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오직 나만이 마을과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안다. - P9

나는 평생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정한 주제를 따랐다. 당연히 내가 시작한 일을 모두 끝낼 수는없었다. 그러나 이 주제는 나를 많은 장소와 사람에게로 이끌었고 처음 시작할 때 꿈도 꾸지 못한 경험, 투쟁,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도 가져다주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아이펠 화산 지대에서 작은 개울로 출발해 굽이굽이 흐르는 강 같다. 이 개울은 점점 넓어져 이제 전 세계를아우르는 거대한 연결망으로 뻗어나갔다. 이 강이 항상 똑바로 흐르지는 않았으며 때로는 뒤로 흐르거나 고인 연못처럼 완전히 멈춘 것 같기도 했다. 강은 분수령과 굴곡마다 다음에 어디로 갈지 결정해야 했다. - P12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나는 작은 마을의 농민 가족 출신임을 잊은 적이 없다. 이는 과도한 낭만주의와 돈키호테식 이상주의에서 나를 보호해주었다. 나는 식량이 슈퍼마켓이 아니라 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내 뿌리는 산업 사회와 자본주의의 약속에 대한 면역력을 주었다. 세계화한 마을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이 약속은 ‘좋은 삶‘을 주지 못했다. 나는 삶을 통해 자급이 지구의 현재와 미래에 마을과 세계에서 삶을 유지할 단 하나의 희망임을 배웠다. - P14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삶을 되돌아보았고 "좋은 삶 아니었나?"
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아는 큰언니 아그네스는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당신의 삶이 실제보다 더 좋게 보였으면 하신 것 같다고이야기했다. 언니는 어머니가 거의 매년 아기를 낳고, 젖을 먹이고, 온갖 말과 노래로 달래고, 기저귀를 빨고, 화목 난롯가에서 요리하고, 오트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 비록 시간이 가면 손아이들이 어린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지만 보살핌의 부담은 여전히어머니의 어깨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한 삶‘이었다는 어머니의 말을 믿는다. - P37

어린 시절부터 나는 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모험을 제공하는, 마을 너머 더 넓은 지평선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나를 매혹하고 영감을주는 것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나는 그들의 삶을 흥미롭게 만들고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했다. 내격려를 따른 사람도 있고 그러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헤르만과 요하네스에게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동경을 전했고 이것이 나중에 나와 헤르만의 삶에 큰 역할을 했다고 확신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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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설 ]

2)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1806년에 동양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남겼다.
Chateaubriand used his new-found wealth in 1806 to visit Greece, Asia Minor, The Ottoman Empire, Egypt, Tunisia, and Spain.
-> 이곳이 딱히 동양이라고 하기에는...

3) 네르발(Gérard de Nerval)
1842년 레반트(서아시아와 동지중해)를 여행하고 <동양여행기>를 남겼다.
Voyage en Orient (1851) – an account of the author‘s voyages to Germany, Switzerland and Vienna in 1839 and 1840, and to Egypt and Turkey in 1843. Includes several pieces already published, including Les Amours de Vienne, which first appeared in the Revue de Paris in 1841. One of the author‘s major works.

동양이란 사실 유럽인이 조작한 것으로 고대부터 로맨스, 색다른 존재, 잊을 수 없는 기억과 풍경, 특별한 체험담의 장소가 되어왔다. ... 베이루트를 방문한 유럽인의 방문객의 최대 관심은 동양에 관한 유럽인의 표현과 그 현대적 운명이었다.
미국인이라면 동양에 대해 유럽인과 같이 느끼지는 않으리라. 그들은 지극히 다른 발상으로 극동(주로 중국과 일본)을 연상할 것이다. - P.13~14
->
‘동양‘이라는 용어 자체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의 동쪽을 일컫는 것에서 기원했다.
그런데 후발 제국주의자인 미국은 ‘동양‘을 어디로 바라보는가. 책에서 일컫듯 유럽의 관점에서 동양은 주로 동지중해와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레반트 지역을 일컫는다면, 미국의 관점에서의 동양은 서아시아, 확장해도 인도 동쪽(인도차이나 등지)의 아시아를 일컫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유럽과 미국이 보는 동양은 미묘하게 다른데 이는 위치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6) 오리엔탈리즘
서양이 동양을 침략하면서 조작한 동양에 관한 모든 편견, 관념, 담론, 가치, 이미지 등을 말한다.

