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the World Vol. 2: History for the Classical Child: The Middle Ages: From the Fall of Rome to the Rise of the Renaissance (Paperback, Revised Edition) The Story of the World 18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 Peace Hill Pr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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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를 타고 나르며 로마의 끝에서 시작한 여행은 16세기 영국과 스페인의 해전으로 끝이 났다. 거의 10년 만에 재독한 책은 역시 초독처럼 느껴졌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을 만나는 일은 흥미로웠다. 그 중 엘리자베스 여왕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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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2-25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거리의 화가 님의 성실한 독서에 깊은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4-02-26 08: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청아 2024-02-25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2-26 08:50   좋아요 1 | URL
미미님 덕분입니다. 함께 읽으니 그나마도 읽게 되는 것 같아요!ㅎㅎ

독서괭 2024-02-26 0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거리의화가 2024-02-26 08:51   좋아요 2 | URL
괭님 감사합니다. 남은 분량 읽기 화이팅이에요!^^
 
[전자책] 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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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까지 읽는 게 괴로워서 그만둘까 하다가 참아내고 끝내 읽었다. 욕망을 드러내는 인간들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가면을 쓴 위선자는 도무지 용납하기 힘들었다. 자본과 탐욕에 노예가 되는 일은 너무나 쉽고 편견에 맞서는 일은 어려운 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연민과 희망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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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2-25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거 너무 궁금해서 샀는데 거리의화가 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중반까지 읽는 게 괴롭다 하시니, 아 저도 읽기가 망설여지네요. 저도 괴로워할 것 같아서요 ㅠ

거리의화가 2024-02-26 08:43   좋아요 0 | URL
제가 이런 책에 취약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어요. 그래도 뒷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CH37] The New Universe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는 지금의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태어나 천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Ptolemy)가 주장한 천동설을 반박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다. 사실 그가 주장한 개념은 과거 그리스의 천문학자였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가 설파한 것이었으나 이론화하여 책으로 출판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천동설과 지동설은 상반된 개념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학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가톨릭 교인이었는데 가톨릭계에서 지동설을 부정하고 나섰다고. 

갈릴레이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기울어져 있는 피사의 탑을 보면서 의문을 품고 '중력'이란 개념을 생각해 낸다. 그는 세계를 구성하는 개념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최초의 근대 과학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어서 사물을 확대하는 기능을 가진 망원경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Two Sciences를 출판하고 얼마 안 되 사망했다. 거기에는 오늘날 물리학 연구의 기반이 되는 근본 개념이 들어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명명되었다.


[CH38] England’s Greatest Queen

에드워드 왕자가 헨리 8세에 이어 불과 9살 때 영국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16살이 되자 몸져눕게 되었다. 의사는 온갖 치료법을 강구했으나(과학적으로 검증이 전혀 안 된 방법들)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에드워드에게는 여자 형제들이 있었는데 메리와 엘리자베스였다. 둘은 왕위를 놓고 경쟁한 끝에 메리가 승리했다. 메리는 엘리자베스를 런던탑에 가두었고 가톨릭으로 국교를 회귀하면서 프로테스탄트를 강력하게 탄압해서 원성을 쌓았다(300명이 넘는 사람을 화형에 처했다고). 엘리자베스는 몇 달간 런던탑에 갇혀 있다가 메리가 사망하면서 영국 여왕으로 등극한다. 그는 원래대로 프로테스탄트로 국교를 복귀시켰으나 종교를 가지고 탄압하지는 않았다. 의회는 그녀에게 결혼을 종용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스페인 왕자와 결혼해서 영국군이 스페인을 위한 전쟁에 투입되어야 해서 문제가 된 점을 생각했고 결혼을 하게 되면 그에게 권력이 주어질 것을 생각하여 하지 않기로 한다. 엘리자베스의 치세는 태평 성세였다. 때문에 그녀의 별명은 Good Queen Bess였다고.


