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24 05:48:54, 조회 : 3,729

안녕~ 슈퍼스타즈~

드디어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의 마지막 4부이네요.
이글을 쓰신분이 그 뒤에도 프로야구에 관련된 글을 쓰셨다면 열심히 읽고 싶은 마음뿐이네요.
넘 재미있고....가장 약자(?)의 어린이회원이었던 특수성에서 바라보는 특유한 시선이 읽는 이로부터 단순히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란 제목에서 나오는 것보다...'밑에서 보는 프로야구'란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군요.

갑자기 이런 말도 생각이나네요......

인천당구는 짠물당구.......

인천야구....이제는 우승까지한 현대 유니콘스까지 오게 되었죠...그럼 인천야구는 무슨 야구일까요?

어째든 [386을 위하여]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는 참 재미있는 생각과 추억들이 오고 갈 수 있었던 좋은 글이었던것 같습니다.

베코님이 [386을 위하여]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 3에서 장명부에 대한 리플을 달아 주셔서....저는 이번엔 '일본야구속에 한국인'이란 글을 찾아서 올려봅니다.


출처 : http://www.jipango.co.kr/sports/bbline/theme/sports_bbline_theme_korean.asp


일본야구속의 한국인


카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 김경홍)

포지션 : 투수
통산성적 : 400승 298패, 탈삼진 4490개, 방어율 2.34
개인기록 : 최다승 3회, 최우수 방어율 3회, 탈삼진왕 10회, 베스트나인 3회, 사와무라상 3회 수상, 일본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1988), 14년 연속 20승(1951~1964)

일본 프로야구의 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왕정치라면, 투수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카네다 마사이치를 뽑을만큼, 일본의 역대 베스트 나인 선정 때에도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등장하는 인물 카네다 마사이치. 한국이름은 김경홍으로 1950년 데뷔이래, 코쿠테츠 스왈로즈(國鐵 スワロ-ズ : 요쿠르트 스왈로즈의 전신),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거치면서 일본 프로야구 사상 불멸의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등번호 34번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이다. 장신을 이용한 속구와 커브로 데뷔 13년째에 메이저리그의 W. 존슨이 가지고 있던 3,508개의 탈삼진기록을 깨뜨렸다.


<장훈(張勳, 일본명 : 하리모토 이사오)

포지션 : 외야수
통산성적 : 안타 3,085개, 홈런 504개, 타점 1,676타점, 타율 319
개인기록 : 신인왕(1959), MPV 1회(1962), 수위타자 7회, 일본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1990), 최고 출루율 9회

현역시절 안타제조기라는 별명으로 미증유의 3,000안타를 기록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장훈은 1959년 니혼햄 파이터즈의 전신인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 그해 왕정치와 신인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의 독특한 타격폼을 일컬어 일본에서는 광각타법(廣角打法 : 우리나라에서는 뭐라고 부르는지?)이라고 한다.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롯데 오리온즈(롯데 마린스의 전신) 등을 거치면서 활동했다.


선동렬

포지션 : 투수
통산성적 : 10승 4패 98세이브, 탈삼진 228개, 방어율 2.70
개인기록 : 일본 시즌 최다 세이브포인트 신기록(38SP, 1997)

두말할 필요없는 한국 최고의 투수 선동렬.
1996년 도일한 이래 주니치 드래곤즈의 수호신으로 활약 4년 동안 10승 98세이브 위업을 달성하였다. 1997년에는 일본시즌 최다 세이브 포인트의 신기록을 달성했다.


백인천

통산성적 : 안타 1,831개, 홈런 209개, 타점 776타점, 타율 278
개인기록 : 수위타자 1회(1975)

전 삼성 라이온즈감독으로 99년 현재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부문에서 1,831개의 안타로 역대 36위를 기록하고 있다. 1975년 수위타자를 차지하기도 했다.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 니혼햄, 태평양 클럽 라이온즈(세이부 라이온즈의 전신), 롯데 오리온즈 등에서 활약했다.  



자 이제 그럼
[386을 위하여]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 4. 편을 시작 해봅니다.

출처 : http://www.puha.co.kr/web/web4/s_ball4.htm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

제 4편  안녕~ 슈퍼스타즈~   안녕~~ 소년시절아~~

  

컬트야구단 삼미의 마지막 카드로 현해탄을 날아와 슈퍼스타즈와 꼴찌다툼을 벌이던 로떼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로떼팬들의 염장을 질러버린 사나이가 있었다.

막가파식 등판으로 프로야구에 신선한(신선했나요...)충격을 던지며 불붙은 프로야구 열기에 신나통을 던져버린 사나이가 있었으니, 83년의 진정한 히어로, 30승 투수, 그 이름 장.명.부.였다.

