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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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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국민 TV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무한도전이 최근 <선택 2014>란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주춤거렸던 시청률을 다시 회복하고 있다. <선택 2014>는 무한도전의 멤버 중에서 무한도전의 향후 10년을 이끌 차세대 리더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머지않아 있을 6.4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홍보할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기도 하다.

 

<선택 2014>는 무한도전의 멤버 모두가 후보로 출마했는데, 최근 있었던 중간 여론조사에서 노홍철 후보가 44%의 득표를 얻어 멤버 중 최다득표를 기록했다. 노홍철 후보가 내 건 공약은 성역 없는 투명한 방송으로 요약될 수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사생활이나 가족을 가감 없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것이라는 노홍철 후보의 유세와 공약을 보면서 최근 출간된 한병철 교수의 <투명사회>가 떠올랐다.

 

투명사회와 포르노사회

 

투명성은 아름다움의 매체가 아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미는 가리는 것과 가려지는 것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은 베일도 아니고, 가려진 대상 자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베일 속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대상은 베일이 걷히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중략) 오직 아름다움만이 가림과 가려짐 속에서 본질적이고, 아름다움 외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의 신적인 존재 근거는 비밀에 있다.” 미는 필연적으로 베일과 가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노출시킬 수 없는 것이다. 가려진 것은 오직 가려져 있을 때만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한다. 폭로는 가려진 것을 없애버린다.(49)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를 여러 이름으로 치환해서 부른다. 책에서는 전시사회, 명백사회, 가속사회 등 여러 이름이 나열되는데, 그 중에서도 포르노사회라는 이름이 그 자극성 때문인지 가장 눈에 띈다. 무한도전 <선택2014>의 노홍철 후보를 보면서 <투명사회>가 떠올랐던 이유도 아마 이 포르노사회라는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포르노사회에 대해 서술하면서 포르노와 에로티즘을 구분한다. 포르노는 아무것도 중단되지 않고 충돌하지 않는 매끄러운 상태이자 의미가 명백한 상태이며, 에로티즘은 의미의 불명확성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선택 2014>에서 노홍철 후보가 공약한 투명한 방송은 포르노적이다.

 

평소 언론이나 방송에 공개되지 않은 무한도전 멤버의 가족들은 현재 베일에 싸인 상태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혹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상으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노홍철 후보가 당선돼 무한도전 멤버의 가족들을 전시한다면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일시적인 만족감은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베일이 걷어진 무한도전 멤버들의 가족은 그 순간 가치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소위 투명한 방송이 내포하고 있는 이러한 한계에도 노홍철 후보는 시청자들에게 44%라는 의미 있는 득표를 얻었다. 시청자들이 투명한 방송이라는 공약에 호응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포르노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룸메이트> 등 여러 예능 방송에서 연예인들을 전시하고 있는 것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정치와 투명성

 

앞서 무한도전 <선택 2014>6.4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홍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재미와 흥미의 요소를 가미해 재현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서 느낀 것은 웃음이 아니라 안타까움과 슬픔이었다.

 

쇼핑은 토론을 전제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것을 사면 된다. 그는 개인적 취향을 따른다. 좋아요는 소비자의 구호다. 그는 시민이 아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시민을 시민으로 만든다면, 소비자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투표소와 시장, 폴리스와 경제가 하나가 되어버린 디지털 광장에서 유권자는 소비자처럼 행동한다.(208)

 

한병철 교수는 책에서 투명성이 정치에 침투했을 때 정치는 쇼(show)가 된다고 설명한다. 정치인은 이제 대변자가 아니라 납품업자가 되고 유권자는 소비자로 변한다. 어떤 가치관이나 신념으로 어떤 정치인을 자신의 대변자로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기호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바뀐 것이다.

 

이는 무한도전 <선택 2014>와 매우 닮았다. 무한도전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투표는 무한도전 멤버 간의 인기투표와 다름없다. 작금의 대한민국 선거 역시 각 정당의 인기투표 혹은 여러 연(학연·지연·혈연 등)에 의해 좌우되는 투표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이나 인물이 걸어왔던 정치적 인생이나 공약 등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정당이 좋아서 혹은 어떤 정당이 싫어서 해당 정당에 투표하거나 대척점에 있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정치인들은 혹여 자신들의 인기에 상처가 날까 두려워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납작 엎드려 이 사건이 빨리 잊히길 기도했을 것이다. 대통령 역시 장악한 언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가 잘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꾸몄고, 모든 책임을 해당 선사와 선장에 뒤집어씌웠다. 안산합동분향소에서 대통령이 유가족을 위로하는 연출을 벌인 것이 국민들에 대한 쇼의 정점이었다.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선결과제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다.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것, 진실성이나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98)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자신들의 대표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선 것은 결국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신뢰를 요구하는 것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 마다 정치권은 감추기 급급했고, 이는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케 하는 큰 요인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을 받는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선택 2014>란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자신들이 잃게 했던 시청자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한다. 시청률의 하락, 물의를 일으킨 멤버의 하차 등의 문제를 되짚어보고, 철저한 반성을 통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되찾자는 의미일 것이다. 유재석이 진짜 위기는 그것이 위기인지 모르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느낄 수 있다.