오늘날의 전문가들은 오리엔탈리즘이란 말보다도 동양연구나 동양지역연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오리엔탈리즘이란 말이 너무나도 애매하고 일반적이기 때문이며, 또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엽까지의 유럽 식민지주의의 난폭한 통치 제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 오리엔탈리즘은 과거의 것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동양과 동양인에 관한 학설과 명제를 통해 여전히 학문으로 살아 있다. - P16
->
학문 분야에서는 동양연구, 동양지역연구라는 용어를 주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가 애매하고 일반적이라기보다는 후자의 문장처럼 여전히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인 이유가 더 크다고 본다.

8) 근동(중동)
유럽에서 보아 가까운 동양이라는 뜻으로 유럽중심주의에서 나온 것.
->
그러고 보니 근동이라는 개념도 지금은 예전보다 덜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애시당초 ‘동양‘이라는 개념 자체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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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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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이야기다. 시, 희곡, 수필 등 여러 형식을 띠고 있다. 어머니의 역사와 민족, 나라의 뿌리에 대한 고민과 성찰, 언어를 갖지 못한 이들의 말은 읊조림으로, 절규로 때론 삼켜지고 뱉어지듯 폭발한다.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고 다양한 책들과 결합할 수 있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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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러시겠지만 12월 3일 이후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까지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의 일상은 멈췄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게다가 지난 한 주는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 더욱 슬픈 날들을 보냈다.


본래 내 생일 주간이어서 휴가를 미리 내고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새벽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셔서 기존의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급히 지방으로 내려간 뒤 4일을 온전히 보내야만 했다.

그동안에는 책을 읽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어떤 소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옆지기와 회포를 푼다고 술을 진창 마셨더니 속까지 뒤집어졌다.


시아주버님은 원래도 신장이 안 좋아서 투석을 받으셨고 후유증으로 간, 폐가 모두 안 좋으신 상태였기 때문에 오래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50세도 안 된 나이에 돌아가신터라 시어른들의 황망함이 컸다. 옆지기도 발인 때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살 사람은 살아야지."

어른들의 말을 곱씹는다. 


일상으로 복귀는 했지만 컨디션이 제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멈췄던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쓰는 생활로 돌아가야지.


돌아와보니 깨닫는 것은 결국 건강의 소중함이다.



연말이라 일정이 어떻게 될 지 몰라서 읽어야 할 책들을 부랴부랴 확인했다.


이번 주는 부득이하게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

<마을과 세계>는 마리아 미즈의 삶과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사실 다른 책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더 궁금하기는 한데 이는 추후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재독으로 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한 책이다. 이번에 좀 더 깊이 읽으면서 다른 분들의 생각도 얻어갈 계획이다.

<딕테>는 오늘까지 100자평 써야 해서 급히 꺼냈다. 역시 다 읽고 올리기는 무리일 것 같지만!^^;



















<그들도 있었다> 시리즈는 완독했다.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인물 엿보기 사전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이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묻혀 있었던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존재를 알게 되어서 기쁘다. 조만간 리뷰도 써보려고 한다.
















올해도 알라딘에서 보내주신 선물을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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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12-17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화가님 큰일 치르셨군요 ㅜㅜ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네요. 오래 아프셨더라도 슬픔은 슬픔.. 고생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12-18 08:36   좋아요 1 | URL
사실 몸 관리를 좀 하셨다면 몇 년은 더 사실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에 안타깝죠. 그래도 또 오래 투병을 하셔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셨던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위로 감사합니다.

2024-12-17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18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12-17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화가님 보이지 않는동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화가님도 건강 챙기시고요. 옆지기 님도 상심이 크실텐데 아무쪼록 일상을 잘 이어나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는 오리엔탈리즘 가까스로 다 읽었는데 정말 너무 어려워서 읽은게 읽은게 아니거든요, 다시 읽으신다니 수시로 책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저야말로 거리의화가 님의 생각을 좀 얻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잘 지내세요!

거리의화가 2024-12-18 08:41   좋아요 0 | URL
시부모님이 안 계신 상태에서 유일한 혈육이었던 형님을 떠나보내니 그 허전함이 큰 것 같아요. 극복은 안되겠지만 곁에서 무던히 있어주려구요.

오리엔탈리즘 3개월에 걸쳐 읽기로 했는데 읽는대로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락방 님도 모쪼록 무탈하시고 연말 잘 보내시기를요!

단발머리 2024-12-17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고생 많으셨어요 ㅠㅠㅠ 온 가족 맘도 몸도 너무 힘드셨을거 같아요.
어른들의 말씀이 참 옳은 말씀이기는 한데, 그 상황에서는 또 그 말씀이 너무 무거운 것 같아요.
조용히 읽고 또 다시 읽는 잔잔한 평화가 거리의화가님 마음에 가득 채워지기를 바래봅니다.

