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를 넘어서
레스터 브라운 지음 / 따님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대안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망뿐이다.

간혹, 바다 건너 나라를 티비나 책으로 보면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산업화를 인류가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로 설정하고서는 앞 만 보고 달립니다. 여기에는 "00님이 너희를 특별히 사랑하사"라는 우월의식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닌 뫼를 올라서 정복하듯(登頂), "자연을 정복하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든 그들이 하나둘씩 변화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자연을 무시한 개발은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할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큰 변화는 아니지만 조금씩 자연에 대해 우월이 아닌 동등 의식을 지니고 같이 지낼려고 하는 듯 합니다.(하지만 그들이 진정 인간의 오만함을 벗고서 자연에 대한 동경을 지녔는지 아니면 소나기를 피하 듯 일시적인 돌파구로서 자연과의 동침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부족하지만 이러한 동등의식은 기계의 난개발을 막으며, 인류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모색을 하게 합니다. 아스팔트 위에 돌을 깨고서 나무를 심는가 하면, 베란다에 화분을 놓아두는 등 알게 모르게 많은 수고를 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극적인 반전"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즉 기계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한 일 백 년 전의 기계파괴운동이 일시적인 노동자들의 생존투쟁있다면, 지금 기계를 보는 눈은 나라에 큰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양의 문제가 아닌 질의 문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중,후진국들은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전지구적인 환경 문제를 생각하면, 기계에 대한 환상을 조금씩 떨쳐버려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선진국들이 던져준 사탕에 길들여저 그것을 쫓을려 합니다. 분명 사탕을 받아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몇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만은 받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선진국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부, 내 안의 금덩어리는 반으로 나누어 가질려고 하지 않기에, 인류는 극을 향해 무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계만이 인류에게 문제인가? 지은이는 기계에 대한 문제와는 별개로 인류의 증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인류는 기하급수적을 증가한다는 맬서스의 인구론은 현재에 많이 부정됩니다. 하지만 지은이는 텍스트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즉 지은이는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에 대한 식량의 산술급수적 문제만이 아닌, 인구의 증가로 통한 19가지 문제를 제기합니다. 식량생산, 수자원, 생물다양성, 에너지, 해양 어획량... 등등 이러한 문제는 맬서스가 제기한 텍스트에 갇혀진 것이 아닌 좀더 광의의 의미를 지닙니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맬서스의 관점에서 다시 문제제기하여, 확장된 사고로, 앞으로 다가올 사회에 대한 우려를 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꼭 기하급수적 증가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비교하며 현시점의 문제를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분석을 내어놓습니다. 이렇게 내어 놓는 분석이 어느것 하나 장미빛 미래가 없으니, 걱정일뿐입니다. 이런 걱정과 더불어 책을 읽는 내내 제 머리를 무겁게 한 것이 흔히 말하는 개도국에 관한 점입니다.

"국가들이 물공급 한계에 다가섬에 따라서 분야간의 물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따지면 농업 분야는 물사용의 효율이 떨어진다. 값어치는 200달러에 불과한 1톤의 밀을 생산하려면 1,000톤의 물이 소비되는데, 그 물을 공업용수로 사용하면 생산고를 1만 4,000달러 늘릴 수 있다. 이러한 70:1의 비율은 공업과 농업이 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할 때 왜 공업용수가 우선권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증가하는 수요가 공급한계에 부닥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농업용수를 전용하여 늘어나는 생활용수 수요를 만족시킨다. 그리고는 농업용수의 부족으로 감소된 식량생산을 벌충하기 위해 곡물을 수입한다. 1톤의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0톤의 물이 필요하므로 곡물을 수입하는 것은 곧 물을 수입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인구증가가 매우 빠르고 나라마다 물부족에 직면하고 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은 1990년대에 곡물수입이 가장 빨리 늘어난 지역이다.(34쪽)"


