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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마디 말로도 박수 받는 힘 - 사람들 앞에 홀로 선 당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강헌구 지음 / 예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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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기 위해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라는 담론이 팽배해 있는 지금 사회에서 글로 먹고 살기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걱정이 앞선다. 내 지도교수님도 제자들의 앞날을 걱정하시면서 매번 하시는 말이 있다. "문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 즉 학자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나는 저술 능력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강의 능력이다."


저술 능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지만 솔직히 강의 능력은 자신이 별로 없다. 만약 지금 사람들 앞에 홀로 선다면 어버버 거리다 부끄러워 줄행랑을 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가지던 차에 위즈덤하우스 퍼플소셜평가단 3기 첫번째 미션도서로 『단 한마디 말로도 박수 받는 힘』이라는 책이 왔다. 후에 하게 될지도 모르는 강의나 강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니 책이 반가웠다. 





단 한마디 말로도 박수 받는 힘의 저자는 강헌구 교수다강헌구 교수를 가리켜 부르는 말이 있다바로 비전 강연의 달인이다. 20년간 2,000여 회 넘게 강연을 해오면서 이 타이틀이 생기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겠는가그만큼 초보강사 시절의 고충을 공감하고 스타강사가 되기까지의 노하우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동안 가슴 뛰는 삶》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등의 베스트셀러를 낸 바 있는 그가 이번에 사람들 앞에 홀로 서서 그들을 감동시키고 박수 받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를 썼다


강헌구 교수는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남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3년 이후 장안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995년에 '비전스쿨'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을 위한 비전 형성 교육에 힘써왔다. 1998년부터 경기방송과 대전극동방송 라디오에서 '21세기 꿈터', '생방송 시사 21'을 진행하면서 비전의 힘과 형성원리를 전파한 바 있다한국비전교육원을 통해 기업학교관공서 및 개인들에게 비전 교육을 실시해왔으며, 200여 명의 강사를 양성해왔다.(알라딘 제공)

 




강헌구 교수는 먼저 '무대 위에 홀로 선 그대에게' 자신의 노하우가 담긴 열여덟 가지의 감동 기술을 서술한다. 이 열여덟 가지의 기술은 다섯 가지 테마로 나뉜다. 그 테마는 선제기습, 집중, 핑퐁, 대변인, 결행이다. 선제기습과 집중은 강연을 할 때 청중들의 이목을 끄는 기술이다. 강헌구 교수는 초반에 청중들을 휘어잡지 못하면 강연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강연을 시작할 때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는, 선제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청중들을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청중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은 이야기뿐이고 강연자는 이야기 꾼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핑퐁과 대변인은 강연을 어떻게 끌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이다. 핑퐁은 강연자가 청중에게 일방통행식, 즉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과 핑퐁처럼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식 강연은 쉽게 지루해질 수밖에 없고 딱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그래서 청중과 대화하면서 강연이 쌍방향의 교류가 되야 한다고 강헌구 교수는 말한다. 대변인은 청중의 언어로, 청중의 입장에서 강연자가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자의 입장에서 말하다보면 자칫 설교가 되기 쉽다. 그리고 어려운 강의가 될지도 모른다. 강헌구 교수는 강연자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중과 같은 언어를 쓰다보면 청중과 더욱 가까워지고, 강연은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헌구 교수는 단언한다.


결행은 강연을 통해서 청중을 변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강연을 듣고 거기서 끝나는 것은 강연을 단순히 소비하는 행위일 뿐이다. 강연자의 강연은 청중을 움직이게 하거나, 그만두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강헌구 교수는 이를 강조한다. 청중을 결행하게 만드는 강연이 진짜 강연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강헌구 교수는 '한 판 승부가 임박해오는 그대에게' 필요한 공식과 조건을 이야기 한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강연의 기술이다. 나는 아직 강연의 기회가 없어 숙지해두는 것에서 그쳤지만 누군가 강연을 해야하고 그것이 임박했다면 이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 CEO와 직장인을 위한 토크파워 공식


