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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기
목수 김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일기를 쓴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검사용 일기라도 쓴 기억이 있고, 사춘기 시절에는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대학을 다닐 때에는 연애편지를 쓰 듯 일기를 끄적 그린 적... 징검다리마냥 띄엄띄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일상의 힘겨움이라는 핑계를 통해, 내 일기 적지 않음을 합리화한다. 일기를 적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춘기 시절 잠시나마 비밀일기를 적은 적이 있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비밀일기에 대한 흔적은 퇴색되어만 간다. 일기를 적는다는 것은 사소한 일상에 대한 기록이며,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한 개인적 성찰이자 은근슬쩍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뒤섞인 글쓰기가 되어간다. 은근쓸쩍, 누구처럼 먼 훗날 내 일기를 봐 줄 사람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교며, 사회 문제나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적을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이 가장 무거운 것이 잠오는 눈꺼풀이며 가장 힘든 일이 일기를 꾸준히 적는 것임을 어설프게 안 오늘에는 쉬이 적히지 만은 않을 듯하다. 하하 모든 것이 내 게으름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더 이상의 합리화는 비겁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목수일기. 지은이는 나무를 조각하면서 일기를 적는다. 그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닌 긴 시간을 통해 일기를 적어 내려갑니다. 한달에 한 번(?) 쯤 적는 일기에는 나무와 나무를 조각한 이야기와 그림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냥 장작불을 지피기 위한 불살개로 밖에 비취지 않든 나무가 목수에게로 가니, 그 만의 꽃이 되어 활짝 피어납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시나브로 느낍니다. 그리고 책에 대해 욕심을 내 듯, 좋은 나무를 보면 욕심을 내는 지은이의 모습은 어딘가 나와 닮았다는 모습에 피~씩 웃음이 머뭅니다.
하지만 조금은 아쉽기만 합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나이를 쌓아가는 것이 필시, 성숙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진 내게 지은이는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습니다. 재목(材木)이 보이면 욕심을 내는 모습은 한 해 두 해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 것 만, 계속 다듬는 조각에 대한 성찰도 없습니다. 즉 재목에 대한 욕심과 삶에 대한 성찰이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글이라는 것이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기를 한다면, 주입식 성찰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은근슬쩍 바란 것은 일상에서 녹아나는 자연스런 지은이의 성찰이였습니다. 지은이는 이런 모습이 비밀일기가 되든가 혹은 아무런 성찰을 하지 않았음인지, 살짝 비켜가고 있습니다. 건조한 나무 다듬기 글은 계속적인 반복이 되며, 이러한 글을 읽는 제게는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은이의 자존심은 너무나 도도합니다. 지은이는 개울가에서 통가리는 물고기를 잡아서 어항에 넣어 둡니다. 그런데 물고기들인 어항 밖에서 죽어 있는 것(또는 어항 속에서)입니다. 지은이는 이런 이상야릇한 일에 궁금증이 일어나 유심히 관찰하던 중에, 모든 것이 통가리 때문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통가리는 다른 물고기가 자기 몸을 슬쩍 스치기만 해도 강한 독침을 쏘며, 이 독침을 맞은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움을 어여삐 여긴 지은이는 통가리를 엄벌에 처한다는 명분으로 저녁에 찌개를 해먹습니다. 애초에 통가리를 어항이라는 좁은 공간에 잡아 넣지 안았다면 전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텐데... 지은이는 또다른 창조주가 되어 세상을 평가하는 시선이 책을 읽는 내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이는 자연의 일부가 아닌 자연을 뛰어넘는 또다른 창조주로 착각하는 오만함이 거북스럽습니다.
위와같은 시선은 다른 부분에서 보입니다. "모르던 바는 아니지만, 예전에 집안에서 쓰이던 목물들이 그렇게 순하고 소박한 모양새를 가지게 된 이유는 서민들의 질박한 품성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들이 그런 모양으로 만들 수밖에 없게 생긴 까닭이 더 컸을 것이다. 단순하고 투박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목물들이 후대에 와서 소박한 자연의 미학으로 치장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191쪽)" 지은이는 몇 년 동안의 목수생활로서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단정지어 버립니다. 물론 후대에 와서 미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화되었다면 이러한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며, 단순 소박하다는 앞 연구자들의 견해를 아무런 근거없이 무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글쓰기가 합리화를 위한 틀로 쓰여져 있습니다. 분명 지은이도 확실한 근거도 없이, "소박한 모양새를 가지게 된 이유는 서민들의 질박한 품성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자기만의 생각을, "미학으로 치장"되는 것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가정을 사실화하여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글쓰기는 위험하게 다가옵니다.
삶에 대한 시선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가 않다면... 우리의 삶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은이의 글쓰기는 어제 일기와 오늘 일기에 다름이 없으니, 큰 성찰이 없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목수일기는 기계적인 말투에, 어설픈 생각으로 자기 합리화하는 이야기, 만물 위에 존재하는 조물주의 시선으로 보는 듯 해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추신: 제가 본 시선은 삶에 대한 성찰을 엿보는 글쓰기였습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찰이기에 저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라, 열린사회의적이라는 개인의 시선이라는 것으로 봐 주십시오^^ 아울러 이 책은 통독(通讀)하지 않았으며 부분적 정독(精讀)으로 하였기에 제가 못 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