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신냉전, 그리고 그 너머





청일전쟁과 미국-필리핀전쟁, 그리고 뒤이어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도발한 러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러시아를 대신해 중국의 동북지역을 장악하면서 ‘동아시아 제국체제‘가 성립했다. 동아시아 제국체제의 새로운 주체는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신흥 제국이었다. 이들은 동아시아에서 각각 타이완과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필리핀에 대한 식민 지배를 발판으로, 서로 갈등하면서도 권력정치적 흥정을 통해 상호적응하고 협력했다. 극동에서 러시아의 힘을 견제하는 가운 - P184

데 중국을 경영한다는 두 개의 결정적인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였다.
갈등하되 흥정하며 협력하는 제국주의 카르텔의 질서였다. 이 카르텔의 표지는 동아시아 경영을 위한 일련의 비밀협정들 외에도 미일두 나라 사이에 형성된, 1940년 전후까지 ‘순진한 무역관계‘로 포장되어온 전략적 경제동반자 관계였다. 동아시아 제국체제의 또 다른축은 기왕에 홍콩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식민 지배를 굳히면서이를 기반으로 중국에 대한 공동 경영에 참가하는 영국·프랑스·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제국들이었다. - P185

트럼프주의는 부유층의 과두정 지향과 중하층 백인사회의 인종주의와반세계화 포퓰리즘의 연합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으로노동계층의 지지에 의존하는 민주당도 중하층 노동자층의 지지를회복하기 위해 그들의 정치적 요구에 민감해진다. 반세계화 포퓰리즘은 공화당도 민주당도 거스를 수 없는 미국 정치의 추세가 되었다.
반세계화 포퓰리즘으로 표상되는 미국 정치 내부의 반자유주의적경향과 포용성의 약화가 대외경제정책에서 개방성의 후퇴와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P201

바이든의 반세계화는 중국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와 유럽의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무역장벽을 들이대는 더 편협한 보호무역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이 경향을 ‘반도체도, 배터리도, 바이오도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요구와 함께, 이들 산업에 대한 산업보조금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주요 산업의 국적(籍)회복을 추구한 것이다. ‘리쇼어링‘(Reshoring)이라는 명패를 단 신중상주의(neomercantilism) 시대가 부활했다. - P202

요컨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분명 ‘조약‘ 수준의 평화협정체제를 구성함으로써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을교환하는 틀을 마련한다는 상호이해에 근거해 진행된 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실제 공동선언의 내용도 북미관계 정상화를 포함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성을 먼저 밝히고 북한 비핵화 의무를 그 뒤에 배치했다. - P209

「2022 타이완 정책법안(The TaiwanPolicy Act of 2022) 전문(前文)에서는 "타이완의 안보를 증진하고, 지역 안정을 확보하며, 타이완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침략을 억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국이 타이완에 적대적 행동을 할 경우 중국에 "강력한 제재" (severe sanctions)를 가할 것을 경고했다. 이 법의 본문에서는 타이완의 민주정부를 "타이완 인민의합법적 대표자"로 정의하고, 미국과 타이완의 "강화된 방위 동반자관계"를 규정했다. 또한 타이완을 "주요 비(非)나토 동맹국" (a majornon-NATO ally)으로 지정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이 법에 향후 4년간 타이완에45억 달러 규모의 방위능력 증강을 지원하도록 명시했다. - P217

한반도의 평화협정은 현재에 없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자는 문서다. 핵무기와 핵전쟁 위협으로 고통받는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기 위한 새 질서의 청사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평화협정은 평화과정의 입구로서의 위치가 주어져야 한다. - P233

평화협정 협상에서 떠오를 주요 안건으로는 남북 간 군비통제 문제가 있고, 그것은 거의 합의 불가능한 문제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우리를 짓누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창의적으로 다양한 방식의평화협정을 모색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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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의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폭투하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또한 지금은 더욱 아니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우리에게 더 절실한 군사적이고 인간적인 함의를 가진 문제로 엄존해 있다. 특히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첫째, 원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우처럼 ‘거악(巨惡)과의 전쟁을 빨리 끝내는 수단으로서 정당화된다. 전쟁을 빨리 끝낸다는 목적이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이라는 수단을 정당화할 합리적·역사적 근거가 있는가에 대해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 P94

