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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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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3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 무분별하게 세월호 참사를 보도했던 수많은 언론은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잃었다. 종이 신문 몇 종과 방송국 몇 개에 불과했던 뉴스매체는 인터넷이 생긴 이후 끊임없이 늘어났지만, 매체신뢰도는 그 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줄어들었다.

'신뢰를 쌓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쌓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신뢰를 쌓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언론을 향한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치명상을 입은 지금, 새로운 시도 혹은 새로운 모색을 하지 않으면, 언론은 더 이상 사회에서 기능하지 못하는 죽은 매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소개할 책인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문학동네, 2014)는 현 뉴스의 비판과 더불어 뉴스의 미래를 모색한다.

뉴스가 지루한 이유

"언론은 자신이 우리에게 매일 전하는 것들이, 몇 달 혹은 심지어 몇 년에 걸쳐 다듬어진 안목을 통해서만 그 진짜 형태와 논리 구조를 대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의 극히 일부만 뽑아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길 꺼린다. 따라서 많은 경우 단편적인 문장들보다 장별로 나뉜 이야기를 읽는 쪽이 더 현명하다는 점을 시인하는 데도 우물쭈물댄다.(29쪽)"

뉴스는 어떤 사건에서 모든 사족을 쳐낸, 극도로 정제된 사실이다. 이를 기자들은 '팩트(fact)'라고 부른다. 이러한 팩트들은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중요한 요소지만, 팩트는 단지 어떤 사건의 핵심에 해당할 뿐이다. 핵심이 각 핵심들을 서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뉴스가 지루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 온다. 소설이 흥미를 유발하는 이유는 어떤 사건이 벌어진 서사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스트레이트 뉴스는 사건의 서사를 제거하고 사건의 핵심만 전달한다. 그 때문에 기자가 중요하다고 여겨 취재한 뉴스는 독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쉽게 사라지고 만다. 

뉴스는 보통 지루함을 떨쳐내는 방법으로 "그저 사람들에게 '진지한' 뉴스를 좀 더 많이 소비하라고 겁을 주"곤 하지만, 진정한 해결책은 거기에 있지 않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뉴스의 지루함을 없애는 방법은 "소위 진지한 뉴스 매체들에게, 대중을 적절히 사로잡을 수 있는 방식으로 중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뉴스의 거리감을 극복하려면...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세력 간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 언론은 연일 이 사건을 보도했지만, 사람의 반응은 '저곳은 또 저러는구나'에 그쳤다. 국내에서 가장 큰 이슈인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벌어진지 4개월 이상 지난 지금, 사건 초반의 절절한 관심도와는 달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처럼 대부분의 국민은 강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 특별한 관심을 쏟았던 사람들도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의 관심이 멀어지는 이유는 일상을 무너뜨렸던 비일상의 사태가 이제 일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지역이 기본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걸 알고 있어야만, 또한 그곳 거주민들의 일상생활, 일과, 그들이 품고 있는 소박한 희망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거기서 벌어진 슬프고 폭력적인 사태에 대해 정확하게 우려를 표할 수 있다.(98쪽)"

뉴스는 항상 끔찍하고 자극적인 일을 보도하지만 그런 보도가 어떠한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끔찍하고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있는 일'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뉴스가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끔찍하고 자극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비일상이 일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일상의 일도 그만큼 보도해야 한다. 

새로운 뉴스, 또 다른 가치

뉴스매체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뉴스의 구독률 혹은 페이지뷰를 늘리기 위해 온갖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의미한 뉴스의 향연이 아니라 독자(讀者)들 스스로 독자적(獨自的)인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가치 있는 뉴스다. 더불어 독자들은 자극적인 뉴스의 시대에서 잠시 한 발 빼는 용기도 필요하다.

