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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관련 책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때문에 인문학에 관한 인식까지 좋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직까지 인문학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이며, 일상의 생활을 전제해야만 하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 혹은 철학은 가난을 벗어나야만 공부할 마음이 동하는 그런 학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철학자는 이런 말에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처럼 철학자와 일반 대중 간의 괴리는 상당히 크다. 현실을 외면하는 철학이나 삶의 본질을 성찰하지 않는 현실은 이 괴리를 좁히기 힘들다. 하지만 철학자 중에는 일반 대중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고병권은 이런 시도를 하는 철학자 중 하나다. 그는 철학하기란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현실에 집중하는 철학자다. 또한 그는 11번째 책 <철학자와 하녀>라는 책을 통해 현실을 외면하는 철학이 아니라 현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자와 하녀의 이야기

 

저자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탈레스와 트리케의 하녀에 관한 우화를 인용하면서 철학자와 일반 대중의 관계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 따르면 탈레스는 어느 날,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하녀가 깔깔대며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우화는 일반 대중이 당장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철학자를 비웃는 지금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철학자는 이런 재치가 넘치는 이들을 무지한 대중이라 폄하했다. 소크라테스는 아마 이들은 철학자의 높이에 세워놓으면 높은 곳에 처음 매달린 탓에 어지럼증을 느낄 것이라며 하녀와 같은 이들을 비웃었다.

 

서로 조롱하고 적대하면서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불행하다면, 역설적이게도 각자의 구원은 서로에게서 오는 게 아닐까. 삶의 절실함과 대면하면서 철학자는 새로 철학을 배우고, 앎의 각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새로 살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7)

 

사실 이 둘의 말은 모두 옳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철학에 아무리 고매한 뜻이 있다 하더라도 일상의 삶과 무관하다면, 철학은 자족적인 유희로만 머물 수밖에 없고, 현실 감각을 통해 성공적 삶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삶의 성찰이 없는 현실 감각은 현실에 얽매인 노예의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옳으면서도 완벽한 것은 철학자와 하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철학은 지옥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철학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은 배부른 자들의 고상한 유희이자 현실 바깥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철학은 천국과 같은 유토피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중략) 깨달음은 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천국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20)

 

보통 사람들은 현실을 속된말로 지옥이라고 부르곤 한다. 철학은 지옥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띄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현실이라는 지옥에 천착해야만 가능 한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철학이 가지는 가치이자 본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일반 대중이 가졌던 철학에 관한 통념을 깸과 동시에 현실과 괴리된 철학을 하는 철학자들에게 일침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천착함으로써 꽃피는 것이 철학이라는 선언을 한 저자는 이어 현실에 관한 여러 통찰을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책 내용의 전반을 이루는 철학적 성찰을 저자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이 철학의 내용은 다양하다. 거대한 담론에 매몰돼 미처 보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것인지 니체를 끌어들여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해석노동에 관한 문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핵 발전에 관한 문제, 성소수자를 비롯한 여러 소수자들의 문제 등 여러 사회문제까지도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유감없이 발휘해 독자들에게 지적인 달콤함을 선사한다.

 

구경꾼에서 체험하는 자로

 

예수를 믿는 사람, 그 믿음을 과시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처럼 사는 사람은 드물다. (중략) 우리는 무소유 정신을 갈파한 어느 스님의 책을 백만 권 넘게 사지만 정작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좋은 말을, 박물관이나 명승지를 관람하듯, 그저 듣고 구경하면서 입장료로 책값을 내는 것이다.(248~249)

 

<철학자와 하녀>는 철학자인 저자가 하녀인 일반 대중에게 건네는 말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독자들에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던진다. “세상에 옳은 말은 많다. 하지만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최근 인문학에 관한 대중의 관심과 출판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 서적처럼 현재 우리 사회에 옳은 말은 흘러넘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을 읽고 소비할 뿐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 구경꾼으로 머물 뿐이다. 저자는 <철학자와 하녀>라는 책을 통해 철학자로서 하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제 독자들이 철학자의 말을 구경하는 구경꾼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것으로 체험함으로써 화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하녀가 나설 차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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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가운데 저는 주목 신간을 고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소위 '광탈'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월드컵은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책읽기라는 것은 변함 없죠!!


