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조준래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평점 :
2차 세계대전은 혁명을 심화하고 확장했다. ... 볼셰비키는 총칼을 사용해 러시아 혁명을 동유럽으로 수출했다. 이런 측면에서 냉전은 1917년 볼셰비키가 시작한 국제 내전의 연속으로 보아야 한다. ... 레닌의 권력 장악은, 러시아처럼 후진적인 농업 국가에서는 혁명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으며 산업화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줄 국가나 더 선진화된 산업 국가에서 혁명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발상에 근거해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제외하더라도 스탈린,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는 모두 이런 신념을 공유했던 레닌주의자들이었다. ... 이러한 이유로 나는 혁명이 1991년 소련 체제의 붕괴와 함께 끝나는 100년의 단일한 사이클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 P9~10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의 대학살을 규탄하는 파업과 시위가 일어났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차르 정부 권위에 대한 대중의 도전으로 갈수록 급진적인 반대 세력으로 비화되었다. 노동자 뿐 아니라 이는 농촌에도 확산되었다. 국민들은 국회를 만들고 입헌군주제를 설립하기를 요구했다. 차르 정부는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다양한 반정부 운동이 정치적으로 결집하지 못했고 군대는 정부에 여전히 충성했다. 일본과의 전쟁을 빠르게 중단한 정부는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1906년 러시아는 의회 시대에 들어섰으나 황실은 여전히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남아 있었다. 입법권을 가진 두마는 차르와 귀족이 지배하는 상원의 동의 없이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차르는 두마의 요구가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 해산을 명령했다. 여러 정당들은 민중을 모아 이를 규탄하고자 하였으나 민중의 힘은 모이지 않았다. 총리 스톨리핀은 각 농민 가정에 공동경작지를 사유재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려 했다. 황실과 이권을 뺏기기 싫은 귀족 이하 전제군주정 옹호자들은 결집했고 스톨리핀의 개혁 시도를 무효화했다. 이후 그가 암살당하며 개혁의 동력은 꺾이고 말았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차르는 선전 포고 후 두마의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 전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더불어 개혁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차르는 못이기고 두마를 재소집한다. 1916년 무렵 황후와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두 사람에 의해 두마는 다시 폐회되어 정치 개혁의 기회를 잃어버렸다(같은 해 12월에 라스푸틴은 살해되었다). 게다가 황후가 군사 기밀을 독일 측에 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는 바람에 군대 내 사기와 규율은 떨어지고 이는 차르와 군주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1917년 2월 혁명은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것이다. "차르를 폐위하라! 전쟁을 그만하라!" 총파업과 시위는 이어졌다. 차르는 당연히 무력을 동원하여 군중을 탄압했다. 2월 26일(피의 일요일)에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는데 군인들이 차르와 군중 중 군중 편에 서면서 폭동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두마 지도자들은 긴급히 임시정부를 구성했고 소비에트는 임정을 지지하겠다 발표한다. 이 체제는 10월까지 지속되며 이중 권력 체제를 지탱하게 된다. 황제는 황위를 포기하고 미하일 대공에게 권좌를 내주었으나 군중이 반발하며 그도 권좌에서 하야하며 러시아 마지막 군주정인 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소비에트와 임시정부 모두 농민과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레닌은 임정에 대한 지지를 그만두고 노동자들에 대한 무장, 소비에트에 모든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 선언한다(4월 테제).
레닌은 소비에트를 비롯한 다른 정당은 모두 반대하며 볼셰비키에게만 권력이 집중되기를 원했으나 대다수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좀 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군대 내에서는 소비에트들이 이미 볼셰비키의 수중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군사혁명위원회가 페트로그라드의 부대를 장악하고 소비에트를 볼셰비키가 통치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케렌스키가 카자크 부대를 규합하여 볼셰비키에 대항했지만 이때 부르주아 세력, 사회주의 우파, 중도파 등은 세력을 잃었다.
1918년 1차 대전의 강화 조약을 맺으며 전쟁이 이제 끝나는가 했으나 백군과 적군 간에 내전이 곧이어 발발하였다. 전쟁으로 집단징집제가 시작되면서 물자는 부족해지고 탈영은 줄을 이었다. 개인 상업활동은 폐지되고 대부분의 산업이 국유화되었으며 배급제를 통한 사회 통제가 강화되었다. 적군의 물자(사람 포함) 징발로 인해 기아까지 가는 상황이 되자 국민들은 볼셰비키에 등을 돌리게 된다. 농민들은 자치를 회복하기를 원했고 파업은 계속되었다.