뉴스의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개인 스스로의 독자적인 생각이다. 이것은 뉴스를 보고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준다. 이는 정보의 핵심만 모여있는 뉴스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뉴스의 홍수에서 잠시 기어 올라와 예술을 통해 독자적인 가치관을 갖는 것,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이 <뉴스의 시대>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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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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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고령화 사회다.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은 늦춰지고 있는데 반해,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은 낮은 출산율과 높은 노인 인구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사회문제 때문에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별다른 실속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령화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문제 중에서 고독사(孤獨死) 문제가 있다. 고독사란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혼자 쓸쓸히 죽는 것을 말한다. 고독사는 여러 나이 대에서 발생하지만 50대 이상의 나이가 60%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와 관계가 깊다. 고독사는 특히 남성에게서 많이 발생하는데, 그 비율이 70%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공동체가 파괴되고 파편화되는 것은 성별을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겪는 일인데도 왜 남성에게서 유독 고독사가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우에노 지즈코라는 작가가 쓴 <독신의 오후>라는 책에서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이 일본의 모습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괴로운 것은 스스로가 예전의 자유를 잃고 기력을 잃는 거다. 그리고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디는 현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자존심을 산산조각으로 무너뜨린다. 이런 아픔은 과거 권력이나 지위를 누렸던 사람일수록 더 커진다. 여성은 원래부터 대단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던 터라 노후에 연착륙할 수 있지만, 남자의 경우엔 힘 좀 있었던 남성일수록 나이듦이 경착륙이 되기 쉽다. 그러곤 상처받을 것이다.(7)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는다는 것과 같다. 청년에서부터 시작해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타인의 인정과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인정받음을 통해 삶의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의가 아닌 자연의 섭리라는 타의에 의해 은퇴를 하게 되고, 소위 뒷방 늙은이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원동력인 인정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과는 달리 과거에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굉장히 존중받을 만한 것이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수많은 세월을 지내면서 축적한 경험이 있다는 뜻이었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이러한 존경은 개인의 인정욕구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 시대는 수많은 세월동안 축적한 경험이 무용지물로 변해버린 시대다. 자연의 섭리를 온 몸으로 겪어낸 경험을 가진 노인보다 팔팔한 젊음으로 무장한 노동력이 필요한 시대다. 때문에 노동력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는 노인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소외되고 만다. 과거의 나이 듦이 존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나이 듦은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을 뜻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개인의 영역보다 사회의 영역이 훨씬 큰 사회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가해지는 배제의 폭력은 엄청난 강도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 대한민국 남성은 여성보다 더 사회에 밀착되어 있고 더 강한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가해지는 사회의 배제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나이 듦을 거부하는 사회

 

오르막길 반, 내리막길 반.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했는데도 달리는 기차에서 내리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거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중략) 늙는다는 것은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고 피하고 싶다며 부인하며 노화에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날 아침에 덜컥 가는 것이야말로 이상일 것이다.(96)

 

나이든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나이 듦을 거부하는 풍조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늙었다는 징후를 보이면 배제가 될 것이 뻔한데, 어떻게 나이 듦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예컨대 지금까지도 횡행하고 있는 동안 신드롬은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나이 듦을 배척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명백한 상징이다.

 

동안 외모를 유지하기 위한 성형이 성행하고, 젊은 육체처럼 보이기 위한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이상, 나이 듦을 인정하고 나이 듦에 어울리는 인생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또한 고독사를 비롯한 여러 노인 문제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를 것이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싱글력이 필요한 시대

 

대한민국 사회가 노인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이 듦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나이 듦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싱글력이라고 칭한다. 싱글력이란 혼자 스스로의 생활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다. 특히 싱글력은 남성이 길러야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컨대 고독사가 남성의 비율이 높은 것도 현재 남성이 여성의 돌봄에 의존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신의 오후>에 따르면 자립할 수 있는 힘, 즉 싱글력을 기르고 난 후 필요한 것은 바로 인간관계다. 공동체가 파괴된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이루기란 참 어려운 일이지만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필수적이다.

