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어제 일입니다. 토요일이라 공장은 오후 4시 20분에 끝납니다. 황금 같은 토요일, 하지만 4시 20분에 끝나니 아쉬움이 황금만큼 큽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 공장장님이 덥다며, 집에를 가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막내인 내가 공장장님을 남겨두고, "공장장님 저 먼저 가겠습니다. 공장문 다 닫았으니, 나가실 때 문 꼭 잠그고 가세요"라고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100분간 토론 아닌 토론을 했습니다.
평소에 공장장님한테 업무적인 일을 물어보는지라, 또 토요일이고 해서 다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교육까지 거미줄이 처 졌습니다. 실상은 한 15년 전에 사립대를 나와서 선생을 하려고 하니, 돈 천 만원 정도를 달라고 하는 거랍니다. 그 당시 집이 천오백만원 정도 했는데... 천만 원의 돈이 없어 공장장님은 선생은 포기하였는데... 그저께 만난 친구와의 자리에서 연봉이 족히, (상상하시길..), 된다는 소리에 그때 돈을 주고서라도 선생을 했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제가 잘 다니는 컴퓨터 가게가 있는데, 그 분도 수학 선생님을 몇 년 하다가 그만 두었답니다. 옛날에 청소년 드라마를 보면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무엇을 더 줄 것인가 고민을 하니, 학부모보다 선생님들의 경계 눈초리가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지금도 일어나는 듯합니다. 공장장님의 동서(?)되시는 분의 철학이, 어떠한 선물도 학생으로부터 받지 않는다. 하지만 선물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 학교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라면... 설마 설마라며, 꿈을 꾸지만...
다시 겹쳐지는 뉴스, 서울이나 수도권에는 교사임용시험의 경쟁률이 높은데 경기도나 다른 지방에는 미달이라는... 농어촌 초등교사 대도시유입 가속화 등은 경험하지 않은 경험들을 규정 사실들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경험하거나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깐요.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이것은 책 제목만이 아닌 내 삶의 철학과 동일한 말입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보여 살면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조그마한 시골에는 누구네 집 숟가락 젓가락까지 알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크거나 관심이 높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알 수가 없으며, 알 수가 없기에 믿음이 생기지가 않고 또는 저처럼 누군가가 누구네 집을 몰래 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오면, 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되고... 급기야 서로를 경계하는 모둠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많다는 것 자체만이 문제되는 것은 아닐테니지만..)
학교 역시 소담하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커지리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선생은 아이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러한 경험은 아이들과 지속적인 믿음을 유지시켜 줄 것입니다. 작은 도서관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생기듯이 학교도 마을마다 생겨야 하는 것이 제 아집이랍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감옥 없는 울타리나 내 꿈을 키우기 위해 내 유년을 옥좨는 곳이 아닌 즐거운 학교, 추억으로 가득한 학교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는 제 생각과는 정반대로, 시장의 논리에 얽매여, 늙은 교사 한 명을 퇴직시키면 젊은 교사 두 명을 새로 뽑을 수 있다는! 어느 정도의 아이가 없다면 거리와 교사와 선생간의 믿음관계는 아무런 상관없이 폐교를 시켜버리는! 이런 상황이 벌어져도 아무렇지도 않고 당연시되는 사회!!
가슴 아프며, 조그마한 생각을 지니면 앞이 캄캄하여 어떠한 대안보다 숨이 먼저 막혀 옵니다. 차근차근 대안을 생각해보지만 위와 같은 꿈은 아직 꾸어야할 꿈일 뿐.
