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투멘으로 구성된 그들은 황허 북쪽의 여러 지역에 주둔했으며, 몽골어로 "두르벤 투멘(dörbentimen)", 중국어로는 "사만호몽골한군(四萬戶蒙古漢軍)"이라고 했다. - P38

비록 "네 만호"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34개의 천호가 있었는데,
15개는 몽골 천호였고 19개는 한인 천호였다." 1303년 이후에는
"하남회북몽골군도만호부(河南淮北蒙古軍都萬戶府)"로 개명되어 낙양(洛陽)에 주둔했다. 앞서 언급한 두 탐마치 군대 외에도 몇 개의다른 군대가 있었는데, (1) 익도(益都)에 주둔한 산동하북몽골군도만호부(東北蒙古軍都萬戶府), (2) 봉상(鳳翔), 문주(州), 연안(延安)에 주둔한 섬서몽골군도만호부(陝西蒙古軍都萬戶府) (3) 성도(成都), 중경(重慶), 가정(定)에 주둔한 사천몽골군도만호부(四川蒙古軍都萬戶府)가 그것이다.
이처럼 몽골과 탐마치 군대는 황허 북쪽 여러 지역에 배치됐고, 북중국인(한군)과 남중국인(신부군)은 화이허 남쪽에 배치됐다. - P39

결론적으로 몽골 제국은 처음부터 단일 군주하의 동질적 정치체가 아니라 칭기스 가문이 통치하는 여러 울루스들의 집합체였다. 제국의 최고 통치자인 카안은 처음에는 제왕들에게 확고한권력을 행사했지만, 제국의 규모가 커지고 제왕들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카안의 지위에 대한 투쟁이 이어짐에 따라 울루스의 구조는 크게 변모했다. 그 결과 서방은 주치, 홀레구, 차가다이 가문이 지배하는 세 개의 대형 울루스가 성립했고, 카안의중앙 울루스는 쿠빌라이와 그의 후계자들이 지배하는 카안 울루스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 네 울루스 내에 여러 소규모 울루스가존재했다. 예를 들어, 카안의 영역 내에는 몽골의 우구데이계 울루스들, 하서회랑의 차가다이계 울루스들, 만주의 칭기스 칸 형제들의 울루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치 울루스 또한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었으며, 이후 다시 더 작은 울루스들로 분할되었다. - P25

우리는 다른 칭기스가문의 제왕들도 케식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릭 부케의아들 말릭 테무르는 4케식을 소유하고 있었고, 아미르 한 사람당케식 하나씩을 지휘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고려 왕들도 몽골의 케식 제도를 도입했다는것이다. 충렬왕은 1274년 즉위 직후 자신과 몽골 생활을 함께한 귀족 가문 자제들인 투르칵, 즉 주간 호위대를 몇 개로 나누고, 이들을 야간 호위대로 삼아 코르치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네 부대로조직했다가 1275년에 세 부대로 변경했다. 동시에 고려 궁정에 비체치(bichéchi), 투크치(tuqchi, 기수), 바우르치(ba‘urchi), 수쿠르치(sükür-chi) 같은 다양한 케식 직책이 도입됐다. 충선왕의 경우 자신뿐 아니라 몽골 공주 출신인 그의 아내도 케식을 소유했으며, 이후 카안의 궁정에서 두 케식을 통합하라고 명령했다. 고려의 사례는 다른속국들도 몽골 궁정의 케식 제도를 모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P45

몽골 제국의 지배와 그 유산은 "타타르의 멍에"와 "팍스 몽골리카"라는 두 경쟁적 표어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논란의 대상이되어 왔다. 최근에는 후자의 측면이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과거 세대의 편견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 이상으로 이해되어야한다. 특히 토머스 올슨의 선구적인 연구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지난 30년간 수많은 연구들이 밝힌 것처럼,158 "팍스 몽골리카"는 세계사 책의 멋진 장 제목이나 "화려한 단순화" 이상이었다.159 하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는 몽골의 정복과 그로 인해 일어난 파괴의 어두운 면도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P73

고대 말에 이르러 이미 중국, 인도, 근동, 지중해 세계에서 보 - P90

편주의적인 종교 및 정치 교의가 확립됐다. 그러므로 몽골인이 "제국적 지배권"을 "세상의 모든 곳에 걸쳐" 확장하겠다고 한 주장은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구두 및 서면으로 전달된 이러한 선언들을 몽골인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그들이 자신들의 정복 범위를 극적으로 과시하려 애쓴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 P91

몽골인들의 이념적 메시지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신화, 종교적 신념, 정치적 원칙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광범위한 지리적 범위를 가진 실제현상이었으므로, 세부 사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민족들에게 인식되고 이해될 수 있었다.
즉, 다른 전근대 제국과 마찬가지로 몽골이 건설한 제국은 헌신적인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핵심 집단, 열정적이면서도 계산적인합류자들로 이루어진 훨씬 더 큰 집단, 그리고 신들의 헤아릴 수없는 계획과 정복자들의 뛰어난 행운에 대개 어쩔 수 없이 복종한수많은 신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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