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한국 전쟁 관련 책과 소설을 읽다가 심적으로 힘들어서 잠시 머리를 식히기 고른 책이었다(전쟁에 관련된 직접적인 묘사를 읽는 것은 역시 힘든 일). 이 책이 나온지도 꽤 되었는데 그때부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읽게 되리라 생각했다. 

이 책은 한국 근대 시기를 살아간 여성 세 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므로 인물에 대한 상황과 감정적인 묘사를 집중적으로 그리지만 간접적으로 그들이 살아간 역사적 배경을 자연스레 확인할 수 있다. 


세 여자는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로 같은 시기를 살아낸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살아온 배경도 성격도 각기 달랐다. 

허정숙은 부잣집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자랐으며 아버지는 허헌으로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변호사였다. 그녀는 불꽃 같은 성정을 지녔다. 

주세죽은 영생여학교를  다니며 음악 학도를 꿈꾸었다. 3.1 만세 혁명이 아니었다면 음악 교사나 피아니스트 등의 길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그녀는 겉은 약해보여도 내면은 강한, 외유내강의 여성이라고 느껴졌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상해에서 만나 혁명을 꿈꾸고 사랑을 만나게 된다.

고명자는 완고한 양반집 외동딸로 태어나 그야말로 풍족하고 고귀하게 자랐다. 이화학당에 다니면서도 시종과 늘 함께 다녔을 정도였다. 그녀는 집안 살림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당연히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었던 사람이었으니 여성동우회 교육 홍보 전단을 보고 찾아간 그 곳에서 당연하듯 분위기는 빈정거림이 대부분이었다. '저 부잣집 따님이 얼마나 이곳을 오갈까.'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모임에 꼬박꼬박 나오며 열의를 보였고 무엇보다 애교 가득한 성격으로 사람들의 색안경 낀 시선을 바꾸게 만든다.


사실 그녀들의 남은 인생 이야기를 하려고 줄거리를 적었다가 도로 지웠다. 책으로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여겨서다. 아무리 역사적 인물이더라도 전해듣는 것은 아무래도 직접 읽는 것보다 감흥이 덜하니까. 


올해는 조선공산당 100주년이기도 하고 해방 80주년을 맞이하는 해라 관련 글들을 많이 접하고 있는 중이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조선의 황제는 유명무실해졌고 나라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 사람은 이상을 갖고 이를 위한 배움을 쫓았으며, 현실 속에서 적극적인 실천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면 현실적으로 당장 내일 밥 먹을 걱정,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궁리부터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세 사람의 인생에서 러시아 혁명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 같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프롤레타리아 무산자 해방과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기치를 들고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당시는 수많은 식민지들이 생겨나 있었고 1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생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물자는 팍팍해졌다. 자본주의가 있는 한 계급은 생길 수밖에 없다. 부자들만 잘 먹고 사는 나라를 원하지는 않을테니 억눌려왔던 빈자와 노동자들은 그렇게 일어서던 시기였다. 

1920년 무렵 인터내셔널가가 풍미하는 시대, 이 무렵 조선에도 조선공산당이 생긴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면 치를 떠는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만들어 어떻게든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 시기 세 사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뜨거운 기대를 걸었고 추진했지만 조선공산당 색출 사건으로 대부분 잡혀 들어가면서 일차적으로 그 힘이 꺾이고 만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시기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주하게 된다. 사회 진출을 하고 싶어도 그 입구는 좁았고 그마저도 여성이 잘 나가는 것을 아니꼽게 보거나 불편하게 보았다. 여전히 여성, 어머니로서의 의무와 정조가 강요되던 시기,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세 여자들의 활약은 뭇 남성들을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대로 아니꼬운 시선을 던지고 마르크스주의자들도 한 마디씩 던진 것이다. 그녀들이 단발 머리를 한 것도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고 하니... 허정숙이 <신여성>에서 일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편집실에 술이 취해서는 난입한 남자들이 하는 말이 "잘난 여자들 얼굴 한번 보자. 당신들 시집이나 갔어?”였다고(허허허). 


허정숙은 특히나 혁명과 여자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3.1운동으로 기생의 신분에서 공산주의자가 된 정칠성의 말도 있다. 