 

1.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

 













걷기. 단순히 두 다리로 걷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걷기에는 오묘한 힘이 있다. 고민이 있을 때 혹은 생각이 풀리지 않을 때 밖으로 나가 걷다보면 고민에 대한 답을 찾거나 생각이 풀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걷기의 철학>,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등 걷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책도 여럿 찾을 수 있다.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이라는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걷기가 가진 오묘한 힘을 믿는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걷기가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는 걷는다>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도보여행자로 손꼽히는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책이다. 그는 은퇴 후 콤포스텔라 길을 걸으며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난 그는 청소년 교화 단체 쇠이유(Seuil)’를 설립한다. 쇠이유는 세 달 동안 성인 동행자와 외국에서 2,000킬로미터를 함께 걷는 혁신적인 교육법을 가지고 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은 아이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어른들의 노력과 사회의 문턱을 넘으려는 아이들의 의지가 담긴 책이다. 아이와 동행자의 생생한 증언과 각계 전문가의 설득력 있는 분석이 담긴 이 책은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고민하는모든 이에게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걷기에 내재한 오묘한 힘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2. 피파 마피아














한국 국가대표 축구에 있어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역사상 가장 문제가 많은 월드컵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박혔다. 감독이 공언한 말을 번복하는 것부터 시작해 실력을 배재한 소위 엔트으리라 불리는 선수 구성, 역대 최악의 경기력으로 월드컵을 마치고도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축구협회까지. 인터넷 상에선 한국 축구계에 요즘 유행하는 말을 붙인 축피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모습은 대한민국 축구계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피파 마피아>란 책이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은 국제축구연맹 부패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 탐사보도의 결정판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흡사 마피아를 연상케 하는 조직범죄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축구의 핵심 영역을 장악했다. 회장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며 오가는 뇌물, 월드컵 개최권이 카타르와 러시아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막대한 금품 수수가 이뤄졌다는 엄중한 의혹, 방송 중계권을 둘러싼 만성적인 부패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국제스포츠계에서 자행되는 범죄의 실상을 그 누구보다도 환히 아는 토마스 키스트너는 벌써 20년째 피파의 음험한 구석을 취재해온 전문기자다. 모든 것을 지배하면서 어떤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단 한 명의 보스가 군림하는 패밀리! 돈과 더불어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는 철권통치 조직, 그 이름이 바로 피파다. 이익조직이 아닌 공익단체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조 원을 주무르는 제프 블라터 체제의 실상을 철저하게 파헤친 이 책은 축구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한 끈질긴 열정의 산물이며, 피파와 국제스포츠계뿐 아니라 각국 스포츠계의 실상이 어떤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탁월한 르포르타주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 축구계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3. 총을 든 아이들, 소년병

 













현대의 전쟁은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는 총력전이다. 이때 국가는 성인 남성의 숫자가 모자라다면 성인 여성, 그마저도 힘들다면 청소년까지 동원한다. 64년 전 우리나라에서 발발한 한국전쟁 역시 학도병처럼 청소년이 전쟁에 동원됐다. 전쟁은 이처럼 끔찍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쟁의 위협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지만 다른 나라 중에는 여전히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곳이 많다.

 

<총을 든 아이들>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곳, 그곳에서도 다른 이가 아닌 아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책이다. 폭력과 무력충돌이 전 세계 수많은 아동의 일상이 되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저자는 이 책에서 시에라리온 반군 혁명연합전선(RUF)의 전직 소년병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과 소집단 토론을 실시하여 소년병이 폭력과 무력충돌의 복잡한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된 과정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또한 이 책은 소년병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곳곳에 그대로 실려 있다. ‘소년병 만들기부터 소년병 되돌리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끌어온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은 절묘하게 아이들의 목소리와 얽히면서 소년병 문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어찌 됐든 책장을 덮고 나면 그들 목소리가 한참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4. 위험한 동거

 













재앙과 다름없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안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졌다. 때문에 이제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핵발전소, 소위 원자력발전소라고 불리는 것에 관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로서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고리 핵발전소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 일 수밖에 없다. 까딱하면 죽거나 피폭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위험한 동거>는 핵발전에 관한 책이다.

 

위험은 전기를 타고 흐른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위험한 동거>란 책은 핵발전으로 말미암은 위험경관을 찾아 고리, 월성, 울진, 영광의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통해 탈핵과 만난 밀양의 현장도 찾아 그 실상을 담았다. 또한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핵발전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과연 어떤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대한민국 핵발전의 현실을 알고 싶고,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함께 읽어봤으면 좋겠다.

