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박시백의 고려사 1 - 천하 통일과 고려의 개막 박시백의 고려사 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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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세트를 집에 갖고 있다. 대중들에게도 아마 충분히 친숙한 책일 것 같은데 전집은 아니어도 한 두권쯤은 읽어보지 않았을까. 도서관에 가서 확인해 보면 그 책은 항상 대출중이거나 꽂혀 있더라도 사람들의 손때가 제법 묻어 너덜너덜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방송 매체에서도 자료 화면으로 다루어질 정도니 대중 역사서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저자가 후속으로 고려사를 다룬다고 하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보지는 않고 어느 정도 쌓이면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밀리의 서재에 몇 권이 올라왔길래 읽기 시작했다.


일단 이리 다양한 인물들의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렸을까 생각했다. 

조선사의 등장 인물들은 캐릭터를 보고 ‘특징을 잘 잡아 그렸다.’라는 느낌을 바로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려사는 사실 캐릭터를 봐도 감이 오지는 않았다. 궁예 같이 아주 특징적인 인물이야 그리기 수월했겠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캐릭터를 묘사하기가 훨씬 어려웠을 거란 짐작을 한다. 

또한 고려사는 기록이 적어서 책의 분량 자체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후삼국 시대는 그나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제법 자료가 나와 있겠지만 2대 왕부터 성종 이전까지 초기 시기는 그 기록이 특히 적어서 단순한 한 줄만 가지고 그림을 그려야 했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기록을 보고 추측하며 그렸을 작가의 노고가 느껴졌다. 


읽으면서 느꼈던 소회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견훤은 왜 서라벌을 점령하고도 신라 왕에게 항복을 받아내는 대신 경순왕을 세웠을까? 

쳔년의 왕국 신라를 간단히 보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라면 이전 경애왕과 왕족들에게는 왜 그리 흉포하게 대했을까? 어쨌든 이는 신라 왕족의 분노와 반감, 나아가서는 신라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난세에 용장이 힘을 얻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보이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폭압과 공포정치가 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백성들을 껴안고 보듬는 정책을 펼쳤다면 왕건과 견훤의 대결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아니면 후백제와 고려가 각각 존속하면서 유지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견훤의 성정상 고려와 나란히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 같지만.


고려 태조 시대 명장, 유금필 장군의 활약이 돋보였다. 육지전 뿐 아니라 해전에서도 후백제 군대를 거침없이 몰아붙이니 태조에게는 참으로 귀인이 아닐 수 없었을 듯하다. 박시백 작가는 그를 '태조의 짱가'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유금필이 유금필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역시 후자의 표현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거란과의 첫 외교적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만부교 사건은 이후 거란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드는 사건이 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호족 관리를 위해 위해 호족들의 딸과 연을 맺고 나아가 왕씨 성까지 하사한 것은 그들의 마음을 달래면서 당장의 불을 끌 수는 있었겠으나 후환을 남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왕씨 성을 받기 위한 호족들 간의 암투도 있지 않았을까? 결정적으로 후계자 문제의 불씨를 남겼다. 29명의 부인 아래에서 출생한 태조의 계보는 8대 임금 현종이 등극할 때까지도 이어지니 말이다. 


'장수로서는 지혜롭고 용맹했으며 일국의 왕으로서 부드럽고 온화한 가운데 단호히 결단할 줄 알았다.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누구든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졌다.' 태조에 대한 평가다. 다른 무엇보다 넉넉함을 가졌다는 것에는 동감한다. 


<훈요10조>가 고려사에 실리게 된 경위가 흥미로웠다. <훈요10조>는 태조가 죽기 전 이후 고려를 위해 내린 지침서인데 요나라(거란)와의 전쟁 중에 분실되었다가 최승로의 손자인 최제안이 최항의 집에서 발견함으로써 가능했다고 한다. 최항이 이 문서를 보관하게 된 경위는 여러 설들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유야 어쨌든 거란에 이 문서가 넘어가거나 불에 타거나 하여 없어지지 않고 고려 내에 보관된 일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혜종의 탄생 비화 관련 왕건과 둘째 부인 사이의 만남은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라 놀랍기 짝이 없었다(망측하다는 표현이 적절!). 혜종의 탄생 비화도 그렇고 얼굴에 주름이 졌다는 등의 말을 고려사에 기어코 집어넣은 것은 혜종의 어머니인 장화왕후 집안의 힘이 그만큼 미약했고 나아가 혜종의 힘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라 보여진다.