"인형의 집을 나온 노라는 해방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야. 눈보라 치는 밤에 집을 뛰쳐나와 굶어 죽는 게 무슨 얼어 죽을 해방이야. 여자에게 경제적 독립 없는 해방은 공염불이지. 정칠성이었다.”


"남자들은 첩을 몇씩 거느리고 제멋대로 살면서 여자한테만 엄격한 도덕을 요구하니까 문제라는 거야. 사랑이 결혼보다, 제도보다 위여야 해. ... 사랑이  없으면 결혼은 굴레야."

정숙은 성명서 낭독하듯 따박따박 끊어 말했고 마지막 문장에선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삼단논법인데 ... 우선, 민족이 망했는데 여자가 가정에서 해방되면 무슨 소용인가. 그다음, 민족이 자유를 찾았는데 여자가 구속돼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또한 여자가 해방됐다 해도 한 줌 유산계급 여자만 자유로우면 무슨 소용인가. 결국, 민족도 구제하고 여자도 구제하고 무산계급도 구제하는 방법은 공산주의뿐이라는 거!"


여성들이 누구보다 자유 해방을 꿈꾼 것에는 기존의 억압과 굴레가 큰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버겁고 어려운 일이다. 그 시기는 오죽했을지.


그리고 세 사람을 둘러싼 사랑이 있다. 이 사람의 인연이 시간이 되면 저 사람의 인연이 되기도 한다. “살아보니 그렇게 되더라…” 곧잘 듣곤 했던 말이 무언지 이들의 삶과 사랑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허정숙의 인생은 많은 사랑들을 거쳐 결국 혁명으로 귀결되었다고 느꼈다. 

주세죽은 어떨까. 평범했던 그녀가 혁명의 손을 잡고 결국은 혁명으로 흩어진 것일까. 

고명자의 인생은 무어라 정의하기 어렵다. 결국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선택을 했다고 보여진다. 

나는 허정숙의 삶에서 주먹을 쥐었고 주세죽의 삶에서는 슬픔을 느꼈으며 고명자의 삶에서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늘 내가 하필 그 시기에 남한에서 부모님 아래 태어났다는 것을 신기하게 느낄 때가 많았다. 이 일은 곱씹을수록 놀랍지 않은가. 세 여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조금만 다른 시기에 태어났다면,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어떤 삶을 살다가 갔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선택적 운명을 부여받고 태어난다. '운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탄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물 일대기의 빈 공간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메꾸고 있다. 요즘은 나무위키든 위키백과든 어떤 사람의 인물의 간략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다만 그 나열된 정보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면 꽤나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작가가 꽤나 많은 발품을 들여서 조사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녀들의 인생을 확인하며 나도 함께 웃고 울었다. 마지막은 결국 어떤 '짠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한동안 책장을 덮고 멍하니 있었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들의 인생에 중요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다면 '혁명'과 '사랑'이 아닐까 한다. 그 형태는 각기 달랐고 전개 과정도 달랐지만 그들은 주어진 삶을 있는 힘껏 살아냈다라고 느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직접 만나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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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여자도 머리를 식힐만한 책은 아닌듯한데요. ㅎㅎ 저는 오히려 많이 갑갑할까봐 미루고만 있는 책이거든요. 화가님 리뷰 읽으면서 그 시대를 잠시 상상해봅니다. 여성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도 어려운데 독립도 혁명도 쟁취해야 했으니 그 고난이 어땠을지 숙연해지기도 하구요

거리의화가 2025-08-05 08:1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상대적으로 그랬다고 이해해주세요^^; 저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지금껏 미뤘던 책이었는데요.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여성의 지위도 그렇고 감안하고 봐야겠지만 막상 읽어보니 저는 의외로 수월하게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숙연함이라는 말이 맞겠죠. 막장까지 읽고 나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옵니다ㅜㅜ 제가 직접 만나뵐 수 있었다면 술 한잔 건네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네요.

