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 AG건축기행 1, 옛절에서 만나는 건축과 역사 김봉렬 교수와 찾아가는 옛절 기행 2
김봉렬 글, 관조스님 사진 / 안그라픽스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책이라는 것은 글 만 가득히 있는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장정일의 유년시절을 장악했던 삼중문고를 떠올리면 된다. 가로줄로 가득히 적혀 있는 글자는 어떤 때에는 나를 지치게도 하지만(특히 1970년대 동서문화사가 펴낸 500여쪽, 둘 줄의 세로쓰기는 나를 경악하기에 충분하다) 오기로 인해 밤을 새워 가며 읽은 적도 있다. 나는 아직도 그 책들을 기억하고 있다.

요즘에는 상술에 눈이 먼 것인지 무식하게 책을 편집하지 않고, 세련된 말로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것인지 모르지만 두께가 그리 두껍지도 않다. 아울러 책 속의 글도 여백을 충분히 두는 경우가 있다. 옛날을 생각하면 요즘 책은 쉬이 읽히는 것이 어쩌면 내게는 당연하다. 두껍지 않은 책에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는 내게 이 책과의 만남은 잊지 못할 것이다. 머물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그곳을 동경하는 것이며, 가고 싶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안그라픽스는 예전부터 디자인에 관한 책을 많이 내는 것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숨이 멎을 뻔 했다. 안그라픽스 사장이 관조스님을 찾아가 청(請) 한 이유를 충분히 공감(共感)할 만 하다. 이는 사진이 내 뿜는 광기가 눈빛의 광선을 흡수하며, 내 마음 속 깊이 침투하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한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검은 색 줄줄이 늘여서진 큰 글자만 마주치다, 뜻하지 않게 만난 행운을 쉽게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마음 어디 한 구석 여유를 주지 않고 자리잡은 풍경이 그곳에 날 가두기 때문이다.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으로 이르는 길은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아 보이는 끝도 모를 계단이 계속된다. 이 장면은 한국 불교 건축이 성취한 가장 뛰어난 모습으로 한국적 미학의 극치이다(20쪽/사진12,13쪽)'라고 말한다. 단순히 이렇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면 아하~ 그렇구나 했겠지만 스님이 찍은 사진은 굳이 지은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머리는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까라고 새기고 있는 중이였다. 아울러 '작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초라하지 않고 극히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다(33쪽)'는 표현은 왼쪽면 사진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지은이가 아름다운 필치로 날줄을 엮어 간다면, 스님은 우리가 무심코 스친 지난 장면을 꽃 보다 더 아름답게 스케치하고 있다. 이 보다 사진과 글이 잘 어울리는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책이다.

'우연한 감동은 없다. 가운루의 형태나 규모. 그 위치가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 속에 담겨진 의미와 옛스님들의 뜻 깊은 사려 때문(64쪽)'라고 말한다. 난 얼마만큼 옛스님들의 뜻을 헤아리고 있었을까? 아울러 '건물을 살리려다 건축을 잃어(58쪽)'버렸다는 지은이의 충고가 가슴에 또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는 너무 쉽고 편리한 것만 추구하지 않았나? 내가 가보고 싶은 곳에 차를 타고 훌쩍 떠나서는 '뭐 그저 그렇게 생겼네' 혹은 '다른 절과 다름이 없네'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난 사찰에 오르면 말을 걸을 것이다. “왜 그곳에 있나고?” 그러면 아름드리 기둥들이 떠 받치고 있는 사찰들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나에게 다가와 말을 할 것이다. “나는 옛날부터 이곳에 있었단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 녀석의 복을 빌려고 올라오면, 나를 물끄러미 그네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담고 싶었거든. 내 몸 어딘들 이야기가 머물지 않은 곳이 없단다. 그리고 나를 길러내신 스님들이 너네들을 더욱 복되게 하려는 생각을 한가득 담았기 때문이지.' 이는 국사단을 '넣을 수도 뺄 수도 없는 성격의 건물을 봉황문과 해탈문의 사이(36쪽)'에 둠으로써, 사람들에게 복을 하나라도 더 언져주려는 스님들의 충정어린 고뇌가 아닐까? 그리고 '일단 안양루에 오르든지 무량수전의 기둥에 기대서 지나온 행로를 돌와봐야 한다(46쪽)'는 지은이의 강조는 수 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내려오는 옛스님의 목소리가 아닐까?

조금은 지은이의 필력이 조금 더 만용(蠻勇)을 부렸으면 하는 아쉬움 뒤로 동경이 채워진다.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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