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투멘으로 구성된 그들은 황허 북쪽의 여러 지역에 주둔했으며, 몽골어로 "두르벤 투멘(dörbentimen)", 중국어로는 "사만호몽골한군(四萬戶蒙古漢軍)"이라고 했다. - P38

비록 "네 만호"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34개의 천호가 있었는데,
15개는 몽골 천호였고 19개는 한인 천호였다." 1303년 이후에는
"하남회북몽골군도만호부(河南淮北蒙古軍都萬戶府)"로 개명되어 낙양(洛陽)에 주둔했다. 앞서 언급한 두 탐마치 군대 외에도 몇 개의다른 군대가 있었는데, (1) 익도(益都)에 주둔한 산동하북몽골군도만호부(東北蒙古軍都萬戶府), (2) 봉상(鳳翔), 문주(州), 연안(延安)에 주둔한 섬서몽골군도만호부(陝西蒙古軍都萬戶府) (3) 성도(成都), 중경(重慶), 가정(定)에 주둔한 사천몽골군도만호부(四川蒙古軍都萬戶府)가 그것이다.
이처럼 몽골과 탐마치 군대는 황허 북쪽 여러 지역에 배치됐고, 북중국인(한군)과 남중국인(신부군)은 화이허 남쪽에 배치됐다. - P39

결론적으로 몽골 제국은 처음부터 단일 군주하의 동질적 정치체가 아니라 칭기스 가문이 통치하는 여러 울루스들의 집합체였다. 제국의 최고 통치자인 카안은 처음에는 제왕들에게 확고한권력을 행사했지만, 제국의 규모가 커지고 제왕들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카안의 지위에 대한 투쟁이 이어짐에 따라 울루스의 구조는 크게 변모했다. 그 결과 서방은 주치, 홀레구, 차가다이 가문이 지배하는 세 개의 대형 울루스가 성립했고, 카안의중앙 울루스는 쿠빌라이와 그의 후계자들이 지배하는 카안 울루스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 네 울루스 내에 여러 소규모 울루스가존재했다. 예를 들어, 카안의 영역 내에는 몽골의 우구데이계 울루스들, 하서회랑의 차가다이계 울루스들, 만주의 칭기스 칸 형제들의 울루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치 울루스 또한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었으며, 이후 다시 더 작은 울루스들로 분할되었다. - P25

우리는 다른 칭기스가문의 제왕들도 케식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릭 부케의아들 말릭 테무르는 4케식을 소유하고 있었고, 아미르 한 사람당케식 하나씩을 지휘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고려 왕들도 몽골의 케식 제도를 도입했다는것이다. 충렬왕은 1274년 즉위 직후 자신과 몽골 생활을 함께한 귀족 가문 자제들인 투르칵, 즉 주간 호위대를 몇 개로 나누고, 이들을 야간 호위대로 삼아 코르치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네 부대로조직했다가 1275년에 세 부대로 변경했다. 동시에 고려 궁정에 비체치(bichéchi), 투크치(tuqchi, 기수), 바우르치(ba‘urchi), 수쿠르치(sükür-chi) 같은 다양한 케식 직책이 도입됐다. 충선왕의 경우 자신뿐 아니라 몽골 공주 출신인 그의 아내도 케식을 소유했으며, 이후 카안의 궁정에서 두 케식을 통합하라고 명령했다. 고려의 사례는 다른속국들도 몽골 궁정의 케식 제도를 모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P45

몽골 제국의 지배와 그 유산은 "타타르의 멍에"와 "팍스 몽골리카"라는 두 경쟁적 표어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논란의 대상이되어 왔다. 최근에는 후자의 측면이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과거 세대의 편견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 이상으로 이해되어야한다. 특히 토머스 올슨의 선구적인 연구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지난 30년간 수많은 연구들이 밝힌 것처럼,158 "팍스 몽골리카"는 세계사 책의 멋진 장 제목이나 "화려한 단순화" 이상이었다.159 하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는 몽골의 정복과 그로 인해 일어난 파괴의 어두운 면도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P73