희선 2025-08-1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시대를 산 세 사람, 세 사람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은 다들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도 나름대로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앞으로도 많이 달라져야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8-10 20:48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당시 여성들은 전통적인 굴레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신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여 행동하는 것에도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 같아요. 이중적인 구속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 여성의 행보가 당시로서는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느끼기에도 놀라운데^^
 
냉전과 투쟁 - 전후 한국의 세계해석과 의미경쟁(1945~1953)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감성총서 26
김봉국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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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탈식민화와 세계 냉전이 별개의 사태가 아니라, 동시에 상호 뒤엉켜 전개된 것으로 접근하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탈식민 연구와 냉전연구 상호 간에 소통의 부재는 일종의 지역 편협주의의 산물이다. 냉전연구 내의 탈식민 연구의 공백이 유럽 중심의 편협함을 갖고 있다면, 탈식민 이론 내의 냉전연구의 공백은 또 다른 지역 중심의, 또 다른 성격의 편협함을 갖고 있다. … 지정학적 질서로서의 세계 냉전체제가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질서로서의 ‘냉전 반공체제’는 한국사회에 내재되어 있다. 문제시해야 할 것은 분단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강고한 사회적, 이념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냉전 반공체제’라고 할 수 있다. - P16~17


탈냉전의 바람이 불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섰는데도 냉전과 남북문제, 이념 논쟁에 골몰하고 집착하는 내가 어떨 때는 철지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 무려 올해로 8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색깔론은 더 강화되는 것 같고 이념 논쟁은 그치질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그런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최근 한국의 냉전연구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체제의 종식 이후 해외 냉전사 연구의 작업 결과물과 연계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확장된 시선을 보여주는 성과를 낳았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앞선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탈식민화와 냉전에 의한 중층적 복잡성을 따지지 않은채 각각만 연구되었을 따름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냉전’ 자체에 대한 연구가 한국 역사계 내부에서 세계사적 인식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저자의 질문에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 호기심이 인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즘은 직접 발품을 팔아 책을 읽는 경우보다 어떤 책이나 자료를 읽다가 관련 참고 도서에 언급되어 읽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 이 책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 후 냉전 논리가 한국 사회에 고착된 과정과 그 방식에 대해서 다룬다. 우리 사회를 형성한 냉전 담론에 대한 검토를 해보자는 것으로 냉전 담론이 등장한 뒤 확산되고, 그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되기까지의 과정을 확인해볼 수 있다. 


2차 대전에서 민주주의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전후 세계는 민족과 민주주의 시대 열풍이 일었다. 해방 후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좌우 세력은 각자의 방식대로 민족과 민주주의를 담아내기 위해 골몰했다. 이때 좌우파의 이념의 기원은 식민지 시기부터 형성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제는 일찍부터 반소반공에 대한 이미지와 담론을 형성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사회주의의 허구성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925년 치안유지법을 만든 뒤로 소련의 침략성을 강조하는 등 흑색전선을 강화했고 1938년에는 조선방공협회를 설립하며 그 노선을 노골화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라는 기치를 내걸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우파는 자유 민주주의, 좌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이라는 명칭을 내걸었다. 또 중도 좌우파 세력은 좌우파와는 결이 다른 민주주의론을 만들려고 했다. 해방 초기에는 우익 세력도 공산주의자와 공산주의를 구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한다(이 부분은 좀 놀랐다!). 

어쨌든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은 친소련 국제주의 노선을 지향했다면 우익은 친미 노선을 지향했고, 중도 좌익이나 중도 우익은 모두 연합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중도 좌익은 미군정에 일정 정도 거리두기를 하면서 주체적 입장에 의한 신국가 건설 정치 노선을 표방했다면 중도 우익은 해방에 국제성을 부여하며 민족 운동의 역량이 중요함을 표방했다. 

우익의 민주주의는 민족의 독립 없이는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이들은 민족에 방점을 찍었다. 좌익은 조선공산당의 국제 노선에 따라 먼저 민주개혁을 이루어야 독립국가 건설이 가능하다 주장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없이는 독립이 없다는 것이다. 

1차 미소 공위의 결과에 따라 연합전선의 힘이 부상하자 우익은 강한 민족주의 정치 노선 연장선상에서 세력균형적 관점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때의 세력균형이란 미국과 서구 중심의 냉전논리로 소련의 팽창을 방어한다는 기조에 의한 것이었다. 좌익은 민주주의 개혁을 위해서는 파시즘 잔재와 금융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한 제국주의와 반동세력을 제거한 뒤 노동자 계급의 인민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초기 냉전 개념의 남한 사회로의 수용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초기에 그것이 당대인들의 세계에 대한 기정사실이나 고착화된 인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후 냉전의 사태는 협조와 평화노선에 대한 반대이자, “백열전쟁”이나 “사격전쟁”과 대비해서 전후 미소의 세력경쟁 양상을 나타내는 개념이었다. 당대인들에게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면서도, 때론 격렬한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불안하고 유동적인 현실로 이해되었다. 때문에 타협과 조정에 기초한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개입방식이 모색되었고, 양분된 세계의 추이를 둘러싼 여러 예측과 전망이 제시되었다. 남한 사회 역시 이러한 냉전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공유했다. - P210


