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영성 -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
김진호 외 지음 / 현암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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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쿼바디스>라는 영화가 화제다. <쿼바디스>는 고통받는 자와 함께 했던 예수의 삶을 잊고 세속의 논리에 편승해가는 한국교회의 실상을 고발한 영화다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한 명의 비판적 개신교인으로써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예컨대 개신교 성직자인 목사의 여러 성추문바벨탑처럼 끝없이 올라가는 교회의 모습교회가 사유재산인 양 자식에게 세습하는 목사 등의 행태일 것이다이러한 개신교의 모습은 소위 '개독교'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더불어 개신교는 세월호 사건 이후 막말 행렬에도 끼어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세월호를침몰시킨 게 아니다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이 어린 학생들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등의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목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행태로 인해 개신교는 사람들에게 있어 본연의 모습을 잃고 개독교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하지만 개신교 주류의 부적절한 행태를 비판하며 자정하려는 노력도 있다예컨대 개신교언론인 <뉴스앤조이>는 멈추지 않고 개신교의 부적절한 면을 비판하고팟캐스트 방송 <내가 복음이다등도 왜곡된 복음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더불어 민중신학자 김진호를 필두로 여러 학자들이 모여 출간한 <사회적 영성>이라는 책도 동일한 맥락에 있다. <사회적 영성>은 세월호 이후의 삶세월호 이후의 신학을 묻고 있다.


사회성이 결여된 한국교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장 18)


한국교회는 이제 사람들에게 완전한 개독교로 자리 잡았다예수는 만민의 구원을 외쳤으나 그를 따르는 자라고 자처하는 신도들은 스스로의 구원에 천착하고 있다또한 예수는 가난한 자포로된 자눈 먼 자눌린 자 등에게 집중했으나 그를 믿는 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스스로의 복을 구하는데 바쁘다누군가는 진정한 예수의 삶을 실천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는 자신의 구원자신의 복만을 간절히 구하는 곳이 되었다.


요컨대 한국교회는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아무리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라도 모든 것이 신의 이름으로 용인되는 것이 한국교회다그렇지 않고서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학생들이 희생된 것이 "하나님이 기회를 준 것"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이렇듯 사회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세월호 참사에 있어 종교로써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이는 당시 방한한 프란체스코 교황이 열렬한 환호를 받은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회적 영성>은 기존 개신교의 이 같은 문제점을 파고든다. <사회적 영성>은 교회적 영성을 비판하고 사회적 영성으로의 전환을 꾀한다그들이 말하는 교회적 영성이란 교회 안에 한계 지어진 영성다시 말하면 "자기중심의 배타적인 교리 도그마"(245)에 빠져 있고, "뇌물사기편법 건축부당한 펀드 투자 등으로 수십수백억아니 수천억 원을 남용"(245)하는 영성이다그들은 이러한 교회적 영성에서 지적도덕적 성찰을 기반으로 "타인과 함께 수평적으로 나누는 관계의 품성"(246)을 갖춘 사회적 영성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적 영성에서 사회적 영성으로


"한국교회가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인 권력과 자본과 동맹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그들의 신정론과 관련이 있다. (중략전통적인 신정론의 목적은 하느님을 변호하는 것이다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전능함과 의로움이 부정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전통적 신정론은 결국 고통과 악을 신적 의지와 계획의 일부로 설명한다."(127~128)

 

한국교회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지향의 문제다한국교회의 지향점은 자신이 구원받는 것이며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 중에 천국에 가는 것이다그들은 모두 위를 바라볼 뿐 아래는 내려다보지 않는다신의 은총과 은혜를 바랄 뿐 현재의 삶은 그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그렇기 때문에 교회적 영성은 고립적이며죽음 이후에 있을 삶을 누리기 위한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전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중신학적 신정론은 하느님이 아니라 민중을 변호하고 편든다. (중략예수는 민중과 함께민중의 하나로 고통을 겪는다전능하신 하느님 예수가 민중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나약한 민중이 교권과 금권에 갇힌 예수를 구원한다민중이 스스로를그리고 하느님을 구원한다이런 민중신학적 신정론은 인정론이다."(128~129)

 

세월호 이후 한국교회의 실상은 사회에 낱낱이 고발되었다배타적이며 자기중심적인 한국교회는 이제 암적인 존재로써 사회에서 소멸되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이들이 종교로써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적 영성으로의 전환 외에는 남지 않았다위를 향했던 지향을 아래로 향하고고통 받는 자와 함께 했던 예수처럼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신을 변호하는 것 이전에인간을 변호해야 한다.

 

나치를 저지하기 위해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한 신학자이자 목사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가 선거로 독일수상에 뽑힌 뒤 교회가 국가에 대처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내놓았다첫 번째는 성경이 규정하는 대로 법과 질서의 환경을 조성하지 않을 때 교회가 국가의 결함을 지적하고두 번째는 국가의 행위에 희생당한 이들을 도와야 하며세 번째는 바퀴에 짓밟힌 희생자들을 싸매어줄 뿐 아니라 바퀴 자체도 저지해야 한다고 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신학자이자 목사임에도 사회문제에 침묵하지 않았고 신보다 인간을 먼저 변호했다이는 아마도 그가 사회적 영성을 가졌기 때문이지 않을까한국교회에게 이러한 모습을 바라기에는 아직까지 요원하다맹신하고 있는 교회적 영성을 버리고 사회적 영성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살아남을 수 없다이제 한국교회는 자문해야 한다. “쿼바디스.” 한국교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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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주세요!


