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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뿌리^^*]
조세희... 조세희에 대한 환상은 아마도 철없을 때, 교과서처럼 읽은 『난쏘공』에서 비켜서 있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난장이들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70년대의 공업화가 그들에게 무엇인지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난 조세희라는 이름하나에 커다란 이미지를 부여하고, 그가 하는 말이나 사진은 나와는 다를꺼라는 금(線)을 긋어 놓고 있습니다.?
이른 내게 책을 펼치는 순간, "지난 70년대에 나는 어떤이의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 한권을 써낸다"다고 말 문을 연 다음에,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을서 그 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라고 무거운 말을 꺼낸다. '우리가 지어온 죄, 나도 죄를 지었단 말인가...? 길거리에 휴지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남의 물건을 이야기 없이 가져오지는 않는데...'
책은 "비동시대적 세계"라는 서구의 어느 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말문을 연다. 지구 속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같은 세계에 살지 않는다는, 기술이라는 하나의 잣대를 놓고 볼 때에 너무나 깊은 강이 놓여져 있다고 말합니다. 기술과학은 보라빛 미래를 역설하고 앞으로, 앞으로 지칠 줄 모르는 앞으로만 외치고 있는 사이에 작은 목소리는 힘없이 제자리를 맴돕니다. 놀라운 기술이 가져다 준 현실과 앞날에 대한 약속은 지은이에게 무의미하다고 합니다.(-왜 무의미한 비극적 세계관을 잉태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점은 없습니다. 다만 작은 목소리를 들려 주기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어느 '비동시대적 세계'에 주저앉아 현대의 우리 통신매체가 묵살하는 소식을 구식 수단을 이용해 띄우기로 했다. 나의 구식 통신에 귀기울여 달라.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오래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16쪽)"
친구와 나, 친구와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를 며 칠 전에 나눈 적이 있다. 결론은 친구와 나는 한 현실을 두 개의 눈을 본다는 것이다. 친구는 현실의 좋은 면을 봐 달라라고 나에게 말하고, 난 친구의 말을 빌리면 가장 아래층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사회가 올바르지 못하다고 논리를 편다. 난 친구의 말에 충분히 동의를 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가장 아래층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기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정부의 비정규직 근로자보호법" 참 길기다 하다.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숨기려는 의도가 있음에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어려운 말을 써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거나 말을 줄여서 자칭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옛날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데모나 하고 이적 단체의 이미지만 안은 '한총련'에 비하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는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어떤 이는 노총이 데모꺼리로 비정규직을 방패 삼아한다더라, 실체가 없는 무성한 소문이다. 노총을 욕하면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무관심은 무관심으로 나타낸다. 자칭 386세대는 가슴에 한 명의 사람만 키운다. 그는 노동자를 위해 절규하며 평화시장에서 죽어갔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 어제 비정규직 죽은 김춘봉씨나 지난 2월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라고 외친 박일수씨는 없다. 평화시장에서 죽은 이와 어제 죽은 이는 뭐가 다른가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해 본다. 한때 화염병을 든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자기밖에 모른다', '영화나 오락만 좋아해서 큰일이다'고. 한 번의 화염병이 오늘의 시대를 사는 면죄부가 되고, 몇 십년 전에 죽은 망령이 오늘을 지배하고, 어제 죽은 비정규직은 차가운 얼음 위에 섞지 않고 고여 있다. 내가 술 한잔 먹고 이 이야기를 하면, 친구는 말 할 것이다. 너는 너무 나쁜 것만 본다고... 그리고 정부에서는 이렇게 말을 한다.
'지금은 부를 분배할 때가 아니라 축적할 때'라고(63쪽)
난 이 말이 고심하고 고심한 윗사람들의 말인 줄 알았는데.. "80년대에 들어와 취미생활을 하고, 자식을 보러 이따금 미국에 가고, 유럽 여행도 하고, 주말에는 '옛 동지'들과 골프장에 간다는 당시의 실력자' 몇 몇이 70년 대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지은이는 농가의 가구 부채가 "평균 부채액은 2백 53만원으로"불었는데 안타까워 하고, "국민 한 사람당 외채가 백만 원을 육박한다는 계산도 그렇지만, 기왕에 끌어다 쓴 그 빚에 대한 한 해 이자만 어떤 독립국가의 40년 부채와 맞먹는 45억달러는 사실이 숨을 더 먹는다(69쪽)"고 말합니다. 그는 오늘의 모습에 보고 무엇을 말할까요?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월급은 올라가는 공기업, 늘 싸우기만 하는 국회, 동남아시아에 해일의 피해로 죽어가는 사람들 곁으로 골프 치러가는 부유층, 하루의 끼니를 잇기 어려워 고통 받는 서민들...
한 명은 펜을 들고 분노한다. 시대가 올바르지 못하다고, 하지만 그는 죽어간 비정규직의 이름과 그가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만 권의 책을 읽는다 한들, 가슴에 사람을 품지 못하는 나는... 오늘 부터 조그마한 움직임을 가져야겠습니다.
사진,


"아저씨, 우리학교는 참 불쌍해요."
"가 보세요. 정말 불쌍한 학교에요."
"나도 가 봤다."
내가 말했다.
그 말을 어린이들은 어느 광업소 사택이었던 작은 건물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흰 페인트 칠을 해 그렇게 크게 깨끗해 보일 수 없었던 본교를 해발 1013미터의 고지에 남겨두고 아이들은 내려왔다.
"네가 직접 학교 이야기를 써 봐라."
그날 나는 말했다. "나는 사북에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쓰기를 바란다."
덧붙임 : 글이 조금은 산만(?)하여 나에게 쉬이 다가 오지 않음이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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