평범한 투수들이 족히 3년은 걸쳐 던질 공을, 한 시즌에 뿌려댔던 600만엔의 사나이, 그 이름 철완너구리 장.명.부

하지만 3년걸릴 노쇠현상을 한시즌만에 이룬탓인지 이듬해인 84년 시즌엔 평범한 투수로 전락해버리고.이제 막오른 너구리의 전성시대는 바로 막을 내린다.

83년에 잠시 외도를 했던 슈퍼스타즈는 이듬해부터 제정신을 차리고 이후 5년간 기복없이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꾸준히 꼴찌를........)




1. 정신차린 슈퍼스타들


한 여름밤의 꿈처럼 83년의 씨즌은 그렇게 아쉽게도 지나가 버렸다 삼미 사장은 무심코 장명부에게 ‘30승=1억’보너스를 약속했다가 장명부가 진짜 달성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든가 뭐라든가.

하여간, 장명부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기염을 토하며 인천야구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인천야구는 이렇게 새로 태어나는 것인가.

장명부라는 초인의 위력을 실감한 슈퍼스타즈의 프론트는 그와의 재계약 이외에는 다른 대안은 마련하지 않았을 정도로 상황파악이 하나도 안되고 있었으니.

국가대표출신이 즐비한 화려한 선수진을 거느리고도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라이온스는 너구리 한마리만으로도 80년대의 팀인 자신들보다 나은 성적을 올린 삼미를 보며, 자극받아, 재일동포 배터리, 김일륭과 송일수를 수입하게 된다.

1983년엔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묶여 있다 돌아온 장효조와 김시진이 이미 입단하여 명불허전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고,'헐크' 이만수의 괴력은 인간보다 짐승쪽에 가깝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던 바, 84년 시즌을 앞두고 일본에서 김일륭이 떠들석하게 날아오면서 라이온스는 전성기를 구가할 진용을 완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파악이 전혀 안되는 슈퍼스타즈 선수들은 작년 자신들이 발휘할 수 있는 체력과 기량을 200%를 발휘해버린 이후 마라톤 레이스를 완주해버린 단거리 선수처럼 심신이 지쳐있었으며,트레이드를 통한 선수보강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활약상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전성기를 이미 가볍게 넘겨 버린 '썩어도 준치'콤비 백인천, 김유동 뿐이었다.

게다가 신인보강에선 초호화 멤버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어급 신인들...........과 안면이 있는 선수들을 스카웃하여 작년에 이어 강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마음뿐이었음을 철없는 인천소년팬들은 상황파악은 전혀 하지 못한채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자, '초인' 장명부는 '범인'으로 전락하고 장명부의 추락과 함께, 잠시 '우리 슈퍼스타즈 맞아?' 하며, 자신들이 미사일 방망이인줄로 착각했던 슈퍼스타즈의 타자들은 지난해의 도깨비 방망이로서의 위용은 간데 없었다(원래 없던거니까)


............세상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있었다.


멋모르고 덩달아 뛸때는 부담없이 잘하다가 갑자기 상황파악이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 탓에 방망이는 허공만을 가르고, 그들은 칼춤을 추었다.
애써 잊으려 했지만 머리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은 떠나질 않았다.

'우리는 슈퍼스타즈였어..........라이온스가 아니라......
'마자, 난 공갈포였었지....으으


장명부와 함께, 일본에서 건너와 한껏 방망이를 뽐내며 83년을 슈퍼스타즈의 해로 수놓았던 재일동포 이영구는 84년에 최다 병살기록을 세우며 진짜 '영구'가 되버리고 만다.

원래 바부하고 같이 지내다보면 바부가 되게 마련이란 진리를 새삼스럽게 증명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또한 작년 미사일타선(역시 아무래도 어색하다)의 핵심멤버였던, 우락부락한 용모로, 외모로만 보면 홈런이 마구 뿜어져 나올 듯했던 금광옥은 그라운드에선 순한 양으로 변해버리고,

방망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 나온 클린업트리오에 한술 더 떠서 하위타선들은 '하위타선전멸'이라는 인천야구의 전통을 만들어내기 이른다.

이제 막 오른 듯 보였던 너구리 신화는 바로 막내려버렸다.그렇게 장명부는 80년대 인천프로야구의 전설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모든 팀의 '지혜로운 영양간식' '차려놓은밥상'으로 전락해버린 슈퍼스타즈.

군계일학 정구선의 활약만이 눈물겨운 84년의 시즌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터널처럼, 끊없는 계단처럼 인천소년 팬들의 앞에 펼쳐졌다.