활동 마감 페이퍼를 올려달라는 공지가 올라온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이러저러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때 리뷰를 쓴 적이 별로 없던 터라 신간평가단에서 보내준 모든 책의 리뷰를 마무리하고 활동 마감 페이퍼를 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아직 두 권의 책이 남았다. 


두 권의 리뷰가 남았음에도 활동 마감 페이퍼를 쓰게 된 것은 12월 9일이 15기 신간평가단이 선정되는 날이어서다. 아마 내가 마무리를 짓지 않아 새로운 시작에 누를 끼칠까 하는 개인적인 노파심 때문이었을 것이다.(내가 활동 마감 페이퍼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15기 활동에 문제가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14기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은 진은영의 <문학의 아토포스>다.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처음 받아 본 문학평론집이었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는 평론가 지망생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문학의 아토포스> 중에서도 <감각적인 것의 분배>란 제목의 글을 참 좋아한다. '문학의 역할'과 관련한 진은영의 고민과 애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뷰를 쓰지 않은 두 권의 책 중 하나가 이 책이다. 문학평론집의 리뷰를 쓰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평론 공부가 꽤나 지난한 일이 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그래도 리뷰를 얼른 써야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14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책 다섯 권은 다음과 같다.


<반란의 도시>,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철학자와 하녀>, <뉴스의 시대>, <문학의 아토포스>





























이 책들은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던 책들이다. 다른 책들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공감을 얻고 많은 것을 던져준 것은 이 책들이었다. <반란의 도시>는 생소했던 도시권과 관련된 논의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어려울지도 모르는 과학이란 학문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철학자와 하녀>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가져야할 가치관과 앞으로 인문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가야 하는가에 관한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뉴스의 시대>는 개인적으로 대학언론에 몸담고 있는데, 앞으로 기사를 쓰면서 기존의 뉴스가 담지 못했던 감정, 사건의 서사, 맥락을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문학의 아토포스>는 평론 공부를 하는데 좋은 지침이 되는 책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알라딘 15기 신간평가단이 발족하게 된다. 나도 개인적인 일들이 마무리되는 시기라 좀 더 의욕적으로 신간평가단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살포시 15기 신간평가단에 지원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된다면 14기 보다는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되지 않더라도 항상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어찌되었든, 알라딘 14기 신간평가단 활동은 나의 독서와 글쓰기 인생에 좋은 일부가 되었다.


꽤 늦었지만 14기 활동을 할 수 있게 뽑아준 알라딘과 수고하신 신간평가단 담당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찬가지로 함께 활동한 14기 신간평가단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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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0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신간도서 중에 주제와 내용이 어려운 게 있으면 처음에는 읽기 시작하는 것에 겁이 나요. 그러다가 슬슬 읽어보면 정말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아무튼 14기 활동을 하느라 수고했습니다. ^^
 

딱히 놓아둘 데도 없고, 아직 읽을 여유도 없기에 침대 옆에 박스 채로 쌓아두었다. 조금 더 있으면 여기에 세 박스가 더 추가될 예정이다.

좋다.

책을 읽는다는 것을 넘어 책을 사는 것에 매료되었다.
이 욕망을 억제하고 책 읽기에 집중할 수 있을까.

좋긴 하지만 고민이기도 하다.

둘다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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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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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서 사자방이라는 단어가 핵심적인 키워드로 떠올랐다. 사자방이란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을 뜻하는 말로 최근 밝혀져 논란이 된 자원외교와 방위산업 비리를 해결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사자방 국정조사를 요구하면서 이슈가 됐다.

 

사자방 비리뿐만 아니라 허울뿐인 부동산 대책, 정부나 지자체가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내놓는 여러 토건 사업 등도 마찬가지다. 항상 야심차게 시작하곤 하지만 끝은 비리와 재정적자로 얼룩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여러 개발 사업으로 서민 경제에 이바지하겠다는 정치인의 공약은 사실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 공약(空約)이거나 정치적 레토릭(rhetoric)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인이나 많은 부를 축적한 이들, 즉 특권 계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부패하는 사회에서 권력과는 상관이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이 같은 고민을 담은 책이 있다. 바로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 <반란의 도시>에서 하비는 도시권, 즉 도시에 관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권계층에 의한 도시권의 전용(專用)

 

기득권층의 부패를 논하면서 도시권이라는 생소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일견 이상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하비에게 있어 도시권은 중요한 개념이다. 하비의 논의에 따르면 도시는 잉여자본의 해소, 요컨대 도시는 자본주의의 화장실로 기능해왔다. “자본주의는 도시 공간의 형성에 필요한 잉여생산물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 정반대의 관계도 성립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려면 도시 공간의 형성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본주의 발전과 도시화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29) 인 것이다.

