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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
청전 지음 / 지영사 / 2006년 6월
평점 :
스님,
우리는 두 번이나 마주칠 수 있었지만, 인연의 끊이 닿지 않아 제가 그곳에 머물렀지만 마주치지 못했고, 아니 스쳐지나갔더라도 저는 '앎'이 없어 그냥 냉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맥그로드 간지'를 떠올리면, 티벳의 망명정부, 달라이 라마, 그를 따라온 티벳 사람들의 고난 등입니다. 난 북인도의 한 곳에서 티벳을 꿈꾸며 그리워하는 그들이 무척이나 궁금했고, 또한 나라 잃은 슬픔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달라이 다라를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다람살라의 선물]에서 실연에 빠진 지은이가 달라이 라마를 만나뵙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도 지은이 만큼 달라이 라마를 먼곳에서다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리하여 티벳, 네팔을 너머 북인도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온 여행자를 한 명 만났습니다. 그는 인도 델리로 떨어졌지만 코코넛 플리스보다 티벳탄 꼴로니를 더 그리워했으며 티벳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저 처럼 달라이 라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전 그의 책을 읽으면 누구나 그에게 빠져 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달라이 라마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분을 만나뵙고서는 결단을 내리시고, 스무해 동안 그의 곁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닷새 동안 그 거리를 머물고 떠났으니...
스님의 이야기를 듣으며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라마승 등이 선진 경제국에 유학가서는 그곳에서 삶을 뿌리내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티벳 라사를 들어가기 전에는 어떤 환상을 가진 듯 했습니다. 3,650m라는 높은 도시, 넓은 티벳 고원, 삭막한 산 속에 피어난 포탈라궁, 시린 겨울을 뚫고 피어나는 숭고한 아름다운 같은 티벳인들의 오체투지, 라마승의 세상과 등진 듯 한 깊은 토의에 빠지는 모습, 하늘이 부셔지는 나무초 호수, 세계의 기둥이 쏫은 강 린포체(수미산, 카일라쉬), 타시달레라고 부르며 내 아닌 다른 이에게 행운을 비는 순박한 사람들. 하지만 라사에 들어가니, 라사는 티벳의 라사가 아닌 한족의 라사로 보였습니다. 티벳인들은 가난과 극심한 힘겨움에 지쳐있었고, 아무나에게 달려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벌리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내가 그린 티벳과 달라 애써 지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열흘을 바코르 거리에서 그네들과 함께 코라 돌며 알았습니다. 겉모습은 땟국물이 흐르며, 옷은 누더기 같지만 마음은 아주 순박한 사람이란 걸.
첫날과 둘째날에 내가 본 것은 한족이 지은 건물이며, 열흘이 되었을 때 제가 본 것은 티벳의 마음이였습니다. 중국의 의해 침략당했지만 무력행사를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오체투지하는 이들, 그런 순박한 이들이....
선진자본주의 삶이 어떤 것이기에, 그네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걸까요? 이는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에서도 나온 이야기이지만 다시 듣으니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제가 자기들을 위해 물 한 그릇 떠 놓지 않은체, 그네들의 순수함만 강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티벳인들이 품고 있으며, 달라이 라마의 입에서 흘러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맥그로드 간지(-책에서는 '다람살라'라 표기)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제가 머무른 거리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박수폭포를 보고, 코라를 돌곤 했습니다. 아주 작은 동네이지요. 조금 아쉬운 것은 티벳 어린이 학교에 들지못했다는 것, 좀 더 티벳인과 친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페 리'의 분위기도 전 좋았습니다.
전 스리나가르에서 레(라다크의 수도)로 가지 않고, 마날리에서 올랐습니다. '레'는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으며 다시 환상을 가졌습니다. 지은이는 두번째 여행에서 자립자족이 무너지고 선진 경제국의 자본에 의해 자유로울 수 없는 그 땅을 이야기하는데... 전 그의 첫 여행 느낌을 품고 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날리(2,000m)에서 레(3,500m -5,000m 산을 두개 넘어)로 가는 길은 제가 다녀본 길 가운데 가장 '흥미만점'의 길이였습니다. 로컬버스의 48번 자리.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달리는 기사 아저씨. 포장되지 않은 길. 이런 길을 달려 그곳에 가면 어떤 분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는 '주술사'이며, '영매사', '의사'였습니다. [다람살라의 선물],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에서 두 지은이가 만나뵙고 온 이야기가 나옵ㄴ디ㅏ. 제가 여행을 가기 전에 스님의 책을 읽었다면 스님도 찾으려 했을 것입니다.
여행 일정이 너무 촉박하여 밤 늦게 들어가, 이틀을 머무르고 다음날 알치, 라마유르를 통해 빠져 나왔습니다. 처음 여행이고 워낙 오지인지라 무척 겁을 먹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쩜 더 순박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여행이 끝나고 간혹 들곤합니다. 스님의 책을 읽으며, 이번에는 나도 스님처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론리 플래닛 등을 보면, 판공초나 누브라 밸리가는 길 등의 비싼 돈이 드는 관광지는 나오지만 라닥인으로 들어가는 길은 못 본 듯 합니다. 그런 점에서 스님의 책은 또다른 여행의 의미를 알려주는 듯 합니다.
스님은 너무 초조해 하지 마라 하시며, 가장 낮은 시선으로 세상의 아픔을 보듬으려 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잘났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조용조용 걸으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강 린포체를 찾아가는 길은 제게는 다시 설레임입니다.
제가 여행을 꿈꾸고, 티벳인을 생각한 것은 전남 대원사의 티벳 박물관에서 본 '강 린포체'의 사진 한 장 때문입니다. 결국 시가체에서 히말라야 계곡 속으로 떨어져 네팔로 드는 바람에 강 린포체는 못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에 깨달았습니다. 그때 가지 않은 게 더 좋았다는 걸. 그때 여행했다면 전 4륜 구동의 랜드크루저 타고, 편안하게 갔다 산을 돌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산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여행. 시가체에서 강 린포체를 이어지는 800km는 그냥 건너가야 하는 '다리'에 불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전 스님처럼 티벳인들 속으로 들어가고, 내가 줄 수있는 그 무엇을 건내주고, 그네들의 손을 한 번 잡아보고 싶다는 욕심을 부립니다.
세상이 자꾸자꾸 삭막해지고, 어설픈 글로 스스로 존귀하다고 할 때, 스님께서는 고개를 숙이기만 하십니다. 큰 사람을 만난 듯 합니다. 다음 번에 다시 길 위에 선 다면 스님을 뵙고 싶습니다.
10월 24일 깊어가는 가을에.
열린사회의적 올림.
추신: 책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맥그로드 간지, 라다크, 티벳의 이야기가 펼쳐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