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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글, 잼나게 봐 주세요^^*]
북학의!!. 두번째이다. 그의 책을 든 것이. 하나는 옮긴이가 말하듯이 이익성이라는 분이 완역한 『북학의』이다. 이는 1971년 을유문고로 되어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장식은 지금보다 반 정도의 크기이며 회색 계통의 표지에 도깨비 문양 그리고 새로 글쓰기. 작은 글씨에 주석과 원문을 통재로 싫어 놓아 지금 다시 읽으라 하면 쉽게 손이 갈지는... 하지만 그때 교과서에 잠시 스쳐지나간 그를 만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었을 때의 충격은, 책이라는 것이 이런 힘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인데, 나는 『북학의』로 의해 조금씩 성숙해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읽은 감동이 다시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북학의』는 박제가가 스물아홉살에 적은 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청에 대한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잘 사회는 나라로 만들려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본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 중국을 되놈 일본은 왜놈이라 비하하며 스스로를 높이는 반면에 그는 청나라에 가서 그들의 문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으며 "왜 우리나라는?"이라는 근심걱정을 한 아름 앉고 돌아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이 책상물림이 아닌 직접 눈으로 보고 말하는 것이기에 쉬이 흘러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직접 보고 와서 이야기 한다는 것만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만은 않습니다.
만 리 길을 가면서 사람에게 걸어서 따라오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직 우리 나라뿐이다. 단지 걸어서 따라갈 뿐 아니라, 항상 행렬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말이 걷는 속도와 같아야 한다. 때문에 마부로 중국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 죄수들처럼 쑥대머리를 하고 있으며, 맑거나 비가 오거나 상관없이 걸어서 가야 한다. 이국 땅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으로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이다. 또 지나치게 땀을 흘리고 숨이 차도 감히 쉬지 못한다. 우리 나라의 하인이나 일꾼들이 자주 병드는 이유는 모두 여기에 있는 것이다.(내편/ 37쪽)
책상에 앉아서 백성을 위한다면 결코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직접가지 않고, 내가 직접 느끼지 않고서 무엇을 안다는 것은 자만이며 오만에 불과합니다. 진실로 백성을 위한다면 직접 걸어서 십리를 가면서 체험을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말로는 백성을 위한다면서 내 일신을 위해서는 대문 밖을 나설 때, 가마를 타고 가는 모습이란... 과연 무엇이 진정 옳고 그름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만 리 길이나 다른 나라에 들어갈 떼에 숙대머리를 하고 가는 사람을 보고 누가 감히 존대하겠는가? 내가 내 가족을 존대해야 남 또한 우러러 볼 것인데, 내가 존재하지 않고 남이 우리 가족을 존재해 달라고 하는 것은 억측이다. 이런 면에서 박제가가 사는 시대에 두 계층으로 나뉨을 엿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청나라에 갈 때에 이런 모습으로 간다면 청나라 또한 조선이라는 나라를 업수히 여길 것이기에 그가 보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만 리 길을 감에 다리가 아프다는 그 이상의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 박제가의 눈높입니다. 그는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닌, 내 이웃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한 안위가 아니라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서 방에 누워도 구들이 울퉁불퉁하여 잠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백성을 위한 걱정인 것입니다.
전국에 다음과 같이 알린다. "문벌은 좋지 않아도 재능과 같이 뛰어나거나 한 가지 기예라도 있다면 반드시 추천하라. 그런 인재를 추천하는 자에게는 상을 줄 것이고 은폐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면 시골에서 홀로 선을 행하고 있는 선비나 하층민 중 뛰어난 인재들이 모두 조정에 들어올 있게 될 것이다.(외편/ 151쪽)
조금은 허황된 듯한 인상을 풍기는 듯 하지만 진실로 이보다 더 낳은 방안이 있을까? 박제가가 고뇌한 100년이 지났지만,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는가? 우리나라의 교육은 오직 하나의 잣대(?)로써 마무리 지어집니다. 12년을 열심히 공부를 하여 수능을 마치고 나면 십중팔구는 이미 굳어지는 현실, 물론 티비로 보여지는 영웅들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의 벽을 고치지 않고 영웅만 내 보임으로써 "너도 영웅처럼 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술을 마셔라"라고 권하는 사회. 박제가의 시선은 이미 백년을 앞서고 있지만 권력의 무리들은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니...
『북학의』를 읽는 내내 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필시 우리는 너무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닐까라는 생각. 북학의가 단순히 중국에 대한 심취로 본다면 매우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것이지만, 태생적 한계를 지닌 한 선비의 고뇌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분명 박제가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통하여 자아를 정립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근본에는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백성을 살찌우는 마음가짐이 깔려 있습니다.
『북학의』가 나온지 백 여 년이 넘게 지났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새롭고 새겨 듣어야 할 말들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가슴 아파는 이유를 가장 먼저 새길 것입니다. 하지만 또다시 백년이 흘러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누군가가 내 서가에 꽂힌 책 중에 나에게 권할 만한 책이 무엇이뇨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할 것입니다.
박제가의 말을 빌려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대체로 성스러운 임금은 만나기 어렵고, 좋은 때란 항상 아쉬운 법입니다. 지금 세상은 동쪽의 일본에서부터 서쪽 끝의 서장까지, 남쪽의 자바로부터 북쪽 끝의 차하르까지, 거의 200년 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지난 역사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런 때에 힘을 다하여 스스로 정비하지 않고 있다가 혹시 다른 나라에서 난리라도 나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국무를 담당하는 신하들이 태평성세만을 즐길 여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는 폭넓은 학식과 예약을 제정할 능력을 지니신 분입니다. 또한 새롭게 시작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셨으니, 앞으로 어떤 업적인들 못 세우겠으며 어떤 것인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하여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큰일을 시행하려다 시행하지 않은 지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앞으로도 현재의 풍속에 따라 다스리고, 그때그때 임시변통으로 때우면서 일시적인 편안함에 스스로 안주하실 것입니까? 옛날 한나라의 신공이 말하기를 "정치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힘써 행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외편/ 184쪽)
예전에 을유문고를 통해 읽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가셔지지 않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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