2. 벌거벗은 승부욕의 두얼굴

84년, 영원한 우승후보 라이온스는 어제의적 오늘의동지 내일은팽 김영덕을 맞이하며 차근차근 우승을 위한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

82년과 83년 한국시리즈에서 바부역할과 구경꾼 역을 맡아야했던 라이온스는 이러다 '물먹는 사자'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84년을 라이온스의 해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전기리그는 준비된 시나리오의 제 1막이었다.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삼성은 후기리그에는 느슨한 경기운영으로, 파트너를 고르기 시작했다.

원년에 라이온스를 상처입은 사자로 전락시킨 장본인 자다가도 한국시리즈만 생각하면 '쉬펄~ 하면서 벌떡 일어나게 만든,바로 그 베어스가 후기리그 우승을 위해 순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베어스는 결코,절대로,네버,노웨이, 용납할 수 없었으며, 하기룡, 유종겸, 오영일의 삼각편대와 바람의 아들 '이해창' HIT BY PITCHED BALL의 달인
*김인식이 포진한 청룡도 맘에 안들었다.

  
* 김인식

  '데드볼' 또는 순수우리말로 '몸에 맞는 공'에 달
   관한 허슬플레이어. 데드볼이란 말에서 알수 있
   듯이, 잘못 맞으면 밥숟가락 놓을수도 있는 위험
   한 상황. 김인식은 이런 몸쪽 공을 피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이다.
   최근의 그의 계보를 공필성이 잇고 있다.
   (그는 선동렬의 직구도 피하지않는, 투지를 넘어
    선 무모함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청룡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한 타이거즈보다는 원년 삼미덕에 꼴찌를 면했던 자이언츠가 맘에 꼭 들었을 것이다.

물론 슈퍼스타즈가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더욱 맘에 들었겠지만, 그건 삼성의 혼자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모든 팀이 져주기를 각오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녔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자이언츠를 선택하게 하기로 맘을 먹은 삼성은 롯데가 후기리그에서 우승하기까지 지대한 공을 세운다.말이 좋아 지대한 공이지, 자이언츠와의 연속경기에서 라이온스 팬들에게 조차 낯설은 투수들을 선발로 내세웠으며 모든 플레이에서는 허점이 드러나는등,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욱 떠올리기도조차 싫은 사실은 지난해 타격왕을 제외한 타점, 홈런킹 이만수를 전무후무한 타격 3관왕으로 만들기 위해 타격왕 레이스를 펼치던 자이언츠의 홍문종에게 10연속 고의사구를 지시한 김영덕 감독의 추태였다.

홍문종이 이 10타석가운데 안타만 하나 쳤어도,타이틀은 그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김영덕 감독의 선수의 대한 사랑으로 애써 좋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프로야구판을 말아먹기에 부족함 없는 선례를 기록한 것이었다.
            
그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즌을 지나 로떼 자이언츠는 후기리그 우승의 감격을 맞이하게 되며 라이온스는 전기리그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성적인 5위를 기록한다.

물론 6위는 프로야구의 기초공사, 영원한 바닥판 슈퍼스타즈였다.
라이온스는 승부를 조작하면서도 그 밑으론 내려갈 수 없었다.

드디어 84년 가을, 프로야구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가 펼쳐진다.

  라이온스 필름 제작, 김영덕 각본, 감독으로 한국시리즈가 펼쳐졌으나 이건 왠걸, 주연은 김일
륭으로 할려던 애초의 시나리오와는 상관없이 난데없는 최동원이 지맘대로 주연을 맡아 버렸다

'황금의 팔' 최동원은 7경기 가운데 5경기를 등판하여 4승을 따내며 80년대의 팀, 라이온스를 생까버리며, 80년대의 바부팀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까진 참겠는데 역대 한국시리즈 중 최고의 조연 역할마저 유두열이 쌱~가져가 버렸다


차려놓은 밥상을 자이언츠에게 갖다받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철완' 타이틀을 놓고 장명부와 일합을 견줄만했던 최동원은 씨리즈 4승이라는 얼토당토안한 기록을 세우며 롯데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되며, 유두열은 7차전 끝내기 쓰리런이라는 대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진짜 멋있었다. 명승부의 영원한 파트너......삼성.-_-;

아마야구의 기린아에서 원년바부로 전락했던 '이선희'에 이어 재팬특급, 황금박쥐 김일륭이 '바부'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프로야구계를 말아먹을 것으로 예상되던 절대강자 라이온스는 휭~한 가슴을 부여잡고 '내년부턴 꼭 밥말아먹자'고 굳게굳게 다짐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해 씨리즈 MVP가 씨리즈 4승을 거둔 철인28호 최동원이 아니라,
1할대의 빈타에 허덕이다 역전 쓰리런 한방을 날린 유두열이었으니, 한국인은 역시 기분파~하(최불암흉내-_-;)라는 생각이 든다.