 

 

5. 뇌의 배신

 













현대인은 끊임없이 뇌를 굴려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한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뭔가 불안한 느낌에 스마트폰을 들거나 컴퓨터를 찾는다. 이런 현대인의 삶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 나왔다. 바로 <뇌의 배신>이라는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뇌의 배신>은 무조건 열심히, 바쁘게 사는 것이 곧 성공의 길이라 생각하는 집단 최면에 걸린 현대인들에게 왜 휴식이 필요한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라 믿었던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더 많은 업무를 하도록 만드는 굴레가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이어갈 수 있게 된 우리의 삶은 아무 생각도 없이, 걱정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소중한 습관도 빼앗기게 되었다.

 

스웨덴의 신예 뇌과학자인 앤드류 스마트가 일중독자들로 가득 찬 세상을 비판하며, 일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행동이 왜 나태하고 게으른 자의 시간 낭비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추적한다. 또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뇌의 기저 상태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내세워, 이 상태가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일을 수행할 때에나 성과를 내고 싶다면 꼭 이런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내 뇌가 나를 어떻게 배신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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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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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통 사람들은 평소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어릴 때 학교에서 과학에 대한 교양을 배우기는 하지만 시험을 치기 위한 공부일 뿐 대부분 그것에 대해 흥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전문적인 영역으로 여겨져 사람들은 쉽게 말하기를 꺼려한다. 또한 과학자가 아님에도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과학은 대중과 괴리되어 있다.

 

그만큼 대중에게 과학은 어려운 것으로,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것으로 여겨진다. 수많은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기호와 숫자가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하면 일반 사람들은 진절머리를 칠 수밖에 없다. 대중에게 보다 쉽게 과학을 전하려는 일부 과학자들은 다양한 교양서적을 집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이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학 교양작가로 대중성을 확보한 사람이 있다. 바로 스티븐 제이 굴드(이하 굴드). 굴드는 <네추럴 히스토리>에 기고한 과학 칼럼들과 진화에 관한 베스트셀러의 출간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칼럼들은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는데 <다윈 이후>, <판다의 엄지>, <풀하우스> 등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굴드는 수많은 저작들을 남겼지만 아쉽게도 본 글에서 다룰 책은 과학에세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한 권이다. 이 책은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중 세 번째 책으로 굴드의 끝없는 지식욕의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굴드는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과학과 과학사의 경계를 넘어 철학, 신학, 종교, 야구, 미술, 소설, 광고, 영화, 학생들의 은어, 심지어 자신의 병까지 온갖 이야깃거리를 동원해 지적 곡예를 벌인다.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지적 묘기에도 불구하고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788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라 한 번에 독파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방대한 양뿐만 아니라 굴드가 축적한 여러 가지 지적 유산이 에세이 한 편마다 녹아있기 때문에 한 번에 독파하는 것보다 곱씹으며 음미하는 것이 더 좋은 책이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시간을 내 조용한 장소에서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는 대로 짬짬이 한 꼭지씩 읽는 재미가 읽는 책이다. 만약 이 책을 한 번에 읽어내려 했다가는 도리어 과학에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일상과 접목한 과학 에세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방대한 양으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책이지만 책 속의 내용은 다르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과학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만 천착하지 않는다. 과학 에세이라는 형식이지만 굴드는 과학보다 에세이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분명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일상에서 충분히 볼법한 제재와 표현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주는 편안함이 책에 담겨 있다.

 

또한 굴드는 독자가 자주 접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쓸 에세이의 제재를 찾아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굴드는 야구의 역사, 쿼티 자판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아무리 봐도 쓸모없는 남자의 젖꼭지와 여자의 음핵에 대한 이야기 등 보통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소한 제재를 통해서 진화를 비롯한 과학에 대해 설명한다.

 

즉 인간 형태의 의식(두 개의 눈과 두 개의 다리, 근육질의 넓적다리로 된 몸에 들어 있고, 기이하고 기능 장애적인 대물림으로 과도하게 무거워지고 선천적인 비논리적 경로라는 재앙을 물려받은 뇌에 의거하는)은 역사의 사소한 사실이며, 수백만의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들의 결과며, 결코 반복되도록 예정되지 않았다. (중략) 우리가 역사의 시시콜콜한 사소함에 빠져드는 까닭은 그 작은 것들이 우리 존재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본문 40-41)

 

과학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굴드의 에세이는 어쩌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역사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우리의 존재 역시 미천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의 시시콜콜한 사소함에 빠져드는 까닭은 그 작은 것들이 우리 존재의 원천이기 때문이라고 굴드의 말했듯이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사소한 것이라 여기는 일상들이 모여 이뤄진다. 이것이 굴드의 에세이가 거대 담론보다 사소한 일상의 것에 천착하는 이유이다.