고대 말에 이르러 이미 중국, 인도, 근동, 지중해 세계에서 보 - P90

편주의적인 종교 및 정치 교의가 확립됐다. 그러므로 몽골인이 "제국적 지배권"을 "세상의 모든 곳에 걸쳐" 확장하겠다고 한 주장은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구두 및 서면으로 전달된 이러한 선언들을 몽골인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그들이 자신들의 정복 범위를 극적으로 과시하려 애쓴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 P91

몽골인들의 이념적 메시지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신화, 종교적 신념, 정치적 원칙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광범위한 지리적 범위를 가진 실제현상이었으므로, 세부 사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민족들에게 인식되고 이해될 수 있었다.
즉, 다른 전근대 제국과 마찬가지로 몽골이 건설한 제국은 헌신적인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핵심 집단, 열정적이면서도 계산적인합류자들로 이루어진 훨씬 더 큰 집단, 그리고 신들의 헤아릴 수없는 계획과 정복자들의 뛰어난 행운에 대개 어쩔 수 없이 복종한수많은 신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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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굵직한 책들로 구입했다. 지난 달까지 책을 구입해놓고 아직 안 읽은 것들 투성이라 이번 달은 건너뛰려고 했는데 생각났을 때 사놓지 않으면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결국 사기 위한 변명이지만.

아무튼 멋진 리뷰를 써주신 이웃님 덕분에 <남성 판타지>를 구입했고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는 펀딩했다.
몽골 제국사는 그동안 읽어둔 것들도 있고 해서 건너뛰려고 했는데 1권 내용보다는 2, 3권 내용이 궁금하여 결국 펀딩을 결정했다.
사실 정치사는 재미가 떨어지지만 일상사, 미시사나 주변사는 훨씬 재미가 있으니까. 3권의 내용이 그런 것을 다룬다. 2권은 주제별로 역사를 다룬 것이다. 이런 책은 레퍼런스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이미 1권은 읽기 시작했고 어느덧 4부를 읽고 있다.
남성판타지는 진짜 너무 무거워서 들다가 떨어뜨릴 뻔하여 식겁했다는. 조심 조심 다루어야할 것 같다. 사실 떨어뜨리는 것보다도 너무 두꺼워서 책 내부가 찢어질까봐 걱정이 되는데 모쪼록 잘 떨어지지 않는 제본이면 좋겠다. 내용은... 와. 이걸 읽을 수 있으려나. 그렇지만 늘 그렇듯 시도하는 것이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덜 후회하는 법이니까 (언젠가) 도전!!!
그리고 오랜만에 커피 500g으로 샀다. 커피를 점차 줄이고 있는데 간혹 3시 넘어서 커피를 마시면 좀 부담되는 경우가 있다. 늦게 마시지 않으면 좋지만... 이른 아침에도 위에 부담이 덜 갈 것 같고 해서 디카페인으로 샀다. 오늘 아침 드립해서 마셨는데 역시 맛있었다.

어제도 늘 그렇듯이 점심을 먹고 산책길에 나섰다. 비가 온 뒤라 흐리고 쌀쌀했다. 옷깃을 여미며 한 바퀴 돌고 회사에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누군가 탁 하고 내 몸을 쳤다. 옆지기였다.
옆지기는 나와 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다. 사실 나는 그를 회사에서 처음 만났고 1년간 몰래 사내 연애를 하다가 그후 옆지기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 뒤로 우리는 4년의 연애 기간을 더 갖고 결혼했다.
어쩌다보니 지금 가까운 거리에 일터가 있어서 출근길에는 옆지기가 차로 데려다주고 퇴근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다보니 가끔 이렇게 산책길에 만날 때가 있다. 근데 3년 정도 이렇게 일하는데 산책길에서 만난 것은 손에 꼽는다. 옆지기는 걷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오히려 자전거는 가끔 탄다).
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어서 좋은 점은 이야기가 통한다는 점이다. 전문 용어를 이야기해도 이해를 못하면 아무래도 대화를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 때는 내가 일이나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사가 망해서 이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고 또 어느 때는 옆지기가 일이나 회사 문제로 골머리를 쌓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서로 버팀목이 되었다. 이 직업 세계의 생리를 잘 알고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옆지기는 만남을 갖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게 가장 좋은 친구다.