2차 미소 공위의 협상에 차질이 생기고 트루먼 독트린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대외 정책이 발표되자 이승만과 한민당 세력 중심 세력은 단정 노선을 명확히 하게 된다. 반면 좌익은 2차 미소 공위가 결렬되고 유엔 총회에서 남북 총선거안이 가결되자 미국을 비판한다. 

이승만 정부는 냉전 담론을 이용하여 이데올로기 작업을 시작한다. 정부의 시책이나 활동, 내외 정세를 국민에게 선전하고 교양하기 위해 주보를 발행함으로써 냉전적 시각을 주입시키고 확산시켰다. 국가 보안법을 만들어 공산주의를 박멸하고 적색 분자를 퇴출하고자 했다. 남한 신문 보도의 인식도 이분법적 구도로 변화한다. 이런 작업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본 우파 내 세력들(중도 우파 소장파)은 해당 노선에서 탈피한다(냉전 후에도 이승만 정부에 비판적 시각 견지).  


존립의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여순, 제주 4.3 사건 등) 한국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의 내재된 불안감이 폭발했다. 정부는 어떻게든 전시를 이용해 남한 체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사회 전반에 강제, 동원을 바탕으로 국민 국가를 만드는 것을 기치로 내걸었다.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실현적 장이 되었으며 정부는 개인을 국민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었다. 전방에서는 군인의 희생을 강요했다면 후방 주민에게는 자발적으로 전시 체제에 참여하도록 만들면서 그래야 국민의 일원이 된다는 식으로 강요했다. 이는 이승만 정부의 눈에 의하면 국민 주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할 수 있겠다. 이승만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이런 사상전을 벌인 것에는 피난을 간 부산에서까지 국민사상지도원을 설립하고 ‘사상’을 발행하며 전시 동원을 독려하고 선전 활동에 주력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전몰자 뿐 아니라 상이군을 애국자로 추앙하면서 지배 권력과 통치를 강화했다. 상이군을 위해 수용보호시설인 정양원을 설립하고 학비를 지원했으며 직장 알선 등을 제공하기까지 했다는데, 정작 전쟁으로 주민 대부분이 전재민이거나 군경원호대상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졌다. 상이군인과 그 가족의 상황은 이로 인해 더 악화되고 사회적 냉대만 커지는 악순환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남한 사회를 냉전 체제로 더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승만의 지배 안정화를 꾀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승만 정부는 전시 때 무능하고 부패하여 정치적으로 비판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칼날을 받아야했다. 그러나 1949년 무렵이 되면 이미 좌익의 기반이 거의 소멸된 남한에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한 냉전 민주주의는 비판 세력에게도 저항할 수 없는 기치가 되었다(는 것이 아쉽다). 4.19 때 이승만이 내려왔다지만 이후에도 냉전의 논리가 지속된 데는 이런 기원이 있었다 할 수 있겠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체제 내 비판세력이 주장했던 ‘자유민주주의론’은 ‘반공’에 긴박된 냉전적 민주주의였고 저항 역시 ‘반공’에 포섭된 저항이었다. 때문에 체제 내 비판세력은 ‘반공’에 기초한 이승만 정권 자체를 위협할 수 있었고 실제 1960년 4.19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의 실현을 주장하는 가운데 붕괴시킬 수 있었지만, ‘반공’과 그것에 밀착된 ‘냉전적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논리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결과 ‘반공’과 ‘냉전적 자유 민주주의’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가운데 한국 사회에 체제화되어갔다. -P380