 

지식인의 책무

 

과학자들은 다윈과 생물학적 진화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진화적 설명에 익숙한 사람이 너무 적다. (중략) 그렇지만 우리는 진실과 갈망, 사실과 안락함 사이의 상관관계가 필연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우선적이지도 않다(우연히 일치할 때만 부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인에게 부여된 가장 오래되고 힘겨운 책무는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이 단순한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본문 78-79)

 

특별한 일이 없을 때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새로 나온 책은 어떤 게 있나 둘러보곤 한다. 사회과학, 과학, 인문학, 역사 등에 관심이 많아 관련 카테고리를 주로 찾아본다. 특이한 것은 사회과학, 인문학 역사 등의 카테고리에는 200여 권의 신간이 있는데 반해 과학 관련 카테고리에는 신간이 100권도 안 된다는 점이다.

 

아마 과학 관련 서적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 책은 출판사에서도 출간하기 꺼려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 역시 과학자 간에만 통용되는 전문용어를 굳이 일상어로 번역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과학 관련 대중서적을 집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굴드가 언급한 것처럼 지식인에게 부여된 가장 오래되고 힘겨운 책무는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이 단순한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가 지난할지라도 우리나라 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들이 굴드의 말을 금언(金言)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와 같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책을 출판시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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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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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하 다산)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존재한 위대한 학자를 열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전 생애를 통틀어 모두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일표이서라고 불리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이 있다. 다산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다산의 생애를 들춰보는 것은 조선 후기의 상황, 조선 후기에 태동했던 실학사상 등 조선 후기의 전반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작업이다. 한 인물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약간은 전문적으로 훑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인물의 평전을 읽는 것이다. 최근 민음사에서 <다산 정약용 평전>이 나왔다. 이는 다산에 관한 권위자인 박석무 선생이 집필한 것이라 다른 책보다 풍성할 것 같은 느낌이다.

 

채 피지 못한 꽃

 

박석무 선생의 <다산 정약용 평전>은 다산에 대한 예찬, 그리고 다산의 재능이 만개하지 못하고 도중에 꺾여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정서가 책 전반에 깔려있다. 박석무 선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면 가진 재능을 세상에 다 펼쳐 보이지도 못한 채 귀양살이로 인생을 보냈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조가 칭찬했던 대로 100년 만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재상의 재목은 채제공을 이어 정약용이 거듭 나왔으나, 그 재목을 알아주는 군주는 정조 이후에 다시 나오지 않았다. (본문 289)

 

책에서는 다산이 제대로 능력을 펼치지 못한 이유로 인재를 제대로 등용할 수 있는 용인술을 가진 군주의 부재, 서학과 관련된 책을 학문으로만 접했음에도 그것을 꼬투리 삼아 다산을 음해하는 정적들을 꼽는다. 다산의 웅비를 막는 음해 세력만 없었다면, 자신을 알아봐주는 정조와 함께 제대로 된 정치를 했을 것이라고 계속해서 언급한다. 책을 읽을 때마다 문체에서 안타까움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과거나 현재나 세상사는 모습은 똑같은 것 같다. 최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문창극 씨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인재가 있을진대 권력자가 제대로 된 용인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또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재가 등용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해칠까 두려운 기득권 세력들이 음해하려 드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산에 대한 박석무 선생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조와의 관계

 

다산이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그가 군주로 섬겼던 정조다. 다산은 남인 출신이다. 당시 조선은 서인 중에서도 노론이 장악하고 있었다. 노론은 한 왕조의 대통을 이을 세자도 죽일 수 있을 만큼 노론 세력이 강했는데(사도세자가 죽은 일을 뜻함), 이런 상황에서 남인 출신이 입신양명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산이 활발히 활동을 할 시기는 달랐다. 당시 조선의 군주는 정조였다. 정조는 선대에 시행됐던 탕평책을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다양한 출신의 인재를 등용했다. 다산은 그 정책의 시혜를 받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었다. 정조와 같은 군주가 없었다면 다산은 귀양시절 때처럼 초야에 묻혀 글만 쓰고 있을지 모른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다산이었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흠결이 있었다. 바로 천주교와 관련된 자라는 낙인이다. 박석무 선생은 평전에서 다산 정약용은 서학과 관련된 서적을 학문적으로만 접했을 뿐 실제로 천주교를 믿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산의 정적들은 그 점을 이용해 끊임없이 다산을 괴롭힌다. 정조는 다산을 총애해 정적들의 공격을 막아줬지만 그것도 정조가 살아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조가 죽기 9년 전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터진다. 천주교 신자가 부모의 신주를 태우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 이후 조선 내에서 천주교는 극심한 탄압(신해박해)을 받는다. 정조가 있었기 때문에 다산은 무사했다. 하지만 정조가 죽고 1년 뒤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신유박해)을 가한다. 이 일을 계기로 다산을 비롯한 서학과 관련이 있는 자들은 죽거나 귀양을 가게 된다.