4월이 단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다. 금요일도 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 날이 노동절이었다(그 사실을 알고 출근길이 갑자기 매우 즐거웠다). 5월 4일 부랴부랴 휴가를 냈으니 이제 며칠 간의 휴가가 다시 생긴 셈이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겠지만 날이 좋으니 집안에만 있을 수는 없지. 산책하면서 볕도 쪼이고 어느 정도는 옆지기와 재밌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남은 4월을 정리하며 5월을 또 반갑게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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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4-29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담이 하나의 화병 같군요. 돌화병^^
남편분과 회사 근처 산책길에 만난다는 건 좀 심쿵장면이군요.ㅋㅋㅋ
같은 직종의 회사를 다니며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때론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겠구요.
좋은 일이네요.
남편분 요리도 잘 하시고^^
<남성 판타지>는 저도 들고 있어요.^^

잠자냥 2026-04-29 13:15   좋아요 1 | URL
나무 님 들고 있어요?! 안 무거워요?!!! 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6-04-29 13:18   좋아요 1 | URL
앗. 그래서 매일같이 어깨랑 손목이 아팠구나?ㅜ.ㅜ
금방 잠자냥 님네 댓글에 <진리의 발견>도 들고 있다고 썼는데…이런!
또 팔이 너무 아프군요.ㅋㅋㅋㅋ

건수하 2026-04-29 14:00   좋아요 2 | URL
저는 책장이 대신 들어주고 있어요 ^^

거리의화가 2026-05-02 20:27   좋아요 1 | URL
돌화병이라는 표현 참 멋지네요^^ 회사 근처인데 저렇게 잘 꾸며놨더라구요. 매년 철쭉이 피어날 때마다 저런 풍경을 마주하게 된답니다.
산책하다가 옆지기를 만났을 때 정말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분이 좋아요ㅎㅎ 괜히 놀란 척 하기는 하지만 애정표현이기도 하죠ㅋㅋ
<남성 판타지>는 두께 보니 후덜덜합니다ㅎㅎㅎ

잠자냥 2026-04-29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옆지기 님하고 산책길 만남 재밌어요.
긴 연휴 책과 옆지기님하고 재미나게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6-05-02 20:29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옆지기 이야기 하려니 쑥쓰러웠는데 재밌어해주시니 좋네요. 저도 만났을 때 내심 반갑고 즐거웠거든요. 잠깐이지만 같이 걷다가 헤어지는데 이 또한 추억이 될 풍경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꽉 차오르는 걸 느꼈어요. 남은 연휴 잠자냥 님도 냥이들과 집사 님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기를요^^

다락방 2026-04-30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록 나무와 태양의 조화는 언제나 최상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옆지기가 최고의 친구라니, 정말 큰 복 받으셨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

