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머에 따르면 한국가가 다른 나라의 영토에 대한 권한이나 권력을 주장하는 것이 제국주의이며, 식민주의는 그 나라에 대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일련의 실질적인 실천으로 정의된다.
역사학의 측면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식민주의보다 나중에 출현한것으로서, 더욱 일반적이면서 폭넓은 개념이다. 근대적 의미에서 식민주의는 한 독립국가가 그 국가에 속하지 않는 한 지역을 복속시키고 관리를 파견하여 그 지역 주민들을 지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한편 제국주의는 국가들 간의 종속적 관계의 성립과 유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공식적인 영토 지배를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 다르다. - P19

린다 샤이어스 Linda Shires는 <가부장적남성성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던 왕족의 권위와 왕위 계승, 그리고성에 대한 논의들이 1830년대와 40년대에 부각되었음>20)을 주장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에 망령처럼 떠돌던 혁명에 대한 공포가계속되는 가운데 군왕의 자질이 부족했던 조지 4세와 윌리엄 4세의통치를 거쳐 1837년 어린 빅토리아 여왕이 등극하게 되자 <정력적이고, 현명하며, 믿음직한 아버지 상은 필연적으로 당대의 문화적요구가 되었다>는 지적이다. - P28

낸디와 스톨러는 세기말 경향과 제국주의가 내포하는 식민 이데올로기 사이에 깊은 연관 관계가 있음을 언급한다. 낸디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와 같이 대표적인 세기말 인물들이과도한 남성성과 획일적인 사회화 현상에 대해 <혼돈스럽고, 독특하며, 병리학적인 저항감>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스톨러는식민지에서 나타난 매매춘이나 흔들리는 제국의 위상 같은 문제들이야말로 19세기 중반기 강력한 남성성을 창조하려 했던 영국의 시도들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 P30

1857년 이전까지 인도에서 정당한 지배자의 이미지를 점진적으로 구축해 나갔던 영국인들은 인도 항쟁을 계기로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인 제국의 남성성을 구현해야 할 시급한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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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1-07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벌써 시작하셨군요! 저는 어쩌다보니 10일경 시작하는 흐름을 갖게 되었는데,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평점 :
절판


2년 전 나온 책을 이제 읽게 되었다. 너무 묵힌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련다. 아렌트는 현대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꼭 어디에서든 만나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최근 세계철학사를 읽으면서 결정적으로 그녀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입문서가 적당할까 싶어 검색을 해봤는데 남아 있는 책들 중 입문서로 하기에는 결국 이 책만한 것이 없다 생각했다.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하노버 린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독립적이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이야기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자라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뿌리가 유대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그럴 때 어머니는 “언제나 당당하게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라고.”(P37) 했다는데 그녀도 강단 있는 어머니의 성향을 자연스레 물려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세에 천재들이 나오는 법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언급하면 입이 벌어질 정도의 철학 사상가들을 한나는 많이 만났다. 그녀는 과연 시선을 잡아 끄는 힘이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녀 곁을 스쳐간 중요 인물 중 세 사람을 꼽는다면 하이데거, 야스퍼스, 블뤼허라고 여겨진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는 개인적으로도 달랐지만 사상적으로도 달랐던 것 같다. 하이데거가 현상학적 실존주의를 주장했다면 야스퍼스는 소통과 대화, 현실 탐구를 중요시 여겼다. 한나는 야스퍼스의 사상적 측면에 더욱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의 논문 주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웃 사랑의 개념을 발전시킨 ‘아모르문디(세계를 사랑한다)’였기 때문이다. 


한나는 하이델베르크 재학 시절 지식인 모임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며 다양한 인맥을 쌓았다. 이 무렵 첫 번째 남편인 귄터 안더스(슈테른)도 무도회에서 만나 동거 후 결혼했다. 

독일의 반유대주의가 강화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되자 한나는 현실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고 베를린 정치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한동안 프로이센 도서관에서 반유대주의 관련 자료를 수집하다가 사서의 신고로 체포되고 만다. 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다(안더스는 이미 프랑스로 가 있는 상태였다). 


한나는 샹젤리제 거리에 있던 ‘아그리퀼티르&아티자나’에서 일하며 유대인들을 가르치고 평생지기인 차난 클렌볼트를 만난다. 뿐만 아니라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벤야민 등과 만날 수 있었다. 