 

책에서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금기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자신과 상대의 전력(前歷)은 말하지도 묻지도 않는다는 금기가 인상적이다. 대한민국 장년 남성들이 자주 떠벌리는, 소위 왕년에~’로 시작하는 말들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 홀로 죽음고독사와 완전 다르다. 고독사는 혼자 고립되어 쓸쓸하게 생을 마치는 죽음인 데 반해 나 홀로 죽음이란 홀로 살아온 인생의 연장선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뿐이다. 싱글의 삶이 결코 고독하지 않은 것처럼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단지 병구완을 할 사람이 없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죽음은 누가 대신해줄 수도 없는 일이며 홀로 완수해야 할 사업. 누군가가 입회해주지 않으면 저세상으로 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260~261)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여러 금기들을 제시하는 것과 더불어 책은 돈으로 돌봄을 산다는 것이나 홀로 죽는다는 것등과 같은 유의미한 논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논의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이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것을 넘어 고착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인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당장에 필요한 일이다. <독신의 오후>와 같은 책을 읽고 개인이 노년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노인 문제가 대한민국 사회가 당면한 사회문제라면, 사회적 차원에서 이에 관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대한민국 사회가 나이 듦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거부하기보다는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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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가을로 접어드는 날씨입니다. 무더움은 조금 가셨지만 날씨에 비해 사회적인 무더움은 아직 여전해보입니다. 그래서인지 8월 신간을 추천함에 있어서 사회적 무더움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8월 신간 추천 들어갑니다.



1. 원자력 프로파간다(사회과학 분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이 터지면 얼마나 참혹한 일이 발생하는지 알려준 사건이다. 본래 일본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 믿음은 산산이 부셔졌다. <원자력 프로파간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의 일본 국민이 왜 원자력이 안전하다고 믿게 되었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원자력 프로파간다>는 실제로 게재됐거나 방송된 광고들 250편을 그대로 담았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기자와 아나운서, 연예인과 유명인, 심지어 일반인까지 등장시키며 광고 타깃층을 세분화했고, 만화, 일러스트, 인터뷰, 기사 형식 등을 다양하게 이용해 때로는 명확하고 때로는 감성적으로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자력 문제를 과학적 증명이 아닌 광고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이후 전 세계는 원전에 관한 경각심을 표출했고, 이에 따라 탈핵 논의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른 길을 겪고 있다. 최근 부산의 고리원전에 관한 수많은 논란과 사건으로 인해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원전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원전을 줄이기보다 늘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논란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원전에 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하다.

  원전이 터지면 반경 수십 킬로미터가 쑥대밭이 됨에도 사람들이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원전이 안전하고 경제적인 에너지 자원이라는 인식이 대한민국 전반을 휘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전 프로파간다>의 논의를 대한민국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2. 너는 왜 레즈비언이니?(사회과학 분야)


 












  최근 성소수자에 관한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특히 남성 동성애자들이 두드러진다. 영화감독 김조광수, 연예인 홍석천 등 셀럽들이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남성 동성애자를 보는 사회적 인식은 이전에 비해 많이 누그러진 듯하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에서 여성 동성애자, 즉 레즈비언에 관한 논의는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너는 왜 레즈비언이니?>란 책은 평범한 30대 동성애자 박김수진이란 저자가 레즈비언 인권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저자는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사랑한다는 다른 정체성 때문에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정보를 만들어 퍼뜨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글을 썼다고 한다.

  <너는 왜 레즈비언이니? 조금은 외로운 우리들의 레인보우 인터뷰>는 그런 활동의 결과물이다. 1별에서 온 그대들 레즈비언 바로 알기는 동성애 바로 알기 지상 강의 형식을 띠고 있고, 2내 마음 네가 다 알잖아 레인보우 인터뷰는 레즈비언이 레즈비언을 만나 이것저것 물어본 20번에 걸친 인터뷰를 정리한 기록이다.

  이 책을 통해서 여성 동성애자에 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3. 싸가지 없는 진보(사회과학 분야)


 












  강준만 교수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가 최근 이슈로 떠올랐다강준만 교수는 현재 진보 세력이 지리멸렬한 이유로 싸가지 없음을 내세웠다하지만 진중권 교수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이 비판을 하고 나섰다싸가지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진보 세력이 사회에 던질 메시지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이런 논란이 <싸가지 없는 진보>에 눈이 가게 만들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강준만 교수는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으로 싸가지 있는 정치를 제시했다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집권 후의 성공까지 거론한 이유는, ‘싸가지 문제가 선거는 물론 평소의 정치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싸가지 없게 행한다면 유권자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이 지점에서 강준만 교수는 진보의 이성 중독증을 지적한다이성 중심의 정치관이 싸가지 문제를 사소하게 보는 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도덕적 우월감언행 불일치’ 등이다예컨대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냐고 호통치는 듯한 자세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고야 마는 행위번드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꾸는 태도 등이다과연 진보 세력의 지리멸렬이 단지 싸가지 없음에 있는지 <싸가지 없는 진보>를 통해 한 번 논의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4. 한국전쟁사(역사 분야)

