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일(23일)에 형남에 조서를 내려서 수병(水兵) 3천 명을 징발하여 담주(潭州, 湖南 長沙)로 가게 하였다.

북한(北漢)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요(遼)에 알리고 변방을 순수하겠다고 하면서 성원해 주기를 빌었다. 정해일(8일)에 왕전빈(王全斌, 908~976)이 다시 곽진(郭進, 922~979)·조빈(曹彬, 931~999) 등과 군사를 인솔하고 북한의 낙평(樂平)을 공격하고 그의 공위(拱衛)지휘사 왕초(王超) 등을 항복시켰다.
북한의 장수 울진(蔚進)·학귀초(郝貴超)가 번(蕃)·한(漢) 병사를 다 모아서 와서 구워하자 세 번 싸워서 모두 그들을 패배시키고 드디어 낙평을 떨어트렸고 바로 세워서 평진군(平晉軍)을 만들었다.

북한은 땅이 좁고 산물이 적으며 또 해마다 요(遼)로 물건을 날라야 했으니 그런고로 나라의 쓸 것이날로 깎이었는데, 마침내 오대산(五臺山)의 승려인 계용(繼容)에게 벼슬을 주어 홍려경(鴻臚卿)으로 삼았다. 계용은 옛날 연왕인 유수광(劉守光, ? ~914)의 서자로 승려가 되어 오대산에 살았는데, 《화엄경》 강론을 잘 하여 사방에서 공양하고 보시하니 많은 것을 축적하여 나라의 쓸 것을 보탰다. 오대산은 요나라의 경계에 가까워서 항상 그들의 말을 얻어서 헌상하여 도마(都馬)라고 불렸는데, 한 해에 평균 100필이었다. 또 백곡(栢谷)에서 은(銀)을 야광(冶鑛)하여 백성을 모집하여 산을 뚫고 광물을 가져다가 은을 녹였으니 북한에서는 그 은을 가져다가 요에 보냈는데, 해마다 1천 근이었으며 바로 야은(冶銀)하는 것으로 인하여 보흥군(寶興軍, 山西 繁峙縣 東南)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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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달력 표지를 뜯어내고 1월을 맞이했다. 달력은 뜯는 맛인가? 

2023년 12월 31일에서 몇 시간 지났다고 2024년 1월 1일이 되었으니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계속 흐르는 것일 뿐이다. 


3일 간의 연휴 동안 저녁마다 술을 마셔서 올해는 정말 절주 생활을 해야겠다 결심했다. 커피도 좀 줄이고...



이번 달 읽게 될 책들을 추려 봤다.


<공포의 권력>만 구입하면 된다.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는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왔고. 



서울은 눈이 많이 왔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상대적으로 아랫 동네라 그런지 기온이 높아 비로 바뀌어 내려 다 녹았다. 게다가 오늘은 햇빛이 짱짱하니 산책하러 나가도 좋겠다.


이곳에 들르신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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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1-01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뜯어쓰는 달력이라하셔서 저는 3개월치 묶어놓은 옛 달력인가 했는데 엄청 탐나게 생긴 달력이네요.

[공포의 권력] 리뷰들이 속속 올라올 듯한 예감,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거리의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4-01-01 19:48   좋아요 2 | URL
이 달력은 뜯는 형태는 아니고 탁상달력입니다! 매해 같은 날 재탕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아요ㅋㅋ
공포의 권력 구입했는데 수요일에나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왠지 한달 내내 붙잡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알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나의책장 2024-01-01 1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년 달력 선물이 들어오긴 해도 작년까지 따로 달력을 샀었는데 올해는 고민만 하다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ㅎㅎ) 아직 못 샀어요 >.<
그래도 달력은 역시 뜯는 맛이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ෆ

