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속 물리화학
에르베 디스 지음, 김영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내 삶속에서 학교가 자치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나는 분명 학교를 거부하는데, 12년 동안 다니면서 길들여진 내 삶은 나를 옥죄는 것이다. 내 의지로 배우지 않은 공부와 억압된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외워지는 공부가 마냥 즐거울리 없으며, 학창시절에 의한 이런 선입관과 금(線)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영어를 하는 외국인을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는 거나 원소니 탄소니 하는 기호가 나오면 영어로 읽지 밖에 못하는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수많은 별들이 내(川)를 이룬 미리내를 보며 얼마만큼 보인 것일까 궁금해 하며 자연스레 가르쳐 주는 선생(先生)님이 계셨더라면 아쉬움은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느끼는 아쉬움일 것이다. 어쩌면 공부에 대한 강박 관념으로 인한 몰아치기 교육일 수도 있고, 획일적인 교육에 의한 통제 수단으로 교육을 수단화 한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만은 조금 더 실생화과 접목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가며, 재미를 가미하길 바라며...

냄비 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책은 요리를 하면서 자연스레 물리 화학을 꺼내어, 과학을 쉽게 이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냄비속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궁금증도 대학 교수가 아닌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오빠와 동생이다. 그리고 언제나 아이들에 궁금증에 화(禍)를 내지 않으며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미셸 삼촌은 새로운 선생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또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울러 가장 작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과 일상에서 무엇이든 궁금해하는 자기의 변화된 모습에 스스로 놀랄 수도 있다.

일상속에서 물리를 배운다는 취지는 좋지만 조그마한 아쉬운 편집이다.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요리만은 아닌 듯하다. 책에 나오는 요리를 따라하기 위해서는 종종 문명의 이기를 담는 오븐 등이 필요하다. 지은이의 나라에서는 쉽게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내게는 너무 비싼 실험기구가 필요하다. 두번째 편집의 아쉬움, 간혹 무엇을 해 먹을까하면서 이야기가 나오지만, 계속되는 요리와 물리의 이야기의 순차적 구조는 재미보다는 교유용이라는 지루함이 엄습한다. 아울러 요리 내용을 담기에 앞서 앞부분에 요리 사진이나 방법을 곁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요리를 맛있게 해 먹는 방법은 실험이 끝나고 나서 나온다. 하지만 내용의 부담으로 큰 호기심이 일지 않으며, 동기유발도 시키지 못한다) 세번째로 누구에게 읽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있다. 문화차이(요리가 프랑스풍이다)와 경제적 여력이 없는 가정에 대해서는, 어린이가 읽기에는 조금 눈높이가 높은 듯 하며, 어른이 읽기에는 내용이 부실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장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나는 화상을 입고 말았단다. 냄비의 플라스틱 손잡이가 너무 열을 받아서 막 녹기 시작하는 중이였거든./당장 실험을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 배가 무척 고팠거든(21쪽)' 화상(火傷)을 아무렇지 않은 듯 표현하는 지은이가 놀라울 뿐이다.

어린아이들에 눈에 비친 누리의 호기심, 미셸삼촌의 자상한 배려, 현미경의 사진을 통한 실제 실물 배치 등은 좋은 편집이나 눈높이와 경제.문화적 차이를 교려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조카가 생긴다면 자상하게 가르칠 것이라고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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