 

일개 예능 프로그램에 이러할진대 한 국가는 이보다 더 철저한 반성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수십 년간 쌓여온 적폐를 없애고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기를 인정하고 철저한 반성과 대안의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투명사회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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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1. 자본의 핏빛 그림자, 테러

 



  필자가 중학교 1학년 시절 TV로 본 911테러는 큰 충격이었다. ‘테러라고 하면 흔히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벌이는 폭력적인 행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자본의 핏빛 그림자, 테러>에서는 테러에 관한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이는 저자가 정치적 또는 종교적 틀을 벗어나 경제적 틀로 테러를 분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테러의 신경제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테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테러의 주도권이 어떻게 해서 제3세계에 주어졌는지, 테러를 둘러싼 엄청난 자금의 흐름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등을 설명하면서 테러의 신경제를 파헤친다.

 

 

2. 사랑은 왜 불안한가

 



  2012년 가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란 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남세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고 관능적인 묘사로 점철된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사랑은 왜 아픈가>로 유명세를 얻은 여성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호기심을 가졌다. 그 호기심의 결과물이 바로 <사랑은 왜 불안한가>이다. <사랑은 왜 불안한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로 하드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시즘의 사회학이다.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불안한가>를 통해 사랑하는 남녀의 침실을 본격적으로 해부한다. 일명 ‘BDSM’으로 불리는 현대의 은밀하고 괴이한기형적 사랑관계는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발달의 다층적 산물이라는 예리하고도 깊은 통찰이 돋보인다. 나아가 에바 일루즈는 지극히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섹스조차 실은 다분히 사회적인 행위라고 역설한다.

 


3. 그의 기쁨과 슬픔

 



  수년 전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쌍용자동차 사태의 전말을 제대로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 사태를 몸으로 겪은 이들의 이름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그의 기쁨과 슬픔>은 정혜윤이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한 르포르타주 에세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저자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해고자, 노동조합, 빨간 조끼, 머리띠, 투쟁 구호 등의 상징으로만 인식되던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과정에서 벗겨졌다는 것이다.

  ‘산 자’(해고되지 않은 자)죽은 자’, 희망퇴직자, (‘산 자였으나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된 자,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그날 이후그리고 그날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책은,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사건 앞에 놓인 평범한 인간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되는지,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는 방식은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나치에게 억압받았던 홀로코스트에게 쓰인 산 자, 죽은 자란 표현이 쌍용자동차 사태에도 쓰였다는 것을 읽고 왠지 모를 스산함을 느꼈다.

 


4.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개인적으로 걷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집 주변을 걸으며 산책을 하다보면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풀리기도 한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은 이런 걷기의 오묘함을 담은 책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프랑스 파리12대학 철학 교수이자 미셸 푸코 연구자로 잘 알려진 프레데리크 그로란 학자가 썼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걷기를 철학적 행위이자 정신적 경험이라고 보고, 걷기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걸으려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고찰해나간다. 크리스토프 라무르의 <걷기의 철학>이라는 책이 2007년에 나온 적이 있는데, 그 책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도 하다.

 


5. 마음의 그림자



 

  일반적으로 마음이나 의식은 인문학이나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제다. 하지만 <마음의 그림자>는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마음에 대해 풀어나가는 책이다. 저자는 물리학, 수학은 물론이고 괴델의 논리학과 튜링의 컴퓨팅 기술, 생물학, 그리고 서양 철학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까지 전방위 학문들을 어렵지 않게 거론하고 서술하면서 두뇌와 의식에 대한 탐구를 이끌어나간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1부에서는 괴델과 튜링의 명제를 비교·조합하면서 "멈추지 않는 튜링 기계"의 알고리듬을 설명하여 컴퓨팅과 두뇌(의식)의 작동 상의 차이점을 서술한다. 2부에서는 고전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마음과 의식을 기준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고전물리학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비국소성, 반사실성, 양자얽힘이라는 양자역학에서 발생하는 심오한 현상들을 살펴본다. 인문학이나 심리학이 아닌 과학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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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도시 -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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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서평] 빨간 도시