거리의화가 2024-01-01 19:52   좋아요 1 | URL
탁상 달력 예전에 뜯는 형태 써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잘 안 뜯기는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넘기는 스프링 형태로 샀습니다. 뜯는 달력은 역시 벽걸이가 짱입니다!ㅋㅋ
하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은오 2024-01-01 2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커피는... 그냥 마시면 안될까요? 😭 저녁에만 참을래요!!ㅠㅠㅠㅠㅠㅜ
화가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4-01-02 08:59   좋아요 1 | URL
커피를 워낙 많이 마셔서 줄여보려고요^^ 2시 이후에 마시면 아무래도 영향이 가는 것 같더군요.
은오님 올해도 즐독하시고 서재에서 자주 보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24-01-02 0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달력 맨 앞장 뜯었어요 뜯은 건 연습장 같은 걸로 써요 달이 바뀔 때는 달력 천천히 뜯기도 하는데 새해에는 바로 뜯었네요

거리의화가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4년에 만나고 싶은 책 즐겁게 만나세요 건강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걸 못하니, 마음 몸 건강 잘 챙기세요

새해 첫날은 따듯했어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02 09:01   좋아요 1 | URL
달력은 과감하게 뜯는 맛이죠. 2024년 1월이 되었네요. 희선님 말씀대로 독서도 좋지만 건강이 제일 중요한 듯 싶어서 올해는 건강에 신경을 써보려고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Vanessa 2024-01-02 0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쁘네요 일력^^
저도사고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1-02 09:02   좋아요 0 | URL
저 일력은 같은 일자로 과거의 어느 날을 소환하는 취지라 좋더군요. 요즘 일력이 다양하게 나와서 고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새파랑 2024-01-02 0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1월 2일! 절주와 절커는 언제나 다짐하지만 언제나 지켜지지는 않더라구요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거리의화가 2024-01-02 09:03   좋아요 1 | URL
ㅋㅋㅋ 다이어트와 금연, 금주는 거의 매해 계획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새파랑님도 그러시군요ㅠ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목련 2024-01-02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하신년, 익숙한데 생경하게 다가오네요 ㅎ

거리의화가 2024-01-02 12:46   좋아요 0 | URL
근하신년 요즘에는 잘 안쓰는 것 같기도 해요ㅋㅋ 올해는 일력을 한장씩 넘기며 북 다이어리를 써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자목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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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이야기가 우리를 올라탄다. 그렇게 올라타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면,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따른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 P15


과거를 떠올리면 이제는 구체적인 기억보다 희미해진 기억이 더 많다. 적어도 내게는 이것이 감사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장사로 바쁘셨고 집이라는 공간은 나와 동생들에게 내맡겨진 곳이었기에 차갑기만 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어머니는 나와 동생들을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어려운 일임을 일찍부터 깨달았기에 하루 빨리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폭력과 자본이란 단어는 일찍부터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는 동시에 해방을 꿈꾸게 했던 것 같다. 


인간이란 큰 일을 겪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것일까. 다치고 아프게 되기 전 깨달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되뇌여보지만 그 때 아버지는 나사 풀린 브레이크 같았고 어머니는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였다. 괴로웠고 피하고만 싶었던 존재들이 시간이 지나 병마가 찾아왔고 이후에 그분들은 신앙을 찾고 바뀌었다. 

부모님은 노화와 병마의 후유증으로 신체적 기능은 떨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평화롭다 말씀하신다. 내게 종교는 의미가 없지만 부모님께서 신앙의 힘으로 기운을 차리신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매년 김치를 담가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행위는 분명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어제는 2023년 마지막 날이었는데 가족들에게 전화를 내가 먼저 걸어야겠다 싶어 그렇게 했다. 

어머니는 “니가 웬일이야.”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평소 내가 쌀쌀맞게 군다고 서운해하신다. 그럼에도 내가 이전에 가족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며 미안해하신다. 옆에 아버지도 계시다고 하셔서 이어서 통화를 했다. “고맙다.” 무서웠던 아버지는 없고 이제는 내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버지가 있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이런 표현이 익숙지 않지만.