혜종은 몇 번이나 시해의 위기의 순간을 넘긴다. 일명 왕규의 난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그런데 혜종은 그 일을 덮고 넘어갔다. 왜 그랬을까? 왕규는 당시 최고의 재상이었는데 반역을 시도하면서까지 손자를 왕위에 올리려 했던 것일까. 다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기록에는 이 일을 왕규가 주도했다 보았지만 추측일 뿐이다. 작가도 혜종의 동생인 요(후에 3대 임금인 정종)나 소의 소행이 아닐까 추측한다. 왕자 요와 소는 태조의 3번째 왕비의 소생들이다. 


혜종이 2년 만에 사망했다는 것도 의혹을 갖게 한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작스런 병사를 했을리는 없고 타살이지 않을까. 3대 임금 정종은  즉위하자마자 재상 투톱(왕규와 더불어) 중 하나인 박술희를 처단한 것을 보면 혜종의 사망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왕규는 후에 유배를 당했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고 난을 일으킨 주인공이자 역적으로 역사 기록에 남고 말았다. 그가 할 말은 없을까나.


정종은 고려사에 '불교를 좋아하고 두려움이 많았으며 도참을 믿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절에 어마어마한 클라스의 시주를 한 것만 봐도 불교를 좋아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혜종도 2년 만에 죽었는데 정종은 4년 만에 죽다니 참 우연 치곤 놀랍다. 아무튼 그렇게 왕자 소는 4대 임금 광종으로 즉위했다고. 


광종은 노비안검법 시행과 과거제 시행으로 역사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기 때문에 익숙하다. 그러나 '광종 말년에는 세상이 어지럽고 참소가 일어나서 형벌에 연루된 이들은 대부분 죄가 없었고 역대로 공훈을 세운 신하와 경험 많은 노장들이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고 사라져버렸습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를 땐 옛 신하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은 40여 명뿐이었습니다.' 

이는 최승로가 올린 시무책의 언급에 나오는 표현 중 하나인데 이렇게 심했을까 싶지만 그만큼 숙청의 빈도가 많고 강도가 셌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광종의 첫째 아들이 5대 임금 경종으로 즉위한다. 그와 관련해서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전시과를 처음 시행한 것으로만 기억난다. 정치적으로는 그만큼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데 막판으로 갈수록 오락과 유희에만 집중한 끝에 사망한 것이 이유가 아닐까. 


경종에게는 2살 짜리 아들만 있었기 때문에 즉위할 수는 없었고 대신 사촌이자 처남인 개령군이 왕위를 이어받아 6대 임금으로 즉위했다. 성종 하면 최승로가 생각날 정도로 성종의 개혁에 최승로의 공로가 지대함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업적을 남기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강화함으로써 사회가 이전보다 경직된 면도 있었다.


1권은 후삼국 시기부터 시작하여 고려를 통일한 태조부터 성종 시기까지를 다룬다. 기록이 빈약한 시기라 특히나 역사적 상상력과 추측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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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15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어본 적 없군요 박시백, 이름은 한번 정도 들어본 것 같기도 합니다 역사책 잘 안 봐서 그렇군요 고려사도 그리게 됐나 봅니다 이 책 반긴 사람 많을 듯하네요 글로 보는 것도 괜찮지만, 그림과 함께 보면 재미있게 볼 테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3-12-16 22:02   좋아요 1 | URL
조선왕조실록도 그렇고 고려사도 그렇고 온라인에서 이제는 다 찾아보고 할 수 있지만 텍스트로만 되어 있는데다 건조한 문체기 때문에 재미를 느낄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만화로 캐릭터화시키니 진입 장벽을 허무는 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yamoo 2023-12-15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시백 역시 통사를 중심으로 만화를 구성해서 좀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고려사는 다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문화사 측면에서의 발전은 상당한 진전이 있습니다만...가장 중요한 강역에 대한 연구는 아주 요지부동이라...
고려거란전쟁 드라마도 충실히 통사의 위치대로 청천강 유역에서 싸웠다고 나옵니다만...역사적 사실은 요하강 유역에서 싸웠다고 거의 모든 유물과 사서가 증명해주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주류 고대사학계만 연구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연구할 거리가 넘치는데요...자기들의 학문적 기반이 무너져서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우리는 우습게도 거짓된 역사를 배우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저는 그럴 가능성이 90퍼는 넘는다고 봅니다만..^^;;