한나는 시오니스트였는데 유대인에게도 조국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유에는 공감하지만 그 방법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는 1937년 안더스와 이혼을 했다. 1936년 에른스트 블뤼허를 강연 자리에서 만났고 이후 결혼을 하게 된다. 블뤼허는 그녀가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법적 남편이었다. 


독일이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한 뒤 2차 대전이 시작되자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 남성의 강제 징집 명령이 떨어진다. 이때 블뤼허도 끌려갔는데 병의원 소견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1940년이 되면 파리 시장의 발표로 블뤼허, 한나 모두 각각 강제수용소로 이송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한나는 수용소에서 5주 간 있다가 탈출을 감행했다. 남편의 행방을 알 수 없던 한나는 수소문하다 거리에서 블뤼허를 만난다(블뤼허도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더는 유럽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한나는 미국 비자를 얻고 떠나기 전 벤야민의 무덤을 찾는다(벤야민도 미국으로 가려 했으나 입국이 가로막혀 자살하고 말았다). 한나 아렌트는 벤야민을 친구 이상으로 특별하게 생각했다. 미국행 배에 몸을 실은 한나와 블뤼허의 짐에는 벤야민의 유작들도 들어 있었다. <역사철학테제> 원고도 있었는데 한나 부부는 대서양을 지날 때 같은 처지인 난민들에게 큰 소리로 이 원고를 읽어주었다(P143). 

이 무렵의 일들은 현실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연적인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는데 영화도 이보다는 극적일 수 없을 듯 하다. 이것이 현실이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놀랍다.


미국에 건너간 그녀는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간다. 이때 한나 아렌트의 시오니즘을 향한 태도가 달라진 것에 눈길이 갔다. 그녀는 독일과 프랑스에 있을 때 유대인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히브리어 강좌를 개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유대인 청년을 인솔해 직접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시오니스트였다. 그런데 1942년 빌트모어회의(시오니스트 회의)에 참석하면서 견해에 변화를 가져왔다. 한나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다비드 벤구리온 수상의 제안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다. 팔레스타인은 자치 국가가 아닌 전후 영국연방 국가 내에서 설립되어 반유대주의 처벌에 대한 범죄를 설립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저작물들이 이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한다. 


1951년 출간한 <전체주의의 기원>은 ‘20세기에 전체주의가 출현한 현상의 기원이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어쨌든 제 해법은 전체주의의 주요 요소들을 발견해내고, 적합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범위에서 그 요소들을 역사 속으로 가져가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체주의의 역사를 쓴 게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 전체주의를 분석했습니다.(P194)” 이 책은 전체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해하여 하나씩 살피고 이것이 어떻게 하나로 묶여 전체주의가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폭정은 개인을 고립시켜 정치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공적영역을 파괴하지만 전체주의는 또한 개인의 사적 삶도 파괴할 것을 주장한다. 전체주의는 외로움에 기반한다(P197). 


1958년 발간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조건(노동, 작업, 행위)은 자유에 달렸다고 언급한다. 자유를 위해서는 삶의 각기 다른 영역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인간의 다양한 활동과 각 공간들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아 모든 활동이 사회적이고 소비를 위한 노동 활동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간) 이동의 자유가 상실되고 있는지 살핀다.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출간된 후 그녀는 논란의 중심에 선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인간이 겪는 일과 인간의 행동”을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로 여기고 잡지 취재를 강행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그녀가 느낀 감상은 실망스러움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악은 다루어지지도 않았고 “유대인의 슬픔에 대한 역사적 실태 조사”에 촛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한나는 아이히만이 저지른 짓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기에 아이히만은 죽어 마땅했다. 인간조건의 기본 원칙인 다원성을 위반했다.고 스스로 재판의 결론을 내린다(P234). 공적영역에서 진실이 자취를 감추면 정치적 자유가 위협을 받는다. 한나가 깨달았듯이 공적영역에서 내 경험과 관련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진실을 말하는 자들은 집단적 경멸의 대상으로서 언제나 정치영역의 바깥에 서 있다(P243).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책은 특히 <혁명론>이었다. 지금 국내 정치가 말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1963년 무렵 미국이 베트남 전쟁, 민권운동 등으로 시끄러웠을 때 나왔다. 한나는 정당이 사라지면 독립된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더욱 힘을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나의 주장에 따르면 정당 체계는 유권자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국민이 스스로 후보를 결정하도록 하는 대신정당 체계 안에서 가장 힘이 센 후보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P249). 12.3 이후로 단임 대통령제를 중임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 등으로 이제야말로 정치 시스템 헌법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사실상 굳어진 양당제로 인한 문제도 만만치가 않다. 지금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기는 한가. 양측 간 아귀다툼으로 인해 국민들은 피로만 쌓여가는 형국이다.