 

다산이라는 인물이 아무리 걸출하더라도 그를 기용할 줄 알았던 정조라는 군주가 없었다면 그저 필부로 살았을지 모른다. 다산과 정조와의 관계는 저 옛날 촉한의 유비와 제갈공명처럼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관계였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다산은 정조가 없었다면 싹을 틔어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작금에 가장 필요한 다산의 목민에 관한 생각

 

관장이 밝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까닭은 백성들이 자기 몸을 위해서만 교활해져 다른 백성들이 당하는 폐막을 보고도 관장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같은 사람은 관에서 마땅히 천 냥의 돈을 주고라도 사야 할 사람이다. (본문 232)

 

<다산 정약용 평전>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이 있다. 한 고을에서 한 인물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관아에서 행한 부당한 일에 대해 고발하는 일이 있었는데, 우연찮게 그 고을에 다산이 수령으로 부임했다. 행차하던 중에 사건을 일으킨 인물이 다산에게 다가와 그 일을 고하고 자수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다산은 너 같은 사람은 관에서 마땅히 천 냥의 돈을 주고라도 사야 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처벌을 주장하던 주변 사람들은 아마 이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을지도 모른다. 이 일화를 읽고 다산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21세기에 이른 현재 대한민국은 내부고발자나 부당한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고깝게 여기는데, 19세기의 인물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 목민관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마음에 두고두고 새겨야 할 고사(古事).

이런 일화들 외에도 다산이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푼 일은 허다하다. 더불어 귀양살이를 할 때도 목민에 대한 다산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다산이 목민에 관해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결과물이 바로 <목민심서>. 목민관이 가져야할 마음에 관한 책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박석무 선생은 다산이 마음으로나마 목민의 도를 수행하고 싶었음을 보여준다고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중요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책

 

<다산 정약용 평전>은 다산의 인생 전반을 다루면서 그 속에 있는 학문적, 정치적 업적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다산의 글을 적재적소에, 그리고 꽤 많은 양을 인용하고 있어서 다산의 다양한 글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더불어 책 말미에 현재 다산의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 설명하고 있어 다산을 연구하는 학자가 참고할 만한 책이기도 하다.

 

유익한 책이었음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박석무 선생의 다산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다산 정약용 평전> 전체의 문체가 다산을 예찬하려고 하는 느낌이 강하다. 책의 제목에 평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감에도 다산에 너무 몰입한 탓인지 전적으로 다산의 입장에서 다산의 전기를 서술한 느낌이었다. 다산이 조선에서 비상하지 못한 점은 나 안타까우나, 천주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다산의 역량 역시 비판적으로 다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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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6월은 참 아쉬운 달입니다. 6.4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논문 지옥에 빠져야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5월 주목신간은 이어집니다. 




1. 초신성의 후예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은 많은 수가 출판되고 있고, 그래서 접하기도 쉽다. 그에 비해 과학과 관련된 대중서적은 접하기가 쉽지 않다. 알라딘에서 과학 분야를 살펴보다 <초신성의 후예>란 책을 발견했다. <초신성의 후예>는 한국을 대표하는 천문학자 이석영 교수의 인생과 우주 이야기다. 이석영 교수는 2006네이처에 실린 타원 은하 별 생성 과정을 밝힌 연구로 전 세계 천문학계를 놀라게 한 젊은 천문학자다. <초신성의 후예>는 이석영 교수의 고백록이다. 이 책에는 우주 탄생의 신비와 밤하늘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과 유학 과정, 미국 항공 우주국(NASA)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의 경험담을 비롯해 일상 속 깨달음과 기쁨이 모두 담겨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가 선정한 지식창조대상을 수상한 이석영 교수는 연세 대학교 천문우주학과 교수로 있으며 은하 형성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와 연세 대학교에서 강의한 우주론을 엮은 저자의 전작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2009)는 지난해 KBS 인문 강단 락()에서 이루어진 4회에 걸친 저자 강연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나는 전체주의 혹은 파시즘에 관심이 많다. 학부시절 히틀러와 파시즘에 관한 권위자인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시즘이나 히틀러에 대한 책이 나오면 관심 깊게 보는 편이다. 이번에 히틀러에 대한 두 권의 책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2. 히틀러의 철학자들