한 발의 폭탄으로 상대국의 비무장한 민간인 수십만 명을 희생시키는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이 미국이말하는 효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않을 수 없다. - P95

2023년 2월 히로시마지방법원은 히로시마 피폭자들에게서 태어난 28명의 원폭2세들이 일본 정부를 향해 방사능 노출의 유전적 영향을 인정하고 의료지원을 제공할 것을 요구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방사능의 유전적 영향의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원폭2세들에게 의료지원을 거부한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 P102

스팀슨이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듯이, 트루먼은 원폭실험 성공 이후 포츠담회의에서 소련의 참전에 흥미를 잃었다. 원폭을 이용해 일본의 조기 항복을 이끌어내 소련의 참전 필요성을 예방하기를 가장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국무장관 번스였다. 메트레이가 지적하듯- 이, 이들 미국 지도자들이 원자탄을 사용하려는 주된 이유는 미국인들의 인명 손실을 줄이려는 것이었지만, 이 외에도 "일본의 조기 항복이 가져올 (동아시아에서의) 외교적·전략적 이익"이었다. 소련이 일본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기 전에 미국이 원폭을 사용해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낸다면, 일본 점령과 일본의 전후 처리에서 소련의 참여를 배제할 수 있었다. 또 한국에 대해서도 미국이 일방적인 점령을 - P116

할 수 있을 것을 미국은 기대했다. 따라서 한국에 대해 소련과 함께신탁통치를 협의해야 하는 "귀찮은 문제"도 피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 P117

혹자는 원폭사용으로 미소의 신탁통치를 피할 수 있게 되어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소 협력에 의한 신탁통치가 불가능해지면서 1948년 남북에 단독정권들이 수립되어 분단이 고착화되고, 그로부터 2년 후 거대한 전쟁의 참극이 한반도를 휩쓸고 마는역사적 결과를 생각하면 과연 그것이 다행한 것이었는지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 P118

일본 정부의 모든 인사가 일치된 견해를 갖고있었던 이슈는 단 두 가지였다. 소련의 참전을 반대하고 천황제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문제들을 두고는 일본 정부안에 의견이 갈려 있었다. 군부의 군국주의자들을 포함한 강경파들은 추가로 세 가지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었다. 종전 후 일본 점령 반대, 자체적인 무장해제(self-disarmament), 자체적인 전범재판이 그것이었다. - P124

바튼 번스타인에 따르면, 히로시마 원폭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겐 여전히 항복을 결심할 요인이 아니었다. 다만 히로시마에 충격을 받은 천황 히로히토가 개입해 항복을 추진하게 된다. 히로히토는천황제 유지를 유일한 항복조건으로 제시할 것을 내대신 기도에게지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일본 정부 안에서 군국주의 세력을 대표하고 있던 육군상 아나미 레치카(阿南惟)는 네 가지의항복조건 모두를 관철하기 위해 전쟁계속을 고집했다. "본토 결전에서 일본의 승리는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
본토에서 적어도 한 번은 싸워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 P128

외상 도고, 해군대신 요나이, 수상 스즈키는천황 지위 유지라는 것 하나만 항복조건으로 내세울 것을 주장했다.
반면에 육군대신 아나미, 육군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郎), 그리고 해군군령부총장 도요다는 세 개의 조건을 추가해 관철할것을 주장했다. 무장해제와 전범재판을 일본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것,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 대한 연합국 점령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날의 최고전쟁지도회의는 천황의 바람과 달리 결론을내지 못하고 끝났다. - P133

9일 어전회의에서 천황의 결단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그날 오전에먼저 열렸던 최고전쟁지도회의에서, 앞서 설명한 바 있듯이 포츠담선언 수락을 주장한 자와 ‘철저항전파‘가 3 대 3으로 갈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어 열린 어전회의에서 천황의 결심이 중요해졌다." 이자리에서 천황은 "천황제 유지"를 유일한 조건으로 포츠담선언을 수락한다는 의견을 밝힌다. 천황의 말은 그 자체가 지시도 아니었고 - P134