이 책을 통해서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남한 정치 세력의 투쟁 양상을 확인하며 냉전 반공론이 자리잡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그저 미소와 서구 냉전 논리에 의한 입김에 그저 끌려간 것이 아니라 적극성을 띠며 정치 논리를 만들고 내재화시켰다. 다만 이 책에는 남한 기층 대중에 대한 투쟁 양상은 드러나 있지 않는다. 내용의 초점이 남한 정치 세력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임을 감안해야겠다. 흥미롭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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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좌반구 - 새로운 비판이론의 지도 그리기 컨템포러리 총서
라즈미그 쾨셰양 지음, 이은정 옮김, 배세진 해제 / 현실문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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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판이론이 등장하기까지의 배경과 이론적 설명을 비롯한 사상가들과 사상을 다룬 책이다.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설명해주니 생각보다 이해하기 수월했다. 이런 책이 나와줌으로 인해서 독자는 각각의 책을 읽고 정리하여 지도를 그려야 하는 수고로움을 더는 것이니 감사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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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프레이저 컴북스 이론총서
이현재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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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상가에 입문하기에 이만한 시리즈는 없다. 입문서로도 좋지만 사상가가 역사적 시기를 통과하며 이론을 체계화해나가는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배경까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리즈가 좋다고 생각한다. 사상가의 이론을 알고 있다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다는 의미에서도 유용할 것 같다.


나는 전작인 <좌파의 길>을 통해서 처음 그의 이론을 접했다. 당시 국내 정치가 상당히 어지러웠을 때라 ‘좌파’라는 단어에 더 꽂혔는지 모르겠다(정치나 경제, 사회가 개혁이 되었으면 하는 쪽이었어서 그런 의미에서도 좌파(?)’ 쪽에 가까운지도). 


프레이저의 사상에 출발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기원은 전통이론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비판이론은 사회를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사회를 변혁하고자 해서 나왔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 전통적 마르크스 유물론에서 더 나아간 점이 있다면 사회적 모순을 계급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본 것에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 점일테다. 

프레이저는 비판이론을 확장시켜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을 결합시켜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프레이저는 악셀 호네트와 논쟁을 벌이며 주목을 받았는데 그는 인정과 분배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축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문제는 이 둘은 대척점에 있어서 둘 다 고려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인정(다름을)’을 고려하면 집단 정체성을 전제하며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분배’를 고려하면 집단 정체성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세우는 해결 방법은 집단 정체성의 구분 자체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적 분배, 문화적 인정 뿐 아니라 소수자 집단(젠더, 인종 등)을 위한 정치적 동등성 문제도 고려하자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위기와 심화로 인한 여성의 재생산과 돌봄 문제가 추가된다.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며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여성은 더 이상 가정에서 가사와 양육에 매달릴 수 없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요즘은 취업이 어려워지니 스스로 먹고 사는데도 쉽지가 않다. 비혼이 늘고 출산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경우가 늘어난다. 어렵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 해도 먹고 살려면?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프레이저는 우리 사회 전반이 생산이나 성장보다 관계와 생명 돌봄을 중심으로 다시 계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회적 재생산 전반이 돌봄을 기초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돌봄 혁명 혹은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다.

돌봄 사회는 인간이 처음부터 의존적임을 인정한다. 

… 독립보다 관계를 우리 삶의 기본 양상으로 삼아야 한다. - P84~85

나도 돌봄을 위해서는 사회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독립한 인간으로도 빈곤의 덫에 빠지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사회적 보장 제도가 확립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프레이저의 페미니즘은 그가 정의론에서 제안한 변혁적 개선책을 골자로 한다. 경제적 계급, 식민지 계급, 성 계급, 나아가 인간/비인간의 위계적 구분을 철폐하는 것이 이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적이다. - P106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이론을 잘 설명해 놓았다. 프레이저에 관심이 가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입문을 하고 전작 읽기를 도전하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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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주체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스스로에게 자신의목소리를 부여하고, 사회에 자신의 무게를 부과하는 집단이 아니다. (...) 그는 주어진 경험의 지형에서 존재하는 지역, 정체성, 기능, 그리고 능력을 결합하거나 분리하는 행위자다‘
정치적 주체는 언제나 하나의 사건이다. - P328

‘주체‘는 사건에서 나온다. 주체가 사건에서 기계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주체는 사건에서 나올 수 있는 하나의 결과다. 바디우의 사유에 대한 표준적인 저작을 쓴 피터 홀워드 Peter Hallward는 바디우의 주체를 "사건이 선포하는 진리를 통해 변모한 개인"으로 정의한다. 사건에 노출된 개인은 주체로 변한다. 다시 말해 그는 사건이라는 조건 아래 ‘주체화‘ 과정을 겪는다. 바디우에게 주체화는 (적어도) 두 가지 특성을 포함하는데, 첫 번째는 주체화가 집단적이라는 것이다. - P333