레닌은 1921년부터 두통과 피로에 시달리며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레닌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정부는 스탈린,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삼두정치체제를 통해 운영되었다. 레닌은 몸이 회복되었다가 다시 뇌졸증이 찾아왔다. 스탈린은 레닌 사후에도 여전히 집단지도부 하에 있었기 때문에 최고권력자는 아니었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두각을 나타낸다.
1932년 러시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은 배급량을 삭감하고 노동 규율을 강요하는 등 국민 생활의 질을 떨어뜨렸고 이에 불만에 찬 국민은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파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집권자인 스탈린은 당을 정화한다는 명목 하에 반대자(로 생각되는 이)는 숙청한 반면 엘리트 노동자는 승진을 시키면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만들었다. 스탈린 집권부는 그동안 진행한 공산주의로서의 방향을 전환하여 좋은 삶에 대한 이상을 그리며 소비에 대한 욕망을 부추겼다. 스포츠, 오락 등을 강화한 반면 가부장 가족의 서사는 돌아온 것이다.
스탈린은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또 숙청을 감행한다. 이전에도 반대파로 몰며 숙청을 하기는 했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 시기와 규모에서 앞선 시기를 압도했다. 구볼셰비키를 축출하고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부하린 등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리더들을 몰아냈다. 숙청 대상자에는 일반 평범한 시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만큼 유혈, 대량 살인이 벌어졌다. 소수 민족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대규모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이후에 고향에 돌아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안타까웠던 것은 숙청자를 찾는 과정에 밀고자나 제보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물질 보상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등 자발적인 동기도 있었지만 협박 등에 의한 비자발적인 동기도 있었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면 모를까 지인에게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트라우마가 상당할 것 같다. 어디 비단 이 사건 뿐이랴.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 이런 상황이야말로 아비규환이 아닐런지...
러시아는 장기적으로 코민테른 주도 하에 러시아 혁명 사회주의를 세계에 수출하는 한편 외무인민위원회를 통해서 서방과는 관계를 이어가기를 원했다. 스탈린은 파시스트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연합 전선을 펴기 위해 히틀러에게 명분을 던져 주었다. 이후 양국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으나 2차 대전이 발발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니 결과적으로 크나큰 실수였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러시아 국민들은 조국애를 주입받으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삶을 살았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미소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러시아는 국가 이념 모시기 경쟁에 돌입, 많은 국가를 소비에트 하에 두려했다. 대부분은 이에 동화되었고 반기를 든 경우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유일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 한동안 베리아, 말렌코프, 보로실코프를 중심으로 한 집단 체제가 이어졌다. 그러다 1956년 흐루쇼프가 당에 대한 민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스탈린의 테러를 폭로하는 연설을 감행하는데 이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많은 국가들(특히 동유럽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반면 서구 문화가 유입되는 계기도 되었다).
이어서 집권한 브레즈네프는 보수적 입장을 유지하며 최대한 현 체제를 흔들지 않으려 했다. 이는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동유럽,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의 사회주의 국가에 내정 간섭을 감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르바초프는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마지막 볼셰비키'다. 고르바초프는 레닌의 혁명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었으니 이상주의자였다라 할 수 있다(레닌이 살던 시기 전후에 둘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러니까 그의 생각에 지금이야말로 레닌의 혁명을 통해 소련이 부활할 수 있다 믿은 것이겠다. 레닌은 공산주의는 바로 올 수 없고 그 전에 자본주의를 거쳐가야 한다고 보았다. 고르바초프는 경제적으로 이전에 계획경제에 의한 규제를 폐지하고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감행한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그리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 다원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는 헝가리 혁명, 체코 시민운동,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불러오는 등 동독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 레닌의 이상을 따르다 역설적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정권을 붕괴시킨 원인 제공자가 되다니 참 뭐라 해야 할지.
고르바초프가 이렇게 물러나자 이후 집권한 옐친은 폭발한 민족주의 운동에 대응하여 소련공산당을 금지하고 각 공화국 내 소비에트 경선을 도입하는 조치를 취했다. 현 집권자인 푸틴은 재선, 삼선을 거듭하며 소련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고 러시아는 강대국임을 강조하는 중이다.
1891년부터 1991년까지 러시아 근현대사를 압축하여 정리한 책이다. 얇아서 부담이 확실히 덜하다. 분량상으로 보면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는데 오래 걸린 것은 처음에는 관련 책을 함께 읽으며 비교해보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여러 일들이 겹쳐 완독하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은 거다. 이러다간 앞선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마저 읽어버렸다.
책의 두께감에 압박을 느끼는 분들에게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한 번에 접할 수 있는 무난한 책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