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을 선포할 상황인지 판단할 권한은 대통령에게 속하지만, 이를 해제할 상황인지에 대해서는국회 판단이 우선한다.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공고해야 한다(계엄법 제11조 1항). 계엄을 해제할 때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계엄법 제11조 2항). 국무회의 심의 결과와 무관하게, 국회 해제안이 가결되면 계엄을 유지할 권한이 대통령에게는 없다. - P43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라는 계엄해제 요건은 1972년 유신헌법의 잔재다. 그 이전에는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정족수가 따로 명시되지 않으면 ‘일반정족수‘로 해석한다. 일반정족수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네 차례 선포했다. 군사독재 정권이 국회 권한을 약화하기 위해 삽입한 조항이 52년 만에 또다시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법학계에회의 서는 추후 개헌을 통해 이 조항을 원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P43

헌법과 법률어디에도 ‘계엄을 통해 국회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국방부, 계엄사령부는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군을 투입해 계엄 해제안 논의를 방해했다. 이 대목에서 사건은 ‘전시·사변 여부‘ 등 헌법과 계엄법상 절차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 형법상 내란죄의 논리다.
12월3일 계엄을 곧 내란과 연관 짓는시각이 낯설 수 있다. 대규모 유혈 사태나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적 탄압, 군부의사회 전반 통제가 내란의 ‘요건‘이라고여기기 쉽다. 내란죄라는 사례 자체가 접하기 어려운 데다, 내란을 일으킨 군부독재정권 인사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극단적 조치를 동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법이 규정하는 내란죄의 요건은 그보다간략하고 명확하다. 내란이란 "대한민국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형법 제87조). - P44

다시금 계엄 포고령을 읽어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유신정권과 5공의 언어로 쓰여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이제는사어死)가 되어버린 "처단"이라는 말.
그것은 적어도 정부가 국민에게, 혹은 의료인이나 어떤 특정 직업군에도 직접 쓸수는 없는 위협의 언어다. 또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라 - P60

는 대목에 이르면, 이들이 유튜브와 카카오톡을 어떻게 분류하는지가 궁금해진다. 우리 공동체가 지난 40년 동안 피와땀의 대가로 얻어낸 소중하고 작은 하나의 성취, 시민적 자유, 그것이 갑자기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훼손된, 모욕받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말이다. - P60

대통령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정치라는 전장(戰場)이추악하고 더럽게 보일망정 적어도 말과 절차로 싸우는 필수불가결한 곳이라는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래도 총칼을들고 직접 싸우는 내전(內戰)보다는 낫기때문이다.
정파 간 말이 험해지고, 절차가 무너지고, 심지어 몸싸움이 일어날지언정,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에 총칼이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더럽고도 신성한 공간에 대통령은 계엄이라는 총과 칼을들고 들어옴으로써 스스로 대통령의 역할(정치)을 포기했다. 포기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가 정치 공동체의 가장 큰 위협임을 보여주었다. 두려움, 안도, 비웃음, 분노, 의문 이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빼고 다시 보더라도, 위의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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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오직 나만이 마을과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안다. - P9

나는 평생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정한 주제를 따랐다. 당연히 내가 시작한 일을 모두 끝낼 수는없었다. 그러나 이 주제는 나를 많은 장소와 사람에게로 이끌었고 처음 시작할 때 꿈도 꾸지 못한 경험, 투쟁,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도 가져다주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아이펠 화산 지대에서 작은 개울로 출발해 굽이굽이 흐르는 강 같다. 이 개울은 점점 넓어져 이제 전 세계를아우르는 거대한 연결망으로 뻗어나갔다. 이 강이 항상 똑바로 흐르지는 않았으며 때로는 뒤로 흐르거나 고인 연못처럼 완전히 멈춘 것 같기도 했다. 강은 분수령과 굴곡마다 다음에 어디로 갈지 결정해야 했다. - P12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나는 작은 마을의 농민 가족 출신임을 잊은 적이 없다. 이는 과도한 낭만주의와 돈키호테식 이상주의에서 나를 보호해주었다. 나는 식량이 슈퍼마켓이 아니라 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내 뿌리는 산업 사회와 자본주의의 약속에 대한 면역력을 주었다. 세계화한 마을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이 약속은 ‘좋은 삶‘을 주지 못했다. 나는 삶을 통해 자급이 지구의 현재와 미래에 마을과 세계에서 삶을 유지할 단 하나의 희망임을 배웠다. - P14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삶을 되돌아보았고 "좋은 삶 아니었나?"
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아는 큰언니 아그네스는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당신의 삶이 실제보다 더 좋게 보였으면 하신 것 같다고이야기했다. 언니는 어머니가 거의 매년 아기를 낳고, 젖을 먹이고, 온갖 말과 노래로 달래고, 기저귀를 빨고, 화목 난롯가에서 요리하고, 오트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 비록 시간이 가면 손아이들이 어린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지만 보살핌의 부담은 여전히어머니의 어깨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한 삶‘이었다는 어머니의 말을 믿는다. - P37

