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엽, 오리엔탈리즘이 동양 서양에 전수했을 때, 주로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 첫째는 현대 학문이 갖춘 전파 능력, 곧 연구교수직, 대학, 학회, 지리학적인 탐험조직, 출판업 등의 확산장치를 사용한다는 방법이었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선구적인연구자, 여행자, 시인들의 특권적인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었고, 그들의비전이 누적되어 동양의 진수를 형성했다. 이러한 동양의 교의적 ·학설적인 발로야말로 우리가 지금까지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동양에 관하여 어떤 의미 있는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표현의 잠재능력을 부여받았다. - P381
수십 년에 걸쳐 오리엔탈리스트들은 그 특이한 이질성에 의해 유럽으로부터 격리된 하나의 학술적 대상으로서 동양을 말하고 텍스트를 번역하며 문명, 종교, 왕조, 문화, 심성을 설명하여 왔다. 오리엔탈리스트란, 르낭이나 사시와같이 사회 속에서 동양을, 동포를 향하여 동양을 해석해 주는 역할을 담당한 전문가였다. 오리엔탈리스트와 동양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해석학적인 것이었다. - P382
‘백인‘의 창조와 오리엔탈리즘의 창조 사이 쌍방에 공통되는 다른 요소로는, 각각이 지배하는 ‘영역‘ 내지 그러한 영역이 행동, 학문, 소유에관하여 고유한 양식, 고유한 의식을 필요로 한다는 감각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오직 서양인만이 동양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백인‘이기 때문에 비로소 유색인종이나 백인 이외의 인간을 명명하 - P392
고 명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리엔탈리스트나 ‘백인‘ (양자는 보통 호환되는 것이다)에 의한 모든 발언은 백인과 유색인종, 서양인과 동양인을구분한다는 극복하기 어려운 거리감을 유포했다. 나아가 각각의 발언배후에는, 동양인-유색인종을 서양인-백색인종의 관찰 대상이라는 지위에 고정시켰고, 결코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경험, 학문, 교육의 전통이 울려 퍼졌다. - P393
인종, 문명, 언어 내부의 명백한 차이에 관한 이러한 진리가 뿌리 깊고 근절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점(또는 그렇게 주장된 것)은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 진리는 사물의 근저에까지 이르렀고, 모든 사물은그 진리로 인하여 자신의 기원 그리고 그 기원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유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되었다. 곧 그것은 인간 사이에 참된경계선을 긋는 것이고 인종, 민족, 문명의 개념은 그 경계선에 따라 구축되었다. 또 그것은 즐거움과 괴로움, 정치조직이라는 다양하고 평범한 인간적 현실로부터 무리하게 사람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서, 그 대신 시선을 타락시키고 퇴행시켜 불변적인 기원이라는 것을 향하게하는 것이었다. - P401
동양의 비전은 어느 것이나 궁극적으로 그소유자인 인물, 제도, 담론에 의거하여 그 일관성과 힘을 불러일으키게된다. 어떤 포괄적인 비전이라고 해도 그것은 모두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서양의 중동 관념에 관한 역사 속에서, 이러한 여러관념이 그것들을 반박하는 어떤 증거에도 관계없이 여전히 부동의 지위를 유지하여 왔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보아 온 그대로이다. (실제로 이러한 여러 관념은 스스로의 유효성을 증명하는 증거를 낳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대부분의 경우 오리엔탈리스트는, 이러한 포괄적인 비전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대행자이다. 곧 어떤 개인이 동양이나 동양 민족으로 알려진집합적인 현상 전체를 ‘과학적‘으로 보아야 할 필요에 부닥쳤을 때, 그는 자신의 관념이나 자신의 눈으로 본 사항도 이 요구에 종속시키고자생각한다. - P411
