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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심리학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수재나 E. 플로레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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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우리의 일상을 점령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모두 스마트폰을 붙들고 SNS의 뉴스피드를 확인한다. 식당에서 음식이 나온 후 SNS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소위 ‘SNS 삼대장이라 불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는 이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향유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SNS를 확인하고잠들기 전까지 SNS를 확인하는 시대다. SNS가 일상에 빼곡히 틈입한 것이다때문에 기존에 없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남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편집한다또 SNS에 올라오는 남들의 좋은 모습을 보며 실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한다.

 

자신과 남을 계속 비교하면서, SNS에 남들보다 더 나은 사진이나 더 자랑할 만한 사진을 강박적으로 올리기도 한다뿐만 아니라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SNS를 확인한다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SNS를 확인하느라 매일 몇 시간씩 낭비하고 있다한 마디로 SNS에 중독된 것이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수재나 E. 플로레스의 <페이스북 심리학>은 SNS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함에 따라 어떤 문제들이 나타났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물론 <페이스북 심리학>은 제목처럼 분석대상을 페이스북에 한정하고 있다하지만 페이스북은 월 이용자 수가 10억 명(2012년 기준)에 달하고미국의 대다수 시민이 이용하기 때문에 이를 SNS 일반까지 확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기 편집의 위험성

 

살이 찐 게 걸리는가문제없다. 5년 전에 찍은 사진을 올려라그게 먹히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포토샵이 있다페이스북에서는 죄다 편집 가능하다우리는 마음껏 자기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우리의 정체성을 재창조할 수 있는 힘은 정말 기이하다.”(본문 45)

 

‘SNS에 올리는 사진은 수십 장 찍은 사진 중에 가장 잘 나온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특히 여러 사진 중에서도 셀카(셀프카메라)를 올릴 때 가장 공들인다고 한다나였다면 차라리 안 찍고 말았을 테다하지만 가장 잘 나온 나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행위는 일견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버려진 수십 장의 사진에 찍힌 것이 과연 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를 찍은 사진이 잘 나왔든 못 나왔든 간에 그것은 모두 하지만 SNS가 우리의 일상을 점령해나갈수록 SNS는 편집한 나를 진짜 나라고 믿게 만든다. SNS상의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주지만그에 비해 현실의 나는 비루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포스팅은 단순히 자신의 하루를 보여주고 업데이트하는 것일 수 있다많은 사람들에게 이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즐거운 일이다하지만 한편으로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면만을 올리고 나쁜 면은 숨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본문 43)

 

SNS에 올려진 나를 진짜 나라고 믿으면 믿을수록 현실의 나와의 괴리는 점점 커진다결국 화려한 SNS에서의 나와 상대적으로 비루한 현실을 비교하면서 우울증에 빠진다이것이 심해지면 비루한 현실을 외면하고 SNS의 화려한 나에게 중독되는 것을 선택한다실제 자신보다 자신의 SNS 아바타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10대가 위험하다

 

한국에서 SNS가 발달하고 대부분의 사람에게 스마트폰이 쥐어진 것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현재 SNS가 일상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20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일상을 망가뜨릴 만큼 SNS에 의존하지 않는다하지만 10대는 다르다지금 10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하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세상이다아이들이 울면 이제 안고 달래주기보다 뽀로로 영상이 나오는 스마트폰을 건네줄 정도다이러한 시대를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이들을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즉 현재 10대들에게 디지털은 삶의 터전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를 비롯한 어른들은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이 있다어린 시절을 디지털 세계가 존재하기 이전에 보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10대는 다르다.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SNS를 자신의 삶에 일부라고 여길 확률이 높다때문에 SNS가 주는 여러 부정적인 영향력에 아주 쉽게 노출된다.

 

특히 자아정체성을 형성해야만 하는 10대들에게 앞서 언급한 자기 편집의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자아정체성을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나를 직면해야 한다하지만 SNS 활동에서 요구되는 자기 편집은 이를 가로막는다.