거리의화가 2026-05-02 20:31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은 역시 포인트를 아십니다! 저도 초록나무와 태양의 조합을 정말 좋아해요. 특히 아주 짙어진 초록이 아닌 4~5월의 연둣빛 잎의 나무와 햇빛의 조화는 찬란함 그 이상이잖아요. 매년 돌아올 때마다 보면서 충만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인생에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게 복이라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행운을 얻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조준래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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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은 혁명을 심화하고 확장했다. ... 볼셰비키는 총칼을 사용해 러시아 혁명을 동유럽으로 수출했다. 이런 측면에서 냉전은 1917년 볼셰비키가 시작한 국제 내전의 연속으로 보아야 한다. ... 레닌의 권력 장악은, 러시아처럼 후진적인 농업 국가에서는 혁명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으며 산업화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줄 국가나 더 선진화된 산업 국가에서 혁명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발상에 근거해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제외하더라도 스탈린,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는 모두 이런 신념을 공유했던 레닌주의자들이었다. ... 이러한 이유로 나는 혁명이 1991년 소련 체제의 붕괴와 함께 끝나는 100년의 단일한 사이클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 P9~10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의 대학살을 규탄하는 파업과 시위가 일어났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차르 정부 권위에 대한 대중의 도전으로 갈수록 급진적인 반대 세력으로 비화되었다. 노동자 뿐 아니라 이는 농촌에도 확산되었다. 국민들은 국회를 만들고 입헌군주제를 설립하기를 요구했다. 차르 정부는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다양한 반정부 운동이 정치적으로 결집하지 못했고 군대는 정부에 여전히 충성했다. 일본과의 전쟁을 빠르게 중단한 정부는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1906년 러시아는 의회 시대에 들어섰으나 황실은 여전히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남아 있었다. 입법권을 가진 두마는 차르와 귀족이 지배하는 상원의 동의 없이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차르는 두마의 요구가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 해산을 명령했다. 여러 정당들은 민중을 모아 이를 규탄하고자 하였으나 민중의 힘은 모이지 않았다. 총리 스톨리핀은 각 농민 가정에 공동경작지를 사유재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려 했다. 황실과 이권을 뺏기기 싫은 귀족 이하 전제군주정 옹호자들은 결집했고 스톨리핀의 개혁 시도를 무효화했다. 이후 그가 암살당하며 개혁의 동력은 꺾이고 말았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차르는 선전 포고 후 두마의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 전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더불어 개혁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차르는 못이기고 두마를 재소집한다. 1916년 무렵 황후와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두 사람에 의해 두마는 다시 폐회되어 정치 개혁의 기회를 잃어버렸다(같은 해 12월에 라스푸틴은 살해되었다). 게다가 황후가 군사 기밀을 독일 측에 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는 바람에 군대 내 사기와 규율은 떨어지고 이는 차르와 군주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1917년 2월 혁명은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것이다. "차르를 폐위하라! 전쟁을 그만하라!" 총파업과 시위는 이어졌다. 차르는 당연히 무력을 동원하여 군중을 탄압했다. 2월 26일(피의 일요일)에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는데 군인들이 차르와 군중 중 군중 편에 서면서 폭동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두마 지도자들은 긴급히 임시정부를 구성했고 소비에트는 임정을 지지하겠다 발표한다. 이 체제는 10월까지 지속되며 이중 권력 체제를 지탱하게 된다. 황제는 황위를 포기하고 미하일 대공에게 권좌를 내주었으나 군중이 반발하며 그도 권좌에서 하야하며 러시아 마지막 군주정인 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소비에트와 임시정부 모두 농민과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레닌은 임정에 대한 지지를 그만두고 노동자들에 대한 무장, 소비에트에 모든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 선언한다(4월 테제). 


레닌은 소비에트를 비롯한 다른 정당은 모두 반대하며 볼셰비키에게만 권력이 집중되기를 원했으나 대다수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좀 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군대 내에서는 소비에트들이 이미 볼셰비키의 수중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군사혁명위원회가 페트로그라드의 부대를 장악하고 소비에트를 볼셰비키가 통치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케렌스키가 카자크 부대를 규합하여 볼셰비키에 대항했지만 이때 부르주아 세력, 사회주의 우파, 중도파 등은 세력을 잃었다. 


1918년 1차 대전의 강화 조약을 맺으며 전쟁이 이제 끝나는가 했으나 백군과 적군 간에 내전이 곧이어 발발하였다. 전쟁으로 집단징집제가 시작되면서 물자는 부족해지고 탈영은 줄을 이었다. 개인 상업활동은 폐지되고 대부분의 산업이 국유화되었으며 배급제를 통한 사회 통제가 강화되었다. 적군의 물자(사람 포함) 징발로 인해 기아까지 가는 상황이 되자 국민들은 볼셰비키에 등을 돌리게 된다. 농민들은 자치를 회복하기를 원했고 파업은 계속되었다. 


레닌은 1921년부터 두통과 피로에 시달리며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레닌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정부는 스탈린,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삼두정치체제를 통해 운영되었다. 레닌은 몸이 회복되었다가 다시 뇌졸증이 찾아왔다. 스탈린은 레닌 사후에도 여전히 집단지도부 하에 있었기 때문에 최고권력자는 아니었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두각을 나타낸다.   

