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이 얼마나 철저하게 가부장주의와 주종관계를 임금관계로 대체했든, 몇몇 개인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어계층의 사닥다리 위로 올라섰든, 성공한 자들이 자신의 발 밑에서 해체되는 기준과 구별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을 했든, 명초의 중국사회를 묶어놓은 가부장주의와 주종관계에 기초한 계급체계는 그 마지막까지도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들은 상업에 의해 많이 변용되었다. 상인들은 엘리트층으로 가는 길을 찾아냈고, 신사층은 수입을늘리기 위해 상업에 의존했다. 하지만 토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교통·통신과 상업이 명조 사회 내에 유도한 그 모든 유동성에도 불구하고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구조적 경계는 약해지지 않았다. 각 개인은1644년의 위기를 고통스럽게 지나갔지만 사회제도는 의연히 살아남았다. 실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가을의 족장들은 겨울의 족장들이 형성되었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조건하에서 백성을 다스렸으나, 그들의지배에는 변함이 없었고 다음 왕조에 들어서도 그들의 지배는 계속될것이었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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