[CH39] England’s Greatest Playwright

엘리자베스 여왕은 예술도 사랑했던 모양이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무척 좋아했다고.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가 왕이 된 뒤 6년 뒤에 태어났다. 그는 40개가 넘는 극을 썼고 450년 넘게 공연되었다.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이 되고 영화화되었으며 책, 학교 교재로 나오기도 했다. 

멕베스는 3명의 여성으로부터 왕의 아버지가 된다는 예언을 듣는다. 왕은 던컨이었으니 예언대로라면 자신이 던컨을 죽이고 반역자가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애써 부인했다. 그러나 레이디 멕베스는 당신이 왕위를 받을 운명이라며 종용한다. 멕베스는 던컨을 죽이고 죽이지 않은 척 연기한다. 그러나 멕베스 부부는 이후 죄책감에 들어 악몽에 쫓긴다. 둘은 다시 예언자들을 찾아가지만 레이디 멕베스는 죽고 던컨의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기 위해 오면서 자신의 종말이 왔음을 깨닫는다. 멕베스는 반역의 종말은 좋지 않음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CH40] New Ventures to the Americas

스페인 제국은 미국 땅으로 판도를 넓혀가려 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보다 스페인이 더 영향력이 있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영국 해적이 스페인 배들을 공격하는 것을 묵인했다. 영국인 월터 롤리는 미국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107명의 사람들과 함께 탐험을 나선다. 도착한 땅에 그는 버지니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다만 버지니아는 무척 추운 곳이라 비옥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곳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도 실패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하녀 중 하나인 Bess Throckmorton과 사랑에 빠진다. Bess가 아이를 가지면서 분노한 여왕은 그들을 런던탑에 가둔다. 엘리자베스의 뒤를 이은 영국왕이 그들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남아메리카에서 금을 찾아오라 했지만 빈손으로 오자 롤리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버지니아를 발견한 영국인들은 Roanoke Island(로어노크 섬)에 정착하려했는데 현지인들의 위협으로 영국으로 돌아가고 15명의 사람이 남았다. 롤리의 두 번째 버지니아행은 the Chesapeake Bay(체사피크만)으로 결정되었으나 갑작스런 돌풍으로 배에 있던 15명의 사람은 사라진다. 선장인 John White는 로어노크 섬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열악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현지인들과 친해지며 고기를 잡고 곡식을 기르는 법을 전수받고 그곳에 정착하여 마침내 그들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John White는 자손들이 그곳에서 정착하기를 원치 않아 1587년 출발하여 3달 만에 런던에 도착한다. 하지만 영국과 스페인에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롤리는 남아메리카로 출발하여 어느 무인도에 도착한다. 나무에 새겨진 표식인 “Croatoan”이라는 단서를 보고 섬을 찾아 나서려했으나 허리케인으로 배에 있던 모든 이가 사망한다. 롤리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영국인들이 그곳을 향했으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CH41] Explorations in the North

상인 John Cabot이 영국에서 출발하여 Newfoundland(뉴펀들랜드)에 도착한다. “I claim this land for England!” 그는 아시아로 가는 가장 짧은 항로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영국 어부들은 Cabot이 뉴펀들랜드에 대해 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그곳에 오두막을 짓고 여름 내내 머물렀다. 소식을 들은 미국인 세인트 존스는 봄과 여름에만 뉴펀들랜드에 머무르며 고기를 잡고 생활했는데 겨울이 되면 물이 얼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은 자크 카르티에에게 새로운 섬을 찾아내라는 명을 내린다. 그는 중국으로 바로 향하는 항로를 알고 싶어 했다. 현재 the Gulf of St.Lawrence(세인트 로렌스 만)이라고 불리는 곳에 갔고 현지인 Micmacs를 비롯한 친구들을 만난다. 이곳을 뭐라 부르냐는 말에 “cthe village”라는 대답을 들었고 이것은 캐나다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이 캐나다가 되었다. 카르티에는 원하던 중국에는 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캐나다를 발견했고 70년 뒤가 되면 프랑스는 캐나다를 년 안에 왕복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말하는 이가 많은 이유도 정착 인구들이 이 때문이다.