사람들은 성격이나 감정을 말할 때 온도와 관련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따뜻하거나 냉담한 마음, ‘차가운‘ 기질, ‘뜨거운 열정처럼. 극지방의 태양에 관해 쓴 지 1년쯤 후, 그러니까 남편이 갑작스레 익사한 후에 메리 셸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마음이 차가운 사람인 걸까?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이 마음 한가운데 있는 얼음같이 차가운 무언가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겠지. 적어도 이 차가운 심장에서 나온 감정이 만들어 내는 눈물은 뜨거운 것임을."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었던 그녀는 차가운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듣곤 했다. - P71


어머니가 내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던 시절, 나 역시 내가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끔찍해하고 비슷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사실은 얼마나 닮았는지, 어머니가 나의 가장 본질적인 취향이나 관심사 혹은 가치체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된다. 어머니는 평생 동안 도덕적인 질문과 원칙에 사로잡혀 있었고, 사람의 삶은 그가 이룬 것과 그가 기여한 것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점을 물려받았다. 좀 더 작은 것들도 있다. 꽃이나 메마른 나뭇가지를 보고 즐거움을 얻는다든가, 책을 좋아하는 점, 일종의 불안감과 불확실성 같은 것들. 물론 외모도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 P340


솔닛의 글은 위로가 되고 따뜻했다. 게다가 문장도 좋아서 기뻐서, 슬퍼서 벅차오를 때가 많았다. 읽을수록 내 스타일이다 싶어 전작 읽기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그녀가 역사가이기도 해서 고전과 역사적 사례를 끌고 오는 것도 좋았다. 선물해주신 분의 마음이 더해져서 소중하게 읽었던 것 같다. 감사하다.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 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이지만 그 순간부터는 정말로 중요해진다. 이 순간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손님은 때로는 안내인처럼 친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과거의 시간을 모조리 부숴 버리고 우리를 문밖으로 난폭하게 밀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반응하고, 그 반응이 바로 그 순간 이후에 살아가게 될 삶이다. - P223

먼 거리를 작은 공간에 압축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미로는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두 고안물과 닮았다. 하나는 실타래고, 다른하나는 단어와 문단과 쪽을 하나로 묶어 놓은 책이다. 책의 문장이 실타래에 감긴 한 가닥의 실이라고, 그 문장도 실처럼 풀 수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풀린 문장이 만들어 낸 선 위를걸을 수 있다고, 실제로 걷고 있다고 말이다. 독서 또한 하나의 여정이다. 눈은 선처럼 펼쳐진 생각을 따르고, 책이라는 압축된 공간에 접혀 있던 그 생각들이, 당신의 상상과 이해 안에서 다시 차근차근 풀려 나간다. - P278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는데도 나는 멸종해 버린 과거의 어머니와 여전히 다투고 있고, 과거를 해결하고 싶어 하고, 과거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너무 작아졌지만 여전히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어머니를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과거의 어머니와 과거의 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독특한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불러낸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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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01 1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베카 솔닛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올해는 읽어보고 싶습니다.
가족의 존재가 참 그런 것 같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거리의화가 2024-01-01 19:53   좋아요 1 | URL
솔닛의 글 참 좋네요^^ 페넬로페님께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가족이란 멀고도 가까운 존재인 듯 싶어요. 가까워서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01-01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1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1-02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면서 거리의화가 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부모님을 떠올리기도 하셨군요 이 책을 보시고 리베카 솔닉 책을 다 보시기로 하시다니... 멋지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02 09:04   좋아요 0 | URL
내용이 저자의 어머니의 사연으로 시작되어서인지 자동으로 저도 옛 기억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녀의 책을 조금씩 읽어보고 싶습니다.

자목련 2024-01-02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가까운 날에 이 책을 읽고 싶어요. 미루지 말고...