구속력 있는 결정도 아니었지만, 3 대 3의 대립상태를 해소했다. 군부 강경파들도 동의했다. - P135

8월 14일 어전회의에서 히로히토는 11일의 미국 답변을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아울러 국민이 자신의 결정을 알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나라에 방송할조칙(詔勅)을 준비할 것을 내각에 요청한다. 128이때 일부 군부 강경파들은 쿠데타를 시도하고 이 쿠데타는 거의성공할 뻔했다. 육군상 아나미와 육군참모총장 우메즈가 개입해 쿠데타를 봉쇄하고 내각을 유지함으로써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 P139

전쟁에서 도덕성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라고 많은 사람이말해왔다. 그러나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스스로 인간임을 의식하는 한, 도덕성의 문제는 회피할 수 없다. 그럼 ‘전쟁에서의 도덕성‘
이라는 것의 요체는 무엇인가. 전쟁에서도 도덕성의 마지노선은 비무장 인간집단에 대한 살상행위를 배제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전쟁범죄‘
규정의 기본적 전제일 것이다. 전략폭격이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비무장 민간인이 대부분인 인구집중 도시들을 목표물로 삼는 대량살상행위라는 데에 있다. - P151

적의 후방을 공격할 수 있는 군사무기의 등장과 혁명과 반동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총력전의 시대를 열면서, 다른 사회에 대한 총체적 부정과 파괴를 정당화하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심오한 야만의 시대의 특징이다. 원폭은 그 본질을 드러내는 표상이다. - P153

전시에 민간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을 부과하는 국제법은 전후에 구체화됐다. 1949년의 제네바협정(Geneva Conventionsof 1949)과 이 협정에 대한 1977년의 제1 및 제2의정서(Protocols of1977)가 그것이다. 제1의정서의 48조는 교전 당사국들에 대해 민간인과 전투요원의 구별, 그리고 민간인 사물과 군사적 목표물(civilianobjects and military objectives)의 구별을 의무화했다. 이를 전제로군사적 공격은 군사적 목표물만을 대상으로 하도록 했다. 42조는 군사적 목표물을 정의했다. "그 성격과 위치, 목적 또는 사용에 의해서군사행동에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고, 그것을 전부 혹은 일부 파괴하거나 포획하거나 무력화시켰을 때 당시 상황에서 명확한 군사적이점을 제공할 사물들"이라고 했다. 한편 54조는 민간인의 생존에필수적인 사물의 보호를 규정했다. 교전국들은 식료품과 같이 민간 - P161

인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사물들을 공격하거나 제거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다. 예외는 적대국이 군대만을 위한 필수품으로 사용하는것이거나 군사행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사물들로 한정했다.
1945년 8월 일본의 두 도시에 대한 미국의 원폭투하가 수십만 비무장 민간인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한 점을 생각하면 보다 포괄적인적실성을 갖는 것은 분명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다룬 국제규범의 현주소라고 생각된다. 민간인 대량학살을 다루는 전후의 첫 국제적 규범의 성립은 물론 뉘른베르크법정과 도쿄재판의 근거가 된 국제군사법정(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IMT)의 성립이었다. 이법정의 법적 근거는 1945년 8월 미국·소련·영국·프랑스 네 나라가 체결한 ‘런던협정‘(London Agreement)의 부속합의문으로 채택된 「국제군사법정 현장(Charter)」이었다. 전범재판 법정의 구성과기본 절차를 규정한 이 헌장은 제6조에서 "이 법정은 유럽 추축국가들의 이익을 위해 개인으로서 또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다음 세가지 범죄 중의 어떤 것이라도 저지른 사람들을 재판하고 처벌할 권한을 갖는다"고 했다. 그 세 가지는 평화를 파괴한 죄 (crimes againstpeace), 전쟁범죄(war crimes), 그리고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humanity)였다. 이 헌장은 그와 관련된 모든 행위에 대해 ‘개인적 책임’(individual responsibility)을 물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 P162