두번째는 주체화가 미리 정립된 어떤 인간 본질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체화는 사건에서 유래하고 사건에 충실하겠다는 주체의결심을 함축한다. 이것이 바디우가 인간에 대한 정의를 ‘프로그램programme‘으로, 곧 언제나 열려 있고 도래할 것으로 명명하는 까닭이다." - P334

나 자신 바깥에서 나를 되찾는다. 나는 나의 통일성을 나 자신 바깥에, 나를 표상하는 기표 속에 둔다. 자신을 외재화함으로써 주체는대상(상징)을 창조하지만, 이로써 그는 자신을 외재화했기에 더는 자기 자신과 대면하지 않는다. 결국 주체와 대상의 분리는 사라지고 이두 심급은 이제 복잡하게 뒤섞이게 된다. 이는 특히 주체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매우 다양한 행위자들이 잇따라 또는 동시에 그 자리를 차지하거나 요구할 수 있다." 랑시에르와 마찬가지로지적 역시 주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구체적인 집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체는 개인이나 구체적인 집단의 형성을 위한 조건이다. 하지만이를 위해 주체의 자리는 반드시 비어 있어야 한다. - P345

해러웨이가 보기에 인공물은 모든 사물에 대한 사유 모델을 제공한다. 그의 인공물주의는 급진적 반본질주의다.
그는 세계 내 어떤 실체도 ‘본질‘을 소유하지 않으며, 따라서 상호작용하는 다른 실체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사물은 언제나 혼종적인 것이요, 여러 심급의 혼합이다. 이는 ‘본질‘이란 존재하지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반본질주의는 동시대 비판사상대부분에 공통적이다. - P361

버틀러가 보기에 섹스는 젠더와마찬가지로 문화적 구성물이다. ‘섹스‘와 ‘젠더‘라는 구분 자체가 사회적·역사적으로 정립된 것이니, 그 구분을 이루는 항목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몸Bodies That Matter』이라는 버틀러의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신체는 언제나 이미 상징적인 것 속에서 파악된다(원제의matter는 ‘물질‘과 ‘의미하다‘ 또는 ‘중요하다‘를 모두 뜻할 수 있다). 결국 버틀러가 최종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바로 본성과 문화의 분리다. - P369

서발턴은 말할 수 없으며, 역사가는 역사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스피박이 ‘서발턴 연구‘의 지배적 경향과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지점이다. ‘서발턴 연구‘는 피지배자들, 즉 공식 역사에서 흔적이 사라진 이들의 행동과 표 - P382

현을 되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스피박이 보기에 이 연구 계획은실현 가능성이 없는 소망이다. … 제국주의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재작성한다. 그 결과 식민지개척자가 도착 당시 발견한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남아나질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스피박은, 특정 영역에 철저히 연결되어 있는 전문 능력의 이름으로만 정치에 개입하는 ‘전문‘ 지식인 개념을 공박한다.
전문 지식인은 피억압자가 스스로 완벽하게 말할수 있으며, 피억압자 자신을 대표할 지식인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에 스피박은 세계 주변부 서발턴이 겪은 억압의 규모와결과에 대해 들뢰즈와 푸코가 과소평가했다고 주장한다. - P383

사회계급이 출현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경험의 형성이다. 이는톰슨의 연구에서 중심이 되는 용어다(이로써 그는 로크John Locke와 홉DavidHume이 창시한 영국 경험론 전통에 연결된다. 여기서 ‘경험‘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회계급이 소유하는 가치, 표상, 감정으로 이뤄진 전체다.
각각의 계급에는 그 계급에 상응하는 하나의 경험이 있고, 이 경험은시대에 따라 더 동질적이기도 하고 덜 동질적이기도 하며, 시간과 더불어 진화한다. - P391