말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부터 버려라

가설사고단어지출예산템플릿으로 무장하라

토크파워 9단계 공식으로 승부하라

- 1단계인트로청중의 의자에 접착제를 붙인다

- 2단계토픽소개자신에게 자신감을 준다

- 3단계핵심 메시지 선언청중에게 신념의 마법을 건다

- 4단계배경 설명인연을 말하며 다가선다

- 5단계메뉴 소개길을 보여준다

- 6단계개별 메뉴 서빙감동을 만끽하게 한다

- 7단계클라이맥스결단 촉진제를 투약한다

- 8단계클로징: 2리드 상황에서 쐐기 골을 추가한다

- 9단계질의응답조금 더 다가선다

전날 밤에서 시작하기 30분 전까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 7가지

 

▶ 백문·백독·백습프로 강사의 조건


박수 받는 즐거움프로 강사의 비전

결정적인 하나의 키워드로 승부한다

뇌에 지식 가공 장치를 설치한다

먼저 성공을 경험하고 그 다음에 강의를 시작한다

프로다운 근성을 발휘한다

당대 1인자에게 직접 배운다그리고 넘어선다

100번을 연습하라그리고 1,000번을 초대 받아라

스타 인큐베이터프로 강사가 되는 마스터플랜

 

 

이제 말을 잘하는 것도 큰 재산인 시대다.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면 강연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요건이 된다. 그런데 무대에서 사람들 앞에서 홀로 섰을 때 말을 잘 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과 다름 없다. 나도 앞으로 공부를 하면서 조금의 성취를 이루고, 책을 쓴다면 강연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강헌구 교수의 『단 한마디 말로도 박수 받는 힘』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강연이나 말을 잘 하고 싶다면 『단 한마디 말로도 박수 받는 힘』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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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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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의식의 악순환을 끊어내자





  보수주의자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진짜’ 보수주의자로 나선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의 공저인 『공범들의 도시』가 세상에 나왔다. 『공범들의 도시』는 프로파일러이기도 한 표창원 교수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범죄라는 키워드를 매개로 바라본 대한민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공범들의 도시』는 대한민국이 왜 공범들의 도시가 되었는지를 일련의 실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범죄 자체에 대한 것에서 시작해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구조, 범죄를 예방할 수 없는 사법적 시스템,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벌인 대선개입 사건과 같은 최근 정치적 이슈까지 다양한 매개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보고 있다.


  표창원 교수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불이익을 걱정해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고 있다. 이웃에서 일어나는 작은 범죄에서부터 최근 공권력의 대선개입 사건과 같은 거대 범죄까지 모두들 외면해버리고 마는 현실이, 비록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지만 범죄에 침묵함으로써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공범의식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정부와 국가기관, 권력자와 고위 공직자들이 눈앞의 이익과 보신을 위해 거짓을 강요하고 정의를 짓밟는 행태를 지속하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그 뿌리부터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표창원 교수가 언급했듯이 이런 공범의식은 국민이 정부와 정부가 집행하는 공권력을 신뢰하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이런 불신은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서도 그 원인이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가진 정부와 공권력의 불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아주 뿌리가 깊다. 두 번의 쿠데타와 국민을 학살한 사건은 공권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국민이 정부와 공권력을 불신하기 시작하면 공권력이 담당하는 치안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 수단 중에서 가장 손쉬운 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총기를 사면된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총기 소지가 불법이기 때문에 그럴듯한 자위의 수단이 없다. 그렇다면 항상 주변 사람들을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 볼 수밖에. 이렇게 국민의 공권력 불신은 결국 국민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든다.





※ 사진 출처 - 프레시안 협동조합



  국민이 서로를 불신하게 되면 사회는 공범들의 도시가 되고 만다. 국민은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무릅쓰고 남을 도울 이유가 없다. 불이익을 감수할 어떤 기제도 공범들의 도시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도와준 사람만 바보가 되는 사회. 그것이 바로 공범들의 도시다. 표창원 교수는 이를 “패배나 불리한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으며 온 힘을 다해 저항한다. 모두가 퍽퍽하고 삭막한 불신과 의심, 경계, 피해의식의 악순환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고 표현한다.