거짓말이 들통나면 거짓말쟁이는 단순히 의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같은 주장은 공적영역을 바꿔놓을 수 있다. 거짓이 계속해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거짓이 진실을 음해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우리의 능력이다(P257). 이 부분 읽으면서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 하는 행위를 거울처럼 보고 있는 줄 알았다. 진실과 거짓을 우리는 반드시 구분해서 저들에게 ‘너희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진실을 호도하지 말라고’ 제시해야만 한다. 


한나는 1968년 <정신의 삶>을 사유, 판단, 의지 3부작을 생각하며 쓰기 시작했다. <인간의 조건> 후속작의 성격이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어떤 사람들은 악의 무리에 동조하는지 그 이유를 사유와 상상력에서 찾았다. 현실을 살아가고 내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제대로 보려면 철학사상이 아닌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P212)”

한나는 사유를 ‘난간 없는 사유’로 표현했다. 사유란 붙잡을 곳 없는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한나의 은유에 따르면 붙잡을 곳 하나 없을지 몰라도 계단이라는 서 있을 곳은 주어진다. 자유롭게 밟고 디딜 이 계단이야말로 한나에게 유서 없이 남겨진 유산이었다(P307).


이 책은 이렇게 한나 아렌트 삶의 궤적을 확인하며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녀가 집필하고 출간한 책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나아가 당시 세계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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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인생에서 우울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지만 그렇다고 삶의 - P61

욕구가 약해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우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울이 사색적 사고를 위해 소유자에게 일종의 천재성과 재능을 부여하는 유머라고 생각한 방식과 유사하다. - P62

한나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은 건 신의 존아니었다. 한나는 심지어 영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나에 따르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계는 단 하나,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다. 한나는 신의 구원 대신 세속적 사랑에 기댔다. 사랑으로변모한 의지는 무게, 즉 성격을 형성하는 중력을 지녔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도록 자아를 길들인다. - P65

한나는, 성별을 근거로 여성을 여성해방운동에 동원하려는도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았고, 여성해방운동의 목표가 여성을 남성과 사회적으로 똑같이 만드는 식으로 전개되어선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성은 남성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대신, 여성의 정치참여를 막는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목적으로 삼아야 - P90

한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하는경제적 불이익 때문에 여성의 정치참여가 불가능해진다고 생각했다. - P91

한나는 언제든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맞출 준비가 된 파브뉴의 낙관주의를 거부하는 대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파리아를 높이 치켜세웠다. 정체성을 잊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이다.
"정체성을 버리면 확실히 우주처럼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성격을 갖는 건, 세상을 창조하는 것만큼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 P114

한나는 낙관과 절망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 P131

한나는 시오니즘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을 경계했다.
20세기에 유대인으로 살아온 경험은 그녀가 철학에서 정치사상으로전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 P155

한나에게 친구란 어두운 시대에 쉼터가 되는 마치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한나는 친구들과 있을 때 "마음과 마음이 직접 만난다"
고 말하기도 했다. 친구 모임에서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고, 일의 압 - P162

박에서 자유로웠으며, 외모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모두 대등하게만날 수 있었다. 타인과의 친밀한 우정 속에서 우리는 숨쉬는 법, 즉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 P163

현실을 살아가고 내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제대로 보려면 철학사상이 아닌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 - P212

한나는 미국이 사회적·경제적·교육적 평등에 도달하더라도 미국 내 흑인 차별은 더욱 심해질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 같은 논리는 "자유로운 결사의 권리, 즉 차별권이 평등의 원칙보다 더 큰 타당성을 가진다"는 정치적 주장과 상통한다. 정치에서 평등을 배제한 까닭에 한나는 공적영역에 모습을드러낼 수조차 없는 차별받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했다. - P224

공적영역에서 진실이 자취를 감추면 정치적 자유가 위협을 받는다. 한나가 깨달았듯이 공적영역에서 내 경험과 관련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진실을 말하는 자들은 집단적 경멸의 대상으로서 언제나 정치영역의 바깥에 서 있다. - P243

