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만 쓸고 사는 티끌같은 삶, 티끌이 바늘귀 같은 인생의 출구를 빠져나가면 광대하고 무변한 공간, 아아 내 별과 나 사이를 가로지른 무궁한 공간………… 티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꼬. 진리는, 진실은 바로하늘 어느 곳에선가 헤매고 있을 내 별 안에 있을 터인데. - P351

"하기는 그래. 빤하지. 아예 친일파가 된다면 모를까 중간지대에서 어물쩍거리다 보면 해괴한 사회잡기나 쓰게 되지. 그대표적 인물이 이모(李某) 아니겠나.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라도하지 않으면 발붙일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구."
"좌파는 우파든 활로는 결국 뛰는 것밖에 없겠지요. 뛰지도않고 저들한테 빌붙지도 않고 사는 사람들, 이제는 바닥이 났을 겝니다. 윤경이야 아직 멀었겠지만."
"사사건건 한 번씩 들먹여야 속이 편하겠나?"
"농담 아닐세. 아무튼 앞으로 안전지대는 없어질 게야."
"그럴 테지. " 전윤경도 동의하기는 한다. 임명빈도. - P395

조용하하고 결혼을 생각한다. 얼레설레 아차! 하는 사이에이루어졌던 결혼, 그가 귀족이 아니었고 자산가가 아니었고 교육받은 신사가 아니었고, 그랬다면 과연 결혼이 이루어졌을지그것은 의문이다. 차디찬 눈빛과 창백해 보이는 지적인 용모에명희 마음이 조금은 끌렸던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쾌적한 곳에서 풍파 없이 자신을 달래가며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상황은 꽃과 관계가 없고 저 푸른 하늘과도 관계가 없고 음악회, 그 분위기와관계가 있었는지 모른다. 고급 레스토랑의 하얗게 풀 먹인 식탁보와 관계가 있었는지 모른다. 아아 하며 명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 때문에 비로소 입술을 깨문다.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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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楚數侵奪漢甬道 漢軍乏食 漢王與酈食其 謀撓楚權 食其曰 陛下能復立六國之後 德義已行 楚必斂衽而朝 漢王曰 善 趣(促)刻印 先生因行佩之 食其未行 張良從外來謁 漢王方食 曰 客有爲我計撓楚權者 具以酈生語告良 良曰 畫此計陛下事去矣 請借前箸 爲大王籌之 其不可者八 天下游士 離親戚, 棄墳墓, 去故舊 從陛下游者 徒欲日夜望咫尺之地 今復立六國之後 天下游士各歸事其主 陛下誰與取天下乎 誠用客謀 陛下事去矣 漢王輟食吐哺 罵曰 竪儒幾敗迺公事 令趣銷印〈出留侯世家〉
초나라 침탈로 한나라 군대의 식량이 떨어지자 역이기는 육국의 후손을 세울 것을 건의하며 길을 떠난다. 그러자 장량이 그 계획에 반대하며 그들이 자기 군주를 섬기게 될 테니 일이 틀어질거라 이야기한다.
장이와 진여가 진섭을 설득해 육국을 세워 스스로 당을 만들게 하고 려생도 한왕을 설득하였다.

○ 漢王謂陳平曰 天下紛紛 何時定乎 陳平曰 項王骨鯁之臣 亞父, 鍾離昩, 龍且, 周殷之屬 不過數人耳 大王誠能出捐數萬斤金 行反間 間其君臣 以疑其心 項王爲人 意(疑)忌信讒 必內相誅 漢因擧兵而攻之 破楚必矣 漢王曰 善 乃出黃金四萬斤 與平 資所爲 不問其出入 平多以金縱反間於楚 宣言 鍾離昩等 爲項王將 功多矣 然終不得裂地而王 欲與漢爲一 以滅項氏 而分王其地 項羽果不信鍾離昩等〈出陳丞相世家〉
진평이 항왕의 몇 안되는 신하들 사이를 이간질할 계책을 낸다. 황금 4만근을 그에게 주어 그를 초나라로 보내 반간계를 쓰도록 하자 과연 항우에게 의심의 씨앗이 생겼다.

○ 夏楚圍漢王於滎陽急 漢王請和 割滎陽以西者爲漢 亞父勸羽 急攻滎陽 漢王患之〈出漢書本紀〉
여름에 초나라가 한왕을 형양에서 포위하여 다급해진 한왕이 화친을 청한다. 이때 범증은 한왕의 말을 듣지 말고 형양을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 項王使使至漢 陳平使爲太牢具 擧進 見楚使 卽佯驚曰 吾以爲亞父使 乃項王使 復持去 更以惡草具進 楚使歸 具以報項王 王果大疑亞父 亞父欲急攻下滎陽城 項王不聽 亞父聞項王疑之 乃怒曰 天下事大定矣 君王自爲之 願請骸骨 歸 未至彭城 疽發背而死〈出陳丞相世家〉
항왕의 의심의 씨앗은 범증에게 가 닿고 형양성을 공격하라는 그의 말을 결국 항왕은 듣지 않는다. 범증은 자신의 말을 의심하자 이제 마음대로 하라며 자신은 물러나겠다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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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 천하를 이어받기에는 모자라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정권을 순에게 넘겨주고자 했다. 순에게 넘겨주면 천하가 이로움을 얻고 단주만 손해를 볼 뿐이지만, 단주에게 넘겨주면천하가 손해를 보고 단주만 이롭게 될 것이었다.
요는 말했다.
"결국 천하가 손해를 보게 하면서 한 사람만 이롭게 할 수는 없다."
마침내 천하를 순에게 넘겨주었다. - P47