  이런 공범의식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신뢰회복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정부의 공권력이 신뢰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지만,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남는 것은 국민 서로의 신뢰회복뿐이다. 신뢰회복이 없다면 어떠한 연대도 불가능하다. 표창원 교수는 대한민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2008년부터 시작해 어떤 거대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타난 촛불을 근거로 한다. 아주 느슨한 연대이기는 하지만 촛불은 정의와 신뢰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맹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표창원 교수의 바람처럼 이제 대한민국이 서로를 불신하고 의심해 공범들의 도시가 되는 것에서 멈추고 정의가 살아있는 신뢰의 도시가 되길 소망한다. 『공범들의 도시』가 이 소망을 이루는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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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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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의 <모던 하트> 리뷰를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바 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 전화가 왔다. 글이 좀 부실하니 속된 말로 빠꾸를 먹이겠다고. 여러 피드백을 해주기도 했다. 저번에 정식 기사로 채택되지 못하고 생나무에 걸린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전화 같은게 오지 않았던 터라 생경했다. 갑작스럽게 받은 전화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거기서 뭐라고 하든 고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고쳐서 다시 올리기로 해서 이렇게 다시 쓴다.


급작스런 피드백이라 마음에 아릿한 감정이 남아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글을 중구난방으로 쓴 것이 참 부끄럽다. 조금은 떨떠름하게 전화를 받았던 것 같은데, 이 글을 빌어 전화를 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예전엔 글의 얼개를 잡고 개연성을 가지는 글을 쓰려고 했었는데, 이번 <모던 하트>의 리뷰는 그런 것 없이 마구잡이로 썼던 것 같다. 아마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후 첫 글이라 그런 감이 있었을 것이다. 약을 먹었더니 교훈이 남는다. 앞으로는 꼭 구성을 잡고 글을 쓰리라.


사설은 이만 하고, 정아은의 <모던 하트> 다시쓰기 시작한다.





▲ <모던 하트> 표지(한겨레 출판)


21세기를 살고 있는 청년들이라면 이런 말들을 수없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SKY, IN서울,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 삼포세대라(삼포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뜻한다)는 말은 또 어떤가. 아주 익숙한 말이다. 정규직, 비정규직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은 이제 아주 귀에 착착 달라붙는 말이 됐다. 현 시대의 청년들은 개개인의 이름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대학의 '급'과 직장의 규모 등으로 규정되고 있다. 더군다나 돈이 없어 연애와 결혼조차 포기했다니,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가.


이제는 대학을 넘어서 고등학교와 중학교, 심하면 초등학교까지 이런 현실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에 자식을 보내려 안달하는 부모들, 최근까지 불거졌던 국제중 사건까지. 남들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현 세태가 이런 현상을 조장하고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당신에게 줄 돈은 없다'고 속삭이면서 말이다. 이렇게 돈에 노예가 되기 시작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애도, 사랑도, 내 인생도.


누구나 현 세태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해 속시원히 꼬집어준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한겨레문학상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소설 한 편이 당선됐다. 바로 정아은의 <모던 하트>(한겨레출판 펴냄)다. 출판사에서는 "익숙하면서도 쿨한 대도시, 연인과 직장의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려낸 세태소설"이라고 소설을 소개하고 있지만, 필자는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너무 현실적이라 현실감이 없는 우리네 풍속도"라고 말이다. 





- 헤드헌터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 본 학벌지상주의. 



출신대학을 왜 그렇게 따져요? 일만 잘하면 되지. 희한한 사람들이네.  (중략) 미연씨가 아직 대한민국을 모르는구나. 대한민국에서 출신대학은 낙인이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 경력 좋고 대학원 좋은 데 나와봐야 아무 소용없어. 대학을 좋은 데 나와야지. 학부를 좋은 데 안 나온 사람은 절대 A급이 못 돼. 외국계 회사도 정말 인지도 높은 회사는 사람 뽑을 때 출신대학 다 따져. Z사 봐. SKY 출신 아니면 아예 이력서도 보내지 말라고 하잖아? 서울대 대학원, 아니 하버드 대학원 나와도 대학 좋은 데 안 나오면 다 꽝이라고. (본문 98~99쪽 중에서)


