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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데, 3월만 되면 캠퍼스의 열기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남들은 새내기 대학생들 때문에 캠퍼스에 활기가 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방학기간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캠퍼스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3월의 생동감은 참 버티기가 힘들다. 이런 개인적 성향 때문인지 책을 더 가까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3월 주목 신간 역시 대부분 책이나 출판과 관련된 것들이다. 



1. <사상으로서의 편집자>, 한울(한울아카데미)





평소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특히 출판 편집자에 호기심이 많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원고가 선택되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수밖에 없다. <사상으로서의 편집자>란 책에 눈이 간 것도 이러한 관심의 반영일 것이다. 


<사상으로서의 편집자>는 주로 빌헬름 제정기 말 이후 바이마르 시기에 걸친 독일 사상사, 즉 사상의 격변기에서 당대 새롭게 위상을 얻은 편집자들을, 사상의 텍스트를 사회화하는 존재로서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한 시대의 편집자는 텍스트라는 구체적 대상과 역동적으로 대화하면서 하나의 사상 그 자체가 되어생산적인 지적 운동을 촉진한다. 이러한 시각에 비추어 오늘날 한국 출판계가 맞닥뜨린 여러 가지 도전과 난제들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출판사는 설명한다.


원고를 선택하고, 저자와 소통하며 원고의 방향과 내용을 편집하는 편집자들은 당연히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때문에 <사상으로서의 편집자>가 현재의 편집자뿐만 아니라 출판 편집자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2. <책의 문화사>, 생각비행





대학에서 책과 관련된 공부를 하는터라, 책에 관련된 책이 출간되면 무조건 사보는 편이다. 특히 문화사적인 관점으로 책을 다루는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책의 문화사>는 과거에 책의 문화사적 위치를 더듬으면서 미래에서 책이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의 저자는 인쇄된 책이 예술, 건축 혹은 사진을 담은 화려한 화보집으로, 사랑스럽게 만들어진 아동 및 청소년 도서로, 대중문학과 질적으로 가치가 높은 전문도서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용서와 사전, 취미와 여가를 위한 문학 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런 분야의 책이 인쇄본으로 5년 아니 8년 후에 언급할 만한 매출을 낼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점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3. <책공장 베네치아>, 책세상





베네치아는 우리가 책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베네치아가 단지 물의 도시라고만 생각해왔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책공장, 베네치아>는 책의 수도라고 불렸던 16세기 베네치아의 모습을 담은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베네치아 출신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는 이 매혹적인 책과 출판의 여명기를 과거와 현재, 역사적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교차시키며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세계의 진정한 혁명을 가져온 ''에 대한 예찬이자, "책을 둘러싼 출판업자와 서적상, 기독교도와 이교도, 성서와 음란물, 자국인과 외국인의 갈등과 타협의 변주곡"이 우리를 500여 년 전 '베네치아 책세상'으로 안내한다.



4. <표절론>현암사





최근 석사학위논문을 쓰고, 무사히 통과돼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논문을 쓰면서 항상 머릿속에 멤돌았던 것은 '표절'이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아무런 조언도 듣지 않고 한 참신한 생각이라도 이미 누군가가 했을지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해도 표절의 위험성은 존재한다는 뜻으로 들릴 정도였다.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표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표절론>이라는 책이 나왔다니 반가운 일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 속에 표절 문제에 관한 이성적이고도 합리적 논의의 틀을 제시한 최초의 본격 체계서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근본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먼저 표절 대상이 되는 지식을 특정인이 전유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 철학적·역사적으로 고찰한 뒤 현대적 관점에서 정보공유론이 표절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양자의 조화를 모색했다. 나아가 표절론이 학문적 체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연구방법론을 제시했다. 특히 저작권법학에서 표절과 저작권침해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규명한 작업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내용으로, 2부 논의의 배경 지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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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06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는 방학 시즌이 최고죠. 특히 도서관은 학생들이 많이 없어서 조용히 책 읽기가 딱 좋아요. 대학 졸업해도 방학 때 학교도서관에 들립니다. ^^