어린 시절부터 나는 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모험을 제공하는, 마을 너머 더 넓은 지평선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나를 매혹하고 영감을주는 것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나는 그들의 삶을 흥미롭게 만들고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했다. 내격려를 따른 사람도 있고 그러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헤르만과 요하네스에게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동경을 전했고 이것이 나중에 나와 헤르만의 삶에 큰 역할을 했다고 확신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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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설 ]

2)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1806년에 동양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남겼다.
Chateaubriand used his new-found wealth in 1806 to visit Greece, Asia Minor, The Ottoman Empire, Egypt, Tunisia, and Spain.
-> 이곳이 딱히 동양이라고 하기에는...

3) 네르발(Gérard de Nerval)
1842년 레반트(서아시아와 동지중해)를 여행하고 <동양여행기>를 남겼다.
Voyage en Orient (1851) – an account of the author‘s voyages to Germany, Switzerland and Vienna in 1839 and 1840, and to Egypt and Turkey in 1843. Includes several pieces already published, including Les Amours de Vienne, which first appeared in the Revue de Paris in 1841. One of the author‘s major works.

동양이란 사실 유럽인이 조작한 것으로 고대부터 로맨스, 색다른 존재, 잊을 수 없는 기억과 풍경, 특별한 체험담의 장소가 되어왔다. ... 베이루트를 방문한 유럽인의 방문객의 최대 관심은 동양에 관한 유럽인의 표현과 그 현대적 운명이었다.
미국인이라면 동양에 대해 유럽인과 같이 느끼지는 않으리라. 그들은 지극히 다른 발상으로 극동(주로 중국과 일본)을 연상할 것이다. - P.13~14
->
‘동양‘이라는 용어 자체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의 동쪽을 일컫는 것에서 기원했다.
그런데 후발 제국주의자인 미국은 ‘동양‘을 어디로 바라보는가. 책에서 일컫듯 유럽의 관점에서 동양은 주로 동지중해와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레반트 지역을 일컫는다면, 미국의 관점에서의 동양은 서아시아, 확장해도 인도 동쪽(인도차이나 등지)의 아시아를 일컫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유럽과 미국이 보는 동양은 미묘하게 다른데 이는 위치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6) 오리엔탈리즘
서양이 동양을 침략하면서 조작한 동양에 관한 모든 편견, 관념, 담론, 가치, 이미지 등을 말한다.

오늘날의 전문가들은 오리엔탈리즘이란 말보다도 동양연구나 동양지역연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오리엔탈리즘이란 말이 너무나도 애매하고 일반적이기 때문이며, 또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엽까지의 유럽 식민지주의의 난폭한 통치 제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 오리엔탈리즘은 과거의 것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동양과 동양인에 관한 학설과 명제를 통해 여전히 학문으로 살아 있다. - P16
->
학문 분야에서는 동양연구, 동양지역연구라는 용어를 주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가 애매하고 일반적이라기보다는 후자의 문장처럼 여전히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인 이유가 더 크다고 본다.

8) 근동(중동)
유럽에서 보아 가까운 동양이라는 뜻으로 유럽중심주의에서 나온 것.
->
그러고 보니 근동이라는 개념도 지금은 예전보다 덜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애시당초 ‘동양‘이라는 개념 자체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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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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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이야기다. 시, 희곡, 수필 등 여러 형식을 띠고 있다. 어머니의 역사와 민족, 나라의 뿌리에 대한 고민과 성찰, 언어를 갖지 못한 이들의 말은 읊조림으로, 절규로 때론 삼켜지고 뱉어지듯 폭발한다.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고 다양한 책들과 결합할 수 있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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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러시겠지만 12월 3일 이후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까지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의 일상은 멈췄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게다가 지난 한 주는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 더욱 슬픈 날들을 보냈다.