필자도 대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공부만 잘하면, 일만 잘하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그저 환상인 것임을 안다. '더 좋은 대학에 다니는 일 잘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보증이나 추천이 없다면 지방대에 다니는 학생이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보다 경쟁률이 떨어진다. 토익 점수가 낮다면,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경쟁률은 더 떨어질 것이다. 사람을 뽑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사람'을 보지 않고, 어떤 이가 더 나은 가를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대학 하나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세상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미연도 학벌에 대한 콤플랙스를 가지고 있다. 미연이 뇌까리는 말들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리라 생각한다. 학벌지상주의에 대한 분노.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야 하기에 학벌에 안달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수치. 지잡대라 천대받는 자괴감 등. 언어로 표현하기에도 복잡미묘한 감정들이다. 이 세상에 사는 누군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최종 이름값은 ‘전문대 졸업’이 아니라 ‘헤드 핸 코리아 재직’이라고 생각해왔다. (중략) 대체 이때까지 세상에서 무얼 배웠던 말인가. 수치심으로 얼굴이 홧홧거린다. 가짜 신분증을 들고 다니다가 들킨 기분이 이럴까. (모던하트 100쪽 중에서)


서울대 출신 의사와 Y대 출신 연구원 태환. 갑자기 그들이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고귀한 귀족처럼 느껴졌다. 나는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는 존귀한 계급에 속한. 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설령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면 나는 이미 비천한 존재이다. (모던하트 211쪽 중에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명절에 친척들은 서로 자식들 자랑하기 바쁘다. 누가 어느 대기업에 들어갔니, 누구는 어떤 대학에 들어갔더라 등등. 대부분의 부모들이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좋은 감정부터 품는다. 그 사람이 어떤 인격과 성품을 가졌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를 후광효과라고 말하던가. 어떤 사람의 본 모습은 그 사람이 가진 후광(대학, 직위 등)에 가려 은폐되고 오로지 그 후광으로만 평가된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들을 겪었거나 보통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필자 또한 여기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엄마에게 제부는 일종의 로망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 자리를 내주지 않던 세연이 서울대에 못 가고 K대에 가게 되었을 때부터, 엄마는 사위라도 서울대 나온 사람을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모던하트 144쪽 중에서)


작가는 이런 세태를 꼬집기 위해 제부(동생의 남편)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작가는 이 세상에서 사란을 판단하는 잣대가 학벌만이 '다'가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제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그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대 로펌이라는 K법무법인을 다니고 있었다. (중략) 제부는 3년 동안 K법무법인의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매해 고시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 후로 아예 사무장을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고시 준비’에 들어가 지금에 이르렀다. (모던하트 53~54쪽 중에서)


제부란 인물은 서울대 법학과라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대학과 최고의 학과에 진학했지만 사법고시에는 번번히 낙마한다. 그런 현실에 낙심했는지 언젠가부터는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집에서 밥만 축내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서울대라는 대단한 곳을 졸업한 그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런 제부를 보고도 세상 사람들은 학벌을 좇고, 대기업을 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결혼하길 원한다.


학벌이 좋아서, 다니는 직장이 좋아서, 돈을 많이 가져서.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인연을 맺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살아보면 그런 것들은 딱히 중요하지도 없는데 말이다. '성격 차이' 때문에 헤어지는 부부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직장을 구하는데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이력서에나 한 줄 써내는 것 외에는 그다지 쓸모도 없는 대학 졸업장이 인생의 대부분을 결정한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슬픈 일이다.



- 부동산에 목매는 사람들을 통해 본 물질만능주의



20억. 여자는 선영과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녹물이 나오는 30년 된 아파트에 전 재산과 미래 기회비용을 올인하고 궁핍하게 살면서 은마가 타워팰리스로 변신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선영과 만나고 온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부동산 사이트에 접속해서 은마 아파트의 시세를 조회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은마 아파트를 스무 번도 넘게 사고팔았다. (모던하트 180쪽 중에서)