[CH42] Empires Colide

스페인 왕 필립은 영국 함선들이 스페인을 향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영국에 선전 포고를 하려 했다. 평화를 원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협상으로 무마했으나 필립은 이것이 눈속임인 것을 알아차린다. 필립은 마침내 130척의 함선에 Spanish Armada 군을 대동하고 전투에 나선다. 엘리자베스는 사촌인 Lord Howard을 해군 사령관으로, Sir Francis Drake를 부사령관으로 하여 영국군을 플리모스에 정박시킨 채 스페인 배를 기다린다. 스페인 배는 대규모 함선이라 컸지만 영국 배는 작지만 빨랐고 이동하며 총으로 공격하자 스페인 배는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영국군의 2배 규모였던 스페인군은 패배했고 이 전투 이후 영국은 스페인에 패권을 서서히 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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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무원년(을유 25)

돌아와 中山郡에 이르니 여러 장수들이 尊號를 올릴 것을 청하였으나 왕이따르지 않았고, 행군하여 南平棘에 이르러서 여러 장수들이 굳이 청하였으나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耿純이 나아가 아뢰기를 "천하의 士大夫(勇士와 大夫)들이 친척을 버리고 土壤(고향)을 떠나 화살과 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大王을 따르는 것은 그 계책(목적)이 진실로 용의 비늘을 붙잡고 봉황의날개에 붙어서 그 뜻을 이루기를 바라서인데, 지금 大王께서 시일을 지체하고 무리들의 마음을 거슬려 황제의 칭호와 지위를 바로잡지 않으시니, 저는천하의 들이 희망이 끊어지고 계책이 궁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생각을 두어 오랫동안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을까 두려우니, 큰 무리가 한 번흩어지면 다시 모으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왕이 깊이 감동하여 말하기를
"내 장차 생각하겠다." 하였다.
행군하여 물에 이르러서 馮異를 불러 사방의 동정을 묻자, 馮異가 대답하기를 "更始(劉玄)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宗廟社稷의 우려가 대왕에게있으니, 마땅히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 ≪後漢書≫〈耿純傳〉과 〈馮異傳〉에 나옴
이때 마침 儒生 張華가 關中에서 赤伏符를 받들고 왕에게 찾아오니, 여기에이르기를 "劉秀가 군대를 내어 無道한 자를 토벌하니, 사방 오랑캐들이 구름처럼 모여 龍이 들에서 싸우는데 四七의 즈음에 화가 주인이 된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이로 인하여 다시 주청하자, 6월에 왕이 물의 남쪽에서 황제의지위에 오르고 연호를 바꾸고 大赦하였다. - ≪後漢書 光武帝에 나옴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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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이 얼마나 철저하게 가부장주의와 주종관계를 임금관계로 대체했든, 몇몇 개인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어계층의 사닥다리 위로 올라섰든, 성공한 자들이 자신의 발 밑에서 해체되는 기준과 구별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을 했든, 명초의 중국사회를 묶어놓은 가부장주의와 주종관계에 기초한 계급체계는 그 마지막까지도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들은 상업에 의해 많이 변용되었다. 상인들은 엘리트층으로 가는 길을 찾아냈고, 신사층은 수입을늘리기 위해 상업에 의존했다. 하지만 토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교통·통신과 상업이 명조 사회 내에 유도한 그 모든 유동성에도 불구하고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구조적 경계는 약해지지 않았다. 각 개인은1644년의 위기를 고통스럽게 지나갔지만 사회제도는 의연히 살아남았다. 실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가을의 족장들은 겨울의 족장들이 형성되었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조건하에서 백성을 다스렸으나, 그들의지배에는 변함이 없었고 다음 왕조에 들어서도 그들의 지배는 계속될것이었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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