순의 아버지 고수는 맹인이었다. 순의 어머니가 죽자 고수는 다시아내를 얻어 상을 낳았는데, 상은 오만했다. 고수는 후처의 자식을 편애하여 항상 순을 죽이려고 했으므로 순은 피해 도망 다녔다.
어쩌다가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그 즉시 벌을 받았다. 그러나순은 아버지와 계모와 동생을 순종하며 섬겼고 날마다 독실하고 성실하게 살았으며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 P48

황제로부터 순, 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같은 성에서 나왔으면서도 국호를 달리하여 밝은 덕을 널리 밝혔다. 때문에 황제는 유웅有熊이고, 전욱은 고양이며, 제곡은 고신이고, 요임금은 도당陶唐이고,
순임금은 유우有虞이다. 우임금은 하후夏后로 씨氏는 다르니 성姓은사씨姒氏이다. 설은[씨는]상이고 성은 자씨이다. 기는 [씨는 주周이고 성은 희씨姫氏이다. - P57

나는 일찍이 서쪽으로는 공동桐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탁록을지나왔으며, 동쪽으로는 바닷가까지 가고 남쪽으로는 장강과 회수淮水를 건넌 적이 있는데, 때때로 장로長老나이가 많은 덕 높은 사람들이황제, 요, 순을 칭송하는 곳에 가 보면 풍속과 교화가 [다른 곳과는]확연히 달라, 이것들을 총괄해 보면 옛글의 내용에 어긋남이 없고사실에 가깝다. 내가 『춘추春秋』와 『국어를 살펴보았는데, 그내용에 「오제덕」과 「제계성」을 뚜렷하게 밝혀 놓은 것이 명백하니, 다만 깊이 고찰하지 않은 것에 불과할 뿐, 거기에 기술된 내용이 전부 허황한 것은 아니다. 『상서』에는 누락되어 [연도의] 간격이 있는데, 그 누락된 부분들은 때때로 다른 책에서 발견된다.

-> 오제 내용을 본기에 포함한 근거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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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박찬승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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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4 주년을 맞는 삼일절에 이 책을 읽었다. 4년 전 100주년 기념에 출간된 책이나 바로 읽기 보다는 여러 평가를 확인해본 뒤 읽어보려고 일부러 미루어두었다. 1~2년 전쯤 중고 서점에서 구입한 뒤 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가 올해는 딱히 신간이 보이지 않기도 해서 미뤄둔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의 강제병합이 된 후 3.1운동의 직접적 배경부터 시작해서 그 경과와 결과를 사건의 흐름에 따라 실증적으로 정리하였다. 외부적 영향이 된 파리 평화회의의 '민족자결주의'와 신한청년당의 결성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결성에 이르는 결과까지를 다루었다.

특히 비중을 둔 것은 '민족대표 33인'과 '독립선언서'이다.
민족자결주의의 대두 속에서 해외의 한인들이 독립 청원 활동을 시작하고 2.8 독립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내에서도 종교계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논의되었다.
민족대표 33인(천도교 측 15인, 기독교 측 16인, 불교 측 2인)에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선정되었고(특히 기독교와 천도교 종교계 지도자들의 규합 과정 등), 그 구성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3.1 운동에 함께 참여하기 위한 종교계의 결단과 독립 청원과 독립 선언에 대한 갈등에 대한 서술 부분이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독립선언서의 내용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그 가치는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뒷 부분의 만세 시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기술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소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만세 시위의 경우에는 시위의 특성에 따른 분류로 대표 시위 사례를 몇 차례로 담아 놓았다. 이름 없는 인민들에 대한 기록은《낯선 삼일운동》 같은 책을 통해서 보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전형적인 교과서적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어 대중들을 위한 친절한 역사 길잡이이자 교양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증적 방식에 따라 최대한 추측을 배제하고 역사적 흐름에 따라 기술한 책이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정리하기에 꽤 괜찮은 책으로 보여진다. 다만 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면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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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02 0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월 첫날 뜻깊게 보내셨군요 삼월 첫날은 한국에 중요한 날인데, 그런 거 잘 생각하지 않기도 하네요 거리의화가 님은 해마다 삼월 첫날 그때 이야기가 담긴 책을 보세요 어제 새벽에 《민족의 장군 홍범도》(이동순)라는 책 제목이 보이더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02 09:13   좋아요 1 | URL
제가 그 책을 어제야 알게 되었어요. 홍범도 장군 이야기야 언제 읽어도 관계없으니 올해 안에 기회가 되면 읽어볼까 싶습니다. 기념일이어서 챙긴다기보다는 이럴 때 읽지 않으면 평소에는 더 미뤄놓게 되니까 그래서 읽게 된다고 생각해요.
 