소설은 학벌뿐만 아니라 부동산 대박을 기대하는 이들도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서민들의 재산이 부동산에 쏠려 있는 특이한 나라다. 더군다나 외국에서는 주택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아파트를 수 억의 빚을 끼고 사는 이상한 나라다. 하우스푸어라는 신조어도 여기서 등장했다. 집을 가지고는 있지만 대출이자 때문에 일상생활조차 허덕이는 사람들.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물론 수많은 이유가 있다. 자신의 집을 가지고 싶다는 일념, 부동산으로 대박을 치고 싶다는 헛된 기대 등 아주 다양하다. 그런데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소망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집이란 주거공간이라는 개념보다는 사면 높은 값에 되팔 수 있는 것, 더 크게는 투기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크다. 사람들은 집을 살 때 자신만의 집을 가졌다는 생각보다는 집 값이 오르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이다. 이것이 다 이들만의 잘못일까.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기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다. 현재의 삶을 즐기기보다는 집을 사기 위해 악착같이 절약하고 돈을 모은다. 그리고 아파트에 자신의 "전 재산과 미래의 기회비용을 올인"하고 또다시 궁핍하게 살아간다. 인생의 대부분을 아파트에 바친다니, 생각만해도 소름끼치지 않는가. 지금도 자신의 집을 사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과연 지금의 생활이 행복한가. 아파트를 산 이후에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 성역이라 여겼던 사랑도 학벌과 물질에 물들다



태환은 그날 참가했던 50여 명 가운데 가장 돋보였다. 일단 눈에 띄게 키가 컸고, 길고 가는 얼굴에 날렵하고 높은 콧대, 살짝 긴 듯한 머리가 순정 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프로필도 착했다. 국내 제일의 사립대학이라 불리는 Y대를 졸업한 뒤 미국계 유명 핸드폰 제조업체인 H사에 다니고 있었다. (모던하트 75쪽 중에서)


<모던 하트>의 절반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순수, 열정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에서 순수와 열정은 멀어지고 능력과 재산을 떠올리게 된다. 뭐 외모까지 좋다면 금상첨화일지도. 소설 속에서 미연은 태환에 대한 호감을 "국내 제일의 사립대학인 Y대"와 "미국계 유명 핸드폰 제조업체인 H사"에서 찾는다. 물론 외모도 포함이다.


태환은 채식주의자에 클래식을 좋아한다. 미연은 채식과 클래식에는 젬병이지만 태환과의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것 쯤은 참아주기로 한다. 외모와 학벌, 준수한 직장까지 갖추고 있는 완벽남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상도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만나려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비하를 하면서도 머리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을 빛내줄 것이라 믿고 만다.


이런 미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흐물이란 인물이다. 흐물은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연봉이 높은 전문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연을 위해 "돈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미연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흐물에게 일말의 호감도 없다. 흐물은 미연에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지방대를 나와 겨우 공사에 들어간 놈"일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만나는 것은 흐물이 자신이 들어놓은 보험이기 때문이다. 흐물이 자신에게 보낸 꽃바구니조차 "태환에게서 온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하니 더이상 말은 필요없다. 


흐물이 좋은 게 아니라 보험에 들어놓고 싶은 거 아닐까? 나이는 드는데 옆구리는 허전하니 비상용 남자나 하나 구비해놓자, 뭐 그런 거.” (중략) 나는 화가 치밀었다.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말하는 민선의 경솔함에, 은근히 인화 언니를 좋게 생각하는 흐물의 속물스러움에, 흐물 같은 남자에게 관심을 표함으로써 스스로 품격을 낮춰버리는 인화 언니의 바보 같음에. (모던하트 117~118쪽 중에서)


흐물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학벌과 외모를 메우기 위해 미연에게 돈을 쏟아붇는다. 필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외모에는 딱히 경쟁력이 없어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영화를 보여주기도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대체로 통하지 않았다. 필자를 미연처럼 보험으로 여기거나, 부담스러워 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외모나 학벌은 넘어서기 힘든 것이었다. 미연 역시 끝내 흐물을 선택하기보다는 태환에게 마음을 준다. 성역인줄만 알았던 사랑에도 이제 학벌과 물질이 들어와 버렸다.