ㅜ.ㅜ
단순히 무역을 통해 물물교환의 발달형식으로 곡물을 수입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는 말이 농촌에는 나돕니다. 불과 20~30년 전 만 하더라도 똥을 밭에 뿌리고, 벼 짚단을 논에 갈아업고 하여 농사를 짓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는 똥은 돈주고 버리고, 벼 짚단을 불살라 버리고 그 자리에 농약과 비료를 줍니다. 이렇게 길들여진 농촌은 농약과 비료 아니고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사고의 전환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농약과 비료는 아주 쪼끔 아주 쪼끔의 문제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식량난과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얻어지는 막대한 부를 거머지고 위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중동 국가는 선진국들이 흘리고 간 고철에 입맛이 길들여져 다시한번 농사를 포기할 것이고, 그때에는 식량 주권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추석이 다가오기전 벌초를 하러가곤 하면, 뫼 마다 오동나무가 많은 이유를 아버지는 지겹지도 않은 듯이 해마다 들려 주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일본 사람들이 오동나무를 많이 사 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사람들은 순진해서인지 일본사람들이 정말 오동나무가 많이 필요하여 사가는 줄 알고, 일본에 팔려간 오동나무(묘목)를 비싼 돈 주고 사오는 것이다. 너도나도 오동나무가 돈이 되는 줄 알고, 일본사람들이 파는 오동나무 묘목을 사왔지요. 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급급하여 일본의 상술을 알아 차리지 못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일순간 오동나무를 많이 사는 것처럼 보여, 오동나무 묘목으로 우리나라에 되팔은 것입니다. 당연히 일본에 팔아서 부자가 되려는 환상에 사로잡힌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빚만 지게 되고, 오동나무를 사 가져 안으니 뫼 마다 오동나무일 수 밖에요. 오동잎 하나 떨어지면 온 천지에 가을이 옴을 느낀다 했든가요? 하지만 내게 오동나무는 순진한 우리 어머니아버지의 모습일 뿐입니다. 난 그 환상을 지금도 보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합니다.

나는 선진국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산업국가와 개도국을 가릴 것 없이 결핵.이질.HIV/AIDS를 포함한 많은 전염병의 발병률은 빈곤과 나쁜 건강상태에 시달리는 도시 빈민가에서 매우 높게 나타(55쪽)"나지만 남을 침략하기 위해 살상 무기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단순히 인구 증가에 따른 문제가 인류의 총체적인 문제를 낳을 수도 있지만 가장 피해를 보는 곳이 선진국을 제외한 우리라는 점입니다. 낯은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선진국을 견제하고 새로운 대안을 추구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쪽 수에서 짐작할 수가 있듯이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2~3장에 하나의 문제제기를 하다보니, 이미 정해진 답을 쫓는 듯합니다. 이런 점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으며 다른 문제와의 상관관계는 어떻는가에 대한 분석은 없습니다.

두번째, 앞서서 말했지만 단편적인 편린은 19의 문제를 유기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하나하나 때어놓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씩 나열된 문제는 우리는 너무 어두운 구석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물에 빠진이는 어떻게든 살려고 하지 "아이고 나 이제 그냥 죽는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아직 우리는 물에 빠졌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선은 너무나 한 곳 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되기를 단정짓는다고 해야할까요, 미래라는 것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사회이며 우리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제게, 너무나 굳은 사고를 보여줍니다.

세번째. 과연 이 모든 문제가 인구의 증가로 인한 문제인가라는 점입니다. 인구가 증가하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제 생각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진국들의 기계문명에 대한 환상, 개도국을 인류의 공존문제로 보는 것이 아닌 약탈 내지 신식민지화하려는 사고에 기인한다고 보여집니다.

지은이들의 인구 문제에 대한 제기를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선진국들의 횡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점은, 시선이 다름을 느낍니다. 아울러 어떤 지은이가 말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믿으며, "신좌파의 상상력"을 통해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연대가 결성되 인류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낼 것이라 믿습니다.

작은 책이지만, 그 문제제기와 시선, 그리고 생각의 다양성은 감히 쉽게 깊이를 논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또한 조금의 시선이 다른 점은 새로운 사고를 확장시켜주는 것이라 생각을 가집니다.

덧붙임:..위의 책은 절반 정도 밖에 읽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내용적 깊이가 앞의 연장 선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의견이 있다면 겸허히 수용합니다. 아울러 다 읽지 못하고 성급하게 올렸다고 비판을 하시더라도, 존중합니다. 좋은 책 많이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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