오리엔탈리즘은 현대사와 사회적 및 정치적인 여러 조건, 또는 새로운자료가 이론적·역사적인 ‘유형‘에 부과하는 필요한 개정으로부터 문화적으로 단절되어야 했다. 둘째, 오리엔탈리즘이 부여하는 추상개념(또는추상화의 기회)은, 이슬람문명의 경우 새로운 유효성을 확보했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오리엔탈리스트가(현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련의 ‘고전적인‘ 원리에만 의거하면서) 말한 그대로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상정되었으며, 또한 그것으로부터 현대 이슬람이란 낡은 이슬람을 재확인한 변형에 불과하다고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슬람의 현대성이란도전이라기보다도 하나의 모욕이라고 하는 가정이 수립되었기 때문이었다(여기서 가정이라든가 상정과 같은 말이 매우 빈번히 사용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이 인간적 현실을 보는 독특한 방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로 한, 상당히 유별난 우여곡절을 표현하고자 의도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우어바흐나 쿠르티우스가 생각한 문헌학에서 종합의 야망이 학자의 의식을 확대시켜, 사람들은 모두 형제라는 감각과, 인간행동의 어떤 원리가갖는 보편성의 감각을 증대시킨 반면, 이슬람 연구에 관한 오리엔탈리즘의 경우에는 종합이라고 하는 것이, 이슬람에 반영되어 있는 동양과서양의 차이감을 더욱 날카롭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다. - P448
이슬람 동양에 대한 아카데믹한 태도의 보기로, 또 대중문화 속에서선전되고 있는 풍자화를 학식 있는 인간의 시야가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가의 보기로 나는 버거를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버거는 오리엔탈리즘을 취하고 있는 어떤 가장 새로운 변용을 대변하고 있다. 곧 오리엔탈 - P496
리즘은 더 이상 근본적으로 문헌학적인 학문 분야가 아니고, 동양에 관한 막연한 일반적인 지식도 아니며, 사회과학의 전문 분야의 하나로 전환했다. 더 이상 오리엔탈리스트는 처음부터 동양의 난해한 언어를 습득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훈련받은 사회과학자로 시작하여, 그 학문을 동양이든 그 어디든 간에 적용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특히미국이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에 끼친 공헌이며, 이 시기는 대체로 제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비워진 빈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른 시절부터 비롯된다. - P497
동양침략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심지어 19~20세기에 중동에 파견된 전설적인 미국인 선교사들조차 자신들의 역할은 신에 의해 명령것이라기보다도 자신들의 신, 자신들의 문화, 자신들의 운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기의 선교사들이 만든 시설들-인쇄소, 학교, 대학, 병원 등등은 물론 그 지역의 복지에 공헌했으나, 그것들은 특히제국적 성격을 갖는 것이었고, 그들은 미국정부의 원조를 받았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동양에 시설한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 P504
아랍에 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일반론은 아랍의 특성을 비판적으로 열거하는 경우에 지극히 상세하다. 그러나 아랍의 장점을 분석하는 경우에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아랍적인 가족제도, 아랍적인 수식, 아랍적인 성격 등은 오리엔탈리스트에의한 풍부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능력을 결여한 것, 자연스러움을 박탈당한 것으로서 나타난다. 심지어 이와 동일한 설명이 주제에대한 양도적인 힘에서 완전함과 심원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 P532
우리는 상이한 문화를 어떻게 ‘표상할 수 있는가? 상이한 문화란 무엇인가? 하나의 분명한 문화(인종, 종교, 문명)라는 개념은 유익한 것인가아닌가, 또는 그것은 언제나(자기의 문화를 논하는 경우에는 자기찬양이거나, ‘다른‘ 문화를 논하는 경우에는 적대감과 공격에 휩쓸리는 것이아닌가? 문화적·종교적 · 인종적 차이는 사회적 · 경제적 또는 정치적 · 역사적 범주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관념이란 어떻게 하여 권위, ‘정당성‘ 또는 자명한 ‘진리‘라는 지위를 확보하는 것일까? 지식인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이란 그가 속하고 있는 문화와 국가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 지식인은 독립된 비판의식, 곧 대립적인 비판의식에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하여야 하는 것일까? - P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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