서흔(書痕) 2015-03-09 09:47   좋아요 0 | URL
대학은 방학 때가 가장 좋죠 ㅎㅎ
학기 중에는 사람도 많고 도서관도 가득 차서 영 별롭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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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에 접어든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났다. 새로운 일도 시작하고 적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는데, 벌써 2월 신간과 관련된 페이퍼를 써야 한다니 흘러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다. 넋두리는 이쯤 하고 2월에 주목할 만한 신간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1. 불평등의 창조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근대에 가닿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신자유주의 때문에 양극화가 극심해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불평등의 구조는 명확하게 작동하고 있다. <불평등의 창조>는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는 불평등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탐구하는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불평등의 창조>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진화를 밝힌 문명사의 역작이다. 저자들은 불평등이 인간 사회에 내재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농경의 등장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도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 태초에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 왜 불평등이 발생했는지, 불평등이 어떻게 정당화되고 제도화되었는지를 고고학과 인류학의 협업을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2. 유언비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유언비어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굵직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언론 같지 않은 언론을 타고 쏟아져 나온 유언비어는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분열을 일으킬 만큼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유언비어>는 이러한 유언비어를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꼭 읽어볼만 한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유언비어>의 저자는 정보에 대한 굶주림, 이것이 유언비어의 최적의 지반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굶주림이 있기에 유언비어는 싹을 틔울 수 있고 또 널리 전파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언비어를 금지하거나 엄격한 검열제도를 실시하는 것보다는 먼저 사람들이 정보에 대한 굶주림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 시미즈 이쿠타로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유언비어를 ‘보도’, 그리고 ‘여론’과 비교 검토하면서 불안정한 사회심리 속에서 발생하는 유언비어의 발생 조건과 구조, 사회적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3.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우리는 현재 끊임없는 혁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대신 삐삐를 사용했던 우리는, 지금 1년마다 새로운 기능을 탑재하거나 스펙이 향상된 스마트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것들이 나오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는 혁신이 아니라 낡오 오래된 것들에 주목한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는 그동안 새로운 것, 최초의 사용, 혁신에 초점을 맞췄던 기술사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낡고 오래된 것들을 통해 새로운 관점의 기술사를 주장한다. 이제 3D 프린트, 공간 이동, 타임머신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석탄, 자전거, 콘돔, 말, 재봉틀, 물레, 판자촌의 골함석 등 우리가 ‘사용해’ 왔던 기술을 되돌아보자고 말한다.

 

 

 

4. 전쟁의 물리학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전쟁사를 특히 좋아한다. 검이나 창, 화살 등으로 투닥거렸던 과거의 전쟁부터 최첨단 무기로 순식간에 전쟁을 끝내버리는 현대전까지 전쟁사는 역사에서 매력적인 분야 중 하나다. <전쟁의 물리학>은 물리학의 원리를 통해 무기에 관해 설명하면서 과학과 역사, 그리고 전쟁사를 아우르는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전쟁의 물리학>의 저자는 어려운 과학 원리를 알기 쉽게 풀어쓴 대중 과학서로 유명한 작가이자 아이다호 주립대학 명예교수인 배리 파커다. 저자는 경이로운 무기들의 밑바탕이 된 과학적 원리를 면밀히 분석하는 동시에, 그 뒤에 숨겨진 스릴 넘치는 에피소드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전략과 전술, 그리고 혁신적인 무기들이 활약한 전쟁과 전투의 소름끼치는 결과들을 역사의 파노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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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5-02-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작성 완료 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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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이 한창이다. 한국이 결승에 올라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응원의 열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오랜 기간의 침체를 딛고 우리 축구대표팀이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국가대항전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라는 기치 아래 하나됨(oneness)을 느끼곤 한다.

 

우리라는 개념은 우리 아닌 자를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부르짖었던 나치독일이 순수한 게르만 혈통을 도출해낸 방법은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 국민 속에서 게르만 혈통을 도려낸 것이 아니었다. 유태인, 동성애자, 집시 등을 배제한 나머지를 순수한 게르만 혈통이라 불렀다. 우리라는 개념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배제하고 남은 잔여물이며, 상상의 공동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우리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우리라는 집단에서 배제된 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예컨대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재일조선인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타국으로 입양된 자 등을 비롯해 북한 주민들이나 탈북인들까지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근원에서부터 거세된 자들이며, 뿌리 없이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다.

 

한국이 아니라 조선인 이유

 

이 책의 제목에 나는 조선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한국미술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쓰지 않은 이유는 한국이라는 용어가 제시하는 범위가 민족 전체를 나타내기에는 협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호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물론이고 재일과 재중 동포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에 모든 조선 민족에 의한 미술 행위를 한국미술로 한데 묶어 부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8-9)

 

서경식은 타의에 의해 우리라는 뿌리가 거세된 자들에 관해 천착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프리모 레비의 흔적을 더듬었던 <시대의 증언자 프리모레비를 찾아서><디아스포라의 눈>과 같은 저작은 그가 끈임없이 경계를 탐구한 결과물들이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역시 미술 순례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앞선 책들과 동일한 맥락 하에 있다. 저자는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이쾌대, 신윤복, 미희=나탈리 르무안, 홍성담, 송현숙 등의 작가를 입을 빌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청년, 여성, 일제 식민지 시기, 남북 분단, 디아스포라 등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미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은 물론, 미술이라는 창을 통해서 나타나는 배제 또는 소외된 자의 모습을 포착해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우리미술에 관한 재정립