- 그냥 읽어넘기기보다는 한 번쯤 돌이켜보기를



<모던 하트>는 "너무 현실적이라 현실감 없는" 소설이다. 그래서 쉽게 읽고 넘겨버리기 쉬운 소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현실적이기에, 현실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어떤 세계에 속해 있으면 그 바운더리 안에서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세계의 전체를 보게 되면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모던 하트>는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땅에 있을 때 크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하늘에서 보면 작아보이는 것처럼. <모던 하트>가 현재 살고 있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냥 읽어넘기기보다는 한 번쯤 돌이켜보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책동네에도 게재됐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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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궁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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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한국인들이 듣기에 이 단어는 부정적이다. 오랫동안 유교문화권에 속해있었고, 지금은 기독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터다.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하고 있는 두 종교이기 때문에 욕망은 터부시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지곤 있지만 여전히 욕망은 이전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성욕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 성욕이라고 하는 것은 종족보전을 위한 본능임에도 언제부터인지 부정한 것으로, 더러운 것으로 취급받았고 어린이들은 그렇게 교육받고 있다.



▲ <에메랄드 궁> 표지(나무옆의자)


아마 지금 떠들썩한 '윤창중 사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윤창중은 대통령의 방미 중에 일어난 성추행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미국 문화를 알지 못한 점 반성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의 속뜻은 '한국 문화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한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만약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쉬쉬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서는 없어지지 않을 사건들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음지에서 양지로 논의를 끌어올리는 일이 필요하다.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논의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을 내릴 만한 작품이 있다. 바로 박향 작가의 <에메랄드 궁>이라는 소설이다.


 

 욕망의 집합소, 에메랄드 MOTEL


<에메랄드 궁>은 세계일보에서 주관하는 제9회 세계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에메랄드'라는 이름을 가진 모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텔의 여주인의 눈으로 바라본 내용으로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여 큰 서사를 이루는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에메랄드 궁>은 표출되지 못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현실에서도 그렇듯이 모텔은 변질된 욕망의 장이다. 대표적으로는 성매매의 온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에메랄드 궁>은 맨 처음 '선정'이라는 인물이 나오면서 시작되는데, 이 인물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상품으로 내놓은 사람이다. <에메랄드 궁>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불륜, 원조교제, 혼전동거, 혼전임신 등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거침없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에 성매매 특별법이 만들어졌을 때는 이 동네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예 손을 놓고 빚을 등에 진 채 이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모텔 사업은 안 되는구나 하고 죽을 준비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의 풀씨를 심어준 것은 바로 인간들의 욕망이었다. 몸을 불태우고 싶어 안달을 하는 연인들은 어둠을 틈타 이곳을 찾았다. 일명 성파라치라는 것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어도 연인들에게는 둘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무슨 중요임무라도 맡은 사람처럼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연인들이 모텔에 잠입을 하면 연희는 그 모습이 기특해서 표창장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이 당장 종말을 맞이하더라도 인간들이 하고 싶어 안달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녀 간의 그 짓일 거였다. - <에메랄드 궁> p. 27

한국 사회에서 연희처럼 직설적으로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손을 휘휘 내젓거나 얼굴을 붉히며 남우세스러워 할 사람들이 태반이다. 모든 사람들이 욕망, 그것도 가장 뜨거울 성욕을 스스로 억누르고 있다. 아무도 어떻게 표출해야할지 알지 못하고, 한국 사회는 갈수록 성욕을 억압하고 있다. 혼자서 성욕을 풀 수 있는 행위도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라는 애매모호한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성욕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해소하지 못하면 어떻게 변질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한국 사회에 성추행, 성폭행이 난무하는 것이 일견 이상하지도 않다.