 

페이스북의 기능들은 자기 정보를 편집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게 만들었고 이는 우리의 자아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자기 가치감과 관련된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극단적인 수준에서는셀카를 포함하여 자신이 올리는 포스팅에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에 따라 자기 가치를 규정한다자기 편집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점점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순수한 자기표현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진짜 자신을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본문 259)

 

현재 10대들은 이러한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특히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교육만 받는 학생들은 성찰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SNS 환경 역시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지금부터라도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SNS를 비롯한 디지털 세계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용당하기보다 이용하기를

 

SNS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지금의 10대가 디지털 네이티브인 터라 조금 더 위험할 뿐이다. SNS는 단지 SNS일 뿐이다물론 SNS에 올린 자신의 편집된 삶이 SNS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행복할 수는 있다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직면하는 순간 무너져 내리고 마는 신기루일 뿐이다.

 

더욱이 SNS에 올리는 삶의 일부는 스스로의 삶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삶일 뿐이다타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공허하다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다 지쳐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또 SNS라는 타인에게 삶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우를 범할 것인가행복은 스스로 결정할 때만 존재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 무엇을 올릴지를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근거하여 결정하면 그들에게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힘을 넘겨주는 셈이다.”(본문 241)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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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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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시대 구분은 여러 기준에 따라 다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은 '근대 시대'이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철학자는 자크 라캉,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등을 들 수 있다. 

이 철학자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지만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쓴 텍스트가 얼마나 난해한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이들의 저작을 읽어보려 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의 공습에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이 쓴 글의 난해함을 비판하는 책이 나왔다. 바로 <지적 사기>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난해함이 어려움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수학에서 사용되는 여러 전문 용어들을 그들이 명확한 의미도 모른 채 가져다 쓰면서 발생한 것이라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난해함에 치를 떨어본 사람이라면 이들의 주장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과학 및 수학 언어의 오남용

"이 책의 목표는 비록 다루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불투명한 시대정신을 비판하는 작업에 창조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다. (중략) 이제까지 비교적 등한시 되어온 영역, 곧 수학과 물리학에서 나온 개념과 용어가 자꾸만 남용되는 현상에 대하여 좀 더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썼다. 우리는 또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글에 자주 등장하며 자연과학의 내용 및 방법론과도 무관하지 않은 흐리멍덩한 사유도 짚고 넘어갈 것이다.(18쪽)"

<지적 사기>란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하나의 장난에서 시작됐다. 앨런 소칼이라는 학자가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꾸며 쓴 논문 하나를 학술지에 투고했는데, 그것이 학술지에 게재된 것이다. 그럴 듯하게 구색을 맞춰 쓴 글이 전문적인 학술지에 게재됐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일은 학계에 파장을 몰고왔다.

앨런 소칼이 벌인 장난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조가 얼마나 불투명하고 허술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어려워 보이는 단어를 가져와 그럴 듯하게 이어붙이면 하나의 철학적 논문이 완성된다는, 사실은 그 글이 논리적으로 완성된 글이 아니라 어려워 보이는 단어에서 오는 권위에만 기대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위에 빌붙은 글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은 권위를 원한다. 그래서 명확한 의미도 파악하지 못한 수학 및 물리학의 단어를 오남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글은 더욱 흐리멍덩하게 변한다. 흐리멍덩한 글은 "구체적으로 도달하는 데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면서 무한정 탐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포스트 모더니스트 비판

앞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자크 라캉과 장 보드리야르를 들었다. 자크 라캉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대중과 대중문화, 미디어와 소비사회 이론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적 사기>에서 이 두 세계적인 철학자는 수학 및 물리학 용어의 오남용을 비판하는 대상일 뿐이다. 

"라캉의 옹호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면 이른바 '부정 일변도'의 전략에 의지하면서 오리발을 내민다. 그 글들은 과학으로 평가해서도 안 되고 철학으로 평가해서도 곤란하며 그렇다고 해서 시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속 신비주의'라는 소리밖에 더 되겠는가.(58쪽)"

"우리는 보드리야르의 저서에서 과학 용어가 본연의 의미를 철저히 무시당한 채 무엇보다도 너무나 엉뚱한 맥락에서 남용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을 은유로서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사회학이나 역사학에 대한 진부한 관찰에 심오함을 덧씌우려는 것 외에 그런 용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184쪽)"

자크 라캉과 장 보드리야르 외에도 많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을 책에서 비판하고 있다. 저자들은 수학 및 물리학의 용어들, 예를 들면 위상학, 괴델의 정리, 초끈 이론, 카오스 이론 등에서 파생된 용어들이 과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글에서 적확하게 그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들어 간다. 

