 영실에게, 이종 동생 선아.선암, 고종동생 순자와 순전이에게 건내는 말은 그가 말했듯이 스스로의 암시가 되며,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더더욱 굳건히 하는 뼈대가 됩니다. 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자기 암시를 걸며 스스로의 성(城)을 쌓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이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 절대고독이 아집이나 독단으로 흐르지 않을까라는 고뇌가 이모, 고모 그리고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에서 들어납니다. 그는 동생들에게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꿈과 이상을 위해 조화롭게 건설하라 하는데, 이를 스스로에게 비추어보면 독단과 아집에 머물지 않되 스스로의 주체성을 상실한 자아가 되지 말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즉, 동생들에게 열심히 설교를 하며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입니다. 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벽이 없음에 벽을 만들어 메아리를 울려 잠자거나 엇나가는 그를 깨우려는 행위이며, 이러한 처절함은 아버지 편지를 통해 거울처럼 비추어집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가 추구해야 하는 고귀한 삶이며, 동생들은 그와 함께 현실을 살되 부모님처럼 고귀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자아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 속으로 매몰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자면, 현실감각과 이상이 보다 안정된 균형을 이루어가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순전이는 그러한 균형을 이루는 데 있어서 스스로에게 부족된 요소가 어떤 편인가를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한창 꿈이 많은 나이인 순전이에게 어쩌면 이런 소리는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혹한 것은 말이 아니라 현실이다. ...<중략>... 사람은 누구나 이상과 현실과의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양자의 보다 나은 균형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 과정은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겠다. 젊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자신의 꿈을 쫓는 사람들은, 혹은 한바탕의 열풍과 좌절 뒤에 <현실>로 회귀하는 마당에서, <희망이란 무엇?-그것은 갈보다!>라고 절규하게 되는 것이리라. 젊어서 <꿈>에 자신의 인생을 걸어 보지 못한 사람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불행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꿈>을 쫓아가다가 좌절도 해보는 그런 해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서 성공적으로 <어른>이 되는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이상과 현실감각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이룬 삶, 이상은 현실감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현실감각은 이상을 허황한 꿈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보다 세련되게 하여 주는 그런 삶을 이루는 일이 결국은 최종목표이어야 하겠다. 그것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구태어 <꿈>을 쫓아 보는 우회로가 별 필요가 없다.(244 ~246쪽) 81.11.12 순전에게
책을 읽으면서 순자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생깁니다. 마음씨는 착하지만 공부는 조금 못하는 듯한 순자, 똑똑하며 공부를 잘 하는 선아가 어떻게 커 가는지, 순자의 동생인 순전이가 사회에 눈을 떠 가는 과정, 위에서 말한 서준식의 가치관에 대한 믿음과 성찰은 책 읽는 재미를 줍니다.
이상 1권의 서평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서준식의 『옥중서간집』 1989년 형성사에서 전3권으로 된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