거리의화가 2024-12-18 08:46   좋아요 1 | URL
당분간은 옆지기 곁을 지켜보면서 무던히 있어주려고 합니다. 상주 노릇하느라고 몸이 힘들기도 했는데 역시 마음이 더 힘들겠죠^^;
여전히 열심히 읽고 쓰시는 단발머리 님에게서 많이 배웁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하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희선 2024-12-18 0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셨군요 건강이 안 좋으셨다니... 옆지기 님이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네요 바로 일상으로 돌아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가면 좀 나아질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12-18 08:47   좋아요 1 | URL
당분간은 옆지기가 형님 생각이 많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옆에서 좀 보면서 괜찮은지 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 그리움이 잘 사라지진 않더라구요. 물론 시간이 약이기도 하니 조금은 무던해질 수 있기를 저도 바라봅니다.

희선 님 일상이 편안하고 행복하길 늘 기원해요^^
 


나무연필 출판사에서 기획하는 북토크가 있어서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다녀 왔다. 세 세션 모두 ‘여성’을 화두 삼아 더 넒은 시야를 갖게 하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세션 1에서 정희진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예상했지만 세 세션 중 관객수가 가장 많았다. 선생님의 음성을 오디오를 통해서 계속 들어와 익숙해서인지 들어오시자마자 ‘아! 저분이구나.’ 했다. 나무연필에서 내놓고 있는 ‘메두사의 시선’ 시리즈에 대한 기획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의 연구 및 출판 문화의 문제, 좋은 책과 다양한 책을 읽지 않는 독서의 문화가 있는 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모든 언어에는 위치성이 있어 로컬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탈식민주의 과정이기도 하다고. 젠더적 감수성, 남성성에 대한 좋은 연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책들을 번역해 내는 것이 ‘메두사의 시선’의 기획이라고 한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토크 중간에 윤석열 정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션을 듣고 있으면서도 한숨과 탄식,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 이어졌다. 좋은 독자가 있어야 좋은 책이 나온다는 말은 당연하다.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대한민국 사람들, 그마저도 인문학적 통찰을 주는 좋은 책을 읽지 않는 문화가 이어지는 한 출판시장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앞날은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다.


세션 2에서는 과학하는, 예술하는, 여행하는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는 여성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근세 네덜란드의 황금 시대 때 활동한 화가이다. 당시 16~17세기 네덜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여성들은 식물도감에 들어가는 세밀화를 많이 그려서 경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독일 마르크에 메리안이 모델로 쓰였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메리안이 활동하기 이전 클라라 페트로스라는 여성 화가가 있었다. 그녀는 ‘정물화’라는 명칭이 생겨나기도 전 식탁에 있는 소품, 음식 등이 담긴 정물화의 모태를 그려냈다. 여성은 길드에 가입할 수조차 없어 화가라는 명칭이 부여될 수 없었던 시절에 그녀는 활동했다. 미켈란젤로 등 당대 유럽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화가들은 북유럽 미술의 주요 작가인 여성들을 폄하했다. 이유인즉슨 성모를 그리지 않아서 신성성이 부족하다느니, 조형미와 균형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낮은 평가를 했던 것이다. 지금의 시기 우리가 중세 유럽의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활발한 경제 활동으로 꽃 시장이 발달하여 카달로그에 그림 그릴 기회가 늘어났는데 여성들은 이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북유럽 미술은 정물, 풍속, 꽃 등의 일상을 담은 그림이 많았다고 보면 된다. 메리안은 네덜란드의 황금기가 저물 무렵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수리남에 가서 50대의 대부분을 <수리남 곤충의 변태>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한 시간으로 보냈다. 그 시기 여성이 섬에 단독으로 가서 몇 년을 보내며 글을 쓰는 작업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그 결과물이 바로 <수리남 곤충의 변태>다. 