거리의화가 2023-12-16 22:05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야무님^^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고려사는 변화된 사료 등을 기반으로 업데이트가 필요하고 여전히 발굴되어야 할 영역이 많은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맥락이 부족하여 읽으면서도 답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다양한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병오 B.C.15

남창위 매복의 상서

지금 폐하께서 이미 천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또 죽임을 가하시어 천하가 말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니, 이는국가의 큰 병폐입니다. 지금 군주의 명령을 범하고 군주의 위엄을 빼앗아 外戚의 권세가 날로 더욱 높아지니, 폐하께서 그 형체를 보지 못하시거든 바라건대 그 그림자를 살피소서. 형세가 군주를 능멸하고 권력이 군주보다 높아진 뒤에 막는다면 또한 미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上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 ≪漢書 梅福傳≫에 나옴-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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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갈수록 다양한 이민자들이 등장하면서 관련한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미국에서의 아시안 인종 차별이 얼마나 심한지 에피소드만 봐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하고 있는 곳에서 강도가 들어 폭행을 당한 뒤 의료보험 문제로 병원에 가기를 주저하는 Mia 부모님을 보면서 두통이 밀려왔다. 거기에 Mia가 자신이 돈이 있다며 당당하게 부모님께 말하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엄청난 금액의 병원비를 두고 엄마가 끝내 울음이 터지는 모습에는 또 눈물이... 다행히 현명한 의사 선생님을 만났으니, 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가 아닐까. 이 와중에 Hank는 이번에도 가족들을 크게 도왔구나.



[ CH40 ]

Mia는 Lupe에게 네 말이 맞다며 편지를 썼다. 에세이 평가에 참가해볼 것을 종용하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 날 Mia는 Lupe 책상에 편지를 올려두려고 일찍 갔다. 또 Jason에게 전달할 특별한 편지가 있었는데 여기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중국 이민자가 준 민트향이 나는 약인데 잘못 했다가 본인도 매워서 눈물 쏙 뺀 아이템). Mia는 Jason의 책상 위에 있던 연필에 그 약을 발라두었다. Jason은 놀러갔다온 이야기를 자랑삼아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 꼴이 보기 싫었던 Mia는 내 연필을 돌려달라 윽박질렀는데 돌아온 대답은 개한테 던져줘서 온종일 씹고 있을 거라고… Jason은 연필 만졌다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Sunlight flooded in through the tall glass windows, and jason’s tears glistened in the warm peach glow.


[ CH41 ]

Mia는 Lupe와 화해를 했다. 

그런데 모텔에 도둑이 들어와 엄마를 때려 눕히는 바람에 입술은 잘려 나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피멍이 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빠는 세탁실에 있어서 엄마가 공격당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Hank가 도둑이 공격하는 것을 보고 달려나와 그들을 쫒아 나갔다. 엄마를 침대에 눕히기는 했지만 Mia는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 돈 있어요.”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다행히 뼈는 안 부러지고 내상은 없다고 했다. 헌데 5800달러가 나왔다. 보험이 없다고 하니 이상하게 보는 간호사들, 결국 관계자들이 출동했다. 빈곤선 기준(3인 기준 11890달러)에 해당은 하지만 공짜로 살고 있다는 말에 신원 보증이 되지 않는다며 무료 건강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했다. 최대 40% 할인으로 3480달러를 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그 때 왠만하면 울지 않던 엄마의 울음이 터졌다. 관계자들은 심각하게 회의한 끝에 기본 진찰료인 150달러를 받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Mia는 의사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미국에 와서 처음 만난 의사였다고. 미국인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찡했다.