거리의화가 2024-01-02 12:45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이 이 책을 읽고 풀어내실 감상이 궁금해집니다^^
 

봄 정월에 王이 益州에 넌지시 지시하여 변방 밖에 있는 오랑캐들로 하여금 스스로 월상씨라 칭하고, 여러 번 통역을 거쳐 흰 꿩 한 마리와 검은 꿩 두 마리를 바치게 하니, 이에 여러 신하들이 ‘왕망의 공덕으로 주나라 성왕 때 흰 꿩을 바친 상서를 이루었으니, 왕망에게 마땅히 안한공이라는 호를 하사해야 한다.‘고 지극히 말하였다. ≪漢書 王莽傳≫ - P169

林氏가 말하였다.
"王莽의 반역하는 일이 이미 싹텄는데도 漢나라 조정의 公卿들이 그의 忠犬 노릇을 하면서 일찍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梅福은 會稽에 은둔하고 逢萌은 遼東에 나그네가 되어서 자기 몸이 장차 더럽혀질 듯이 여겼다. 夫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독실히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음으로 지키고 道를 잘하며, 위태로운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않는다.‘ 하였으니, 두 사람이 이것을 행하였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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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 P158

자아의 경계가 당신이 느끼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면, 자신을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계 안에서 수축할 것이다. 반면에 - P158

다른 이의 것까지 느끼는 이들은 확장할 것이며, 모든 존재에 공감하는 이들의 경계는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홀로 있지 않으며, 외롭지 않고, 우리 자신이라는 섬에 발이 묶여 버린 이들과 달리 취약하지 않다. - P159

타인에게 공감함으로써 자아는 확대되지만 그다음엔 자아도 위험과 고통을 분담하게 된다. - P170

건강할 때 당신의 몸은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는 한 덩어리의영역일 뿐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을 때는 당신의 몸이 장기와 체액, 화학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몸이 작동하는 방식에 탈이 날 수도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건강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부위에서 통증을 느낄 수도 있고, 상처를 입고나서 자신의 뼈를 직접 보게 될 수도 있다. 혹은 엑스레이 사진을보며 살아 있는 살덩이 아래 있는 죽음의 뼛조각들을 떠올릴 수도있다. 불구가 될 수도 있고, 신체 일부를 잃을 수도 있고, 관(管)이나, 혈류의 방향을 바꿔 놓는 측로, 판 같은 기구들을 달고 다녀야할 수도 있다. 당신의 몸에 있는 화학 성분이나 호르몬이 변하고, 약물이 투여될 수도 있다. 몸이라는 체계가 그렇게 열리고, 그와함께 몸에 대한 의식도 깨어난다. - P191

실잣는 이는 형태가 없는 것에서 형태를, 조각들로부터 연속된 것을,
흩어진 사건들에서 서사와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왜냐하면 이야기꾼은 또한 실을 잣는 이, 혹은 천을 만드는 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 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 준다. 그것은 그날 늦은 밤까지 해변에서 우리가 했던 일처럼 우리 뒤로 바늘땀 같은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다. - P195

해가 갈수록 나는우리가 감정을 나타낼 때 다른 표현을 쓰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깊은, 혹은 얕은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사람들은 종종 기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또 슬픔을 날려버리려다가 딴 데 정신이 팔려 그 깊이까지 함께 날려 버리는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울게 한다.
"희망이 곧 역사로 이루어지는 순간, 아주 오랫동안 찾으려고 노력했던 어떤 우주의 법칙을 발견하는 그와 함께 어떤 질서를 알아보고 또 만들어 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순간, 그저 놀랄 만큼 아름다운, 도덕적인 아름다움까지 포함하는 어떤 순간, 정의가 행해지고 진실이 존중받고 질서와 일체성이 회복되는 순간이 있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어떤깊이 있는 아름다움의 정의를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 P207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 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이지만 그 순간부터는 정말로 중요해진다. 이 순간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손님은 때로는 안내인처럼 친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과거의 시간을 모조리 부숴 버리고 우리를 문밖으로 난폭하게 밀어내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반응하고, 그 - P223

반응이 바로 그 순간 이후에 살아가게 될 삶이다. - P224

불교에서 말하는 차가움은 무관심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소란을 관조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의미한다. 거리를 두고 보면 어떤 법칙이나 관련성을 보게 되고, 대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너무 가까이서 보면 대상은 그저 표면밖에없거나, 무질서하게 한데 뒤섞여 버리고 만다. - P251