파트너 고르기로 야구판을 혼탁하게 만들었던 김영덕 감독은 이로인해 치명타를 맞게되고, 한국시리즈 최고의 명승부였던 82년과 84년에 연속으로 바부 역할 만을 맞아야 했던 라이온스는 그 후유증일까,
한국시리즈와는 그후 십수년간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3. 모든 것은 제자리로........

작년 13승을 거두며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던 장명부는 세번째 시즌을 맞아, 다시 비범한 투수(시즌최다패전)로 변신을 하며, 인천야구의 희망에서, 슈퍼스타즈의 미운털로 전락하고 있었다.

30승을 달성하고도 프론트로부터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못한 너구리는 성의 없는 투구로 일관하면서, 원래부터도 그랬지만 자꾸만 타자들을 향해서 공을 던지고 싶어지는 날이 많아졌다.그렇게 슈퍼스타즈의 미운털에서 프로야구의 미운털이 되가고 있었다.

80년대의 강자, 라이온스는 이만수와 장효조를 앞세워 84년에 이어 타격타이틀을 완전히 밥말아먹고 있었다. 조금 다른것은 타이거즈의 김성한이 타격 부문에 자꾸 오리궁둥이를 들이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썩어도 준치'콤비 중 백인천은 삼미의 유니폼을 벗어던지게 된다.슈퍼스타즈를 맡아서 탈꼴찌할 자신이 없었나보다.세상엔 인간의 힘으로 바꿀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당시 슈퍼스타즈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우고 있었으니, 백인천씨는 상황판단을 빠르게 한 셈이었다.

최악이라는 단어는 사전에만 존재할 뿐, 더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슈퍼스타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원년에 세웠던 16연패라는 기록을 깰수 있는 건, 역시 자신들뿐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증명해 보이며, 조만간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연패기록을 18연패로 가볍게 늘여놓았다.

들어는 봤나?...십.팔.연.패.......십...팔 수십년의 일본프로야구의 기록을 가볍게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삼미가 수놓았던 주옥같은 기록들이 이 연패기록앞에선 모두 빛을 잃고, 초라해져버렸다.

연승이나 연패기록은 실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운이 따라야 한다.슈퍼스타즈는 하늘이 내린 팀이었던가 보다.......하늘이 버린 팀.

하지만 당시 인천소년야구팬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세상살이란게 다 그렇고 그런것.......

슈퍼스타즈와 질곡의 4년을 함께하며, 인천소년들은 애늙은이가 다 되었던 것이다.

에허라 디여~~~  

결국 슈퍼스타즈는 18연패에 종지부를 찍는 1승과 함께, *청보에 매각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그리고 OB곰팅이들에게 16:0의 최다점수차 완봉패를 기록하며 1게임 최다피안타 기록등, 원년에 세웠던 기록을 하나씩 갈아엎어가고 있었다.

슈퍼스타즈가 꼴찌를 면하는 길은 한가지 뿐인듯 했다. 그것은 포항 아톰즈 축구단을 프로야구에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충격적인 18연패를 당하면서 슈퍼스타들은 점점 아래로 추락했다. 가난한 집에 효자난다고, 삼미의 유일한 슈퍼스타 정구선만이 3년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슈퍼스타들은 18연패에 종지부를 찍는 1승과 함께, 라면과 청바지, 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주종목으로 하는 내 평생 듣도보도 못한 청보라는 기업으로 매각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4. 추억의 타이거즈.

그땐 지금처럼 이빨, 손톱 발톱 다 빠지고, 게다가 끼니도 제대로 떼우지 못하는 그런 '무늬만 호랑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타이거즈가 80년대의 팀 라이온스를 넘어서 십수년간 최강의 팀으로 질주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타이거즈가 80년대의 팀 '라이온스'를 가볍게 생까 버리고, 나아가 90년대까지 질주하기 위해 중대한 첫발을 디딘 때가 바로 85년이었다.

이후 몇년간 원년우승감독 김영덕이 '멍게' 아니 해삼,말미잘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고,밥먹다가도 숟가락을 내팽개쳐버리게 만든,

무등산 '멍게' 아니 나고야의 멍게, 무등산 폭격기 썬동렬이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80년대 중반 무적삼성과 90년대 막강빙그레로 이어진 그의 감독생활은 선동렬로 인해 매우 우울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술마시는 날이면 하늘을 향해 절규하곤 했다.