 

보편적으로 우리라는 개념의 전제에는 우월성이 깔려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인에게 우리라는 수사를 붙여 내세우는 까닭은 한국인이 세계를 상대로 우월함을 드러냈다는 데서 기인한다. 미술도 여기에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미술을 둘러싼 이야기는 많은 경우 어떠어떠한 사람들이 지닌 미의식이라는 정해진 문구에 따라 통용되면서 자민족 중심주의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해왔다.”(245) 재일조선인인 저자도 완강히 거부하려했지만 일본적 미의식의 침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장승업이 그린 원숭이 그림을 별 생각 없이 바라보면서 동시대 일본의 화가와 비교하려는 미숙한 견해밖에 가지지 못했다. 조선 쪽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으쓱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별로 잘 그리지 않았다고 보일 때는 분하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내 안에 존재했던 우열의 기준 그 자체가 일본에서의 긴 시간을 걸쳐 내 속에 침투해버린 이데올로기는 아니었을까?(246-247)

 

저자는 우월성이라는 미술의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을 제거하기 위해 미술계의 주류가 아닌 주변부에 머무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으로 순례를 떠난다. 그것은 주변부에서부터 중심으로의 개입을 통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묻혀있는 조선미술을 캐내는 작업이다. 다시 말하면 저자의 순례는 한국의 위대한 문화적 전통이나 민족적 미의식을 발견해 내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문맥을 선명히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는 재일조선인인 저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순례다.

 

저자는 환갑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조선미술 순례를 감행했고,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지난한 여정이었음이 분명함에도 저자는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미술가들이 있음을 아쉬워했다. 특히 옌볜의 조선족 미술가들을 다루지 못한 것을 자신의 능력부족 탓이라 여기며 안타까워했다. 저자는 이제 순례의 지팡이를 내려넣고 나무 등걸에 앉아 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조선미술 순례>끝나지 않은 여행의 중간보고라고 말했다. 그가 다시 순례 길에 오르는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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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발견 - 가족에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한 심리학
최광현 지음, 윤나리 그림 / 부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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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발견>은 <가족의 두 얼굴>이란 책으로 가정 문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최광현 교수의 두 번째 책이다. <가족의 두 얼굴>이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가족의 발견>은 가족이 받는 상처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지 밝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민낯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안식처는 어떻게 지옥으로 바뀌나

지옥이라 일컬어지는 세상에서 개인에게 최후의 보루가 있다면, 그것 중 하나는 분명 혈연(血緣)일 것이다. 피로 묶인 사이라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최근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국제시장>의 초반부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몸을 던지는 아버지처럼,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끊을 수 없는 것이 혈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의 친밀함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부작용은 친밀함이 관성(慣性)으로 변하면서 시작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어떤 영화의 대사처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내재한 친밀함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된다. 당연시된다는 것은 폭력적 관계의 전조다.

자신이 갖고 싶던 물건을 구매했을 때를 기억해보자. 누구든 그 물건을 애지중지 다룰 것은 자명하다.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다루고, 누군가 그것을 건들면 버럭 화를 낸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소중함은 저물고, 아무렇게나 버려두어도 별 감흥이 없다. 이렇듯 타성에 젖은 가족의 친밀함이란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 오래된 물건과 같다. 

이는 심심찮게 들리는 가정폭력 사건과 여러 가정 문제의 발단이 된다. 보편적으로 가족 공동체의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아버지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 문제의 시작은 보통 권력을 가진 이, 즉 아버지에게서 먼저 일어난다(물론 생계를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가 책임지고 있다면 권력 관계는 달라진다).

우리의 의식은 모순도, 아픔도 애써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려 하지만, 무의식 속에 있는 그림자 인격은 그러한 자아를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그림자는 더욱 커지게 되고, 이로 인한 심리적 불균형은 어떤 식으로든 그림자를 해소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들은 자기도 모르게 가족을 그림자 해소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113쪽)