아직 총각이지만 제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면 혹은 조금 시간이 지난다면 기존 학교에 보내는 것에 당연하다는 생각은 버릴 것입니다. 내 아이가 학교 가서 즐거움보다 고통을 먼저 알게 된다면, 사람과의 소중함 보다는 약육강식에 의한 경쟁논리만 먼저 배운다면 저는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몇 개의 지식을 더 안다고 아이들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어 위압하거나 동물들이, 식물들이 어떻게 봄여름가을, 겨울을 나는가에 대한 지식보다 미국이나 자칭 선진국들이 들려주는 맹목적인 지식을 먼저 갈카 준다면 학교에 보내는 것을 당연시 생각만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저는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교육에 대한 말들이 어느 한 부분 틀린 곳이 없으며-이는 제 가치관가 동일하다는 표현입니다. 가만히 꿈을 꾸기만 했는데, 그들은 치열하게 현실과 싸워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몇 몇 글을 여기에 옮겨봅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배운 것과 어머니가 갖고 계신 지혜는 독특하고 뛰어난 것이었고, 나는 누구도 어머니보다 윗자리에 둘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에서는 어머니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친다고 느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생각이나 관념, 견해를 나에게 준 일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을 주었을 뿐입니다."(13쪽)
"학습과 노동의 분리는 또한 사회의 부정의를 낳는다. 어떤 사람들은 연구만 하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힘든 노동만 한다. 그러면 사회는 둘로 쪼개지고 만다. 육체노동으로 빵을 버는 사람들이 한 사회계급을 이루고,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또 다른 계급을 이룬다. 인도의 육체노동자는 하루에 1루피를 받고,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25루피에서 30루피를 받는다.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을 그토록 달리 평가함으로써 엄청난 부정의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부정의를 뿌리 뽑는 것이어야 말로 우리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34쪽)
"학교는 가정의 연장이어야 합니다. 따뜻하고 신뢰할 수 있고 친근하고 두려움이 없는 가정 말입니다."(19쪽)
"만약 올바른 교사라면 결코 어떤 방법에 매달리지 않고 한 아이 한 아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날 때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이들을 마치 쉽게 고쳐지는 기계 장치처럼 다룰 것이 아니라, 감수성이 풍부하고 생명력에 차 있으며 민감하고 두려워하며 다정다감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크나큰 이해심, 곧 사랑하고 참는 힘을 지녀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때는 우리는 흔히 손쉬운 교정 수단을 찾아서 기계적이고 기적 같은 어떤 결과가 나오기만 바라게 된다."(48쪽)
"아이들이 자유롭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신뢰관계로 맺어져 있는 학교, 아이들의 창의력과 호기심을 믿고 북돋우는 학교, 단편적인 지식을 주입시키지 않고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학교."(108쪽)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서글픈 현실은, 아직 까지 우리의 사회가 다음과 같다는 점입니다. "시험을 칠 때면 우리를 감시하고, 어떤 학생도 다른 학생 답안을 베끼지 못하도록 지켜보기 위해 감독관이 지명된다. 이것은 매우 서글픈 광경이다. 우리가 학생으로서 도둑 혐의를 받을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실패한 것이다. 시험 쳐야 할 무엇이 아직 남아 있단 말인가?(36쪽)" 즉 사회는 어떠한 힘(?)의 규율에 움직이고, 그 규율은 스스로와 남을 불신하게 되며, 이러한 불신으로 인해 적자생존의 길을 걷게 되는 악순환의 패러다임. 하지만 진정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감시를 통한 시험 채점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격려일 것입니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고, 반평균을 잡아먹었다고 사람을 기준의 도구로서 대하는 것이 아닌,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
우리는 왜, 잠재적 도둑으로 취급을 당하는데 분노하지 않고 당연시 하는가? 내 아이와 가족들이 가장 큰 믿음을 받고 사랑을 입어야 할 선생에게서 그와 상반되는 불신을 입는데도 아무렇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가? 이러한 패러다임의 고리는 끊겨야 한다. 내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맹목적인 믿음과 주의 깊은 관심, 그리고 조그마한 격려입니다.
저는 교육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무조건 일을 하였던 보릿고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폭발한 386세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지에 빠져서 깊은 생각은 저 장롱 밑 속에 묻어두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먹고 노는 것이 아닌, 모두가 행복하고 아름답게 사는 사회에 대한 탐구라고 생각합니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습니다. 내 배가 불러야 남을 돌봐줄 여유가 생긴다면 지금이 그때입니다.
조금은 넓은 시선을 가지고 새로운 세기를 우리가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에 선생님이 계셔야 합니다. 아직 까지 우리에게 선생은 존경과 감탄의 대상이며, 선생님이 하는 말은 무엇이 달라도 다른 인식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분명 선생님의 성찰이라면 좀더 쉽고, 차근차근 풀어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 옆에 앉은 아이는 오늘은 친구이지만 내일은 너를 짓밟고 올라갈 선의의 경쟁자다라는 사고를 주입시키는 것이 아닌, 내 옆의 짝지와 우리가 함께 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방법을...
선생님들의 반성 없는 주입식 사고와 선의의 경쟁(?)체제는 너무나 안이하고 쉬운 길을 걷는 교육자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존중 할 때에 비로소 교육이라는 가르침이 제자리를 잡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은 신(神)적인 존재가 아닌 먼저 난 사람(先生)이라는 겸손의 미덕을 누구보다 먼저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짧은 비평 이 책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교육문제에 대한 고전적 지위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3부로 구성된 내용, 1부의 참다운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내용은 정말 감동적이며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2부와 3부는 시간이 지난 내용과 제목과는 다른 내용 등이 겹쳐져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처음에 느껴지든 가슴 큰 울림이 책장을 넘길수록 차츰 잔잔해지는 안타까움이 계속 내 머리를 지배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혹은 바쁜 일상 속에서 책 읽을 시간이 없으시다면 1부 만이라도 꼭 필독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뒷심이 약하다는 생각에 별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