【丁酉】冬十月 韓信, 張耳 以兵數萬 東擊趙 趙王及成安君陳餘聞之 聚兵井陘口 號二十萬 廣武君李左車 說成安君曰 韓信, 張耳 乘勝遠鬪 其鋒不可當 臣聞千里餽粮 士有飢色 樵蘇後爨 師不宿飽 今井陘之道 車不得方軌 騎不得成列 行數百里 其勢糧食 必在其後 願足下假臣奇兵三萬人 從間路 絶其輜重 足下 深溝高壘 勿與戰 不十日 而兩將之頭 可致於麾下 否則必爲二子所擒矣 成安君 常自稱義兵 不用詐謀奇計
韓信 使人間視 知其不用廣武君策 大喜 乃敢引兵遂下 未至井陘口三十里 止舍 夜半 傳發 選輕騎二千人 人持一赤幟 從間道 望趙軍 誡曰 趙見我走 必空壁逐我 若疾入趙壁 拔趙幟 立漢赤幟 令裨將傳餐曰 今日 破趙會食 諸將 皆莫信 佯應曰 諾 乃使萬人 先行出背水陣 趙軍 望見大笑 平朝(旦) 信建大將旗皷 皷行出井陘口 趙開壁擊之 大戰良久 信與張耳 佯棄鼓旗 走水上軍 趙果空壁 爭漢旗鼓 逐信, 耳 信耳已入水上軍 軍皆殊死戰 不可敗 信所出奇兵二千 遂馳入趙壁 皆拔趙旗 立漢赤幟 趙軍已不能得信等 還歸壁 壁皆漢幟 見而大驚 兵亂遁走 漢兵夾擊 大破趙軍 斬成安君泜水上 禽(擒)趙王歇
한신과 장이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왕과 성안군 진여가 군대를 집결시킨다. 광무군 이좌거가 성안군에게 훌륭한 계책을 내놓았지만 성안군은 스스로를 의로운 군대라 여기며 계책을 쓰지 않았다.

○ 諸將問信曰 兵法 右倍山陵 前左水澤 今者 將軍令臣等 反背水陣以勝 何也 信曰 此在兵法 顧諸君不察耳 兵法不曰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乎 且信非得素拊循士大夫也 此所謂驅市人而戰 予之生地 皆走 寧得而用之乎 諸將 皆服
信募生得廣武君者 予千金 有縛致麾下者 信解其縛 東向坐師事之 問曰 僕欲北攻燕 東伐齊 若何而有功 廣武君曰 亡國之大夫 不可以圖存 敗軍之將 不可以語勇 信曰 百里奚居虞而虞亡 之秦而秦霸 非愚於虞而智於秦也 用與不用 聽與不聽爾 向使成安君 聽子計 僕亦禽矣
廣武君曰 智者千慮 必有一失 愚者千慮 必有一得 故曰 狂夫之言 聖人擇焉 將軍虜魏王豹 誅成安君 威振天下 然欲擧倦敝之兵 頓之燕堅城之下 欲戰不得 攻之不拔 今爲將軍計 莫如按甲休兵 鎭撫趙民 遣辯士 奉咫尺之書 燕必聽從 燕已從 而東臨齊 雖有智者 亦不知爲齊計矣 韓信從其策 發使使燕 燕從風而靡 〈出史記信本傳〉
한신이 성안군이 광무군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을 보고 몸 사리지 않고 군대를 출병한다. 조나라 군사 앞에서 일부러 달아나는 척하니 과연 조나라 군대는 성을 비우고 한나라 군대를 쫓았다. 이 틈을 타 한나라 군대가 성으로 들어와 붉은 깃발을 꽂았다. 한나라 군이 조나라 군대를 공격하자 성안군은 목을 베고 자결하고 조왕도 한나라 군이 사로잡는다.

○ 隨何至九江 九江王布 奉命至漢 漢王 方踞牀(床)洗足 召布入見 布大怒悔來 欲自殺 及出就舍 帳御飮食從官 皆如漢王居 布又大喜過望 漢益九江王兵 與俱屯成臯 〈出黥布傳〉
구강왕 영포가 한나라에 이르러 한왕을 만났는데 세족을 하는 등 자신에게 신경써주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 관사로 가보니 한왕과 마찬가지로 물품이나 음식, 관원의 수가 한왕의 것과 같아서 흡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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