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初淮陰人韓信 家貧釣於城下 有漂母見信飢飯信 信喜謂漂母曰 吾必有以重報母 母怒曰 大丈夫不能自食 吾哀王孫而進食 豈望報乎 淮陰屠中少年 有侮信者 因衆辱之曰 信能死剌我不能死出我袴下 於是 信俛出袴下 蒲伏(匍匐) 一市人 皆笑信以爲怯
及項梁渡淮 信杖劍從之 居麾下 無所知名 項梁敗 又屬項羽 羽以爲郞中 數以策干羽 羽不用 漢王之入蜀 信亡楚歸漢 王以爲治粟都尉 亦未之奇也 信數與蕭何語 何奇之漢王至南鄭 諸將及士卒 皆歌謳思東歸 多道亡者 信亡去 何聞信亡 不及以聞 自追之 人有言王曰 丞相何亡 王大怒 如失左右手
한신이 집이 가난하여 성 아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빨래하던 아낙이 한신의 꼴이 말이 아니던 모습을 보고서는 밥을 주었다. 한신이 그에게 ˝제가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였다. 그 아낙이 ˝내가 어찌 보답을 바라겠는가?˝ 한신에게 답했다. 어느 한 소년이 한신을 모욕하며 말하기를 ˝한신아, 죽기 싫으면 내 바지 가랑이 아래로 지나가라.˝ 했다. 한신이 바지가랑이 아래로 기며 지나가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겁쟁이라며 비웃었다.
항량이 회수를 건널 때 한신이 항량의 휘하에 있었지만 유명무실한 채로 있었다. 낭중이 되어서 책략을 자주 항우에게 간했으나 쓰이지 못했다. 결국 한신이 초에서 도망하여 한으로 귀순하니 한왕이 치속도위로 임명하였다. 소하가 한신을 비범하게 여겼다. 한왕이 남정에 도착했을 때 여러 장수들이 모두 노래를 부르며 동쪽으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하니 도망하는 이가 많았는데 이 때 한신도 도망자에 포함되어 있었다. 소하가 한신이 도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고하지 않은채 한신을 쫒아 갔다. 어떤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소하가 도망갔다며 보고하였더니 왕이 노하여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居一二日 何來謁王 王且怒且喜 罵何曰 諸將亡者以十數 公無所追 追信詐也 何曰 諸將易得耳 至如信者 國士無雙 王必欲長王漢中 無所事信 必欲爭天下 非信 無可與計事者 顧王策安決耳 王曰 吾亦欲東耳 安能鬱鬱久居此乎 乃召信 拜大將 何曰 王素慢無禮 今拜大將 如呼小兒 此乃信所以去也 王必欲拜之 擇良日齋戒 設壇場具禮 乃可耳 王許之 諸將皆喜 人人 各自以爲得大將 至拜大將 乃韓信也 一軍皆驚
소하가 한왕을 찾아와 “한신을 쫓아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중에서 왕을 한다면 한신이 필요없지만 한신은 천하의 패권을 쥔 왕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말했다. 또한 그를 쉽게 임명하지 말고 좋은 날을 가려 재계하고 예를 갖추어 임명해야 할 것이라 하니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한신은 그렇게 대장군이 되었다.
信拜禮畢上坐 王曰 丞相數言將軍 將軍何以敎寡人計策 信辭謝 因問王曰 今東鄕(向) 爭權天下 豈非項王邪 漢王曰 然 曰 大王自料勇悍仁强 孰與項王 漢王良久 曰 不如也 信曰 信亦以爲大王不如也 然臣嘗事之 請言項王之爲人也 項王喑啞叱咤 千人自廢 然不能任屬賢將 此特匹夫之勇耳 項王見人 恭敬慈愛 言語嘔嘔 人有疾病 涕泣分食飮 至使人有功當封爵者 印刓敝 忍不能予 此所謂婦人之仁也 項王 雖霸天下而臣諸侯 不居關中而都彭城 放逐義帝 所過無不殘滅 名雖爲霸 實失天下心 故其彊易弱 今大王 誠能反其道 任天下武勇 何所不誅 以天下城邑 封功臣 何所不服 以義兵 從思東歸之士 何所不散 且三秦王爲將 將秦子弟數歲矣 欺其衆 降諸侯 至新安 項王 詐坑秦降卒二十餘萬 唯獨邯 欣 翳得脫 秦父兄 怨此三人 痛入骨髓 今楚彊以威 王此三人 秦民莫愛也 大王入關 秋毫無所害 除秦苛法 秦民無不欲得大王王秦者 今大王 擧而東 三秦 可傳檄而定也 於是漢王大喜 自以爲得信晩 遂聽信計〈以上 出史記韓信傳〉
소하의 추천으로 한신을 등용하기는 하였으나 한왕 유방은 본인에게 건넬 계책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이에 그는 자신이 항우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특징을 말해준다. 그는 보통 사람의 용기와 가벼운 인을 베풀 뿐이다. 이에 제후들에게도, 백성들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항우와 반대로만 한다면 능히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또 이제 군대를 일으켜 동쪽으로 진출하여 삼진을 평정할 때라고 설득하니 한왕이 그의 말을 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