 













  대한민국에서 한국전쟁(6.25전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남한이 공산화될 위험에서 벗어난 전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특별한 위치를 점하면서 객관적인 평가는 힘들어지게 됐다. 역사적 사실에 이념적인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북한 혹은 공산주의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일 것이다.

  살림지식총서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는 이념싸움에 물들어버린 한국전쟁을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해 서술한 책이다. 전쟁처럼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미묘한 문제를 이념이나 이론의 틀로만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유난히 의혹이 많은 것도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하기보다는 좌우 한쪽의 입장을 강조한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전쟁사>논리 개발보다 기본적이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남침유도론과 내인론 등 유난히 의혹이 많은 한국전쟁을 이념이나 이론이 아닌 사실로 총정리한다. 대한민국의 입장만 난무하는 기존의 한국전쟁을 조금은 객관적인 사실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5. 장식(예술 분야)
















  안토니 가우디는 스페인의 위대한 건축가다. 나는 유럽의 건축을 상당히 좋아하기 때문에 안토니 가우디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다. <장식>이란 책도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선택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장식>은 안토니 가우디가 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1873년부터 졸업 이듬해인 1879년까지 7년간 사용했던 노트에서 발췌한 글이다. 가우디가 직접 손으로 기록하여 레우스의 수기 Manuscrito de Reus’로 불리기도 하는 이 노트는 18812<라 레나이센샤 La Renaixenca>에 기고한 장식예술 박람회의 소개 글,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제외하고 그가 남긴 유일한 기록물로 인정받고 있으며,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장식>은 안토니 가우디의 시대의 건축건설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다. ‘왜 새로운 건설 방식과 새로운 의미의 장식이 필요한지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다. <장식>을 통해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에 관한 철학을 엿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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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어느새 7월도 다 지나가고 8월입니다. 태풍이 여럿 오는 것을 보니 여름도 다 지나간 모양입니다. 물론 아직 덥긴 하지만요. 


주목 신간 페이퍼를 작성할 때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고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읽는 책들이 인문/사회 관련 책들이라 그 분야에 비중을 두는 것이 더 전문적이기도 하고 양질의 추천이 될 것 같아 이번에도 인문/사회 관련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번에는 인문/사회 관련 책 중에서도 청소년과 관련된 책에 눈이 많이 갔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이기도 하고, 최근 발생한 극단적인 일들이 대부분 젊은 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 길들여지는 아이들 내면의 야성을 살리는 법

 

 














첫 번째로 주목할 만한 책이라 눈여겨 본 책은 바로 <길들여지는 아이들>입니다. 입시와 경쟁적 교육에 매몰된 학생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이기 때문이지요.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아이들을 길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의 극단적 표출이 세월호 참사가 아닌가 합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길들여지는 아이들>은 아동기가 사라지고 게다가 성인기는 늦어지면서 어른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오늘날, 부모와 교사들이 길들이려는 충동을 자제하고 아이들 내면의 야성(야생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해서 아동기가 사라지게 되었는지, 아이들 내면의 야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역사,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인용하고 개인 일화를 덧붙여 주제를 살리고 있습니다.


내면의 야성을 다르게 표현하면 개성이 아닐까요?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몰개성이 개성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두 명문대를 위해 살아가고, 명문대의 진학을 위해 현재의 모든 삶을 유보당하고 있습니다. <길들여지는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 대한 약간의 해답이라도 제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2. 누가 왕따를 만드는가 배재의 현상학

 















두 번째 책은 <누가 왕따를 만드는가>입니다. 최근 배제의 폭력과 관련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두드러집니다. 충격을 주고 있는 임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 윤 일병 구타 살인사건 등은 '배제의 폭력'의 전형적인 사례 입니다.