[ CH42 ]

Mia가 모텔에 와 보니 여전히 Hank가 돌아오지 않았고…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온 그는 구치소에서 잤다고 했다. 도둑놈과 폭행 시비가 붙었는데 경찰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에 차 절도죄로 기소된 일 때문에 Yao씨가 이를 확인해주는 바람에(Hank에게 돈을 못 받을 것 같으니 구치소에나 가라는 것인가) 짐을 싸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Mia 가족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 CH43 ]

모텔에 강도가 든 일로 경찰들이 엄마의 진술을 얻기 위해 찾아왔다. 알고 보니 강도는 이전에도 집행유예 이력이 있던 자였다. 이번에는 집행유예가 아닌 감옥에 가게 되었다. 

Hank가 4개의 봉투를 Mia에게 건네며 부쳐달라 부탁했다. 밀봉되어 있지 않은 봉투를 무심코 연 Mia는 그것이 Hank가 mall에 구직하기 위한 지원서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를 돕고 싶었기에 calivista motel에서 일한 이력을 이야기하고 얼마 전 있었던 사고 일도 말하며 그는 보증할 만한 자라고 reference letter를 함께 동봉했다.


[ CH44 ]

어느 날 휘날리는 빨간머리에 코 주변에 주근깨가 있는 소녀가 부모님과 함께 모텔에 방문했다. 아마도 가족끼리 디즈니랜드를 가는게 아닌가 추정되었다. Mia는 모텔 직원답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그녀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짜증스러운 말투로 일관했다. 하지만 Mia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그녀가 입고 있는 캘빈클라인 진이었다. 

다음 날 엄마는 호들갑을 떨며 Mia방으로 건너왔다. 그들이 입던 옷을 두고 갔다는 것이다. 청바지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엄마는 세탁해서 입으면 될 거라고 희망을 던졌다. Mia는 마침내 캘빈클라인 진을 입고 당당히 등교했다.


[ CH45 ]

Hank는 Confetti cannons에 안전요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모텔에서 맞는 첫 땡스기빙데이에 Mia 가족은  weeklies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 pulled me in for a bear hug.


[ CH47 ]

호텔에 엄마 지인 Uncle Zhang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모두 엔지니어였고 중국에서 함께 일한 동료였다. Zhang은 1년 전 미국에 들어왔고 주방에서 일하게 되었다. 고용주가 미국인이었는데 직원들의 passport와 ID를 가져가버리는 바람에 떠날 수도 없게 만들었고 직원이 아닌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Zhang은 지금 일하는 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지만 passport와 ID가 수중에 없으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How did that deadbeat sneak back in here? 

I’d rather be stuck on a bad rollercoaster with my mum, than on a good rollercoaster by myself.

excruciating: causing extreme physical pain

I got into some trouble with loan sharks.


[ CH48 ]

Uncle Zhang은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 그녀를 귀환시키기 위해 loan sharks에서 500달러를 빌렸다. 루저라며 자책하는 그에게 Mia 부모님은 위로를 해 준다.

Mia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Zhang의 고용주에게 편지를 썼다. Mia는 학교에 가기 전 Zhang에게 그 편지를 건넸다.  


stage four cancer: 4기 암

I watched as his eyes danced across my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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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2-14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이만큼 읽으셨군요!! 👍👍👍

거리의화가 2023-12-14 13:36   좋아요 1 | URL
네. 거의 매일 한두챕터는 읽고 있어요. 수하님도 계속 화이팅입니다!

독서괭 2023-12-14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아침에 50장까지 읽었어요! 히히 하지만 정리는 아직 7장까지;; 화가님은 정리도 꼼꼼하셔요 역시.
그런데 ‘입술은 잘려 나가‘ 부분 보고 헉 놀라서 다시 찾아봤는데 ˝Her lips were cut open˝은 ‘입술이 터졌다‘ 정도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용? 저도 번역서가 없어서..
제이슨 골탕먹인 거랑, 행크 취직시킨 거 넘 시원했어요.^^

거리의화가 2023-12-14 13:35   좋아요 1 | URL
번역서가 없어서 저도ㅎㅎ 입술 잘려나갔다는 표현은 역시 아닌것 같죠?ㅋㅋ 근데 말을 못할 정도였던것을 보면 상상만 해도 제가 다 아파요ㅠㅠ
ㅋㅋ 제이슨 민트향 제대로 느꼈을듯! 행크는 여러 모로 참 귀인이에요^^
50장이라니! 괭님 가장 선두이실듯! 저는 읽으면 바로 노트에 정리해놓거든요. 안 그러면 까먹기도 하고 다시 정리하기도 귀찮아집니다!ㅋㅋ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작년 서재의 달인 선물로 받았던 미니 다이어리 은근히 유용했는데 올해는 둘 다 큰 사이즈라 놀랐네요^^

단청 다이어리 넘 예뻐서 특히 잘 사용할 것 같습니다. 물론 스누피 다이어리도 넘 좋아요.