한나는 정당이 사라지면 독립된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더욱 힘을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나의 주장에 따르면 정당 체계는 유권자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국민이 스스로 후보를 결정하도록 하는 대신정당 체계 안에서 가장 힘이 센 후보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 P249

거짓말이 들통나면 거짓말쟁이는 단순히 의견일 뿐이라고주장하는데, 이 같은 주장은 공적영역을 바꿔놓을 수 있다. 거짓이계속해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거짓이 진실을 음해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우리의 능력이다. - P257

한나가 주장하길, 사유라는 행위를 할 때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키케로(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만큼 더 활동적일 때가 없고, 혼자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울 때가없다"고 했다.
한나에게 <정신의 삶>은 1933년에 떠나온 전통 철학으로의 회귀였다. 한나에겐 이 책이 악인 자체와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은 악을 저지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직접 대면할 기회였다. - P283

매카시는 한나를 한 명의 ‘물리적 존재‘로 묘사했다.
한나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사람의 마음을 끄는 여성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또렷한 눈동자는 마치 지성의 광선이 뿜어져 나오기라도 하듯이 반짝였지만 그 내면에는 캄캄하고 깊은 웅덩이가 자리했다. 한나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건각에 잠긴 듯한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 P302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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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복잡한 과정으로 올바른 정보나 과학적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또 사유하는활동을 통해서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현실을 감내할 수 있다. - P22

"제 생각으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와 닮은 점을 과거에서 찾으려고 하는건 터무니없는 일이에요."
한나는 사유하는 방법, 즉 행동을 멈추고 최근의 경험과 내 마음속 두려움, 욕망을 바탕으로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방법을 가르치려 했을 뿐이다. - P25

어리긴 해도 조금 더 나이를 먹자 제 모습이유대인과 같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다른 아이들과 제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그렇다고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알다시피 유대인은 어릴 적부터 차별적 언사와 마주해요. 어릴 적부터 영혼이 그런 말들에 상처를 입지요. 그래서 저희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언제나 당당하게 나 자신을 스스로지키라고. - P37

"칸트를 읽었어요. 왜 칸트냐고 물으시겠죠? 굳이 대답하자면철학을 공부하든가 물에 빠져 죽든가 둘 중 하랬죠."
한나는 삶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서‘ 철학을 택했다고 가우스에게 분명히 말했다. 아버지 서재에 들어서는 순간에도한나의 이해 욕구는 존재했다.
"집 서재에는 모든 책이 있었어요. 책장에서 그 가운데 하나를꺼내면 그만이었죠." 10어린 시절 한나가 마주한 작품들은 일평생 그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전후 시대 독일을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중에서도단연 독일의 시와 철학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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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곤충의 변태 - 과학적 지성과 예술적 미학을 겸비한 한 여성의 찬란한 모험의 세계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금경숙 옮김 / 나무연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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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곤충과 친하지도 않고 식물과도 친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알고는 있었으나 머릿 속에서 지웠었다. 그러다 어떤 강연을 듣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과 작업 세계를 보면서 ‘궁금하다’ 싶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주문해서 집으로 받았던 책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로 읽지 못하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예술과 출판을 가업으로 하는 환경에서 자라났는데 아버지는 출판사 주인의 딸이었고 새아버지는 꽃 정물을 그리는 화가였으며 이복 오빠는 동판화 화가였다. 나중에 새아버지의 제자와 결혼을 하는데 남편도 건축물을 그리는 화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결혼 생활이 소원해지고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종교공동체에 5년간 몸을 담았다가 결국 이혼을 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새 삶을 시작한 그녀는 곤충의 기원과 생식에 대한 설명을 찾고자 둘째딸과 함께 남아메리카 수리남으로 향했다(수리남은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는데 당시 나이가 50세가 넘었던 때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녀는 수리남을 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돈을 마련해 여행을 감행했고 그곳에서 관찰한 결과를 충실히 정리해 책으로 출판해 냈다. 당시 표트르 대제가 메리안의 그림의 팬이어서 그림을 사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그녀의 그림 실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 때문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그저 식물세밀화를 그린 화가로만 인식하면 곤란하다. 식물과 곤충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직접 관찰한 결과에 대한 묘사력을 보면 과학자라고 해야 맞다. 과학자인데 그림까지 잘 그린 화가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이 책은 그 본보기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서 온갖 애벌레와 나비, 곤충을 만났다. 어릴 때 곤충의 변태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후 아마 책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정말 그림이 세밀해서 묘사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그림이라지만 2D로 찍은 사진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또 다양한 식물(에서 열리는 열매)을 만났다.

