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책을 읽으면 끝까지 읽으려고 애를 쓴다. 또한 인문사회 서적 등을 통해 나에게 길들여진 버릇은 정독(精讀)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어설픈 지능지수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듣는 말 등은 잊지 않을려고 몇 번이고 되새김질을 하곤 했다.

곽재구를 아는 사람은 아마도 그의 시를 기억할 것이다. 나 또한 그의 시에 매료되었으며, 언제가 드라마화했을 때에 본 기억이 아직도 가물거리니... 그에 대한 애정이 깊이가 적다고만은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던 참에 포구기행이라는 책을 만났다. 나에게 있어 '기행'은 목적의식에 지배당하고 있다. 즉 왼쪽에서 오른쪽을 움직일 때에, 그 필요성을 합리적으로 나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망부석이 되어 한치도 움직이 않는다. 이런면에서 문득, 바람결에 멀리 떠나는 사람을 보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이며,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며 한편으로는 부러움마져 느낀다. 하지만 지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던가. 나는 남들이 아무렇지나 않게 걸었던 길을 '왜' 걸었나, '무었을' 보았나라고 추적을 하는 것이다.

그는 위장된 언어를 사용한다. 이는 자기를 감추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어설프 보인다. 모델에서 잠을 자고 세계적인 관광지를 여행하면서 달동네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둔 체, 외형만 보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부가 고기를 낚아도 그는 여행자 마냥 '실없이 불빛이 따수운가요'라고 말하며,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올 듯한 길들이 구불구불 이어(22쪽)'진 곳에 노는 어린아이들을 감상어린 시선으로 본다.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이만 남겨 놓고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간 어느 앳된 부부의 초상이 떠오르며, 저 아이가 냉정한 현실에서 과연 도태되지 않을까라는 노파심이 인다. 물론 나의 관찰이 너무 현실을 개입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위에서 아래를 보며 '참 아름답다'라며 위장된 언어로 속삭이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한 할아버지가 손주를 천 기저귀를 키운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에는 아기의 똥을 치우는 것이 힘들고 더럽게만 느껴졌는데, 나중에는 일회용 기저귀를 키운 아이보다 천 기저귀를 키운 아이에게 정(情)이 더 간다고 했다.

아름다움을 논(論)할려고 한다면 모델에서 잠을 자며 '꿈도 없이 혼곤한'이라 하지 말며, 노부부가 사는 집에 찾아가 그들에게 말동무가 되어주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방값 요랑으로 장작이나 마당을 쓸어 주며, 아름다움에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무수히 쏟아올리는 폭죽을 바라보며 평등을 이야기 하지 말라. 김남주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평등 또한 바닷가에 앉아 서정적으로 부른다고 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적인 언어는 읽기에 무슨 암호처럼 느껴지며, 갑자기 바뀌는 장면은 당혹스럽다. '구만리까지 2킬로미터쯤을 걸었(24쪽)'던 적이 천년전인지 어제께인지 구분이 안간다.

그는 신선이 노니는 하늘 속 구름을 이야기 한다. 사람에 대한 정취는 없다. 그가 어울리는 사람은 함께 여행 온 사람이며,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단절이다. 작은 봇짐들을 하나씩 든 섬사람들의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35쪽)를, 고기 잡이 배를 수선하는 사람들에게 고기가 많이 잡히냐고 묻고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43쪽) 이유는 여행 속에서 자기를 찾을려거나 사람과 부대끼며 정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를 가지고, 펜을 들고서 시를 끌적이는 것이 그의 목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여담: 김남주 시인의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에서 옮겼습니다. 그리고 위의 글은 화진과 선유도, 동화와 지세포라는 3군데의 포구를 읽은 뒤,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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