연말마다 달력을 준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작년에 이어 모두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괜히 종이 낭비면 안되니까요!

올해는 알라딘에서 준 다이어리 쓰다 말다 하긴 했어도 나름 유용하게 잘 썼답니다. 내년에는 더 유용하게 잘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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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2-13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화가님 두세트! 다이어리1개랑 달력이 제 거랑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3-12-14 09:40   좋아요 1 | URL
올해도 다이어리, 달력 2개 야무지게 잘 사용할 것 같습니다. 작년처럼 한 권은 독서 요약노트로, 다른 한 권은 인용글 노트로 사용하려고요^^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3-12-13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청과 스누피 중 뭘 쓸까 고민중입니당 ㅎㅎ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3-12-14 09:41   좋아요 0 | URL
저는 2권 다 사용하려고요! 어차피 옆지기는 줘봤자 안써서ㅎㅎ

건수하 2023-12-14 10:02   좋아요 0 | URL
집사2가 단청 좋아하지 않을까 했는데 단청이 문제가 아니고
‘다이어리‘ 라는게 자기 취향이 아니라며.... -_-;

전 일기도 잘 안 쓰지만.. 직장에 하나 집에 하나 두고 메모용으로 쓸까 합니다 ㅎㅎ

희선 2023-12-14 0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합니다 일기장이 좋죠 2023년엔 일기 쓴 날보다 안 쓴 날이 더 많네요 다음해에는 거의 비슷한 말이어도 채워보고 싶기도 하네요 거리의화가 님은 잘 채우시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2-14 09:42   좋아요 1 | URL
일기장은 따로 사용하는 노트가 있어서 거기에 쓰고 알라딘에서 주는 것은 순수하게 책 기록용으로 사용해보려고 합니다. 비슷한 말이라도 채워나가는 기쁨이 있죠^^

그레이스 2023-12-14 0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누피 같은 색 받았어요
둘째가 자기 것인양 좋아하길래 줬습니다.ㅎㅎ
이번에도 저는 은행 달력 쓰겠죠 ㅋㅋ
북플도 열심히 해서 화가님처럼 두 세트 받아야 겠네요

거리의화가 2023-12-14 09:43   좋아요 1 | URL
ㅎㅎ 둘째 귀엽네요!
은행 달력 준다는 것을 저는 거절했습니다. 사용도 안할 것을 아깝더군요^^ 그레이스님도 서재 마니아 축하드립니다!

페크pek0501 2023-12-14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드립니다. 저도 알라딘 선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ㅋㅋ^^

거리의화가 2023-12-14 21:2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아직 선물이 도착 안했군요.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베트만의 동료 중 하나가 찾아와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수년 동안 알자스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으로서 독일 제국 내의 연방정부로 인정하여 자치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만일 이러한 제안이 알자스인들에 의해 채택된다면 프랑스는 실지회복이라는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얼마전인 7월 16일 프랑스의 사회주의 의회는 이에 대한 지지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독일 군부는 변함없이 각 지방마다 수비대를 주둔시켜야 하며 그들의 정치적 권리는 "군사적 필요"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1년까지 단 한 번도 헌법이나 자치가 허용된 적이 없었다.
베트만의 동료는 지금 당장 알자스의 자치를 위한 즉각적이고, 공개적이며 공식적인 회담을 제의하라고 그를 독촉했다. 이것은 아무런 결과 없이 시간만 끌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그것을 검토하는 동안만이라도 프랑스에게 공격을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도덕적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것이다.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영국의 참전을 배제 - P153

시킨 채 자신의 병력을 러시아로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제안의 작성자는 익명으로 남아 있으며 출처도 의심스럽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에 기회가 있었으며 수상 본인이 그것을생각해 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를 잡으려면 대담해야 하는데, 큰 키와 어두운 눈 그리고 잘 다듬어진 황제 수염의 인상적인 외모(façade)와는 달리 베트만은 테어도어 루스벨트가 태프트를 일컬어 말한 대로, "매우 나약한 남자였다. 결국 독일정부는 러시아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같은 시간 프랑스에게도 중립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제안 대신 최후통첩을 보냈다. - P154