어둠 속에서는 여러 가지가 하나로 섞인다. 그렇게 열정은 사랑이 되고, 사랑을 나누는 행위의 결과로 모든 자연과 형체가 생겨난다. 섞이는 것은 위험하다. 적어도 자아를 규정하는 경계의 차원에서는 그렇다. 어둠은 무언가를 낳고, 그렇게 생겨나는 것은 그것이 생명이든 예술이든, 미지의 것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요구한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떤 영역, 다음에
"무슨 일이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는 언제나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은 - P271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을 때만 일어난다.
창조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빛 속에만 머물지 않음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빛이 비치면 생각의 구체적인 생김새나 그림자가 드러나고 다른 이들도 알아보겠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곳은 그 빛 속이 아니다. - P272

먼 거리를 작은 공간에 압축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미로는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두 고안물과 닮았다. 하나는 실타래고, 다른하나는 단어와 문단과 쪽을 하나로 묶어 놓은 책이다. 책의 문장이 실타래에 감긴 한 가닥의 실이라고, 그 문장도 실처럼 풀 수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풀린 문장이 만들어 낸 선 위를걸을 수 있다고, 실제로 걷고 있다고 말이다. 독서 또한 하나의 여정이다. 눈은 선처럼 펼쳐진 생각을 따르고, 책이라는 압축된 공간에 접혀 있던 그 생각들이, 당신의 상상과 이해 안에서 다시 차근차근 풀려 나간다. - P278

듣는다는 것은 귓속의 미로에서 소리가 사방으로 돌아다니게허락하는 것이며,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거꾸로 그 길을 되돌아서그 소리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이다.
이 듣는다는 행위 말이다. 이는 당신이 각각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 당신의 고유한 언어로 그것을 번역하는 것, 당신이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게 당신의 우주에서 그 자리를 찾아 주는 것, 그리하여 그것이 당신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 P284

감정이입은시각예술에도 조예가 깊던 한 심리학자가 만들어 낸 용어다.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데, 1909년 에드워드 티치너가 처음 제안하기 전까지는 ‘공감‘, ‘친절함‘, ‘안쓰러워함‘, ‘동정‘, ‘동질감‘ 같은 단어가 그 일반적인 의미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독일어로는 ‘Einfühlung‘으로 번역되는데, 마치감정 자체가 다가가는 것처럼 ‘들어가 느끼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어근은 ‘path‘인데, 그리스어로 열정이나 괴로움을뜻한다. 비애, 병리학, 동정같은 단어의 어원이 모두 같다. 감정이입이 ‘오솔길‘을 뜻하는 고대 영어 단어 ‘path‘와 동음이의어를 어원으로 가지는 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다. 엘린이 만든 어두운 미로의 제목이 ‘진로‘였던 것도 마찬가지다. 감정이입은 당신이 무언가에 관심을 기울일 때, 그것을 보살피며 그곳에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 나서는 여정이다. 눈앞에서 괴로움을 직접 목격할 때 - P286

도 그 사람이 관절에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최근에 집을 잃어 버렸는지를 알고 싶다면 말이 필요하다. 머나먼 곳의 괴로움은예술 작품을 통해, 이미지나 음성 기록, 아니면 이야기들을 통해당신에게 와 닿는다. 그런 정보들이 당신을 향해 출발한다. 그리고당신이 그것들을 만난다면, 그 만남은 여정의 중간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 P287

우리는 정상적인 것과 미친 것, 좋은 것과 파괴적인 것 사이의 미세한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그 사이에 마치 뚜렷한 경계가 있다는 듯 - P301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식인 풍습 역시 정도의차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얼마만큼, 어떤 방법으로 식인을 하고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취하고 있는 그 타인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가. 우리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서로를 취하고 있으며, 누군가는그 덕분에 즐거움을 얻고,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고 악몽을 꾼다. - P302

