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많은 아이들’]
정말 일기... 한 해를 쓰면, 삼 년을 쓰면 혹은 강산이 변하도록 쓰면 무엇을 한다는 둥... 말도 많은 일기, 하지만 하기 힘든...
내가 언제 일기를 썼든가^^; 이 책을 보게 되면서 일기에 대한 강인한 애착이 들지만, 내 게으름이 내 삶을 더 무겁게 누르니 쉬이 적히지만은 않을 듯하네요. 하지만 정말 재미나게 읽은 책입니다.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라"는 지은이의 고민보다, 난 일기 속의 주인공을 몰래 보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서리관찰 손희영 오늘 선생님과 뒷산에 갔다. 거기에서 서리를 봤다. 풀 위에 서리가 하얗게 붙어 있었다. 그걸 자세히 보니 소풍가는 아이처럼 보였다. 줄을 쫄 서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동그란 것을 보니 애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민정이와 나와 얼음이 있는 곳으로 가 봤다. 그러니 내가 얼음을 들고 싶어서 들을라고 하니 민정이가 먼저 들었다. 나도 들었다. 내가 민정이보고 이렇게 말했다. "민정아 얼음이 구두 같애." 하고 말했다. 자꾸 보니 구두 안 같았다. (10시 30분 ->11시 5분) (90쪽)
1996년 9월 23일 월요일. 맑고 더웠다. 나의 비밀 장경철 오늘은 나는 비밀을 쓰겠다. 진짜로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얘기를 못 했다. 그게 뭐냐면 나는 우리 반에서 27번이 좋다. 야는 금포 병설 유치원도 같이 다녔다. 그런데 오늘 27번과 싸웠다. 내일부터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한다. 나는 남자니까 진짜 싸우지 않겠다. 선생님도 내 비밀 꼭 지켜 주세요. 꼭꼭.(144쪽)
서리를 보고, "소풍가는 아이", "애벌레", "구두"로 보이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다. 같이 서 있다고 우린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내가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난 지난 상상력을 잊어버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말하는 세파 때문이라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여유가 없어서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를 선생님이 아실까봐 "27번"으로 숨기는 어린이의 모습도 마냥 재미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난 초등학교 1학년 때 누구를 사랑하고 좋아했을까^^*
일기를 쓴다는 것이 백가지 좋다는 점을 말하는 것 보다, 어린이들이 쓴 일기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효과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차례가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는 점입니다. 누군가가 일기를 쓰기 싫어한다면 이 책을 펼쳐놓고 왜 쓰기 싫어하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또한 일기를 써 가면서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계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난, 한동안 일기를 쓰지 못할 듯합니다. 그냥 내 어린 시절를 훔쳐 볼랍니다. 시간이 지나면 난 또 다른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려하겠죠.
조만간에 공책이라도 한 권 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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