 

나는 유럽의 건축물을 매우 좋아한다. 역사의 흔적을 고스라니 담고 있는 유럽 건축물의 기품과 고상함을 좋아한다. 수천 수백 년의 역사를 머금고 있는 건축물을 사진으로만 감상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반면 대한민국의 건축물에는 전혀 감흥이 없다. 기품이나 고상함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에 내가 감탄했던 기품이나 고상함을 가진 건축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축물은 나의 일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유적·사적지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나의 생각들이 대한민국 건축물에 대한 혐오까지 이어질 즈음, <빨간 도시>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내가 대한민국 건축물에서 느꼈던 바를 명확하게 글로 표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건축물에 담긴 역사, 그곳에 담긴 의미, 대한민국이 홀대하는 건축물에 대한 역사성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었다. 왜 대한민국의 건축물이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건축물에 담긴 의미

"연병장, 사열대, 막사. 병영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둘러쳐진 담장은 자발적이지 않은 체류자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군대를 유지하는 도구는 규율, 복종, 감시, 처벌이다. 간판만 바꿔 달면 병영은 학교가 된다. 운동장, 구령대, 교사.(33쪽)"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일 때까지. 총 12년을 학생으로 있었지만 내가 학생으로 속해 있을 때는 학교가 병영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에 관한 여러 이론을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학교가 대부분 군대문화에 젖어 있고, 학교라는 건축물 역시 병영을 모방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건축물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져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이승복의 동상은 당시 군사정권이 국민들에게 반공주의를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려 했던 의도가 담겨져 있고, 양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검찰청과 법원은 그 두 기관 사이의 힘 싸움을 암시한다. 건축물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렇게 다양한 의미들이 숨겨져 있다. 

건축의 역사성

앞서 내가 유럽의 건축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 건축물에 고스라니 담긴 역사적 흔적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축물에는 그 건축물이 지어진 당대부터 시작해 여러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것은 그 건축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숭고함을 준다. 이처럼 오랫동안 남아있는 건축물은 하나의 역사서나 다름없다.

최근 내가 생활하고 있는 부산에서 개인적으로 경악할 만한 소식을 들었다. 부산 서면에 있는 부전도서관을 허물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개발한다는 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옛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무조건 새 건물을 짓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드나들었던 흔적이 그대로 소멸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니 이 앎이 분노로 변했다.

부전도서관은 부산 최초의 공공도서관으로 상당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낡은 것은 무조건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는 논리는 이 역사성을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부전도서관 재개발 안이 통과된 일은 건축물에 담긴 역사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 상황은 역사가 재미없고 지루하다며 천대받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국가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건축물

"부서진 정동진이 서러운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서진 한계령 휴게소가 서러운 이유는 건물에 배어든 건축가의 꼼꼼함도 일거에 묻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폭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을의 여행에서도 먹고 마시고 사진 찍고 돌아가면 그만인 서글픈 우리의 여행 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73쪽)"

"음악은 시작되었어도 더 좋은 자리를 찾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 아무리 연주회 전에 당부를 해도 기어이 전화 벨소리를 울리고 카메라를 꺼내드는 모습, 연주자의 팬 사인회가 있다고 하면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로비에 줄 서러 나가는 모습, 그런 것들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문화는 꼭 그 정도의 건물을 요구하고 얻어낼 따름이다. 그래서 건축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88~89쪽)"

책에서 주요하게 언급하는 것 중 하나는 건축물에 담긴 국가의 문화적 수준이다. 저자는 산발적인 건축물들이 표현하는 부서진 정동진, 건축가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지어진 한계령 휴게소의 모습, 문화를 제대로 누리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등은 한 국가의 문화 수준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서울의 새빛둥둥섬, 서울시청 신청사 등 최근에 지어진 많은 건축물이 문화적인 고려 없이  지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건축도 하나의 문화예술이다. 그것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하고, 오랫동안 남아 있다면 역사성이 담긴 건축물로써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처럼 문화적인 고려 없이 새로운 건축물을 난발한다면 아무런 특색 없는 국가, 아무런 역사성을 가지지 못한 국가가 될 지도 모른다. 건축은 그만큼 중요하다.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하는 도시