<지적 사기>의 저자들이 비판하는 바를 읽으면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왜 과학의 용어를 무분별하게 가져다 쓴 것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사람에겐 직관이라는 것이 있다. 이 직관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면 그것은 이론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단지 직관에 머물 수밖에 없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이 직관을 표현할 수단을 찾지 못해 애를 먹다가, 애먼 과학 용어들을 가져다 쓴 것은 아닐까.  

"'진리'는 인간이 대부분 통제할 수 없는 사실들에 의존하는 어떤 것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지금까지 철학이 겸손이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사람들에게 주입시켜온 방법들 가운데 하나였다. 자만심에 제동을 거는 이런 장치가 사라졌을 때 우리가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은 일종의 광기로 치닫는다. 이것이 바로 피히테의 철학이 빠져든 권력 도취인데 현대인은 철학자건 철학자가 아니건 이런 증세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 나는 이런 도취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스러운 요소이며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도취를 조장하는 철학은 광범위한 사회적 재난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239쪽)"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른 말로 하면 해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구조적 논리는 해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논리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수학이나 과학까지 해체할 수 있는 것일까. 괜찮아 보이는 용어가 있으면 그 정확한 의미도 파악하지 않고 끌어다 쓰는 것은 과연 용납할 수 있는 일일까.

현재의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겸손을 잃고 자만심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흐리멍덩한 것에 관한 무한한 탐닉과 끝없는 도취는 결국 파멸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런 학문은 소수의 학문으로 남아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지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사치품이 될 뿐이다. 이제 '지적 사기'는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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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04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감벤도 제대로 검증이 필요한 학자라고 생각해요. 제가 독해력이 딸리는 것도 있지만, 글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 미국을 뒤흔든 세계 교육 강국 탐사 프로젝트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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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학부모의 교육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한국 학부모의 교육열을 미국이 보고 배워야 한다"는 뉘앙스의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자는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언급했을 정도로 대한민국 학부모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교육만이 자식의 인생과 부모 자신의 인생까지 역전시켜줄 무기라고 생각하는 듯,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학생들은 '피사'라고 불리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에서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진 아만다 리플리라는 기자가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핀란드와 폴란드의 교육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이 기자가 호기심을 가진 세 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점이다. 기자는 세 나라에 교환학생으로 간 세 학생들과 함께 이 나라들이 왜 공부를 잘하는 가에 대해 탐색해가는 과정을 하나의 책으로 묶었다. 바로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란 책이다.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를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미국 기자인 저자가 대한민국 교육을 어떻게 관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12년 동안 받았다. 때문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더욱 미국 기자의 시각이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벽장에 갇힌 대한민국의 학생들

한국의 십 대들은 온갖 종류의 벽장에 갇혀 지낸다. 때로는 작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글자 그대로 벽장 같은 곳에서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한다.(109~110쪽)

저자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 학생들을 "온갖 종류의 벽장에 갇힌 신세"라고 표현한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물론 저자는 대한민국의 이런 교육제도가 높은 수준의 지식을 축적할 수 있게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지만은 아닌 것 같다는 뉘앙스를 계속해서 풍겼다.

대부분의 한국 십 대 청소년들은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강사를 더 선호한다. 116개 학교에 재학 중인 6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 학생들은 모든 방면에서 학원 강사들에게 더 나은 점수를 줬다. 학원 강사들은 수업 준비가 더 잘돼 있고 수업에 더 열심이며 학생들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 또 학원 강사들이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학생들을 공정하게 대한다고 느꼈고 그것이 학원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 답했다.(274쪽)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 이런 부분이 계속해서 눈에 띄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 학생들이 온갖 종류의 벽장 같은 곳에서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학교의 교사보다 학원의 강사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교육이 얼마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저자의 대한민국 교육에 관한 서술을 읽는 내내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다. 