현재 사회는 부조리와 부정 부패 등이 만연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이라 여긴다. 하지만 억압 당한 상태의 잔여물은 우리 내면의 보이지 않는 장소에 켜켜이 쌓여 있다. 저자는 그것을 '그림자'라고 명명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그림자'란 형태로 변해 우리의 내면에 지속적으로 쌓인다. 그림자를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쌓여있는 그림자를 배출할 수 있는 건전한 해소의 통로는 일부의 몫일 뿐,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부재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림자는 누군가를 향해 터질 수밖에 없다. 건전한 해소의 통로가 부재한 상태에서 가장 쉽게 해소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충분히 자신의 그림자를 감당할 수 있다는 안일함이 안식처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폭력을 당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외부에서 당한 억울함을 가족을 상대로 한 폭력으로 풀거나, 자신이 당한 억압을 대신 해소해주길 원하는 등의 일은 지금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거기서 끝난다면 좋겠지만 대물림되기까지 한다.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경계 긋기와 접근성 사이에서

경계를 존중받지 못하면 아이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그러면 부모 자녀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기보다는 지긋지긋한 애증의 관계가 된다. (중략) 경계가 존재한다면 이번에는 접근성이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 둘 중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가족 모두와 정서적으로 교류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194쪽)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에는 친밀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화목한 가족 사이에는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경계가 그어져 있다. 마냥 친밀한 것보다 각자의 사생활을 상호 존중하고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이 화목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가족은 관념적인 집단이 아니라 독자적인 개인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경계를 그으라고 해서 서로 벽을 치라는 뜻은 아니다. 접근성 역시 중요하다. 같이 산다는 것은 상호 소통과 협력이 전제된 것이다. 같은 집에 산다고 해도 소통과 협력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사는' 것이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은 서로의 사생활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접근성을 유지하는 거리 조절 능력이다. 일정한 경계와 적절한 접근성이 가족의 화목을 지키고, 부모의 그림자를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다. 가족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에서 개인을 발견하고, 관념 속에서 개인을 끄집어 내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짜 '가족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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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 알라딘 신간평가단 15기로 활동할 수 있어서 영광이네요.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 그러면 신간 추천 시작합니다.



1. 보이지 않는 영화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어서인지, 평론집은 그것이 문학이든 영화든 간에 다른 책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편이다. 보이지 않는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트위터와 같은 SNS를 자주 하는데, 트위터에서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황현산 평론가와 정홍수 평론가가 추천하는 책이라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영화씨네21편집장,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현재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허문영 평론가가 쓴 서문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세상을 보듯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듯 세상을 본다. 달리 말하면, 영화는 보이는 세상이고, 세상은 보이지 않는 영화다. 양자의 경계는 유동적이고 불투명하며, 이 글들은 그 모호한 경계지대에서 양쪽을 두리번거리고 있다.”(‘책머리에에서) 이 두리번거림이 어떨지 궁금하다.

 


2.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현재 일본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제의 식민지배가 미친 영향 때문일 것 같아 상당히 기분이 좋진 않지만, 그래도 일본의 상황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분석하는 현상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지금까지도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득도 세대)’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성장이 멈춘, 절망의 나라 일본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행복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노리토시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자체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오히려 현재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아직까지 성장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현상이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본에서나 가능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젊은이가 현재에 만족하기란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같은 일본의 현상이 우리나라에 언제 닥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노리토지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3. 비교신학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비교신학의 저자 프랜시스 클루니 교수는 하버드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 소장으로 비교신학을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학자들 중 한 명이다. 비교신학을 30여 년간 연구한 저자는 그동안 자신의 연구물에 근거해 비교신학 입문서인 비교신학에서 이 학문의 역사와 특징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신학에 관심이 많다. 지금은 한국교회의 예수 없음에 염증을 느끼고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종교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타 종교를 배척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타 종교와 상호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상호소통을 통해야만 각 종교가 다툼보다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교신학은 각 종교의 상호이해를 도울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검색되지 않을 자유


 












요즘에는 몇 가지 키워드만 알고 있으면 구글을 통해 특정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 만큼 정보가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보안 의식이 상당히 낮은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각 공공기관이나 은행, 포털 등에서 개인정보를 수시로 유출하고 있기도 하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는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제기하려는 책으로 보인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검색되지 않을 자유는 정보통신 기술뿐만 아니라 건축, 의료, 음악, 패션, 사진, 기억과 죽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변화상을 전방위로 분석한다.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감시체제와는 사뭇 다른 서버server에 의한 감시의 가공할 힘을 드러내고, 그로 인해 양산될 호모 익스펙트롤’, 즉 예측 가능한 인간이라는 핍진한 인간형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이 제기하는 예측 가능한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다.

 

 

5. 돈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그것을 배제하고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돈에 천착하기 시작하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기업이 돈에 천착하면 각종 부정부패가 일어나고 개인이 돈에 천착하면 인간관계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만큼 돈은 중요하면서도 악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돈이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2015년 새해에 돈에 관해 생각해보는 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느꼈다. 게오르그 짐멜의 돈이란 무엇인가는 돈에 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해줄 좋은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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