지난해 회자되었던 학교폭력 역시 마찬가집니다. <누가 왕따를 만드는가>는 주위에 만연해 있는 왕따와 차별 현상을 냉철한 시점으로 분석한 책이라고 합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명인 저자는 인류학, 사회학에 정통한 민속학자로서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암묵적인 폭력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왕따나 차별 문제를 '배제'란 키워드로 설명한다고 합니다.

 

, 이 배제의 현상을 학교 내 따돌림, 노숙자 살인, 사이비 종교, 묻지마 범죄, 장애인 차별, 젊은이들의 현실 도피 등 6개의 주제로 나누어 분석했다고 합니다. 과거 외국에서나 일어났던 괴기한 사건들이 현재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대한민국 사회 속에 내재하고 있었던 배제의 폭력이 곪고 곪아 터진 것은 아닐까 합니다.

 


3. 레드 마켓인체를 팝니다




 











어제 우연히 TV를 보다가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습니다. 호주의 한 불임 부부가 인공수정을 하고 대리모를 통해 쌍둥이를 출산했는데, 쌍둥이 중 하나가 다운 증후군에 걸린 것을 알자 그 하나를 버리고 정상인 아이만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버리고 갔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인 일이지만 돈을 주고 아이를 출산하도록 하는 대리모 역시 충격적인 일입니다. 예전 우리나라에도 존재했던 '씨받이'와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그만큼 인체를 판매하는 것이 쉽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현 세상입니다.  


세 번째 책, <레드 마켓, 인체를 팝니다>는 인체 판매와 관련된 여러 사례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의 저자 탐사 저널리스트 스콧 카니는 인간과 인체를 놓고 수익성 좋은 비밀 거래가 이루어지는 레드마켓이라는 거대한 지하경제를 쫓아다니며 현장에서 5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레드마켓, 인체를 팝니다>에서는 이 수십억 달러짜리 지하 거래의 성장과 몰락 및 재기를 초기 의학 연구와 오늘날의 대학 연구 활동에서부터 가난에 피폐해진 유라시안 지역과 서구의 첨단 실험실까지, 납치범과 대리모에서부터 해골 매매상과 살아남기 위해 인체를 파는 가난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통해 폭로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법으로 이 시장이 엄중 단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인대나 신장, 심지어 여성의 자궁을 빌릴 정도로 인체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고 그 거래에 내재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고려할 공간은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인체산업과 그 산업이 우리 모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놀랍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4. 대한민국 치킨전

 














네 번째 책은 <대한민국 치킨전>이라는 책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치킨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치킨보다 통닭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고, 대부분의 프렌차이즈 치킨을 먹어보고 먹어보려 노력하는 치킨 매니아 중 하나지요.


<대한민국 치킨전>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한 치킨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입니다. 저자는 농촌.농업 사회학을 전공한 정은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젋은 학자입니다. 그가 이 책에서 그리고자 하는 치킨은 서양에서 유래한 프라이드치킨의 역사나 맛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치킨의 풍경이라고 합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한민국 치킨전>은 치킨에 녹아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2002~한민국의 함성과 함께 치맥시대를 열었다. 운동회와 소소한 회식, 월드컵 응원은 맥주와 결합한 치킨이 공동체와 축제의 음식으로 얼마나 적합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2014년의 치킨은 치킨 전문점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조각으로 팔리면서 혼자서, 식사로 먹을 수 있는 일상의 음식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대한민국 치킨전>이 보여주는 치킨의 사회사가 궁금해집니다.

 

 

5. x의 즐거움

 

















다섯 번째 책은 과학 관련 책입니다. <x의 즐거움>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수학을 에세이로 풀어낸 책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자연학을 에세이로 풀어냈다면 이 책의 저자이자 괴짜 수학자 스티븐 스트로가츠는 수학을 에세이로 풀어낸 사람입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x의 즐거움>은 <뉴욕 타임스> 독자들이 환호한 전대미문의 수학 칼럼이자 하버드와 MIT 학생들이 영화배우보다 더 환호하는 괴짜 수학자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저자인 책입니다. <뉴욕 타임스>는 이 기발한 천재에게 수학 칼럼을 연재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어른의 눈높이에서 수학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알게 하고,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수학 본능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모든 연령대의 독자에게 환호 받은 이 칼럼은 <x의 즐거움>으로 엮였습니다.