1907년의 헤이그 규정 제46, 47, 50조는 그positive rules) 위반규칙들의 적용에 어떤 예외도 두지 않았다. 무고한 사람들(innocentpopulation)의 권리는 그 어떤 군사적 필요나 편의에도 불구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군사적 필요"로 정당화하는 것을 거부한뉘른베르크의 미국군사법정의 판결이 정당성과 보편성을 갖기 위해서는 패전국뿐 아니라 미국 자신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전쟁행위에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옳을 것이다. 뉘른베르크의 미국군사법정이단죄한, 저항하는 유격대를 토벌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인질로 삼아 계획적으로 학살해간 빌헬름 리스트의 나치 군대의 만행으로부터, 군부를 비롯한 일본 지도부의 항복을 더 일찍 확보한다는 목적으로 행해진 이 나라 두 도시의 수십만 남녀노소 민간인들에 대한 원폭사용과 그 추가적인 사용의 위협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주민 인질 잡기와 대량학살이란 점에서 결국 같은 것이 아닌가. - P167

한국의 운명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폭투하가없었다면 더 불행해졌을 것이란 생각도, 그리고 그 반대의 생각도 모두 역사적 가정법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두 도시의 수십만에 달하 - P177

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한 결과로 전개된 한반도의 역사는 누구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을 역정이었다는 사실이다. 뒤늦게나마 한반도의 반쪽이 이룩한 민주화와 산업화의 혜택을 누리는 세대의 시점에서 해방 후 10년의 비극과 그 이후 지속된 분단과갈등의 역사를 ‘가능한 차선(善)‘이었다고 말해버릴 수는 없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수십만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살육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역사인식의 문제가 어느 쪽으로는 ‘닫힌 역사적 가정법‘에 갇혀 전단(專斷)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178

일본의 이웃 사회들이 풀어나갈 첫 숙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의 반인도성에 대한 인식의 공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본의 두 도시에 대한 원폭투하의 반인도성에 대한 인식을 우선 한국인들이 가급적 널리 공유하고 그것을 다른 동아시아 사회들과 더 광범하게 나눌 수 있다면, 일본 사회의 역사반성이 이웃 사회PARTIR IKK들에 의해서 강요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일본 사회 내부로부터 일본인들의 가슴으로부터 진정하게 우러난 것이 될 수 있는 기본조건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것은 대분단체제의 정신적 폐쇄회로를 풀어낼 실마리가 될 것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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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과 미중갈등 그리고 한반도(2023)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의 미중관계를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는 미국의 동아시아 경영이 그 근간에서 일본과의 유서깊은 연합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다. - P39

전후 동아시아를 ‘냉전체제‘론이 아닌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의 한 가지 의미는 전후 동아시아 질서 재편성의 주된 동력을 미소관계가 아닌, 중국과 미일동맹의 관계에서 찾 - P43

는 데 있다. 또한 냉전-탈냉전의 이분법을 넘어서, 그 두 시기를 관통하는 변화와 함께 본질적 연속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미소 냉전의 직접적 투영이였던 유럽의 국제질서와 다른 전후 동아시아질서의 고유성과 통시적인 연속성을 개념화한 것이다. - P44

제1국면은 미국과 서방이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기조에입각한 중국 경영을 통해 세계자본주의의 활력을 도모한 국면이다.
다른 한편 이 시기에 미국이 21세기형 군비경쟁을 선도하고 중국의부상에 대비하기 위해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본격화하면서 중국과의 군비경쟁이 본격화된다. 이 시기에 지속된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중국의 국력 팽창과 군사력 확충을 뒷받침하면서 흔히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라고 불리는 세력균형의 중대한 변화가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에 가시화했다.
중국의 국력 팽창은 중국 지도자들의 ‘영토적 자기정체성‘의 확장을 스반했다. - P50

2011년 무렵에 오바마 행정부가 공식화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2000년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속 미중 긴장의 제2국면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국면의 미중 갈등의 발전은 중국의국력 확대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지정학적 긴장의 재충전, 그리고미사일방어망 구축과 이를 위한 미일동맹의 강화와 같은 미국의 대응이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제2국면의 대분단체제 속 미중 갈등은 그처럼 지정학적 긴장의 재충전을 반영한 것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정치사회적 상황과도 연결되어 있다. - P50

