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숲이 있었네
전영우 글.사진 / 학고재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내 어린 시절은 항상 숲과 같이 한다. 특히 겨울철이되면, 소깔비(갈비)를 하러 뒷동산에 오르기도 하며, 스케이트(썰매)를 타기 위해 송곳을 만들려 해도 뒷동산에 잘 자란 소나무를 잘라 송곳을 만들곤 한다. 혹은 철없이 나르는 새를 잡겠다고 'Y'로 갈라진 밤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불에 구워 새총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새를 잡아 구워먹는 것 보다 소갈비를 굽는 것이 더 편하고 쉬운 내 어린 시절은 항상 충만했으며, 숲은 미로와도 같기도 했지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곤 했다. 아무리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바다의 물 아래처럼 숲속은 어떠한 동요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우리는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어갔다.

또한 숲은 여름날에 많은 비가 오면 산사태와 홍수를 막아주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무엇보다도 생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곳이었다. 아버지랑 겨울에 군불을 때기 위해 뫼(山)에 가서 나무를 하여 따뜻한 한철을 보내게 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숲에 의존하는 시골 사람들 마저 많이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 시골이더라도 구들이 놓인 자리에는 보일러의 호수가 지나가며 방을 데워주는 것이다. 등이 뜨겁도록, 장판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훨훨 타오르던 불꽃은 이제 다시 보기는 힘겨워지는 시기인 듯하여,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더 아쉽기만 하며 정답다. 누가 소갈비라고 하든가 송곳이라고 한다면 기억해줄까?

우리곁에 있지만 살기 위해 나무를 하는 일 밖에, 이제는 시멘트 때문에 저 멀리 사라져가는 숲. 그 친구의 사라짐이 마냥 안타까워하며 지은이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쩌면 지은이와 나는 다른 생활한경에 의존하지마 지향하는 점이 같은 듯 하기만 하여 한량없이 기뻐다. '나는 자연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자연과, 나무와 숲을 질적 대상으로도 바라보았던 자연조화문화의 흔적을 담고 싶었다.(8쪽)' 바다건너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선, 가이아라는 신격체가 있었다면 우리곁에는 같이 숨쉬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숲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범접하지 못하는 성서스로운 곳을 띄기도 했다 ' 마을마다 당산 숲이나 서낭당 숲을 지정하여 우주수인 다안나무나 서낭나무를 신체로 섬겼고, 나무가 없는 곳에는 솟대나 당집을 세워 신목(神木)을 대신하기도 했다(39쪽)'

이 책을 몇 몇 아쉬운 점을 내포하고 있어 지은이의 글쓴 동기가 아무리 높은 이상이나 가치관을 지향한다하더라도 좀 더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남산에는 나무 191종, 풀361종, 모두 합쳐 552종이나 되는 식물이 살고 있다. 국토 면적의 0.003%밖에 안 되는 공간에 우리나라의 식물의 13%가 서식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산 숲의 가치는 충분하다(92쪽)'는 가치관은 학자타입의 사고간에 머른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거은 국토 면적에 대한 식물의 비율이 아니라, 내 어린 시절에 같이 이름모를 동무가 되어준 그리운 이에 대한 관심이다. 이런 수종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군데 군데 보인다. 지은이가 보기에 이 꽃의 이름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뭐라뭐라 말하지만 아무런 사진과 설명이 없는 글은 읽기에 지루할 뿐이다. 이런 책의 편집은 글과 사진의 동떨어진 연출에서도 드러난다. 숲은 옆으로 옆으로 커져가는데, 책에 갇힌 숲은 조그맣게 짤려진 틀 안에 구겨져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이다. 양날개를 다 써서 숲의 사진을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과 꽃의 이름과 사진의 규형적인 배합에 대한 아쉬움을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따라 다녔다. 아울러 지리 정보도 너무 없다. 서울 중심에서 글을 쓴다거나 갑작스런 '선암사(仙巖寺)의 겨울 숲은 유난히 푸르다(124쪽)'라고 하는데, 그 푸르름에 대한 동경은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안나온다. 너무나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듯 한 아쉬움... 마지막으로 답 없는 물음...

지은이의 숲에 대한 예찬이나 우리 사는 곳에 숲이 사라진 대신 들어선 아스팔트로 인한 삭막함에 대한 기우는 나와 일치한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숲에 대한 예찬만 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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