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무가 존재와 분리되어 존재 바깥을 감싸는 경우가 아니라 존재 사이사이에 분배될 때 생성이 성립한다. 정확히는 단지 사이사이에 분배될 뿐만 아니라 존재-무-존재-무⋯⋯를 경계 짓고 있는 선들이 계속 무너질 때 생성이 성립한다. 존재와 무는 절대 모순을 형성하며, 존재가 존재이고 무가 무일 때 생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는 무이므로(없으므로) 존재만이남는다. 무가 존재 사이사이에 분포하고 그 경계선들이 무너져갈 때 차이생성(differentiation)이 도래한다. 모든 생성은 차이생성이다. 그리고 이때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생성한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 P23

경험론적 형이상학자들은 한편으로 ‘경험‘에 충실하되, 이런 주체중심주의를 벗어나 경험의 심층을 응시한다. 그러나 이들은 실재를 인식하기 위해 경험을 피상적인 것으로서 벗겨내고 그것과 불연속을 이루는 실재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실재를 찾는 한 본질과 현상의 이율배반과그것과 맞물려 있는 신체와 정신의 이율배반)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어디까지나 경험과 연속되는 그것의 심층을 구체적으로 인식해 들어가려했다. 이렇게 경험과 연속적으로 파악된 실재는 곧 ‘생성‘이었다. 경험론적형이상학의 구도를 통해 새롭게 성립한 형이상학 즉 생성존재론은 현대 철학/탈근대 철학의 핵심적인 성취에 속한다. - P49

오늘날 생성존재론의 구도는 ‘존재‘로부터 ‘생성‘으로의 이행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차이생성‘으로부터 ‘동일성들의 발생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있는것이다. 뒤에서 (6장, 1절) 논할 들뢰즈의 ‘잠재성의 철학‘은 이 과제에 답한각별히 정교한 시도에 속한다.
생성존재론의 또 하나의 의의는 이 존재론에 이르러 마침내 서구적 사유와 동북아적 사유가 서로 통(通)하게 된 점에 있다. 동북아의 형이상학은 처음부터 생성존재론의 형태를 띠었다. 이 전통은 ‘氣‘를 근본 실체로서 생각했고, 기는 반드시 ‘氣化‘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생성은 생성하지 않는 진실재의 ‘타락‘한 모습이었으나, 동북아에서는 정확히 반대로 ‘物‘의 고정된(고정된 듯이 보이는) 모습은 ‘氣‘의 흐름이 일정한 형태로 굳어진 것일 뿐이었다. 세계에 대한 이런 직관은 ‘易‘의 개념으로써도 표현되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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