1932년 러시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은 배급량을 삭감하고 노동 규율을 강요하는 등 국민 생활의 질을 떨어뜨렸고 이에 불만에 찬 국민은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파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집권자인 스탈린은 당을 정화한다는 명목 하에 반대자(로 생각되는 이)는 숙청한 반면 엘리트 노동자는 승진을 시키면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만들었다. 스탈린 집권부는 그동안 진행한 공산주의로서의 방향을 전환하여 좋은 삶에 대한 이상을 그리며 소비에 대한 욕망을 부추겼다. 스포츠, 오락 등을 강화한 반면 가부장 가족의 서사는 돌아온 것이다. 


스탈린은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또 숙청을 감행한다. 이전에도 반대파로 몰며 숙청을 하기는 했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 시기와 규모에서 앞선 시기를 압도했다. 구볼셰비키를 축출하고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부하린 등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리더들을 몰아냈다. 숙청 대상자에는 일반 평범한 시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만큼 유혈, 대량 살인이 벌어졌다. 소수 민족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대규모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이후에 고향에 돌아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안타까웠던 것은 숙청자를 찾는 과정에 밀고자나 제보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물질 보상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등 자발적인 동기도 있었지만 협박 등에 의한 비자발적인 동기도 있었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면 모를까 지인에게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트라우마가 상당할 것 같다. 어디 비단 이 사건 뿐이랴.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 이런 상황이야말로 아비규환이 아닐런지...


러시아는 장기적으로 코민테른 주도 하에 러시아 혁명 사회주의를 세계에 수출하는 한편 외무인민위원회를 통해서 서방과는 관계를 이어가기를 원했다. 스탈린은 파시스트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연합 전선을 펴기 위해 히틀러에게 명분을 던져 주었다. 이후 양국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으나 2차 대전이 발발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니 결과적으로 크나큰 실수였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러시아 국민들은 조국애를 주입받으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삶을 살았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미소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러시아는 국가 이념 모시기 경쟁에 돌입, 많은 국가를 소비에트 하에 두려했다. 대부분은 이에 동화되었고 반기를 든 경우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유일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 한동안 베리아, 말렌코프, 보로실코프를 중심으로 한 집단 체제가 이어졌다. 그러다 1956년 흐루쇼프가 당에 대한 민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스탈린의 테러를 폭로하는 연설을 감행하는데 이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많은 국가들(특히 동유럽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반면 서구 문화가 유입되는 계기도 되었다). 

이어서 집권한 브레즈네프는 보수적 입장을 유지하며 최대한 현 체제를 흔들지 않으려 했다. 이는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동유럽,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의 사회주의 국가에 내정 간섭을 감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르바초프는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마지막 볼셰비키'다. 고르바초프는 레닌의 혁명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었으니 이상주의자였다라 할 수 있다(레닌이 살던 시기 전후에 둘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러니까 그의 생각에 지금이야말로 레닌의 혁명을 통해 소련이 부활할 수 있다 믿은 것이겠다. 레닌은 공산주의는 바로 올 수 없고 그 전에 자본주의를 거쳐가야 한다고 보았다. 고르바초프는 경제적으로 이전에 계획경제에 의한 규제를 폐지하고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감행한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그리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 다원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는 헝가리 혁명, 체코 시민운동,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불러오는 등 동독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 레닌의 이상을 따르다 역설적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정권을 붕괴시킨 원인 제공자가 되다니 참 뭐라 해야 할지.

고르바초프가 이렇게 물러나자 이후 집권한 옐친은 폭발한 민족주의 운동에 대응하여 소련공산당을 금지하고 각 공화국 내 소비에트 경선을 도입하는 조치를 취했다. 현 집권자인 푸틴은 재선, 삼선을 거듭하며 소련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고 러시아는 강대국임을 강조하는 중이다. 