대분단체제 제2국면에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신냉전의 막이 올랐다. 푸틴의 러시아가 2014년 서방과 대립을 각오하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행동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서 미일동맹과중국 사이에 더 심화된 긴장이 만들어낸 국제정치적 공간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전후 냉전기에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미중 갈등은 미소 냉전을 큰 배경으로 삼아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2010년대에는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신냉전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를 큰 배경으로 삼아 미중 갈등에 의지해 전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51

제3국면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는 군사적·지정학적 성격을 넘어서 지경학적 성격을 추가한다. 코로나19라는세계적인 팬데믹 사태로 말미암은 공급망 교란이 중요한 배경으로작용하기도 했지만, 그 본질에서는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기조를 버리고 중상주의적인 보호무역주의로 퇴행한 것을 뜻했다. - P52

대분단체제 기축에서지정학적 긴장이 커지는 가운데 동아시아 전반에서 군사적 긴장과군비경쟁이 심화하는 것과 때를 같이한다. 또한 중국의 권위주의 강화는 미국의 트럼프주의와 대중국 중상주의(mercantilism) 흐름과상호작용하며 서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중국 권위주의 강화 흐름은 타이완해협 소분단체제에서 2016년타이완 독립 세력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의 집권과 상호작용하고, 홍콩 민주화 운동을 촉진했다. - P57

러시아가 서방에 의한 경제제재를 각오하고 전쟁 도발을 감행한 결정적인 배경은 G2로서 세계의 공장이자 러시아 경제 최대 버팀목이며 에너지자원의 주요 수입국인 중국이 미국과의 사이에 군사적 긴장뿐 아니라 경제 전쟁 상태에 돌입한 상황이다. 푸틴이 2022년 2월 우크라12 - P58

이나 침공 직전에 중국 시진핑과 ‘무제한적 동반자관계‘(no limitspartnership)를 담은 공동성명을 확보한 사실은 그 단적인 표현이었다. - P59

한미동맹의 의미와 역할은 애당초의 취지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을억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한정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처럼 미국과 일심동체가 되지 못하면 한국은 미국에의해 버림받고 말 것이라는 불안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결국 중국경영전략은 일본과의 연합을 통해서만, 그것에 의존해서만 가능하다. - P69

투키디데스의 역사서술에 따르면, 기원전 431년에 시작해 404년에 아테네의 패배로 끝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 패배의 치명적인 이유 중 하나는 오늘의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있는 시칠리아섬의 시라쿠사를 정복해 그것을반으로 스파르타를 압도하고자 원거리 군사적 모험을 강행한 것이었다. 그 결과 아테네는 시칠리아에서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을 뿐 아니라 아테네 자체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이중 전쟁 (dual war)의 압박에 직면한다. 투키디데스는 그것을 펠로폰네소스전쟁 자체의 중요한 분수령으로 파악했다. - P72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상황이 되면, 미국 역시 핵으로 보복하게 될 것인데, 그때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핵사용 협의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또한 핵무기의 특성상 미국 대통령마저 핵무기 사용에서 깊이 숙고할 시간적 여유가 불가능한 상황인데, 워싱턴선언에서 설치하기로 합의한 한미 간 ‘핵협의그룹‘ (NCG)이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 P75

워싱턴선언에서 한국 언론이 그다지 강조하지 않은 내용은 "한미동맹은 비상사태 시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한국의 재래식 지원(conventional support)을 공동으로 실행하고 기획하도록 노력할것"이라는 대목이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을 보유한 미국이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서 그것을 ‘전시‘(戰時)라고 규정하면, 한국군 전체는 미국의 작전권 대상이 된다. 그 상황에서 핵무기 사용 여부는 미국이 결정하는데, 이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재래식 인적및 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보다 효과적인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이야기다. 또한 핵확장 억제 적용을 위한 합동연습과 훈련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이아니라, 핵전쟁 가능성을 더욱 기정사실화하고 그것을 촉진할 가능 - P77

성이 높은 활동, 특히 미국의 결정과 집행을 하위 파트너로서 뒷받침하는 활동들을 강화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 P78