총 60개 식물의 생김새와 꽃의 모습, 효능(줄기와 가지, 뿌리, 잎) 등을 소개한다. 식물마다 달라붙는 곤충이 있는데 그걸 함께 설명하는 식이다. 직접 관찰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시여지’라는 것이 있는데 모습이 꼭 파인애플처럼 생겼다. 하지만 열매는 파인애플과 달리 겉은 노란색에, 안은 흰 과육에 검은 씨가 있다. 

‘카사바’는 식물의 뿌리로 빵을 만든다고 한다. 줄기를 잘라 심으면 증식한다고. 

우리도 잘 아는 ‘라임’은 수리남에서 가장 흔한 과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라임이 열매 이외에 용도가 또 있었다. 꽃과 껍질에서 기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바코버’는 바나나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설탕과 물을 섞어서 식초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소돔의 사과’라는 열매는 독성이 강해 사람과 가축이 먹으면 죽는다고 한다. 

‘그리스도 종려나무’는 기름나무라 불리는데 씨앗을 물에 넣고 끓이면 기름층이 분리되어 기름을 얻을 수 있는 형식이라고 한다. 상처를 치료하기도 하고 등불을 밝히는 용도로도 사용한다니 여러 모로 재능이 많은 나무다.

‘장미’는 카리브제도에서 가져왔다고 적혀 있다. 신기한 것은 아침에는 흰색 꽃이 피었다가 낮에는 붉은 꽃, 저녁에는 진다는 사실이다. 마치 하루살이 같지 않나?

‘포도나무’는 온난한 기후 때문에 1년 내내 재배가 가능한데도 수리남 사람들은 심을 생각을 안한다는 저자의 푸념이 재미 있었다. 

‘머스크꽃’은 이름만 들어보면 향기가 폴폴 날 것 같지만 꽃 자체에 향기가 없다고 한다. 꽃이 진 자리에 씨방이 자라는데 그 안에 갈색 씨앗이 있고 그곳에서 머스크 향이 나는 것이라고 한다.

‘플로스 파보니스’는 씨앗이 분만 촉진제로도 쓰이지만 낙태를 할 때도 이용했다고 한다. 이곳이 네덜란드 식민지였음을 앞서 이야기했다. 네덜란드인 아래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노예로 생활하던 이들은 아이를 가져도 낙태를 감행했던 것이다.

‘타브로우바’는 열매즙을 짜내 햇볕에 말리면 검게 변하여 몸에 문양을 찍는 염료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비누로 지워지지 않고 90일 정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인상적인 곤충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 나방과 나비, 투명 나비의 차이점을 아는가?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는데 나방은 털로 덮여 있고, 나비는 깃털, 투명 나비는 비늘로 덮여 있다고 한다.

또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애벌레가 가장 평범한 곤충으로 변하고, 가장 평범한 애벌레가 가장 아름다운 나방과 나비로 변하는 일을 나는 수차례 보았다(P61)’고 고백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카사바’에 ‘달라 붙은 노란 줄무늬 애벌레는 수리남 식물들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장본인이라고 한다.  

‘아메리카 자두나무’ 꽃 위를 다니는 애벌레는 꽃을 먹다가 꽃이 떨어지면 나무의 잎파리를 먹는다고 한다. 천성이 굼뜨고 온종일 먹기만 한다는 저자의 소개에 웃음짓기도 했다(그런데 변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름다운 푸른 나비가 나온다).

‘중국 사과나무’에 있는 애벌레들을 설명하는 저자의 설명도 웃기다. ‘하도 뚱뚱해져서 굴러다닐 지경이며 1년에 세 차례 나타난다.’라고. 

‘구아바  나무’에는 구슬 달린 애벌레가 있다. 애벌레에 구슬이 달리다니(정말이다)!!! 50개의 반짝이는 구슬이 각 면에 달려 있는데 이를 본 어떤 사람은 눈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했다고. 그러나 메리안은 구슬 위에 각막도 없고 사방 팔방에 달려 있는 구슬이 눈인데 왜 한쪽 방향으로만 가는가 생각해서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아이의 최종 변태물은 초록색 파리다.