1891년부터 1991년까지 러시아 근현대사를 압축하여 정리한 책이다. 얇아서 부담이 확실히 덜하다. 분량상으로 보면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는데 오래 걸린 것은 처음에는 관련 책을 함께 읽으며 비교해보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여러 일들이 겹쳐 완독하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은 거다. 이러다간 앞선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마저 읽어버렸다.


책의 두께감에 압박을 느끼는 분들에게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무난한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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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레구의 원정은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군사력을 동원한, 통일된 제국이수행한 마지막 원정이었다. 이러한 원정은 1260년 이후 불가능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1259년 뭉케가 사망한 뒤 대칸의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생겨난 갈등 때문이다. 이제 제국은 다소 단순화해서말하자면 네 개의 독립된 칸국으로 나뉘었다. 중국과 몽골의 대칸국, 중앙아시아의 차가다이 울루스, 폰투스초원의 킵착 칸국, 그리고 훌레구 울루스가 그것이다. 그중 오직 일 칸들만이 쿠빌라이 - P321

의 종주권을 인정했다. 쿠빌라이는 훌레구의 형이고, 서방 원정군을 파견한 뭉케의 지위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킵착 칸국 통치자들은 쿠빌라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차가다이 울루스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아시아의 상황은 차가다이 영토 내에 새로운 칸국이 들어서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이 칸국은 쿠빌라이의 적대적 반대자이자 우구데이 가문의 일원인 카이두가 이끌었다. 따라서 새로수립된 홀레구 울루스는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동쪽과 북쪽 국경에서 잠재적이고 종종 실제적인 적들을 상대해야 했고, 이집트와시리아의 맘룩 정권의 적대감도 감당해야 했다. - P322

케식의 지위는 본질적으로 세습됐으며, 그 일원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특권이자 의무였다. 홀레구 울루스에서 케식은 주로 페르시아 관료제와 병행하는 일종의 행정 체계를 구성했다(일부는 겹치기도 했다. 라시드 앗 딘은 자신이 아미르 쿠틀룩 샤와 같은 케식에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는 몽골 페르시아 정부가 몽골적 특성을 매우 두드러지게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페르시아인과 몽골인 사이의 문화 변용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졌으며, 홀레구 울루스의 정치는 몽골인과 페르시아 관료를 모두 포함한 파벌 투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 P342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울제이투가 라시드 앗 딘의 「집사」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라시드 앗 딘은 가잔이 자신에게 의뢰하여 완성한 몽골사를 울제이투에게 헌상했고, 새로운 일 칸은가잔을 추모하는 의미로 이 작업을 이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제라시드 앗 딘은 몽골이 만났던 모든 민족들에 대한 기록까지 포함시켜야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대작의 "세계사" 부분이다. 여기서 라시드 앗 딘은 중국인, 인도인, 튀르크인, 프랑크인 등의 역사를 서술했다. 추가된 부분은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사학사적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 - P366

초기 몽골의 파괴적 영향과 그 이후의 통치 성격, 특히 홀레구가 자신과 후계자들을 위해 영구적인 왕국을 수립한 이후의 통치 성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 P383

몽골의 페르시아 지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고볼 수 있다. 적어도 초기 몽골의 침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그랬다. 더 나아가 페르시아가 현대 이란 국가로 발전하는 데 몽골인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몽골인들이 그들의 페르시아 왕국을 "이란"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7세기 무슬림 아랍인의 침략 이후 거의 사용되지 않던 고대의 명칭이다. 몽골이 정복했을 당시 "이란"이라는 정치체는 600년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몽골의 이란 영토는 16세기 사파비 왕조가수립한 것보다 약간 더 넓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현대 이란의 국경과도 일치한다. 페르시아어에 대해서도 비슷한 설명을 할 수 있다.
물론 페르시아어는 구어로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지만, 문어로 - P394