"도시는 살아 있어야 하고 새로운 제안을 통해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한다. (중략) 그러나 도시는 선택받은 강자에게 맡겨진 스케치북이 아니다. 전당포 노파에게 도끼날을 들이댈 자격을 지닌 시장과 건축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들춰보면 과거의 증언이 들려야 한다.(123쪽)"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바로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는 문장이다. 내가 봐왔던 대한민국의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하기 보다는 부수고 새로 짓는, 소위 말하는 재개발의 논리로 발전해나갔다. 그래서 도시의 역사성은 단절되고 끊임없는 새로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도시의 성취는 몇십 년의 세월로 판단하기 어렵다. 평가는 수백 년 넘는 시간을 요구할 것이다. 그 시간은 로테르담에도, 그리고 우리 도시에도 공평하게 적용될 것(203쪽)"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도시의 진정한 성취는 부수고 새로 짓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덧칠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해오는 데서 나올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대한민국의 한 건축가가 얼마나 건축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건축가가 대한민국에 존재하기에 대한민국 건축의 미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가 인용한 "모든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파리에 남겨놓을 책임을 갖고 있다(295쪽)"는 말처럼 저자 스스로도 당대의 모습을 대한민국에 반드시 남겨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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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말그림입니다.

절히 원했던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드디어 시작합니다!!

3월에 출간된 도서 중 주목할만 한 도서 5권입니다.




1. 자크 랑시에르,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는 짧은 여행>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는 짧은 여행>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로 우리나라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책이다. “짧은 여행은 아마 문학으로 떠나는 여행인 듯하다. 목차에 나와 있는 워즈워스, 뷔히너, 릴케 등의 이름에서 문학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 소개에 의하면 이 짧은 여행은 우리에게 이미지와 지식, 유토피아와 실재, 문학과 정치 사이에서 다양한 관객들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는 책이다. 이 짧은 여행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던져줄지 기대된다.



2. 서윤영, <꿈의 집, 현실의 집>












<꿈의 집, 현실의 집>은 서윤영 건축가의 책으로 한국 근대 건축의 사회사를 다루고 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 소개에 따르면 <꿈의 집, 현실의 집>은 근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인이 살아왔던 집의 역사를 희망주택과 저렴주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특히 집의 역사를 단지 건축학적 관점이 아닌 인간의 욕망이라는 관점으로 분석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한다. 집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집을 가지는 것을 일평생 소원으로 가지는 이들이 있을 만큼 집에 대한 욕망은 대단하다. 집의 역사를 인간의 욕망이라는 관점으로 분석했다는 <꿈의 집, 현실의 집>의 내용은 과연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3. 박윤석, <경성 모던 타임스>













<경성 모던 타임스>는 동아일보의 박윤석 기자가 20119월부터 20129월까지 약 1년간 신동아에 연재한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를 묶은 책이다. 이 책은 '한림'이라는 가상 인물을 관찰자이자 서술자로 앞세워, 근대의 중심기라 할 수 있을 1920년대 조선의 역사적 사건을 비롯해 당시의 사회문화상을 폭넓게 아우르는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1920년대는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후 10년이 지난 시기로, 일제가 무단통지를 접고 문화통치를 한 시대다. 그래서 모던 걸, 모던 보이라는 당대의 문화를 향유하는 새로운 인물상도 등장하는 시기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화된 조선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문화를 향유하는 1920년대 조선인들의 모습을 <경성 모던 타임즈>가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지 호기심이 인다.



4. 지그문트 바우만, <빌려온 시간을 살아기기>













<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는 우리 시대 대표적 지성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2008년의 미국발 금융 위기를 계기로 지금까지 일부 제시되어온 자본주의에 대한 관점과 개념을 포괄적으로 재점검한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분석 작업을 통해 우리를 현대 자본주의에 대해 놀라운 통찰로 이끈다. 자본주의가 19세기는 생산자 사회였지만 21세기는 소비자 사회로 변했다는 것이다. , 자본은 이제 노동이 아니라 신용을 착취하고, 우리는 결국 주체적으로 노동하는 건강한 삶대신 빌려온 잉여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나온 짧은 글에서 비친 바우만의 통찰은 이 책을 당장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바우만의 통찰이 어떨지 기대된다.



