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亂雪이 紛紛하다’]
무엇이든 자고로 긴 시간을 흘러오면 역사가 된다. 그것이 중하고 가함은 별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무엇이 중하고 가함은 내가 판단하기 이전에 역사가 판단을 하니, 굳이 내 기준으로 찾으려 하여도 시간적 순서에서 밀리고 마니 가히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안쓰러운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굳건히 내 곁에 다가온 것을 나 또한 몰라라 할 때는 차마 할말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다 건너 것이 아니고 우리 조선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것이라 할 때에는...
혜원, "풍속화의 대가"라는 미술 교과서의 몇 줄과 간혹 달력에 비쳐지는 단오 풍경의 그림만으로 혜원을 접하곤 하였는데, 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배의 허기처럼 그에 대한 사모는 깊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 들러서 혜원을 이야기 하는 책을 보고는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습니다. 반가움이야, 오랜 친구를 만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이나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뒷간에서 조금 찜찜하게 나온 듯 내내 가슴 한 쪽이 여립니다.
지은이가 밝히고 있듯이, 혜원에 대한 정확한 내역을 알 수 없으니 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한다는 것이 실물 없이 초상화를 그리는 격이 될 테니 어쩔 수야 없다하지만...
낭패로다. 정말 낭패로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깊이가 없으니... 지은이는 '주사거배(酒肆擧盃)' 혹은 '선술집(95쪽)'의 그림 한 장을 놓고,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을까 했는데... 조선 사람은 어디 가고 보이지를 않고 몇 몇 선술집의 내역을 풀어놓네...
선술집에 비친 풍경을 통해 그가 본-"풍속화에 대한 논문과 저서는 대개의 경우 구성과 색채 등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극히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이런 까닭에 혜원의 그림을 볼 때마다 궁금증만 더하였고, 그렇다면 아예 내가 혜원의 풍속화에 대해 어쭙잖은 글이나마 써보면 어떨까 생각(책을 내며)"-풍경을 짚어내어야지... 정작 그림은 펼쳐져 있는데, 이야기가 없으니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그림을 읽는 것인지 지은이가 던져 주는 일화를 읽고 있는 것인지...
크게 기대를 하였던 혜원과의 만남은 그의 그림을 본다는 것만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길 해야겠다. 아마도 지금의 아쉬움이 더 많은 공부를 하는 동기가 되겠지만 다시 혜원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 이 책을 보게 된다면 봐도 못 본 척 지나칠 수밖에 없다.
지은이의 옛날이야기, 그림과 어울리는 전설(?) 혹은 한시를 그림과 함께 읽고 싶다면 권하는 바이다. 조금은 쉽게 쓴 듯한 글귀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내게 이러할 진데 혜원에게는 어떠할꼬, 조금은 더 연마를 한 다음에 세상에 내어 놓아도 될 터인데... 마음이 성급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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