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에의 사법풍자화 - 열화당미술문고 204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 열화당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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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에 도미에를 아시나요^^*]

1808년에 유리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낸 도미에는, 평생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전사로서 일관했다.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최대의 석판화가이며 풍자화가인 도미에. 대중은 도미에의 석판화를 그 밑에 쓰여진 설명문의 삽화 정도로만 생각하고 웃음짓기만 했을 뿐, 그 그림이 기품있는 형태와 웅장한 구상 그리고 효과적인 명암에 의해 구성된 한 천재의 작품이었다고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책 뒤편)

그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여기 한명 더 있습니다. 난 그의 몇 몇 작품을 보았지만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의 목소리, 낯설다는 느낌 밖에는 들리지가 않습니다.

달변가이며 제스처가 풍부한 마르세유 사람들 속에서 태어난 끝없는 빈곤 속에서 허득이며, 루브르 박물관을 학습도장으로 쓴 한 불행한 천재 풍자화가!! 이 보다 더 극적일 수는 없다. 그는 마르세유의 사람들이 지닌 원형을 무의식에 품고 있으며, 빈곤이라는 비극적 세계관을 잉태합니다. 그리고 끝임없는 지식에 대한 갈망은 루브르 박물관을 학습도장으로 익혀 아(我)와 비아(非我)의 끝임없는 투쟁을 하면서 자아를 성숙시켜 나갑니다. 이렇게 끈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한 그는 평생에 사천여점이라는 그림을 그려내는 왕성한 작가이면서 빈곤한 자에 선 혁명 혹은 급진주의자이며 우리의 이웃에 대한 고통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선량한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은 실로 대단할 뿐입니다.

그가 평생 동안 그린 사천여 점의 석판화는 그 자체가 그의 예술정신의 완벽한 표현이였던 것이다.(26쪽)
그가 풍자화를 창작하면서 이룩한 고상한 구성의 풍부한 변화는 결코 시간에 쫓기는 단순한 환쟁이로서의 임기응변적이고 의도적인 기교가 아니라, 현실 가운데 내면의 저장고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임에 틀림없다.(27쪽)
도미에는 풍자화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 풍자화가이며서도 회화를 그릴 수 있었다.(39쪽)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지은이의 "오노에 도미에"에 관한 광적인 집착이 보입니다. 몇 몇의 작품을 놓고 비평 내지 감상글은 칭찬일색이며 그가 왜 유명한가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은 없습니다. 단순히 유명하기에 유명한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지은이는 거리두기에서 너무 가까이 가지를 않았나 생각을 해 봅니다.

오노에 도미에가 법조계를 경계했다고 단지 경계한다는 이유만으로 존경의 가치를 받을 수가 있을런지... 미술사, 혹은 풍자화로서 사회에 대한 경계자로서 어느 점에 가치를 두어야 하나라는 여운이 남습니다. 오노에 도미에가 그림으로서 법조계를 경계했다면 지은이는 그의 책으로 오노에 도미에를 경계해야 할 터인데...

내가 읽은 『도미에의 사법풍자화』는 너무 빠져버린 어느 지은이의 짝사랑으로 읽혀집니다. 그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그림에 대한 자리를 알 수가 없으니 난 목과 팔다리가 없는 토로소를 보는 듯한 착각에 바집니다. 목과 팔다리가 없는 그림을 이해하기에는 내 지식이 너무 부족하고 지은이의 애착이 너무 지나치다는생각을 가집니다.



덧붙임: 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조만간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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