무엇이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대한민국 교육제도를 비판하느라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해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책의 제목처럼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대한민국, 핀란드, 폴란드 등 세 나라의 교육제도 및 교육환경을 관찰하면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라에 따라 달랐던 것은 '교육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가' 하는 태도였다. 아이들이 보이는 교육에 대한 관심은 나라에 따라 심전도 그래프만큼이나 오르락내리락했다.(301쪽)

대한민국, 핀란드, 폴란드. 이 세 나라가 가진 교육적 공통점은 바로 '교육에 대한 진지한 태도'였다. 교육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교육만이 '입신양명'의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교육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고, 핀란드나 폴란드 역시 교육이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이라고 믿기에 역시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결론 치고는 조금 싱거울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학생들의 능력이나 그 나라의 교육제도, 교육 환경과 교육 인프라보다 교육에 대한 진지한 태도라는 것에서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에 대한 진지한 태도만 있다면 누구나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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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3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수포자가 교육 문제의 화두가 떠오르기 시작하니까 부모들이 벌써부터 아이들에게 수학 공부를 시킨다고 하더군요. 애들이 불쌍해요. 영어에 이어서 수학 조기교육까지 해야 된다니... 씁쓸합니다.
 
[음식의 언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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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바질을 곁들여 가지로 감싸 오븐에 구운 모짜렐라 치즈. 이는 엘본 더 테이블의 메뉴 중 하나다. 엘본 더 테이블은 허셰프라는 캐릭터로 다방면에서 인기몰이 중인 최현석 셰프가 총괄 셰프로 있는 곳이다. 이곳의 메뉴 대부분이 비슷했다. 서울에 볼일이 있던 차에, 들러볼까 하고 포털사이트에서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이었다. 이때 내가 떠올린 생각은 길다였다.

 

김치볶음밥, 짜장면, 후라이드 치킨 등 배달음식이 친숙한 나는, 고급 레스토랑의 기다란 메뉴에서 왜인지 모를 위압감을 느낀다. 뒤이어 메뉴가 꽤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메뉴를 본 내 감상은 여기서 끝난다.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는 이렇게 생겼네하고 금방 넘길 것이다. 이런 나와 달리 <음식의 언어>의 저자인 댄 주래프스키 교수는 이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스탠퍼드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댄 주래프스키 교수는 계량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컴퓨터공학자다. 그는 음식의 언어에 주목한다. 내가 그냥 지나친 메뉴에서 그는 온갖 종류의 잠재적인 언어학적 힌트(25)”를 발견한다. 예컨대 음식을 묘사하는 글자 하나가 더 늘어날수록 해당 음식이 비싸진다는 통계 같은 것들 말이다.

 

구별 짓기로 보는 음식의 언어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라고들 말한다. 삶은 욕망이며, 그것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 피라미드, 진시황릉 등이 단적인 예다. 인간은 수많은 욕망을 품지만, 무엇보다 타인보다 자신이 더 나음을 드러내기 위한 욕망이 크다. 부르디외는 이를 구별 짓기라 명명했다. 자본가는 이 부분을 파고 든다. 끊임없이 소비자에게 이 상품은 타인과 구별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음식의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먹는 것에서도 구별 짓기를 욕망한다. 때문에 레스토랑의 메뉴에서부터 포테이토칩의 광고 문구까지, 욕망을 자극하는 언어가 난무한다. 요리와 포테이토칩을 공급하는 자본가는 언어를 통해 소비자가 제품을 손에 집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메뉴와 광고 문구에서 자본가의 의도를 도출해낸다.

 

레스토랑은 자신들이 주 고객으로 삼는 계층에 따라 사용하는 메뉴의 언어가 다르다. 값비싼 레스토랑은 강박적으로 재료의 출처를 밝히고, 우아하고 장황한 단어로 요리를 묘사한다. 또한 값싼 레스토랑에는 선택할 수 있는 요리 가짓수가 훨씬 많으며, 이에 반해 값비싼 레스토랑은 주방장 추천 메뉴가 더 많다.

 

값싼 칩: 우리 칩의 그 특별한 맛은 어디에서 올까? 그건 비밀이 아냐. 만든 방법 덕분이지!

 

값비싼 칩: 우리는 전적으로 천연 재료를 사용하며, 모든 내용물을 손으로 직접 추려 포장하고, 모든 준비 단계에서 칩을 테스트하여 품질과 맛을 보장한다.(214~215)

 

포테이토칩 광고 문구에서도 동일한 구조가 나타난다. 값싼 칩의 광고 문구에는 쉬운 단어와 간단한 문장이 쓰인다. 반면 값비싼 칩의 광고 문구는 정반대다. 카피라이터가 상위 계층에게는 복잡한 단어와 문장을 쓰는 편이 좋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자본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뿐만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지를 반영한다(220)”는 사실을 말이다.