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됐다. 교육받은 계층 사이에서 아랍어로대체됐기 때문이다. 아랍어는 아랍 지배자들의 언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페르시아로 가져온 이슬람교의 언어이기도 했다. 물론,
몽골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이미 "신(페르시아어 "(아랍 문자를 변형해 쓰고 수많은 아랍어 차용어를 포함한 페르시아어)가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랍어는 높은 위신과 지위를 유지했다. 쿠란과 이슬람 법학 및 신학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전의 몽골인들에게 이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 결과 몽골의 통치 시기에는 신페르시아어가 아랍어를 제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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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집중해서 읽다가 우연히 알고리즘에 의해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품의 제목은 들어봤지만 저자의 이름은 좀 낯설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라...' 되뇌어봐도 입에 탁 붙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책을 다 읽을 무렵 저자의 이름이 덜 낯설어지게 되었으니 다행인건가.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마다 러시아 인명에 익숙해지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건가 다시 한 번 느낀다.

성과 이름을 합쳐서 하나만 쓰면 될 것이지 이들은 이름이 워낙 길다 보니(성이 겹치니 구별을 위해 길어지는 것 같기도)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 있다. 문제는 원래의 이름과 발음조차 비슷하지도 않은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때는 매번 다른 인물인가 하고 헷갈리고 혼란에 빠지곤 한다. '아, 아까 그 사람이구나...' 하는 경우가 몇 번이고 생긴다는 말.

닥터 지바고는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그 이후의 갈등과 여진, 적군과 내군 간의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사랑 이야기다. 보편적인 주제인 사랑 이야기라 오히려 기대치를 내려놓고 봐서인지 나름 잘 읽었다. 물론 나는 역사적 배경에 더 꽂혀 읽었으나 점차 주인공의 감정과 서사에 연민을 느끼면서 마지막에는 주인공 남녀의 결말에 한편으론 허무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짠하기도 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

세월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 말이 있던가. 사람은 의지를 갖고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지만 이것은 너무 팍팍하지 않을 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내 땅을 빼앗기고 먹을 것을 제대로 먹을 수 없으며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다면 돌지 않을 사람이 누구인가 싶은 것이다. 그럴 때 이웃과 국가, 세상은 협력자가 되었다가도 배신자가 되기도 한다.

지금에 와서 보면 러시아 혁명은 세계적인 사건이지 당시 러시아에 살던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제군주정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던 이들이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겁니다! ... 전 러시아의 지붕이 뜯겨져 나갔고, 전 러시아의 민중과 우리는 열린 하늘 아래 놓이게 된 겁니다. 우리를 감시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자유! 말이나 요구뿐이 아닌 진짜 자유, 기대 이상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유죠."

"모든 이에게 변화와 대변혁이 일어났죠. 각자에게 두 가지 혁명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혁명이라고요. 제 생각에 사회주의, 이것은 모든 개별적인 혁명이 강줄기가 되어 흘러 들어가는 바다, 삶의 바다, 자주성의 바다예요. ... 이제 사람들은 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몸으로,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 혁명을 겪기로 결정을 내린 거죠."

이들이 원하는 이상은 공동의 목표인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각자 다름을 인지하게 된다.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편, 다른 한편에는 볼셰비키 편에 선 이들 간에 충돌이 발생했다. 보다 건설적인 계획을 위해서 일정 정도의 파괴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이 있었는가 하면(파괴의 정도는 논외로 하고) 기존의 체제를 개혁하여 새 삶을 일구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군중의 목소리를 빌어 '역사의 현장'이라고 표현한다. 이제 노동자 주민은 거주 공간을 제공받아 이주하고, 노동자가 아닌 주민은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야만 했다. 과연 이들은 이런 형태를 원했던 걸까? 사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혁명이 그들을 깨우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더 큰 억압의 굴레를 마주해야만 했다. 생각했다. 과연 이들 중 진정으로 혁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그중 다른 이들에 의해 동화된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변혁을 꿈꿀 수는 있어도 결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경우는 도중에 파기될 수도 있고 실현 가능성조차 낮을 수 있다. 사실 영웅은 몇 명에 불과하다. 서로를 모방하며 만들어진 우연이 역사가 되기도 한다는 것, 필연 같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들은 이후 이동, 전쟁을 겪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깝거나 먼(또는 모르는) 이들을 통해 배신을 경험했으며 파멸, 죽음의 광경을 수도 없이 목도하게 되었다.