우리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 다른 길은 2018년에 우리에게 열려 있었으나노크만 했을 뿐 멈추고 만, 그래서 가지 않은 길이다. 가지 않은 길은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를 진행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최대한확고한 안전보장의 장치를 북한 비핵화 조치들과 연계해 그 단계적실천의 약속을 조약화한, 마이크 폼페이오가 2018년 5월 24일 상원청문회에서 밝혔던 그 평화조약의 가능성을 새롭게 되살려 창의적으로 모색하는 길이다. - P84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의 미래를 포기하고 체념하면서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협을 ‘뉴 노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의 심각성을 충분히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도화될수록, 의도된 것이든 오인이나 우연에 의한 것이든 이 땅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걷잡을 수 없이 핵이 교환되는 세계사상 최초의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서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핵전쟁은 한반도 평화의 파괴에 그치지 않고 이 땅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자체가 불가능한 생태문명적 파멸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가 북한 핵무장을 더 강한 핵위협과 선제타격 능력으로 대처한다는 발상을 넘어서 한반도 비핵화의 비전과 그 실현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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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일(23일)에 형남에 조서를 내려서 수병(水兵) 3천 명을 징발하여 담주(潭州, 湖南 長沙)로 가게 하였다.

북한(北漢)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요(遼)에 알리고 변방을 순수하겠다고 하면서 성원해 주기를 빌었다. 정해일(8일)에 왕전빈(王全斌, 908~976)이 다시 곽진(郭進, 922~979)·조빈(曹彬, 931~999) 등과 군사를 인솔하고 북한의 낙평(樂平)을 공격하고 그의 공위(拱衛)지휘사 왕초(王超) 등을 항복시켰다.
북한의 장수 울진(蔚進)·학귀초(郝貴超)가 번(蕃)·한(漢) 병사를 다 모아서 와서 구워하자 세 번 싸워서 모두 그들을 패배시키고 드디어 낙평을 떨어트렸고 바로 세워서 평진군(平晉軍)을 만들었다.

북한은 땅이 좁고 산물이 적으며 또 해마다 요(遼)로 물건을 날라야 했으니 그런고로 나라의 쓸 것이날로 깎이었는데, 마침내 오대산(五臺山)의 승려인 계용(繼容)에게 벼슬을 주어 홍려경(鴻臚卿)으로 삼았다. 계용은 옛날 연왕인 유수광(劉守光, ? ~914)의 서자로 승려가 되어 오대산에 살았는데, 《화엄경》 강론을 잘 하여 사방에서 공양하고 보시하니 많은 것을 축적하여 나라의 쓸 것을 보탰다. 오대산은 요나라의 경계에 가까워서 항상 그들의 말을 얻어서 헌상하여 도마(都馬)라고 불렸는데, 한 해에 평균 100필이었다. 또 백곡(栢谷)에서 은(銀)을 야광(冶鑛)하여 백성을 모집하여 산을 뚫고 광물을 가져다가 은을 녹였으니 북한에서는 그 은을 가져다가 요에 보냈는데, 해마다 1천 근이었으며 바로 야은(冶銀)하는 것으로 인하여 보흥군(寶興軍, 山西 繁峙縣 東南)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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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정월에 王이 益州에 넌지시 지시하여 변방 밖에 있는 오랑캐들로 하여금 스스로 월상씨라 칭하고, 여러 번 통역을 거쳐 흰 꿩 한 마리와 검은 꿩 두 마리를 바치게 하니, 이에 여러 신하들이 ‘왕망의 공덕으로 주나라 성왕 때 흰 꿩을 바친 상서를 이루었으니, 왕망에게 마땅히 안한공이라는 호를 하사해야 한다.‘고 지극히 말하였다. ≪漢書 王莽傳≫ - P169

林氏가 말하였다.
"王莽의 반역하는 일이 이미 싹텄는데도 漢나라 조정의 公卿들이 그의 忠犬 노릇을 하면서 일찍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梅福은 會稽에 은둔하고 逢萌은 遼東에 나그네가 되어서 자기 몸이 장차 더럽혀질 듯이 여겼다. 夫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독실히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음으로 지키고 道를 잘하며, 위태로운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않는다.‘ 하였으니, 두 사람이 이것을 행하였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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