 












  히틀러 개인이나 파시즘에 관한 책은 많이 봤는데, 히틀러의 철학자들에 대해 주목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히틀러의 철학자들>철학자들은 히틀러와 나치스에 어떻게 동조하고 어떻게 그들에게 이용당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의식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하고 유대인을 절멸할 수 있는 명분을 세우기 위해, 나아가 아리안종의 세계 지배라는 야망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칸트와 쇼펜하우어에서 시작해 피히테, 헤겔, 포이어바흐를 거쳐 니체로 이어지는 독일 근대철학 전통을 샅샅이 뒤지다시피 했다고 설명한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히틀러의 철학자들>은 나치스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극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철학이 어떻게 정치의 추악한 도구로 변질되어갔는지, 또한 알프레트 보임러와 에른스트 크리크 같은 노골적인 나치의 부역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 같은 명망 높은 철학자들이 어떻게 나치스의 나팔수로 전락해갔는지 소설보다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3.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이언 커쇼가 지었고, 2000페이지가 넘는 히틀러 전기를 가지고 있지만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란 제목을 보니 저절로 관심이 갔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제바스티안 하프너'라고 하는데, 제바스티안 하프너 사후 15년 만에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책은 그의 굵직굵직한 저작 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대표작이라고 한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작은 판형, 부담 없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생애, 히틀러 현상의 배경, 히틀러 현상이 당대와 후대에 미친 영향 등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분석한다. 그야말로 작으면서도 큰 책이다. 골로 만, 요아힘 페스트 등이 격찬하고,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히틀러 관련 서적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작은 방증일 뿐이다.

  또한 이 책은 문제적 인간 히틀러에 대한 책인 동시에 놀랍도록 명쾌한 현대사 개론서다. 빼어난 문장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20세기가 어떻게 무너지고 재편되었는지, 지금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적, 지역적인 거리감으로 인해 우리에게 낯설거나 어려울 수 있는 문제들은 분야 전문가로 정평이 난 번역자 안인희가 맞춤하게 보충하고 풀이해 준다.

 


4. 서울과 도쿄사이




 










  고대에서 근대까지 우리나라와 일본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지냈다. 특히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해방 이후에도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제가 남긴 잔재를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다. <서울과 도쿄사이>는 비슷한 듯 다른 한국과 일본의 미묘한 문화 차이, 한번쯤 곱씹어봐야 할 빨리빨리 문화 속에 숨겨진 한국문화의 유래와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로서 한국과 자주 비교의 대상이 되는 일본문화의 속살을 역사와 사회, 문화 등을 통해 비교해보는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과거 <드래곤볼><슬램덩크>,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에 빠져 일본에 대한 환상을 키웠던 현직 디자이너가 일본에 살면서 느꼈던 한국과 일본의 역사, 전쟁, 문화, 음식, 지진, (), 도시, 사람, 디자인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주제로 양국의 문화를 비교하며 흥미 있게 풀어내고 있다.

 


5.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 읽기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날로그적으로 뛰어놀며 살았고, 중 학교 이후부터 나타난 디지털에 적응하며 디지털 시대를 살아왔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청소년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 읽기>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청소년들의 온라인 생활이 특히 그들의 발달과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하는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청소년들은 어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사용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까? 청소년기에 맞이하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테크놀로지가 도움이 될까,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까? 디지털 세계에서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행동이 나타날까, 예전부터 이어오던 행동이 디지털 세계로 옮겨갈까? 인터랙티브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면서 청소년들이 감당할 기회와 도전, 위험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동과 청소년들이 어떻게 테크놀로지를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일단 이 책의 기본 관점을 제시한다. 즉 온라인 환경은 문화 공간이고, 그 안에서 스스로 규범을 창조하고 공유하며 다른 청소년들에게 전달한다. 디지털 문화는 역동적이고, 사용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고 전파한다. 기성세대가 우려하는 것처럼, 청소년들은 수동적이고 의식 없이 온라인 맥락에서 영향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청소년들은 다른 청소년들과 연결하고 현실 세계와 온라인 세계를 결합하여 자신이 당면한 발달 과업을 해결하고 미래의 삶의 맥락을 창조하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우리 어른들은 그들이 스스로 창조에 기여했던 온라인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영향을 받는 문화 진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청소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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