아직 아무것도 적지 않은 종이의 흰색과 무언가를 썼다 지운후의 흰색은 같으면서 같지 않다. 말을 하기 전의 침묵과 말을 한후의 침묵도 같은 침묵이면서 같은 침묵이 아니다. 눈은 만물이성장하는 시기의 앞과 뒤에 내린다. 내가 어머니와 화목한 관계를유지했던 시기는, 나의 기억이 시작되기 전과 어머니의 기억이 희미해진 후였다. 어머니 당신이 지워지고 있었다. 다시 흰색으로 돌아간 부재를 향해 가는 종이처럼. - P325

과거라는 짐에서 벗어나자 세상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각각의 케이크 한 조각은 가장 맛있는 케이크였고, 각각의 꽃 한송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어머니는 치매 환자 요양병원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에서 즐거움을 얻었고, 어떤 때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알츠하이머병이 얼마나 끔찍한 병

가끔씩, 어머니의 병이 갑자기 닥쳤더라면 더 충격적이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대신 어머니는 아주 천천히 변해 갔고,
또 다른 전환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일도 잦았다. 어머니가 초반에는 내게 애정과 관심을 보인 탓에,
그 어느 때보다 부모 같은 느낌이 제대로 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많은 일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는 점에서는 어린애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력이나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당신이 본 것을 해석하는 뇌의 능력이 점 - P331

점 떨어지고 있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일어나는 ‘아그노시아‘, 즉 알아보지 못하는 증세였다. 당시어머니는 사람을 얼굴이아니라 목소리로 알아본다고 했다. 얼굴은 이제 없었다. 독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가능했다. - P332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는데도 나는 멸종해 버린 과거의 어머니와 여전히 다투고 있고, 과거를 해결하고 싶어 하고, 과거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너무 작아졌지만 여전히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어머니를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과거의 어머니와 과거의 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독특한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불러낸다. - P339

어머니가 내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던 시절, 나 역시 내가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끔찍해하고 비슷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사실은 얼마나 닮았는지, 어머니가 나의 가장 본질적인 취향이나 관심사 혹은 가치체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된다. 어머니는 평생 동안 도덕적인 질문과 원칙에 사로잡혀 있었고, 사람의 삶은 그가 이룬 것과 그가 기여한 것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점을 물려받았다. 좀 더 작은 것들도 있다. 꽃이나 메마른 나뭇가지를 보고 즐거움을 얻는다든가, 책을 좋아하는 점, 일종의 불안감과 불확실성 같은 것들. 물론 외모도 어머니를 많이닮았다. - P340

우리가 도입부만 원한다면 어떻게 될까. 끝나지 않는 것, 자르지 않은 끈, 미완의 무엇, 열린 문, 탁 트인 바다의 불멸을 원한다면? 우리가 여전히 백조인 오빠들을 더 좋아한다면, 아직 윗도리로 완성되지 않은 쐐기풀을, 황금보다 지푸라기를, 성배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험 자체가 성배이고, 바다가 곧 신비의 묘약이다. 당신이 운이 좋다면 예배당에놓인 잔 앞에 이르기 전에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P363

응급 상황이란 무언가 갑자기 나타나는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오는 ‘응급 상황‘의 첫번째 정의는 "가라앉았던 사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현재는 많이 쓰이지않음"으로, 이는 ‘부상‘의 정의와 동일하다. 두 번째 정의는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마치 물놀이를 하던 사람이 갈대를 헤치고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 나오는것처럼. 그다음에 가서야 우리에게 익숙한 정의가 나온다. "예상치못했던 일이 발생한 상태, 즉각적인 대처를 서둘러 해야 하는 상태." - P364

북미 원주민들의 설화에서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확신이 없고, 여정을 나섰던 이가 돌아온다는 확신도 없다. 잠든 새의 눈물을마시는 나방. 계속 자고 있는 새는 무심하게 자신을 내어 주고, 배를 채운 나방은 날아간다. 우리는 슬픔을 먹고 살고, 이야기를 먹고 산다. 그 이야기가 열어 주는 널찍한 공간에서 우리는한계를 넘어 상상력을 여행한다. 이야기가 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의 자아의 가능성을넓혀 보라고 재촉한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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