 

이 책 단 한 권으로 유치원 과정의 산수에서부터 대학원 과정의 대수학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독자들을 즐거운 수학의 세계로 안내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재미있을지 궁금합니다.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부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얼룩말의 줄무늬와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과 대중문화, 생물학, 역사 등 세상 모든 것에 깃든 수학을 발견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몰랐던 매력적인 수학의 세계에 눈 뜨게 될 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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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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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카를 슈미트는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아주 유명한 독일 철학자다이 둘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바로 나치 독일에 부역한 철학자라는 사실이다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위대한 철학자들이 나치부역자들이었다니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은 <히틀러의 철학자들>이란 제목의 책에서 처음 접하게 됐다이 책은 이본 셰라트라는 영국인 학자가 쓴 것으로나치 시대에 히틀러에게 동조했던 지식인이 아무런 내적 청산이 없었음에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저자는 이를 파헤치기 위해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한 후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정치와 철학의 빗나간 만남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천재적인 철학 바텐더 히틀러

 

홀로코스트라고 지칭되는 유대인 집단 학살은 제노사이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자행된 이 재앙은 지금까지 회자되면서인간의 폭력성과 잔혹성의 극단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작동하고 있다그런데 어떻게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실행할 수 있었을까. 600만 명에 달하는 한 인종을 몰살시키겠다는 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살인에서 오는 죄책감을 초월할 수 있는 신념 체계가 필요하다더군다나 그것이 집단 학살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신념 체계에 대한 광신(狂信)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히틀러가 동원한 신념 체계는 바로 반유대주의였다반유대주의는 당시 유럽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반유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라는 굴레에서 기원했다고 보고 있다예수의 죽음에서 비롯된 반유대주의는 수천 년간 지속적으로 쌓여 있었는데히틀러가 그것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구멍을 뚫어낸 것이다.

 

히틀러가 자신만의 반유대주의를 구성하게 된 것은 독일 바이에른 주에 있는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되면서부터다히틀러는 시간만 넘치는 교도소 독방에서 독서에 매진했다거기서 다양한 독일 철학자들을 접했다지금까지도 추앙받는 여러 독일 철학자들예컨대 임마누엘 칸트게오르크 헤겔프리드리히 실러요한 피히테프리드리히 니체리하르트 바그너 등에게서 히틀러는 그들의 철학적 영감 대신 반유대주의의 영감을 얻었다.

 

극소수의 계몽된 유대인을 제외하면 대다수 유대인은 도덕적정치적으로 게르만인과 동등하지 않다따라서 그들은 배제되어야 마땅하다.(임마누엘 칸트)”

 

나는 유대인들에게 시민의 권리를 부여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만약 그들의 머리를 잘라낸 다음 유대인적 사고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새로운 머리를 갖다 붙인다면 그들에게도 시민의 권리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요한 피히테)”

 

유대인은 그들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존해 있다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유대인 역사는 오래전에 사라졌다본질은 사라지고 단지 송장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게오르크 헤겔)”

 

히틀러가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 증명된 것 같았다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반유대주의 사상은 계몽주의에서 낭만주의까지민족주의에서 과학까지 독일 사상의 모든 분야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본문 102)” 히틀러는 천재적인 바텐더 기질을 발휘해 독일 사상의 모든 문야 속에 스며들어 있는 반유대주의를 뽑아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라는 칵테일을 만들어냈다란츠베르크 교도소 수감시절의 왜곡된 독서가 만들어낸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재앙을 일으킨 시작점이었다.