한 계급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개개인으로 하여금 세계와 똑같이 관계맺고 이를 공유하게 하는 집단적 문화 혹은 정체성ㅡ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더구나 ‘계급 공동체‘는 엄격하게 구상된 계급 경계를 넘어다른 계급을 물들일 수도 있다. 이른바 ‘노동자주의‘는 다른 계급의대표자(예컨대 1970년대 학생들)가 노동자계급 문화(그들이 노동자계급 문화라 믿는 것)를 채택하던 방식을 가리킨다. 이와는 거꾸로 ‘공동체 계급‘
이 존재한다. 이는 공동체가 무작위로 형성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공동체는 계급적 차원을 포함하며, 특히 도시에 설립될 경우 그렇다. 공동체는 우연히 형성되지 않으며, 만일 문화나 계급 정체성의 변화에우연적인 부분이 있다 해도 이 우연적인 것의 범위는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요소의 제약을 받는다. 결국 집단적 존재의 이러한 두 측면은함께 고려돼야 할 것이다. - P398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사회계급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우선 시장이 아니라 생산 영역에서 작동하며, 이 생산 영역에서 상품 유통의 영역으로파급되는 것이다. 라이트는 이렇게 생산 영역에 중심성을 부여함으 - P414

로써 오늘날 주류 사회과학과 정반대의 견해를 취한다. - P415

하트와 네그리에게, 또 파올로 비르노 같은 다른 다중 이론가에게다중 개념은 형이상학적 외양을 지닌다. 가르시아 리네라와 네그리를구별해주는 또 다른 차이점은 네그리의 다중이 ‘포스트모던‘하다는점이다. 자본주의가 다른 모든 것, 곧 조직된 노동자계급, 국민국가, 전근대적 공동체를 파괴했을 때 다중은 출현한다. 가르시아 리네라에게 - P419

신자유주의는 노동자계급을 없앰으로써 그 구성원을 전근대적 사회형태로 퇴보시킨다. 따라서 다중은 전근대성과 탈근대성(포스트모더니티)의 혼합물로 간주해야 한다. - P420

호네트는 인정 이론이 근대 역사에서 억눌린 지적 전통의 일부이지만 지배적 전통에 맞서 복원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배적 전통은 마키아벨리와 홉스를 기원으로 하며 모든 종류의 자유주의를 포함한다. 이 전통은 사회가 개인들, 기껏해야 합리적 계산에 몰두하는 개인들로 이뤄졌다고 여긴다. 호네트는 인간 행동이 지닌 도덕적이거나 규범적인 구조를 강조함으로써 이 전통에 상반된 견해를취하고자 한다. 그가 보기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고 합리적 계산에 몰두하는 개인들의 능력이란 이미 그들이 남들에게 개인으로서인정받았음을 전제로 한다. - P434

엠벰베는 사람들이 통상 ‘아프리카‘라 말하는 것이 오늘날 지구 - P446

곳곳으로 퍼졌음을 확인한다. 아프리카 대륙은 노예무역의 피해자인노예에서부터 오늘날 ‘두뇌 유출 brain drain‘로 빼앗긴 의사나 정보과학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디아스포라를 낳았다. 반대로 네덜란드계 백인, 유대인,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인도인같이 흑인이 아닌 수많은 인구가 세대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에 자리 잡았으며, 결국 이들은 전적으로 아프리카인이다. 아프로폴리터니즘은 ‘세계에서 아프리카인이라는 것‘에 내재한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 다양성을 지구의 다른세계에서 나오는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연결하기를 열망하는 초국가적문화다. - P447

라클라우와 무페에게 계급 관점의 포기는 적대 개념의 중시와상관성이 있다. "노동자계급 정체성이 더는 하부구조의 통일 과정에기초를 두지 않는다면 (..)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과의 쪼개어짐split에 의존한다. 이 쪼개어짐은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 그리하여 ‘전쟁‘은 노동자계급 통일의 조건이 된다."
어떤 ‘본질‘도 사회문제의 기초가 되지 못한다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실체들은 필연적으로 관계적일 수밖에 없다. - P452

포스트모더니즘의 피상성에 개인의 새로운 감정적 구조가 조응한다. 제임슨에게서 보이는 흥미로운 한 요소는, 그 자신이 권장하는 완전한 역사주의에 부합하여, 앞서 언급한 역사적 시기 구분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감정의 사회사를 구상한다는 것이다. 후기자본주의는 문화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오늘날 등장한 주체 유형을 조 - P465

건짓는 새로운 종류의 감정 또한 발생시킨다. -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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