‘노란 마카이’ 잎을 먹는 굼벵이가 있는데 굼벵이 시절은 머리, 꼬리는 검고 몸통은 누런색이다가 변태하면 노란 얼룩무늬 딱정벌레로 변한다. 그러다 다시 알을 낳고 굼벵이가 나온다고 한다. 보통 다른 곤충의 변태 과정은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곤충(나비 또는 나방)으로 변하는 과정을 거친다. 

‘풍각쟁이’는 짐작하듯 리라 소리를 내는 곤충이다. 


메리안은 이 책을 ‘모든 자연 애호가 및 연구자에게’ 헌정했는데 그렇다는 것은 동식물에 취미를 가진 애호가나 전문 연구자 모두를 타겟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관찰대상을 수채화로 그리고 동판을 제작한 후 두 딸과 함께 채색했다고 한다. 곤충은 실제 크기로 묘사하고 그림이 글에 압도되지 않도록 숫자나 알파벳을 붙이지 않았으며 제목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띈다. 

박물학자 메리안은 얼추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방과 나비를 연구했으며, 수리남에서 체류한 두 해 동안 100여 종의 곤충과 53종의 식물을 관찰한 성과를 세상에 내놓았고, 후에 린네는 이 그림들을 참조했다(P26).


‘과학적 지성과 예술적 미학을 겸비한 한 여성의 찬란한 모험의 세계’ 부제가 이 책을 잘 증명해준다. 옮긴이의 해제 또한 저자가 활동한 무대와 그녀의 삶을 이야기해주어 그림과 설명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흥미롭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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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03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충뿐 아니라 식물도 잘 알았군요 수리남에서 관찰하고 그림 그리고 글을 썼겠습니다 그런 건 짧은 시간 동안 못하겠네요 오랜 시간 여러 가지를 관찰하다니 대단합니다 구슬 달린 애벌레도 있다니... 곤충은 처음부터 그 모습이 아니기도 하겠지요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치기도 하고 번데기를 거치지 않는 것도 있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1-05 10:34   좋아요 0 | URL
네. 박물학자로 말하는 게 맞겠더라구요. 그림도 잘 그리고~ 주변 환경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능력이 출중했던 분인 것 같습니다.
구슬 달린 애벌레 뿐 아니라 다양한 생김새의 곤충들이 많았어요^^ 변태의 과정도 다양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건수하 2025-01-0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중 세밀화 그리시는 분이 있어 물어봤더니 이미 이 작가의 책을 다 보셨다고 해서, 아는 사람은 아는 책이구나 했었지요 ^^ 화가님 글 보니 저도 궁금해집니다 :)

거리의화가 2025-01-05 10:38   좋아요 0 | URL
오~ 지인 분 중 세밀화를 그리시는 분이 있군요^^ 이 책을 진작 보셨다니ㅎㅎ 관련 업종계에서는 알만한 분들은 다 아는 분이었던 것 같아요. 강연을 보러 가지 않았다면 메리안이란 이름을 전혀 몰랐을 거에요. 이번 기회에 당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 쪽 미술계의 배경과 메리안의 삶과 업적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숲노래 2025-01-03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이라는 그림책이 이분 삶을 어린이도 알기 쉽고, 어른도 잘 헤아릴 만큼 담아내었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513612

나무연필에서 다시 낸 책은, 예전에 ‘양문‘에서 낸 판을 새로 엮었지 싶은데, 둘 모두 ‘원판‘으로 보시면 그야말로 깜짝 놀라시리라 봅니다. 값이 23만 원이라 하지만, 아직 원판을 살 수 있을 적에 사놓으면 두고두고 빛날 만하다고 봅니다. 원판은 네덜란드말과 영어 두 가지로 적어 주었더군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0507805

그리고 ‘종교공동체‘가 아닌 ‘아미쉬‘라고 해야 맞다고 봅니다. 그곳은 ‘종교만으로 모인 곳‘이 아니라 ‘자급자족을 하는 숲살림‘을 짓는 터전입니다.

거리의화가 2025-01-05 10:41   좋아요 0 | URL
숲노래 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아이도 접할 수 있는 그림책이 있었군요. 원판도 있었다는 사실도 덕분에 알았습니다.
제가 좀 뭉툭하게 적었는데 말씀하신 대로 터전이 맞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