세션 3에서는 한국 여성미술가들을 조명하며 페미니즘과 교차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자와 사회자가 있어서 경쟁하듯 질문과 답을 이어가는 시간이었는데 두 여성 원로 미술 사학자들로부터 듣는 생생한 한국 현대 미술과 페미니즘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김홍희 선생님은 <페미니즘 미술 읽기>를 근간에 내셨는데 이 책은 경향신문에 페미니즘 미술에 대하여 다룬 칼럼들을 책으로 엮어 심화하여 출간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윤난지 선생님이 기획하고 현대 한국미술포럼이 참여하여 소외되고 배제된 한국의 여성 근현대 미술가들 105명을 추려내어 엮어낸 결과물이다. 김홍희 선생님은 페미니스트적 시각으로 미술 현장과 담론을 균형 있게 책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윤난지 선생님이 기획한 105명의 인물들은 모두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직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활동을 했음에도 가려져 볼 수 없었던 아티스트들이다. 일단 호명되어야 평가될 수 있다는 윤난지 선생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1990년대가 되면 한국에 포스트 모더니즘을 비롯한 페미니즘 이론이 수입되는데 이 시기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비롯한 신세대 미술가들의 다양한 대안공간에서의 미술 작업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미술의 바탕이 되었다. 신세대 미술가들은 정치성과 결합하고 탈이데올로기를 호출하는 방식으로 미술 작업을 이어나갔다. 정체성이 없는 미술 작업은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그들이었다. 그렇다면 현재를 이끄는 청년들인 MZ세대의 미술 작업은 어떨까. 그들은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업주의를 낮게 평가하지 않는 것 같다. 두 선생님들은 그들이 경질적 가치를 꿈꾸기를 바란다고 소망하셨다. 20세기는 여성 미술가들이 외면받아야만 했던 극심한 시기였다. 이제 더는 여성 미술가들이 박절받는 시대는 아닌 것 같지만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비롯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가부장제에 머물러 있다. <페미니즘 미술 읽기>와 <그들도 있었다>를 통해 한 책에서는 여성 미술가들의 인물 열전, 다른 한 책에서는 페미니즘 이론의 실천적 미술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미술 생태계에서 남녀 편차가 극심하게 드러나는 한국 미술의 현대화 시기, 즉 20세기를 성별에 따른 필터링 없이 보다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시도다. … 

105라는 수만큼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목차로 묶어 구성하는 것은 모순과 편차를 아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의 시기와 내용, 방법 등을 고려하여 10개 항목으로 분류함으로써 최소한의 갈피를 잡고자 했다. - P6


북토크기 있기 전 같은 건물에서 특별 기획전인 <차이의 미학> 전시를 보았다. <그들도 있었다>에 포함된 미술가들의 작품도 들어가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특별전 <차이의 미학>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주제로 한 전시다. 살아가면서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는 우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잊고 타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행한다. ‘다름’을 틀린 것이 아니라 다양성임을 깨닫고,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여정이 필요하다. 

전시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김윤신, 데비한, 김순임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김윤신 작가의 작품은 다양했는데 특히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합’과 ‘분’이 동양 철학의 바탕을 의미하듯 두 개체가 하나가 되고,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그리고 반복)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과 미술 재료(나무 등) 자체를 통한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또 다른 작품인 <즐거움의 울림>이나 <내 영혼의 노래>는 동양의 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화려한 비상처럼 날개를 펼칠 수 없었던 여성들이 활짝 개화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듯한 느낌이었다. 


김순임 작가가 표현한 설치 미술은 <비둘기 소년>이다. 작가가 뉴욕 레지던시에서 동유럽 출신의 이민자이지만 건물 관리인 다니엘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건물에 들어설 때 항상 다니엘을 마주했지만 동료 작가들조차도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다. 펠트와 깃털로 제작된 작품으로 다니엘이 소년이었을 때 길에서 음식을 주워먹고 연명할 정도로 어렵게 성장했다고 한다. 어른이 된 소년은 여전히 도시의 그늘처럼 존재한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풍경이 되어버린 도시의 비둘기, 건물의 풍경 같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은 이어진 존재가 아닐까. 



데비한 작가의 <비너스 상>은 언뜻 보면 그냥 평범한 고대 그리스 상을 표현했나보다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상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 보면 놀랍게도 모두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다. 눈과 코, 입술이 표현되지 않은 얼굴도 있고 오똑한 코의 얇은 입술을 가진 얼굴, 넓은 볼을 가진 코의 두터운 입술을 가진 얼굴, 뾰족한 코의 두툼한 입술을 가진 얼굴 등…. 작가는 해외에서 이주민으로 살면서 느낀 차별에 대한 경험이 있었고 이를 작가만의 시선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재료를 한국의 전통 재료인 도자기를 사용했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미의 척도’인 비너스를 단일한 미로 표현하지 않고 다양한 미로 표현해낸 이 작품에 오래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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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2-08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에서 하는 북토크에 다녀오셨군요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마침 전시회도 있어서 잘됐군요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관심 가네요 저 책 나왔을 때 제목 본 듯도 합니다 스쳐 지났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12-10 10:56   좋아요 1 | URL
저도 북토크를 통해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는 여성에 관심이 가서 저 책을 구입했어요. 읽고 나서 공유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희선 님. 무탈한 한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