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무원년(을유 25)

돌아와 中山郡에 이르니 여러 장수들이 尊號를 올릴 것을 청하였으나 왕이따르지 않았고, 행군하여 南平棘에 이르러서 여러 장수들이 굳이 청하였으나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耿純이 나아가 아뢰기를 "천하의 士大夫(勇士와 大夫)들이 친척을 버리고 土壤(고향)을 떠나 화살과 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大王을 따르는 것은 그 계책(목적)이 진실로 용의 비늘을 붙잡고 봉황의날개에 붙어서 그 뜻을 이루기를 바라서인데, 지금 大王께서 시일을 지체하고 무리들의 마음을 거슬려 황제의 칭호와 지위를 바로잡지 않으시니, 저는천하의 들이 희망이 끊어지고 계책이 궁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생각을 두어 오랫동안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을까 두려우니, 큰 무리가 한 번흩어지면 다시 모으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왕이 깊이 감동하여 말하기를
"내 장차 생각하겠다." 하였다.
행군하여 물에 이르러서 馮異를 불러 사방의 동정을 묻자, 馮異가 대답하기를 "更始(劉玄)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宗廟社稷의 우려가 대왕에게있으니, 마땅히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 ≪後漢書≫〈耿純傳〉과 〈馮異傳〉에 나옴
이때 마침 儒生 張華가 關中에서 赤伏符를 받들고 왕에게 찾아오니, 여기에이르기를 "劉秀가 군대를 내어 無道한 자를 토벌하니, 사방 오랑캐들이 구름처럼 모여 龍이 들에서 싸우는데 四七의 즈음에 화가 주인이 된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이로 인하여 다시 주청하자, 6월에 왕이 물의 남쪽에서 황제의지위에 오르고 연호를 바꾸고 大赦하였다. - ≪後漢書 光武帝에 나옴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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