"신이시여~~, 왜 김영덕을 낳으시고, 선동렬을 내리셨나이까......

  ..................그럴라면, 같은 팀에서 뛰게 해주시든가.......


국보 선동렬은 후기리그부터 반쪽시즌만을 참여했지만 신인왕 이순철과 함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86년시즌 대폭발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5. 마지막 시즌, 85년 전기리그.

슈퍼스타즈와의 3년이 좀 넘는 기간동안 인천야구팬들에게는 '탈꼴찌'라는 졸라 소박한 꿈만이 허락되었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그리 많았길래, 이 좋은 개명천지에 꼴찌소년으로 살아야 했었는지.

85년엔 게임수가 100경기에서 110경기로 늘어난 해였다.더 늘어난 게임수는 고스란히 인천소년들에겐......늘어날 절망감의 깊이였다.

슈퍼스타즈가 참여했던 마지막 시즌인 85년 전기리그에서 당스꼴찌 승률 2할대를 마크한다.

부산, 대구, 서울, 광주팬들과의 약속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은 슈퍼스타들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사나이들의 의리란.........바로 이런 것이다.

슈퍼스타들이 청보로 팔려가는 바로 요시점에서 다수의 인천소년들이 축구팬으로 전향을 선언한다.또는 이제 막 80년대를 말아먹을려고 하는 타이거즈의 팬이 되거나. 그래도 4년은 견뎌냈으니,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마늘하고 쑥만으로 4년을 견디라고 했으면 아마 한반도엔 곰하고 호랑이 천지였으리라......

그와중에 핀토스의 창단은 인천야구에 일대변혁을 가져올 것인가?

인천야구의 비상을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 지켜보려던 소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비웃기라도 하듯 삼성은 신생팀 청보의 앞길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아주었다.

청보전에서 허규옥, 장효조, 박승호의 1이닝 3홈런이 나왔던 것이다.그나마 남아있던 인천소년팬들을 학교로 돌려보낸 사건이었다.다혈질 소년들은 눈에 흙을 뿌리기도 하였다.

꿈만 가득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보아야 할 나이에,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세상엔 라이온스팬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라며 자포자기 인생관을 형성하고 말았던 것이다. 핀토스는 프로야구의 바닥판 슈퍼스타즈의 후계자답게, 하위팀의 등불, 상위팀들의 우황청심환 역할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슈퍼핀토스의 팬으로 남아있는 일은 소년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인내심과 자제력을 요구했다.

희망은 인내하는 가슴 속에서 꽃핀다고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미련곰팅이 같은 짓이라는 걸 시니컬보이의 직관으로 서서히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85년은 86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열풍이 몰아치고 있었으니,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었다.

그 얼마만의 월드컵본선 진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여간 전국은 월드컵으로 들썩 들썩거렸고, 그중에서도 인천소년들은 더욱 더 축구에 열중했다.      

....Good-bye...Super-Stars............I LOVE SOCCER!!!

86년의 월드컵과 88년의 올림픽의 열광의 도가니속에 박철순과 이만수를 좋아하며, 슈퍼스타즈에 울던 인천소년들은 그렇게 야구와 멀어졌다.......
적어도 89년의 가을까지는.

                  
                                                - THE END


붙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접어야만 하였다... 인기없다고 -_-;
나중에 푸하스포츠라도 생기면, 또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야구를 여전히 좋아하긴 하지만 평생을 좋아해도, 82년만큼 좋아하진 못할 것 같다. 동네야구에서 최초로 타석에 섰던 기억... 몸으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못하고 몸에 맞고 좋아라하며 1루로 뛰어가던 모습이 며칠전처럼 생생하다.

가장 가지고 싶어했던 가죽글러브. 마침내 글러브가 생기던 날, 글러브를 베고 잠을 잤다.캐치볼을 하다가 만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가장 힘껏 던지다가 아버지 이마에 공을 맞추고 하루종일 우울했던 기억도 난다.

나의 슈퍼스타즈가 매일 처참하게 지던 슬픈 기억.....매일 우울한 패전보. 영원한 생명을 찾아 메텔과 함께 999호를 타고 소년시절을 달렸던 철이처럼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슈퍼스타즈와 함께였다.

어린마음에 가장 미워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야구팀... 슈퍼스타즈.

                    안녕~ 슈퍼스타즈~   안녕~~ 소년시절아~~




삼미 슈퍼스타즈 원년 어린이회원
푸하 기자 한재영
jonedoe@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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