5. 전창훈, <한국 사회는 에너지 문제를 넘을 수 있나>













<한국 사회는 에너지 문제를 넘을 수 있나>는 과학기술자이자 에너지 박사인 전창훈의 저서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의하면 저자는 '에너지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한국 사회는 에너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과 함께 한국 사회 에너지 문제 해결의 혜안을 이 책에 제시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위험을 인지하고 원전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도리어 원전을 늘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원전은 수많은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우범지대이기도 하다. 이런 사태는 이는 에너지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싸고 유용하다는 이유로 원전을 마구잡이로 지은 탓에 일어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에너지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는 매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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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내공 - 내일을 당당하게
이시형.이희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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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서평] 인생 내공



우리나라 나이로 61살이 되면 환갑이라 칭하며 잔치를 벌인다옛날에는 61살까지 산다는 것이 상당한 일이었기 때문에 잔치를 벌일 만큼 큰 경사였다하지만 현 시대는 ‘100세 인생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오래 살기 때문에 환갑잔치는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전통이라는 부분 때문에 환갑잔치를 하기는 하지만.

장수라는 측면에서의 환갑은 의술의 발달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지만인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환갑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환갑잔치를 할쯤이면 보통 은퇴를 할 나이이기 때문에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의술이 발달되기 이전이라면 10년 정도의 여생을 보내고 떠나면 될 일이지만이제는 은퇴를 하고도 40년의 인생이 남는다.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은퇴까지 40년의 인생을 산다많은 사람들이 이 40년의 인생에 모든 열정을 쏟는다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이제 은퇴 이후에도 40년의 인생이 있다지금까지 누구도 은퇴 이후의 인생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현재 은퇴 이후 노인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인걸 보면 알 수 있다.

 

20세부터 60세까지의 인생에 모든 열정을 쏟고은퇴 이후 여생을 보낸다고 생각하기에는 여생이 너무 많이 남는다이제는 그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시기다이런 고민에 도움을 줄 책이 있다인생내공이라는 책이다인생내공은 후반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내공을 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산할 때가 더 위험하다

 

사실은 하산할 때가 더 위험하다산행에서 사람들이 다칠 때도 대부분 내려올 때다이 세대 사람들은 하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이들이 경험한 사회는 줄곧 오르막만 있었지내리막은 없었다.”(p.73)

 

책에서는 60세까지의 인생과 여생으로 나누는 지금의 인생관과는 달리 인생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20세에서 60세까지인 전반부 인생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전반부 인생에 모든 것을 소진한 사람들은 이후의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고 현재의 모습처럼 보낸다.

 

이 세대 사람들은 하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후반부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이제야 중요성을 깨닫고 알아가려고 하는 중이다하산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남은 40년의 인생은 끔찍할지도 모른다고령화 사회가 사회문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후반부 인생은 또 하나의 기회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누가 내 잃어버린 20대를 돌려줄 수 있겠는가그러나 뒤늦은 30대에 내게도 청춘이 왔다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인생을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p.102)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대신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전반부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후반부 인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의술의 발달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이제 전반부 인생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반부 인생을 염두에 두고 삶을 살면 인생이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이다물론 정부나 사회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지도 모른다현재 후반부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청년들의 일자리도 없는 마당에 노인들의 일자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스스로의 노력 이전에 고령화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정부와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 가는 노력그게 나이 든 사람의 자신에 대한 예의요 책무다여기에만은 게으르면 안 된다당당하게적극적으로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p.154) 정부와 사회의 도움이 있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노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당당함이 필요하다.

 





읽고 쓰는 후반부 인생

 

저자는 요즘 힐링이 열풍이지만 독서야말로 힐링에 큰 역할을 한다”(p.276)고 말한다독서만큼 인생에 큰 자양분을 주는 것이 흔치 않다직접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세상의 수많은 지식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역시 독서다후반부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도 이것이 아닌가 한다.

 

쓴다는 건 깊은 내면적 사고이며 사유의 산물이다손으로 직접 쓰는 육필은 그 효과가 더욱 크다뇌과학에서는 그래서 손으로 써보길 권한다종이에 펜으로 쓰면 키보드에 문자화하는 것에 비해 훨씬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 (중략육필로 써야 거기에 내 체취가 묻어나고 혼이 담길 것 같다.”(p.291)

 

수많은 책들을 읽다보면 자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고 해도 그 사유들을 글로 쓰지 않는다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직접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고 해도 글을 쓴다는 행위는 중요한 것이다전반부 인생의 경험을 글로 남긴다면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쓰는 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오랜 시간 내 속에 쌓여 온 번뇌와 고민의 산물이다.”(p.296)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모든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요컨대 인생내공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후반부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다그것은 후반부 인생을 사는 자신에게나고령화 사회를 감당하는 사회에게나 중요한 일일 것이다



책 정보



  제목 - 인생 내공

  지은이 - 이시형 & 이희수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출간일 - 2014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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