 

음식의 언어에서 발굴한 역사

 

"케첩, 시럽, 아스피크, 칠면조, 마카롱, 셔벗, 아락 같은 것들은 페르시아의 샤, 바그다드의 칼리프, 프로방스의 군주들, 뉴욕의 거부들이 먹던 고급 식사뿐 아니라 푸젠성 출신의 선원들, 이집트의 약사들, 멕시코의 수녀들, 포르투갈의 상인들, 시칠리아의 파스타 장인들, 애머스트의 시인들, 그리고 뉴욕의 제빵사들이 먹던 식사의 언어학적 화석이다."(346)

 

우리는 오래된 지층에서 발굴된 화석을 통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멸하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언어도 옛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저자는 음식에 관련된 언어학적 화석중에서 일부를 발굴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책에 등장하는 것은 피시앤드칩스, 케첩과 칵테일, 와인과 토스트, 칠면조 등이다. 지면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중에서 피시앤드칩스만 소개할까 한다.

 

저자는 우리가 영국의 대표요리라고 알고 있는 피시앤드칩스의 기원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가 도착한 곳은 6세기 중반의 사산조 페르시아다. 당시 페르시아의 왕은 호스로 1세 아누시르반이다. 저자는 피시앤드칩스의 원형이 호스로 왕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인 시크바즈라고 지목한다. 시크바즈는 새콤달콤한 쇠고기 스튜라고 한다. 피시앤드칩스는 분명 생선과 감자를 튀겨낸 음식인데 말이다.

 

저자는 독자의 의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크바즈가 어떻게 피시앤드칩스로 변모할 수 있었는지 추적한다. 호스로 왕의 시크바즈는 널리 퍼졌는데, 퍼지면서 각 지역에 맞게 전용(轉用)된다. 9세기 이슬람 선원은 시크바즈의 재료로 생선을 썼다. 이어 13세기 이집트에서는 생선을 밀가루에 묻혀 튀겼다. 14세기 지중해 항구에서는 생선 시크바즈의 이름을 에스카베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6세기 에스파냐의 페루 정복 당시 에스카베체가 전해졌는데, 이것이 페루 전통 재료와 접목해 세비체가 탄생한다. 17~18세기 경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서 쫓겨나 영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에 의해 에스카베체가 들어온다. 여기에다 19세기 중반 등장한 감자튀김이 추가돼 지금의 피시앤드칩스가 만들어졌다. 요컨대 피시앤드칩스는 수천 년에 걸친 문화적 합종연횡으로 탄생된 것이다.

 

음식의 언어에서 교훈을 얻다

 

저자는 단지 변천사를 살펴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피시앤드칩스의 변천사에서 우리가 배울만한 교훈을 끄집어낸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우리 모두가 이민자라는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문화도 고립된 섬이 아니며, 문화와 민족과 종교 사이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경계에서 어떤 훌륭한 특성이 창조된다.”(98)

 

문화에 있어 최고와 최초를 논한다는 것은 부질없으며, 서로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발생하는 혼란에서 어떤 창조적인 특성이 꽃피운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피시앤드칩스에 관한 것만 언급했지만 저자는 책에 언급된 다른 음식에서도 해당 음식과 관련된 교훈을 매번 추출한다.

 

<음식의 언어>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저자가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성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선언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상은 여전히 불평등하다. 이러한 세상을 향해 저자는 음식의 언어가 주는 마지막 교훈인 자비의 조리법을 제안한다.

 

우리 자신의 부족이나 민족의 언어적 습관과 요리 습관은 모든 부족과 민족에게 해당되는 습관이 아니다. 그렇지만 모든 언어와 문화는 깊은 공통성을, 우리를 인간이 되게끔 해주는 사회적·인지적 특징을 공유한다. 이런 사실들, 즉 차이에 대한 존중, 공유되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 등이 자비의 조리법에 들어가는 재료다. 그것이 음식의 언어가 주는 마지막 교훈이다.” (34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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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 생활의 발견 시리즈 2
정진아 지음, 정인선 그림 / 후마니타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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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익숙함으로 가득하다일상 속에 포함된 공간인물상황 등은 뻔하다한 번씩 색다른 일이 벌어지곤 하지만 그뿐이다떠돌이로 살지 않는 이상되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일상이다어쩌면 떠돌이 생활도 일상으로 고착되어버릴지도 모른다그만큼 일상의 중력은 강력하다하지만 강력한 중력만큼 벗어나려는 마음도 비례한다일종의 관성이랄까.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의 저자도 일상에 질려버렸을 것이다강하게 짓누르는 일상의 중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저자는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를 통해 호주로 훌쩍 떠난다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수중에 돈이 없는 저자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하지만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또 다른 일상에 불과했다이 책은 저자의 일상탈출기이자 일상체험기이다.