 

잉여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진 이는 자본가다. 다시 말하면 도시가 자본가의 이해관계와 논리에 따라 발전해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뉴욕 시장인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는 개발업자와 월스트리트, 초국적 자본가계급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뉴욕을 재편”(58) 한 것만 봐도 도시가 얼마나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다.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내 다수의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4대강 사업이나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부동산 대책, 각 지역의 여러 토건 사업들은 도시권을 무분별하게 전용(專用)한 사례들이다. “특권적 부동산 소유자의 개인적 자산 가치를 증진하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쪽으로 공공 투자를 분배하려는 욕심”(146) 때문에 벌어진 참극인 것이다.

 

도시의 역사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시권이 자본가에게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비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도시는 해당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구성해낸 결과물이고, 도시권은 자본가뿐만 아니라 도시의 구성원 모두가 누려야하는 권리라고 말한다. 과거 특권적 계층에 의해 도시권이 전용(專用)되어 온 역사를 끊어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시권을 되찾으려면

 

도시권을 쟁취하기 위한 핵심은 먼저 도시의 구성원들 스스로 자신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수많은 대도시에서는 취약계층을 상대로 착취와 약탈이 끊이지 않고 자행된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싸워 실질임금을 얻어 냈다 해도 소비 영역에서 벌어지는 착취 활동이나 약탈 활동을 통해 자본가는 그만큼을, 아니 그 이상을 손쉽게 도로 가져간다. 도시 저소득층 대다수는 노동을 과도하게 착취당하는 것도 모자라 빈약한 자산마저 약탈당하고 있다.”(108)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다음 단계인 연대로 이행할 수조차 없다.

 

자본의 논리에 편승하려는 정부와 일부 특권 계층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도시 구성원 간의 연대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처럼 경제 민주주의 역시 시민의 조직된 힘이 가장 필요하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시권을 가지고 있지만 연대하고 조직하지 않으면 너무나 미미한 힘일 수밖에 없다.

 

도시는 파편화된 현대인을 묶을 수 있는 좋은 매개다. 같은 지역에 산다는 것은 동질감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조직이라는 것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서서 총대를 메어야 한다. 도시의 구성원들을 묶어줄 구심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비는 이를 각 지역의 노동조합이 담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은 이미 조직된 단체이며, 도시 안에서 직접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역민들과의 연대도 용이하다.

 

계급적 착취의 역학은 일터에만 한정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착취의 이차적 형태는 주로 상인, 지주와 건물주, 금융업자가 조직적으로 저지른다. 그 영향은 공장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에서 주로 감지된다. 착취의 이차적 형태는 자본축적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계급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 언제나 필요한 것이었다. ‘약탈에 의한 축적’, 지대와 임대료 갈취, 화폐와 이익의 부당한 착취 등은 일상생활의 질을 둘러싸고 대다수 주민들이 느끼는 수많은 불만의 핵심을 이룬다. 도시의 사회운동은 보통 이런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노동은 물론 생활을 둘러싸고 계급권력의 영속화가 조직되는 데서 도시 사회 운동이 발생한다. (221)

 

노동조합에서 시작해 도시 사회 운동까지 진화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비의 전략이다. “수많은 노동 분업 안에서 뿔뿔이 흩어져 존재하는 사회적 공간과 장소의 엄청난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모색”(234)함으로써 도시권을 쟁취하는 것이 하비의 궁극적인 목표다.

 

반란의 도시를 위하여

 

평소 우리나라 국민들은 도시권에 관한 인식이 아주 미비하다. 노동조합 조직률도 매우 낮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스캔들보다 연예인의 스캔들에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때로는 2008년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나 세월호 진상조사 촛불 시위처럼 폭발적인 정치참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이라는 것이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것은 필요한 일이나 충분한 일은 아니다. 2008년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는 정부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나 그 다음부터는 면역이 생기기 마련이다. 촛불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과격해져야 한다. 촛불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모든 일을 다 해냈다고 자위해서도 안 된다. 참여를 넘어 촛불의 힘을 조직화하고, 한 목소리로 정부에게 요구해야만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반란의 도시로 진화하는 것. 그것이 하비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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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니체 전집 21권을 비롯한 수십 권의 책을 사면서 산 책을 다 읽기 전에는 책을 사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책을 사고 싶다는 욕망은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신간 여섯 권을 또 사고 말았다.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주변의 평이 워낙 좋았다. 김연수 소설가의 <소설가의 일>은 개인적으로 김연수 소설가의 소설을 좋아라 하기에 그의 에세이는 어떨까 궁금했다.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에서 밀란 쿤데라의 유작이 될지도 모른다기에 덜컥 장바구니에 담았다.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과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사의 괴로움> 역시 빨간책방의 영향을 받았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김중혁 작가가 상당히 좋아한다기에, 그리고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 작가이기도 해서 구입했다. <장서의 괴로움>은 나의 모습을 책을 통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여기 저기서 들리는 극찬에 읽어보려고 생각만 하다가 이번 기회에 함께 질러버렸다.

언젠가 읽을 것이란 생각으로 책을 구입하긴 하지만 언제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구입해놓고 고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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