"세상이 당장 종말을 맞이하더라라도 인간들이 하고 싶어 안달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녀 간의 그 짓일 거였다"는 말에 한국 사람들은 속으로는 긍정하면서도 겉으로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칠 것이다. 사람들은 욕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 욕망을 실천(?)하는 이들을 보면 비난하며 손가락질한다.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허울 좋은 말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아마도 그 속내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니 남들도 할 수 없게 만들자는 되먹지 못한 심보일 것이다. 음지에서 끌어내 모두 같이 해소하면 그만일 것을 왜 어렵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회적 억압을 피해, 에메랄드로 피신하다


하지만 연희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즈음 연희는 여상을 졸업하고 중소 섬유업체에서 경리 일을 보고 있었다. 매일 아침 그의 가게 앞을 지나 밤이면 다시 그 가게 앞을 거쳐 돌아왔다. 노란 백열전구 아래 권태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는 연희에게 좋은 낚싯밥이었다. 어쩌다 가게에 들러 물건을 고를 때, 옆을 스치거나 머무는 그의 몸에서 풍기는 눅눅한 땀 냄새에 연희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 <에메랄드 궁> p. 47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속언이 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일이라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에메랄드 궁>의 주인공 연희도 마찬가지다. 남편인 상만은 유부남이었지만 연희와 상만은 자신들이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비록 현재는 비틀어졌지만 당시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주변의 시선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 법이다. 상만과 연희는 사랑의 도피를 시작했고, 마지막 종착지는 바로 '에메랄드'였다.

상만과 연희 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서 에메랄드에 모여들었다. 임신 중절 수술을 하고도 그 짓을 하러온 커플, 상만과 연희처럼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온 경석과 혜미, 차에서 그 짓을 하기 벅차 모텔 앞을 서성거리는 커플, 외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모텔을 찾아온 한 아내, 원조교제를 하려다 실패한 학생과 아저씨, 훼방꾼으로 돌변한 자식들을 피해 노년의 사랑을 꽃피울 장소로 모텔을 찾은 노부부까지. 수많은 사연들을 가진, 사회에서 용납해주지 않는 사랑들이 에메랄드로 피신해왔다.

한국에도 에메랄드와 같은 모텔들이 즐비하다. 소설 속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처럼 한국에서도 학교나 주거지 주변에 모텔들이 들어서면 시위를 하거나 지나가면서 손을 처 들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가곤 한다. 하지만 모텔들은 없어지기보다 더욱 기승을 부린다. 성관계를 터부시하는 사회 때문에 카운터에 주인이 지키고 있지 않는 무인모텔도 들어설 정도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도 없는 법. 수요가 많기 때문에 모텔들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일 테다. 이런 모텔에서 합의 하에 사랑을 나누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사회의 눈을 피해 외줄타기처럼 자신들의 사랑을 이어나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에메랄드 궁>의 인물들도, 현실에서 소설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욕망, 이제 좀 놓아두자 


할머니는 화분 하나를 내밀었다. 흙만 채워져 있을 뿐 싹도 나지 않은 빈 화분이었다. 연희는 무심결에 화분을 받아들었다. 화분은 가볍지만 화분이 감내해온 세월의 무게가 연희의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가 주신 화분이라우. 흙이며, 화분이며, 씨앗이며 그 때 그대로죠." (중략) "힘들 때나 그리울 때나 외로울 때나 화분을 들여다보며 말하고, 꿈꾸고, 눈물 흘렸어요." - <에메랄드 궁> p. 208~209

작가는 결말로 '다현'이라는 어린 아이를 희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실 이런 결말은 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필자는 <에메랄드 궁>에서 앞서 언급했던 노부부에 주목했다. 노부부는 자신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할머니는 노신사가 준 화분을 보며 "힘들 때나 그리울 때나 외로울 때나 화분을 들여다보며 말하고, 꿈꾸고, 눈물 흘렸다"라고 말했다. 이는 언뜻 보면 인내하고 참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노구를 이끌고 나무를 타기까지 한다. <에메랄드 궁>의 노부부는 필자가 보기에 긍정적인 욕망의 상징이다. 사랑을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노부부가 작가가 다현이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희망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결코 불륜이나 원조교제와 같은 범죄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에메랄드 궁>이 음지에 갇혀 변질되고 있는 욕망을 제대로, 건전하게 표출하자는 뜻이다. 그것의 한 모범이 소설 속 노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에메랄드 궁>이 세계문학상에서 대상을 탄 이유는 추측컨대 한국 사회의 숨겨진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기 보다는 이 <에메랄드 궁>이라는 소설에서 시작해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공무 중에 일어난 성추행으로 인해 한국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책동네에도 게재됐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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