남자들은 조국의 운명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터에 나갔고 여자들은 간호사로 나가 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정을 살리기 위해 더 힘든 고난을 마주해야 했다.

라라는 일찍부터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했고 미쳤으며 이후의 인생은 파멸, '돌아서 사는 삶'을 살아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서 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끌리고 천사 같은 광영을 본다. 라라가 하는 모든 일이 신성하고 아름답게 보인 것을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 아니겠는가.

유리 지바고(유라)는 의사로 혁명 초기에는 이념을 열렬히 신봉한 만큼 열정적이었으나 10월 혁명 이후에는 시들해진다. 피를 흘려가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회의가 일었고 삶과 유리된 구호가 의미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의 삶이었다. 나도 지바고의 이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치만 파트너로 토냐 대신 라라를 선택한 것은 선뜻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토냐는 가정을 누구보다 잘 꾸려나간 강인한 여성이었다. 결국 감정이 가지 않았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그래도 이미 있는 가정을 놓고 이상의 여인을 쫓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유라와 라라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자꾸만 커져 가는 라라에 대한 마음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유라는 (드디어는) 결심 끝에 라라의 집에 간다. 이때 하필 지바고는 부대의 의사가 살해당했다며 의료 노역자로 동원당하고 만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강제 동원에서 빠져 나와 라라와 다시 해후한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탈영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쫓기는 입장에서 그녀와 헤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끝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한다. 둘의 최후가 어쩜 그리 안타깝던지... 그리운 이를 두고 떠나가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면 참 먹먹하다.

"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구부린 팔꿈치가 당신을 기억하는 한, 내 팔과 입술이 당신을 느끼는 한, 나는 당신과 함께 있으리라. 뭐든 훌륭하고 오래 기억될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리라. 부드럽고 또 부드러운, 아프게 슬픈 묘사로 당신에 대한 추억을 기록하리라. 이것을 다 할때까지 이곳에 남으리라. 그 후에 떠나리라. 이렇게 당신을 표현하리라. ..."

3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4월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겨우 읽었다니 너무 오래 걸렸다. 길이가 상당한 소설인 만큼 등장 인물도 많고 그들 간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사실 이해하는 것에 집중을 요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막 읽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배경 이야기를 적는 데는 수월해서 금방 적어내려간 반면 인물을 이야기하고 그들 간에 이야기를 어떻게 적어야 할 지는 잘 모르겠어서 자꾸 글이 멈칫 멈칫 했다.

그래도 써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 것 같아 짧게나마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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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4-2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라가 토냐보다 라라를 선택한 이유는.........
그것은...... 라라가 이쁘기 때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6-04-28 14:1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뭐 그렇겠죠^^; 책임과 의무를 져버릴 만큼 뛰어난 외모였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라라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마치 신처럼 묘사하더라구요. 근데 제가 한 눈에 빠진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경우라 감정 이입이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서서히 스며든 케이스라서요ㅋㅋㅋ

다락방 2026-04-28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구부린 팔꿈치가 당신을 기억하는 한‘ 이라니... 구부린 팔꿈치가... 어떻게 당신을 기억한다고 하는걸까요. 팔꿈치에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 걸까요.. 왜 구부린 팔꿈치가 당신을 기억할까. 그저 내 온 몸 구석구석이 기억한다든 비유일까요. 구부린 팔꿈치 참.. 걸리적 거리네요. 유머인가..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거리의화가 님과 제가 아주 다른 사람이구나, 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저는 감상을 쓸 때면 언제나 배경에 대해 흐릿해지거든요. 배경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쓰는건 전혀 어렵지 않은데 배경은 정말이지 어휴... 그런데 거리의화가 님은 저랑 완전 반대십니다!!

거리의화가 2026-04-29 08:11   좋아요 0 | URL
다양한 관점으로 읽는 것이 책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저는 확실히 인물(과 이야기)에 취약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제나 다락방 님의 글을 읽는 것이 제겐 신선하고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