 

히틀러의 철학자들

 

히틀러가 바텐더로서 천재적인 기질을 발휘해 자신만의 반유대주의를 구축했다면히틀러의 반유대주의가 독일인들에게 소위 먹히도록’ 뒷받침한 철학자들이 있다바로 앞서 언급한 카를 슈미트와 마르틴 하이데거다저자는 슈미트와 하이데거를 각각 히틀러의 법률가히틀러의 슈퍼맨으로 칭한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때 히틀러 총통과 동료 투사들이 명예로운 나치의 표지 아래에서 했던 연설은 유대인과의 이념 투쟁에서 현재의 전투를 감동적이고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우리는 유대인의 거짓말에서 독일 정신을 해방시켜야 합니다.”(카를 슈미트본문 153~154)

 

국가라는 실체를 보호하고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힘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십시오……오직 총통 한 사람만이 독일의 현실이며 독일의 오늘독일의 미래입니다그리고 독일의 법입니다……히틀러 만세!(마르틴 하이데거본문 181)

 

현재 실존주의 철학 및 현상학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는 하이데거조르조 아감벤과 같이 현대에 인기 있는 철학자들에게 끊임없이 호명되고 있는 슈미트이들은 사실 나치에게 부역하고 히틀러를 미화하는데 앞장섰다그들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가 홀로코스트로 귀결되리라는 것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다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치에 부역했고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당시 슈미트와 하이데거처럼 나치에 부역한 철학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저자는 발터 벤야민테오도어 아도르노한나 아렌트쿠르트 후버 등의 철학자를 언급하면서 이들을 히틀러의 적들이라고 표현한다슈미트와 하이데거가 나치에 부역하고도 처벌받지 않고 지금까지 위명을 떨치고 있는 것과 달리 히틀러의 적들은 불운한 삶을 살게 된다.

 

발터 벤야민은 유대인으로 히틀러의 나치 치하에서 나치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파리로 망명했다이후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면서 스페인으로 다시 망명을 시도했지만 망명 도중 국경에서 나치의 추격에 버티지 못하고 자살한다테오도어 아도르노와 한나 아렌트는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에서 추방되었고나치가 패망하기 전까지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쿠르트 후버의 경우에는 독일 내에서 나치에 반하는 운동을 펼치다 죽기까지 한다.

 

나치에 부역한 철학자와 나치에 반대한 철학자의 생애는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보인다절대적인 악을 추종했던 철학자는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나치에 불복한 철학자는 자살하거나 죽거나다른 나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그런데 저자는 왜 이런 사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일까.

 

공과(功過)의 딜레마

 

철학 분야에서는 많은 쟁점이 잠을 자고 있다가장 강렬하게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널리 보급된 사상 가운데 일부는 하이데거처럼 단 한 번도 유대인 대학살을 비난한 적이 없는 철학자들의 사상이다우리는 그들의 사상을 가르쳐야 하는가우리는 그들이 쓴 언어의 맥락을 무시한 채 거리낌 없이 학생들에게 <존재와 시간>을 읽으라고 권하고 슈미트의 저작과 논리학자 프레게의 책을 읽으라고 권해야 하는가? (중략방금 한 질문들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본문 378~379)

 

저자가 <히틀러의 철학자들>과 같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나치에 부역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워야하는가 또는 나치의 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의술로 사람을 치료해야하는가 등과 같은 딜레마 때문이다대한민국에도 이런 딜레마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다.

 

박정희는 16여 년 동안 독재자로서 민주주의를 가장할 뿐 부정하고자신의 권력을 수호하려했다때문에 대통령이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유신을 단행하고계엄령과 긴급조치 등을 통해 국민들을 탄압한 것이다하지만 이런 과오에도 박정희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많다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의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공()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대한민국 국민의 힘으로 이뤄낸 것임이 분명하지만당시 대통령이 박정희였기 때문에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이렇듯 공과 과가 공존하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어렵다옹호하는 사람은 과를 공으로 덮으려고 하고비판하는 사람은 과로 공을 덮으려고 한다슈미트와 하이데거그리고 박정희 역시 이런 딜레마가 존재한다하지만 공으로 과를 덮을 수는 없다그렇다고 해서 과로 공을 덮을 수도 없다공과(功過)라는 것은 한 인물의 인생에서 배제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슈미트와 하이데거가 나치 부역자라면(그들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처벌받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이다그들의 사상을 공부할 때 그들이 나치 부역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그들의 사상을 반유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박정희에 대해 배운다면 아무리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더라도 그가 독재자였던 것을 알고 있으면 될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인물의 인생은 공이나 과라는 한 단면으로 판단할 수 없다인생에 있어서 공과(功過)란 공존하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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