 

환상과 현실 사이

 

 

낯섦은 환상을 동반한다낯섦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우리는 그 구멍을 환상이라는 것으로 메운다다른 나라의 생활도 마찬가지다최근 국외여행이 보편화됐다고는 하지만여행은 여행일 뿐 직접 그곳의 삶을 산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하지만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대부분은 일상을 여행으로 착각한다때문에 막상 일상이 닥쳐왔을 때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워킹홀리데이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장기 여행이라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22)”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앞으로 겪을 노동은 호주를 여행하기 위한 부차적인 수단에 불과했다누구나 그렇듯이호주 워킹홀리데이 생활은 일터에서 겪을 호주인과의 아름다운 교류 또는 호주에서 벌어질 환상적인 여행만이 존재했다.

 

환상과 현실의 간극은 상당히 컸다몸을 누일 숙소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생활을 위한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것까지뭐 하나 쉽게 풀리는 것이 없었다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바로 자신을 비롯한 속칭 워킹이라 불리는 이들이 호주 사회에서 착취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워킹이 입국해서 일자리를 구하고 일을 하고 시급을 받는 모든 과정은 그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일을 시작할 때 근로계약서를 쓰지도 않고가게 주인들은 사람을 고용했다는 신고를 세무서에 하지도 않는다. (중략최저임금 절반의 시급규정보다 훨씬 긴 노동시간식사 시간이나 휴식 시간이 없는 환경암암리에 이루어지는 이런 관행들은 직접 일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다.(47~48)”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과 함께 받은 세금 신고 번호를 직접 사용할 일이 없음(47)”을 목격하면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워킹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물론 순탄하지는 않다차이나타운주스 가게햄버거 집쇼핑센터의 초밥 가게 등을 전전한다하지만 단순노동은 사람을 쉽게 일하는 기계로 전락시켜버린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보트가 떠다니고 하늘은 늘 청명하게 높은 시드니에서 밤새 일하고 돌아오는 귀가 길에 하루 종일 손이 물에 닿아 불어버린 손톱(116)”을 봐야하는 괴리감 역시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저자는 도시의 비인간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농장으로 떠난다하지만 농장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워킹이란 존재는 호주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용해먹기 쉬운 먹잇감이었다워킹을 싼값에 부려먹거나 임금을 체불하는 일은 빈번하다호주에 사는 교민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가장 등쳐 먹는다는 말이 공공연한 세상이다책에도 언급하는 것처럼 일자리를 알선하면서 높은 수수료와 체재비를 요구하는 것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워킹이라는 허울뿐인 이름

 

경찰에게 돈을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한국 사람들이나경찰에 들킬까 봐 숙소로 돌아가 버린 네팔 사람들이나경찰들 앞에서 우리는 다를 바가 없었다우리는 그저 최저임금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하루 종일 일하면 그만인 사람들이었다. (중략경찰들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호주가 우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사람들을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219)”

 

워킹홀리데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제도는 호주의 이주 노동자 충원 제도의 다른 이름이다이것이 현실이다저자는 이 사실을 목격했을 때 호주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접는다호주나 한국이나서로 다를 것은 없었다차라리국민과 외국인 사이에 끼인 워킹이라는 존재보다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게 좀 더 나은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저자가 워킹홀리데이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단지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씌어 있는 미지의 세계청춘의 열정으로 가득한 야생의 세계그러면서도 서양의 문물을 간직한 선진적 세계(228)”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워킹 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환상은 현실을 살아내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꿈을 꾼다하지만 꿈만으로는 부족하다또 영어만을 바라보고 1년 이상을 허비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차라리 저자가 워킹 경험 속에서 맞닥뜨린 보이지 않는 것(231)”을 직면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식당 설거지 담당새벽의 건물 청소부농장 노동자 등등은폐되어 있는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는 순간 저자가 이 책을 세상에 내보인 것처럼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까하지만 현실은 참혹하고희망은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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