본래 내 생일 주간이어서 휴가를 미리 내고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새벽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셔서 기존의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급히 지방으로 내려간 뒤 4일을 온전히 보내야만 했다.

그동안에는 책을 읽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어떤 소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옆지기와 회포를 푼다고 술을 진창 마셨더니 속까지 뒤집어졌다.


시아주버님은 원래도 신장이 안 좋아서 투석을 받으셨고 후유증으로 간, 폐가 모두 안 좋으신 상태였기 때문에 오래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50세도 안 된 나이에 돌아가신터라 시어른들의 황망함이 컸다. 옆지기도 발인 때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살 사람은 살아야지."

어른들의 말을 곱씹는다. 


일상으로 복귀는 했지만 컨디션이 제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멈췄던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쓰는 생활로 돌아가야지.


돌아와보니 깨닫는 것은 결국 건강의 소중함이다.



연말이라 일정이 어떻게 될 지 몰라서 읽어야 할 책들을 부랴부랴 확인했다.


이번 주는 부득이하게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

<마을과 세계>는 마리아 미즈의 삶과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사실 다른 책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더 궁금하기는 한데 이는 추후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재독으로 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한 책이다. 이번에 좀 더 깊이 읽으면서 다른 분들의 생각도 얻어갈 계획이다.

<딕테>는 오늘까지 100자평 써야 해서 급히 꺼냈다. 역시 다 읽고 올리기는 무리일 것 같지만!^^;



















<그들도 있었다> 시리즈는 완독했다.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인물 엿보기 사전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이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묻혀 있었던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존재를 알게 되어서 기쁘다. 조만간 리뷰도 써보려고 한다.
















올해도 알라딘에서 보내주신 선물을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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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12-17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화가님 큰일 치르셨군요 ㅜㅜ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네요. 오래 아프셨더라도 슬픔은 슬픔.. 고생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12-18 08:36   좋아요 1 | URL
사실 몸 관리를 좀 하셨다면 몇 년은 더 사실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에 안타깝죠. 그래도 또 오래 투병을 하셔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셨던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위로 감사합니다.

2024-12-17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18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12-17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화가님 보이지 않는동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화가님도 건강 챙기시고요. 옆지기 님도 상심이 크실텐데 아무쪼록 일상을 잘 이어나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는 오리엔탈리즘 가까스로 다 읽었는데 정말 너무 어려워서 읽은게 읽은게 아니거든요, 다시 읽으신다니 수시로 책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저야말로 거리의화가 님의 생각을 좀 얻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잘 지내세요!

거리의화가 2024-12-18 08:41   좋아요 0 | URL
시부모님이 안 계신 상태에서 유일한 혈육이었던 형님을 떠나보내니 그 허전함이 큰 것 같아요. 극복은 안되겠지만 곁에서 무던히 있어주려구요.

오리엔탈리즘 3개월에 걸쳐 읽기로 했는데 읽는대로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락방 님도 모쪼록 무탈하시고 연말 잘 보내시기를요!

단발머리 2024-12-17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고생 많으셨어요 ㅠㅠㅠ 온 가족 맘도 몸도 너무 힘드셨을거 같아요.
어른들의 말씀이 참 옳은 말씀이기는 한데, 그 상황에서는 또 그 말씀이 너무 무거운 것 같아요.
조용히 읽고 또 다시 읽는 잔잔한 평화가 거리의화가님 마음에 가득 채워지기를 바래봅니다.

거리의화가 2024-12-18 08:46   좋아요 1 | URL
당분간은 옆지기 곁을 지켜보면서 무던히 있어주려고 합니다. 상주 노릇하느라고 몸이 힘들기도 했는데 역시 마음이 더 힘들겠죠^^;
여전히 열심히 읽고 쓰시는 단발머리 님에게서 많이 배웁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하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희선 2024-12-18 0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셨군요 건강이 안 좋으셨다니... 옆지기 님이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네요 바로 일상으로 돌아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가면 좀 나아질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12-18 08:47   좋아요 1 | URL
당분간은 옆지기가 형님 생각이 많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옆에서 좀 보면서 괜찮은지 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 그리움이 잘 사라지진 않더라구요. 물론 시간이 약이기도 하니 조금은 무던해질 수 있기를 저도 바라봅니다.

희선 님 일상이 편안하고 행복하길 늘 기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