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인사

생명의 가능성이란 나 자신과 남이 제대로 만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여자가 생명으로 살 수 있는 방식은 남자처럼 바다로 나아가며 자아를 찾아가는 방식에 있지 않다. 나 자신 속에 바다를 품고 내 속의 바다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방식에 생명의 가능성이 있다.
-> 이 방식에 나는 의문이 있다. 여자는 왜 바다로 나아가면 안 되는가?

일본에 있는 외국인 가운데서도 유럽이나 미국인한테는 한없이 관용적이면서도(그렇다고 해도 반전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재일조선인을 비롯해 일본에 있는 아시아인들한테는 마치 자기가 생사여탈권이라도 가진 것마냥 군다. 출입국관리법에는 낡아빠진 소위 ‘신국 일본’의 행태가 노골적으로 보였다. - P136~137
-> 근대 일본 제국주의는 서구를 따르고 동양의 평화를 운운하며 리더임을 표방하고 다른 동양의 민족을 억눌렀다.

당시 나는 내가 끝까지 못 싸운다는 것, 그러니까 각목을 들지 못하는 자신을 아주 창피하게 여긴 것 같다. - P138
-> 시위, 데모를 하러 나가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이 아닐까. 어떤 의도에서 시작되었든 내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몸 담았다면 말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가 저지른 죄상이 무엇인지 전혀 추측조차 못하는 죄인이었다. 나는 열심히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려 했다. 엄마가 자꾸 묻는 바람에 벽에 딱 붙어서. 그런데 뇌리에는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돼!" 하고 무서운 표정을 한 엄마의 말만 남아 있었다. - P103

아무리 머리로 제국주의와 싸우는 피억압 인민들이 있다고 확실히 알고 있다 한들, 한쪽 다리를 잃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린 한쪽 다리에서 모든 것을 출발하는 것이지, 논리로는 잃어버린 자기 다리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아픈 사람은 항상 미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시적 대상황과 미시적 소상황을 합쳐 문제시해야 한다. - P124

1969년 1월 18일 도쿄대학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던 학생들을 체포하는 강제 진압이 일어났다. 그날 밤 나는 밤새 친구와 기동대가 빙 둘러싼 도쿄대 주변을 배회했고 이튿날 오차노미즈에서 벌어진 투쟁에 참가했다.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지금 내가 역사의 모든 것을 묻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 P127

어디에 있든 완벽히 사회에서 자립한 주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고 각자가 가진 노예의 역사성, 교태를 부리며 살아온 역사성을 짊어지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 - P133

남자들은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운동을 하지 않는 여자랑 할 테야."라고 거리낌이 없이 큰소리쳤다. 그런 남자들을 위해 조그맣게 움츠러들어 바리케이드 시위에서조차 밥을 짓고 변소를 청소하는 역할을 담당한 이들이 ‘여자’라는 이름의 암컷들이었다. 어머니의 너그러움과 창녀의 교태를 두루 갖추고 남자들의 혁명 지도부를 떠받쳐 온 ‘엉클 톰’ 같은 여자들. ‘만일 혁명이 된다면’ 하고서 그 환상을 위해 자신을 바친 신좌익 내부의 신데렐라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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