그날 저녁 몰트케는 동진을 거부했고, 펠트만 중위의 부대는 룩셈부르크의 트루와비에르즈를 점령했고, 메시미는 전화로 10킬로미터 후퇴를 재확인했으며, 해군성에서는 해군장관이 야당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는데 이중에는 후에 상원의원이 되는 비버브룩과 버켄헤드도 있었다. 기다리는동안 긴장을 풀어 보려고 저녁 식사 후 그들은 브리지 게임을 했다. 게임도중에 전령이 붉은색 전보 상자를 가지고 왔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치수가 가장 큰 상자였다. 처칠은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상자를 열고그 안에 있는 한 장의 서류를 꺼내 그 위에 써 있는 한 줄의 문장을 읽었다. 그것은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 P185

독일은 이 통첩 서두에서 지베-나무르 통로를 따라 프랑스군이 진격할 것임을 알려주는 "믿을 만한 정보"를 입수하였으며, "벨기에를 지나독일을 공격하려는 프랑스의 의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벨기에 측은 나무르를 향한 프랑스군의 움직임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본 적이없었고, 실제로도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 비난은 그들에게 아무런 인상도주지 못했다.) 계속해서 통첩은 벨기에군이 프랑스군의 진격을 저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독일은 "스스로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 적대적인 공격에 대해 선수를 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만일 벨기에가 독일의 벨기에 영토 진입을 "자국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한다면 독일은 이를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유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만일 반대로 벨기에가 "우호적인 중립을 유지한다면, 독일은 "평화가 이루어지는 즉시 그 영토에서 철수하고, 독일군대에 의한 어떠한 손해도 보상하며, "평화가 확인되면 왕국의 주권과 독립을 보장한다고 약속할 것이다." 원문에는 앞의 문장에 이어 "벨기에가 제기하는 어떠한 보상 요구도 프랑스의 비용으로 지불할 것임을 기꺼이 동의한다"고 적혀 있다. 마지막 순간에 벨로브는 이 뇌물부분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 P192

"여러분들은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카이저는 8월 첫째 주에 출정하는 군대에게 연설했다. 8월 9일 독일 왕실 사관은오페르스도르프 백작이 오후에 방문하여 이 일이 10주 이상 계속될 수는 없다고 말했고, 호흐베르그 백작은 8주로 예상했으며 이 사태가 끝나면 "우리는 영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했다.
서부전선으로 떠나는 독일군 장교는 스당 기념일(9월 2일)에 파리의카페 드 라 뻬(Café de la Paix)에서 아침을 먹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군 장교들은 비슷한 시간에 베를린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6주 정도가 일반적인 견해였다. - P217

직관으로 그랬는지 또는 고도의 지적능력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 군인인 세 사람만은 수개월이 아닌 수 년간 길게 뻗은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길고, 소모적인 투쟁"을 예언한 몰트케가 그 중 하나였다. 죠프르가 두 번째였는데 그는 1912년 장관들의 질문에 대해 만일프랑스가 전쟁에서 먼저 승리를 거두게 되면, 독일의 국가적인 저항이시작될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양쪽모두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일 것이며 그 결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각각 1911년과 1906년부터 자국의 총사령관이었던 죠프르나 몰트케, 그 누구도 계획을 세우면서 자신들이 예견한 형태의 전쟁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하지 않았다.
세 번째이자 자신의 전망대로 행동했던 유일한 인물은 키치너 경인 - P218

데, 그는 최초의 계획에는 참여하지 않았었다. 8월 4일 이집트로 향하는증기선에 승선하려는 순간 급하게 소환되어 국방장관에 임명된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떤 수수께끼 같은 신통력에 의해 이 전쟁은 3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를 믿지 않는 다른 각료들에게 그는 어쩌면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3년은 각오해야 합니다. 독일 같은 나라는 사실상 결말이 난 후에도 완전히 궤멸되어야만굴복할 것입니다. 그 과정은 매우 오래 걸릴 것 같군요. 지금 살아 있는사람은 누구도 그것이 얼마나 걸릴 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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